§ 나는 될놈이다 1577화
“왜 이러십니까!!”
“길드 동맹의 첩자가 분명하군. 내 방송을 보고 움직였겠지? 내가 오스턴 왕국으로 온다고 발표했을 테니까.”
태현은 냉정하게 말했다.
지금 이 모든 걸 중계하고 있는 만큼 당연히 부작용도 예상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이렇게 방송으로 미리 위치 파악하고 대기하고 있는 놈들!
목적이야 뻔했다.
“굶주린 혼돈의 관문을 파괴하는 걸 막고 뺏으려는 거겠지?”
“아닙니다!!”
“우우우! 쓰레기 같은 길드 동맹 놈들!”
“비겁하다!”
-진짜 비겁한 놈들이네!
-어떻게 저렇게 비겁할 수가 있지! 만사 제쳐놓고 자기네 영지 도와주러 왔는데!
원정대는 물론이고 방송을 보고 있던 사람들까지 다 합심해서 욕을 퍼부었다.
길드 동맹 간부들은 정말 억울하다는 듯이 외쳤다.
“그게 아니라 항복하러 온 겁니다!”
“퍽이나 그러시겠군.”
태현은 피식 웃었다. 다들 간부들을 비웃었다.
어디서 저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진짜라고요!”
“진짜면 길드 동맹 탈퇴해 봐라.”
“만약 탈퇴하면 파워 워리어 길드에 넣어버리죠?”
이다비는 옆에서 한술 더 떴다.
길드 동맹에서 나오는 것으로도 모자라 파워 워리어에 강제 가입을 시켜버린다면, 평범한 사람은 절대 견디기 힘든 굴욕일 터!
“…이, 이다비. 파워 워리어 길드에 넣는 게 그렇게 벌칙은 아니지 않아?”
“벌칙이죠?”
이다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태현은 나름 파워 워리어 이미지를 위해 배려한 것이었지만 이다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파워 워리어는 원래 이런 곳인데!
“보십시오! 이미 탈퇴한 상태입니다!”
“저도 탈퇴했습니다!”
“…?!”
“파워 워리어에 초대만 해주시면 바로 가입하겠습니다!”
“그런다고 못 할 줄 알아요?”
이다비가 못 믿겠다는 듯이 말하며 길드 가입 초대를 보냈다.
[친야오가 파워 워리어에 가입했습니다!]
[선드레드가 파워 워리어에 가입했습니다!]
[기브팔 성이 파워 워리어에 추가됩니다!]
[기브팔 성에 파워 워리어 길드 건물을 추가로 설치할 수 있습니다!]
[기브팔 성 NPC에 추가…]
[칠라로스엔 성이 파워 워리어에 추가됩니다!]
[……]
[……]
-???
-???
-뭐임?? 도대체 뭐임??
-버그 아닌가?
-길마님 장난치지 마세요. 저희 이런 거에 안 속아요. 왜 갑자기 영지가 생겨요.
-<기브팔 성>이라는 사람이 가입한 거 아닌가?
-그러면 가입이라고 뜨지 추가라고 안 뜨지 않나?
가만히 있던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커다란 충격을 받아 떠들었다.
갑자기 길드에 익숙한 이름의 랭커가 가입하더니 영지까지 생기다니.
뭔가….
뭔가 이상한데??
“진, 진, 진짜 가입했는데요?”
이다비는 충격과 경악으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진정해. 이다비. 함정일 수도 있어. 파워 워리어를 내부에서 무너뜨리려는….”
“그, 그런… 어? 그게 어떻게 가능하죠?”
“나도 말하고서 불가능하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긴 해.”
다른 길드와 달리 파워 워리어는 저런 식이 불가능했다.
애초에 길드 자체가 좀 모래알 같은 길드라 들어가서 훼방을 놓으려고 해도 놓을 게 딱히 없는 것이다.
게다가 저기 간부들을 높게 대접해 줄 것도 아닌데 할 수 있는 게 딱히 있지도 않고….
“저희의 이야기를 들어주십시오!”
“그래. 알겠다. 말해봐라.”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일 년쯤 전에….”
“…세 줄 요약해라.”
* * *
-쑤닝이 미쳐서 굶주린 혼돈으로 갈아탔다!
-반대하는 간부들 다 탈퇴!
-돈에 미친 투자자들이 순수한 길드 동맹을 오염시켰어!
…으로 요약이 되었다.
“딱히 길드 동맹이 순수하지는 않았잖아?”
“그러게요?”
태현과 이다비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서로를 쳐다보았다.
길드 동맹은 투자자 붙기 전부터 딱히 순수하지는 않았었다.
지나가는 사람들 삥 뜯기, 던전에 길드원들만 들어가게 하기, 퀘스트 독점하기 등등.
“…그 정도면 순수한 거 아닙니까?”
“순수가 다 죽게 생겼다. 어쨌든 쑤닝이 너희 말 안 들어줘서 탈퇴했다 이거지?”
“예… 미다스 길드에서도 여러 이탈자가 나왔을 겁니다.”
지금 길드 동맹은 쑤닝에게 찬성하는 간부들과 찬성하는 미다스 길드 랭커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도저히 스미스한테 당하고는 못 살겠다는 플레이어들!
그에 비해 몇몇 간부들은 ‘이건 진짜 아닌 거 같아!’ 하고 탈주를 시도한 것이다.
“그래. 알겠다.”
“도와주실 겁니까?!”
“…어. 잠깐만. 너희는 나한테 무슨 도움을 원하는 거냐?”
태현은 멈칫했다.
이탈해서 이쪽으로 온 건 알겠는데 뭘 도와달란 거지?
‘설마 나보고 쑤닝을 설득해달란 건 아니겠지?’
그런 거라면 정말 미친 소리였다.
“나보고 설득해달라는 거라면 그건 힘들….”
“하하하하하! 저희도 미치지 않고서야 김태현 선수한테 그런 부탁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죽이라고 할까요?”
이다비가 슬쩍 물었다.
항복해 온 주제에 은근슬쩍 재수 없게 굴고 있었던 것이다.
간부들은 당황해서 외쳤다.
“저, 저희 길드원인데요!?”
“길드원의 목숨은 길마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길드 동맹 규칙 아니었어요?”
“그, 그건 길드 동맹이고 여기는 파워 워리어니까 자유롭게….”
태현은 조용히 하라는 듯이 손을 흔들고 말했다.
“그러면 나한테 뭔 도움을 원하는 거냐?”
“김태현 선수가 쑤닝부터 시작해서 스미스부터 갈아버려 주십시오. 그러면 정신을 차릴 겁니다.”
“…….”
태현은 순간 당황했다.
“정신을 차리는 걸 떠나서 그 정도 피해면 보통 게임을 접지 않나?”
“접으면 뭐 접는 거죠.”
“그 정도는 쑤닝도 각오했겠죠.”
“…….”
간부들의 태도에 태현은 깨달았다.
‘아 이 자식들….’
딱히 쑤닝이 안타까워서 온 게 아니라, 쑤닝한테 쫓겨난 게 억울해서 온 거였구나!
“그, 그래. 알겠다. 어차피 굶주린 혼돈으로 갈아탔으면 나하고는 싸우게 될 테니….”
* * *
오스턴 왕국 남부.
한때는 역병이 어마어마하게 퍼져 있어서 살아 있는 이들은 들어가기도 힘든 곳이었지만, 지금은 그 역병이 사라지고 빠르게 부흥하고 있었던 곳이었다.
그렇다고 개척 마을만 있지는 않았다. 역병지대 바깥에는 예전부터 역사가 이어져 온 쓸 만한 도시나 성들도 여럿 있었다.
-저기 저 배신자들의 도시를 보시오!
아크락스는 대도시를 가리키며 말했다.
바야드리안 시!
여러 교단들의 대신전이 남아 있는(태현이 왕국에서 다른 교단 쫓아낼 때 가까운 여기로 몰려오기도 했다) 대도시였다.
그런 만큼 저기서 힘을 내서 공격을 해야 하는데!
“…….”
-아니. 저런 곳이라면 나오지 못하는 것도 이해는 가지….
역병 선장 폴로뮤스가 그렇게 말할 정도로, 바야드리안 시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무려 성문에 굶주린 혼돈의 관문이 생겨난 것이다.
-대체 어떻게 버틴 거지?
-나약한 사제 놈들이 제법 힘을 썼나 보군.
악마 공작도 인정할 정도로 도시의 교단 NPC들은 잘 버티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신성력을 사용해서 대형 결계로 관문을 막아버린 것이다.
결계가 풀리는 순간 관문에서 굶주린 혼돈의 군세가 쏟아져 나올 테니까!
“저 정도면 정상참작을 해줘야 하지 않나?”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씀을… 아키서스 교단의 교황쯤 되시는 분이 그런 유약한 말씀을 하시다니!
아크락스는 진심을 담아 화를 냈다.
태현은 어이가 없었다.
‘니가 갈락파드냐?’
갈락파드도 만만찮게 과격한 NPC였지만 아크락스는 한술 더 떴다.
-예전 아키서스 교단은 인질이 잡히면 인질을 먼저 죽이고 싸울 정도로 불의를 참지 못하는 교단이었소!
“그건 미친놈이잖…?”
인질을 왜 먼저 죽여?
-지금 자기 도시 하나 지키자고 대륙의 혼란을 내버려 두고 있다니! 도시가 불타더라도 관문을 파괴해야지!
-저 미친 자는 무시하고 우리끼리 이야기를 나누자고.
-그러는 게 좋겠군.
폴로뮤스와 푸르네우스는 아크락스를 무시하고 말했다.
-저 굶주린 혼돈의 관문 안으로 들어가면 놈의 영지 중 하나가 나올 거다. 그 영지를 파괴해야 해.
-영지를 파괴하는 건 만만치 않을 거다. 놈의 부하들 중 가장 뛰어난 놈들만을 뽑아서 맡겼을 테니까.
“상관없다. 지금 바로 들어갈 거니까.”
태현은 단호하게 말했다.
아마 준비를 할 거면 더 준비하란 소리겠지만, 애초에 여기 올 때부터 그 정도는 각오하고 있었다.
지금 동원 가능한 준비는 다 한 상태!
아키서스 포병대는 물론이고 악마 죄수들, 아키서스 성기사단과 사제단들까지도 데리고 왔다.
골짜기 랭커들은 물론이고 악마 군단에 이데르고 교단까지 끌고 왔으니….
‘지금 생방송 하고 있는 만큼 시간 끌어봤자 변수만 생긴다. 바로 들어가야 해.’
속전속결.
태현은 이번 퀘스트를 깨면서 조금의 시간도 낭비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들어간다!”
[굶주린 혼돈의 관문으로 들어갑니다!]
[굶주린 혼돈의 영역으로 나아갑니다!]
[혼돈으로 인해 감각이 흔들립니다!]
[행운이 매우 높습니다. 회피에 성공합니다!]
[……]
[<굶주린 혼돈의 빙하>에 입장합니다!]
[극심한 추위가 휘몰아칩니다!]
[저항에 성공합니다!]
휘이이이잉!
들어오자마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센 눈보라가 일행을 후려갈겼다.
태현처럼 버틸 수 있는 랭커들은 괜찮았지만, 견디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나왔다.
“버프 부탁드립니다!”
“주문서 써! 냉기 저항 주문서!”
곳곳에서 마법과 주문서들이 시전되었다. 그 모습에 푸르네우스는 웃음을 터뜨렸다.
-나약한 필멸자들아! 고작 이런 추위에 벌벌 떨다니!
‘냉기의 핵도 뺏긴 새끼가….’
[카르바노그가 벌써부터 시비 털지는 말자고 말합니다!]
태현이 뭐라고 하려는 걸 카르바노그가 말렸다.
지금 막 들어왔는데 벌써부터 싸워서 좋을 건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여기가 빙하 지역이라면 빙결공의 힘이 필요한 건 사실이었다.
“으억. 멀미인가?”
“앞… 앞으로 가려고 하는데 뒤로 가지는데?”
“지금 감각이 뒤흔들린 상태로 좀 기다려야 할 것 같은데요.”
추위만 디버프가 아니었다.
여기에 입장하면서 감각이 뒤흔들린 탓에 발이 묶인 랭커들이 여럿 나온 것이다.
“반대로 움직이면 되지 않나?”
“…태현 님은 그냥 조용히 하시는 게 나을 거 같은데요. 잠깐 기다렸다가 가죠!”
일행이 잠시 휴식을 선언하자, 푸르네우스는 오만하게 외쳤다.
-나약한 필멸자들. 이번에는 내가 자비를 베풀어주마.
[빙결공이 냉기를 몰아내기 시작합니다!]
[냉기가 한결 줄어듭니다!]
-내가 여기 있는 적들을 먼저 상대해 보고 오겠다!
푸르네우스는 악마들을 데리고 먼저 눈보라를 헤치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주변에 가득 찬 냉기 때문인지 푸르네우스의 힘은 평소보다 더욱더 강하게 느껴졌다.
“같이 움직이게 해야 하지 않나?”
-그냥 가서 뒤지든 말든 내버려 두는 게 낫겠군.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폴로뮤스와 아크락스는 냉정했다.
악마 새끼야 뒤지든 말든…!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교황님.
“!”
뒤에 있던 아키서스 포병대 드워프가 말을 걸어왔다.
-만약에 저렇게 나갔다가 죽기라고 하면 얼마나 아쉽겠습니까? 잘 우리 안에 가둬놔야….
“…야. 조용히 해라. 듣겠다.”
푸르네우스가 아키서스 포병대 우리에 갇혀 있는 악마들을 보면 무슨 반응을 보일지 태현도 알 수 없었다.
일단 최대한 피해놓자!
“이쪽 회복 다 끝났습니다!”
“여기도 회복 끝났어요!”
‘그래도 빨라서 다행이군.’
태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빙하 지역이 걸린 게 행운일지도 몰랐다.
푸르네우스 놈이 저러는 게 재수 없기는 해도, 무능력한 것보다는 재수 없는 게 나았으니까!
잠시 후.
-아키서스! 아키서스! 주인님을 도와주십시오!!
푸르네우스의 부하가 허둥지둥 달려와서 외쳤다.
태현은 할 말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