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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576화 (1,575/1,826)

§ 나는 될놈이다 1576화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말라 죽을 뿐! 우리는 먼저 공격한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김태산의 외침에 모여 있던 플레이어들부터 시작해서 NPC들까지 함성을 터뜨렸다.

그러고 나서 플레이어들은 의문에 빠졌다.

“어? 그런데 어딜 먼저 공격하신다는 거지?”

“그러게?”

지금은 대륙의 대부분이 굶주린 혼돈의 어둠으로 덮여 있었다.

평소처럼 플레이어들과 정보를 공유하며 ‘여기에 뭐가 새로 나타났는데 퀘스트 아닐까?’ ‘그러면 파티 모아서 한 번 가보자’ 같은 방법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굶주린 혼돈의 군단들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어디에 본거지를 꾸렸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

그런데 어디를 공격한다는 거지?

“나를 따르라!”

“와! 와!!”

김태산은 오크 친위대 전사들과 함께 앞으로 움직였다.

뒤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일단 뒤를 쫓아서 갔다.

그 뒤에 있던 플레이어들도 똑같이 따라 했다.

‘근데 진짜 어디로 가는 거냐??’

* * *

태현은 최악의 상황을 각오했었지만, 놀랍게도 아크락스는 상황을 꽤나 빠르게 받아들였다.

-대륙을 구하기 위해서는 쓰레기 같은 쓰레기들도 이용할 수 있어야 하겠지….

-뭐 이 새끼야?

-마계에서 파이토스의 이름은 호구의 이름으로 쓰이는 걸로 알고나 있나? 애송이 놈아?

아크락스의 말에 폴로뮤스와 푸르네우스 모두 발끈했지만 아크락스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런 사악한 이들과 함께하느라 마음고생이 심하시겠소. 교황 성하.

“어쩌겠나. 내가 해야 할 일인데.”

푸르네우스의 몸을 뒤덮고 있던 얼음이 분노로 순간 녹아내렸다.

지금 누가 누구보고 사악…?

-지금 교황 성하에게 드릴 제안이 있소.

아크락스는 말과 함께 지도를 꺼냈다.

<굶주린 혼돈의 관문 파괴-굶주린 혼돈 토벌 퀘스트>

굶주린 혼돈은 막강한 적이지만 그 힘은 무한하지 않다.

저 먼 차원에서 넘어오는 것은 악마 공작에게도 쉽지 않은 일.

지금도 굶주린 혼돈의 하수인들은 더 많은 군단들이 넘어오게 할 수 있도록 대륙 곳곳에 관문을 설치하고 있다.

굶주린 혼돈의 관문을 파괴하라!

만약 성공한다면 굶주린 혼돈의 세력은 더 이상 늘어나지 못하리라.

보상: ?, ???

-여기서 가장 가까운 관문은 북쪽 오스턴 왕국 남부에 설치된 관문이오. 이 관문을 파괴하는 데 성공한다면 근처에 있는 파이토스 교단의 배신자들도 생각을 고쳐먹을지도 모르오.

이다비가 무심코 물었다.

“안 고쳐먹으면요?”

-안타깝지만 처형해야겠지.

“…….”

이다비는 못 들은 척 넘겼다.

-저 하찮고 무식한 놈의 의견을 듣고 싶지는 않았지만 저 지도는 쓸만하군.

-이번에는 동의해 주겠다.

놀랍게도 폴로뮤스와 푸르네우스도 동의했다.

근처에 굶주린 혼돈의 관문이 있다면 일단 파괴를 하고 봐야 했던 것이다.

모두의 뜻이 다 통했으니 이제 출발만 하면 됐….

“으음.”

-??

-????

“꼭 오스턴 왕국에 가야 하나? 아탈리 왕국에는 없나?”

-아, 아니… 교황 성하. 오스턴 왕국에 있는 관문을 안 막으면 이쪽으로도 몬스터들이 올 텐데….

“아. 누가 모른다고 했나? 그냥 물어보는 거잖아.”

명백히 싫어하는 태현의 태도에 푸르네우스가 설마 싶어서 물었다.

-지금 설마 자기 왕국이 아니라고 가기 싫어하는 건 아니겠지?

다른 탐욕스러운 왕이면 모를까 아키서스 교단의 교황이라는 자가 설마 그런 졸렬한 짓을?

-지금은 이기적으로 굴 때가 아니라 대륙의 안위를 걱정해야 할 때다, 아키서스의 교황 놈아!

“웃기고 있네. 자기 성 하나 뺏겼다고 대륙까지 쫓아온 놈이.”

-…지금 그 이야기가 왜 나오냐!!

[빙결공이 극도로 분노합니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폴로뮤스가 즐거워합니다!]

[아크락스가 고소해합니다!]

‘푸르네우스의 말이 사실 틀린 건 아니긴 하지.’

지금은 오스턴 왕국에 있든 마계에 있든 일단 힘을 합해야 할 때가 맞긴 했다.

…문제는 다른 놈들도 그렇게 생각하느냐!

만약에 태현이 친절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희생해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면 다른 사람들도 ‘김태현 너의 선한 마음에 감동했다! 우리도 널 도와줄게!’라고 할까?

그럴 가능성은 0에 가까웠다.

특히 길드 동맹 같은 대형 길드들은 ‘김태현 이 자식 우리는 네게 복수할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하며 덤벼들 가능성이 높았다.

‘어쩔 수 없나.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으니. 주의하면서 해야겠군.’

태현은 일단 관문 퀘스트를 먼저 깨기로 결심했다.

남은 건 조심해서 견제해 보자!

그러나 상황은 태현의 생각과는 좀 다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특히 길드 동맹의 상황은 훨씬 더 최악이었다.

* * *

“미다스 길드와 연합을 했는데도 밀렸다고…?”

쑤닝은 믿기 힘들다는 듯이 말했다.

스미스가 굶주린 혼돈과 손을 잡고 나서 파죽지세로 밀고 나오자, 길드 동맹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아예 미다스 길드와 연락을 해서 손을 잡은 것이다.

평소에는 싸우더라도 오스턴 왕국의 일이 걸리면 누구보다도 친밀하게 협력하는 두 길드!

…그런데도 충격적으로 밀렸다.

<화덴 평원 전투!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 다수 참여, 화이트 나이트 대승리!>

<길드 동맹 랭커 최소 다섯 명 로그아웃!>

<미다스 길드 붕괴하나?!>

<일각에서는 ‘명문 게임단 선수들이 초보자들 괴롭히는 퀘스트에 참가해도 되냐’고 항의…>

<뉴욕 라이온즈는 ‘이 또한 게임의 일부일 뿐이다’라고 일축…>

-진짜 오스턴 왕국을 스미스가 먹나!?

-말도 안 돼! 길드 동맹이 진짜 망한다고??

-길드 동맹 망한다, 길드 동맹 망해라, 그런 소리는 많이 들었는데 진짜 망할 줄은 몰랐는데. 세상일 모르는 법이구나.

<화덴 평원 전투>는 각종 채널로 생중계가 된 덕분에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지켜보았다.

그리고 플레이어들도 똑같이 충격을 받았다.

길드 동맹과 미다스의 랭커들이 힘을 합쳐서 덤벼들었는데도 밀리다니.

아무도 생각 못 한 결과였다.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야, 저러면 저걸 누가 막냐??

-그냥 굶주린 혼돈이 대륙 먹을 거 같은데. 진지하게 굶주린 혼돈 세력 타야 하나?

-아직 대륙에 왕국 많이 남았잖아.

-시간문제 아님? 지금도 회복 안 된 거 보면 더 강해질 거 같은데.

-난 스미스한테 실망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굶주린 혼돈으로 갈아타냐?

-더 좋은 직업이면 갈아탈 수도 있지.

-개소리하고 있네! 굶주린 혼돈이 그냥 직업이냐? 지금 정상적인 플레이 자체를 막아버리는 악의 세력인데! 까놓고 말해서 스미스가 지금 길드 동맹하고 뭐가 달라?

-말이 너무 심하네! 길드 동맹이라니!

-길드 동맹보다 더 심하지! 길드 동맹은 세금 내면 돌아다니게는 해줬는데. 굶주린 혼돈은 아예 돌아다니지도 못하게 하잖아!

-…나쁜 새끼들아, 우리 길드 이름을 욕으로 쓰지 마….

사람들의 반응처럼 길드 동맹 회의실도 혼란스러웠다.

쑤닝은 결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팡이 갖고 와라.”

“…!”

“!!!!”

“안 됩니다!”

몇몇 간부들이 기겁해서 말렸다.

지금 말하는 지팡이는 바로 <녹슬어버린 고대 제국 황실의 지팡이>였다.

고대 제국을 상징하는 어마어마한 유물이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고, 다른 게 중요했다.

[굶주린 혼돈의 기운에 오염되었습니다. 건드릴 경우 저주받을 수 있습니다!]

저번에 얻었을 때도 간부들이 ‘이건 미친 짓입니다!’ ‘저거 썼다가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하고 말렸던 지팡이.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스미스가 뭔 약이라도 먹은 것처럼 미친놈같이 날뛰고 있고 길드 동맹이 무너지기 직전인데, 쑤닝은 그냥 두고 볼 생각이 절대 없었다.

‘개자식. 김태현이면 몰라도 네놈한테 그냥 질 거 같냐!’

설마 이 지팡이를 스미스 때문에 쓰게 될 줄은 몰랐지만….

“길마님. 때로는 굽어 보이는 길이 더 빠른 길입니다! 저 지팡이를 썼다가는 진짜 뒷감당을 못 하는 수가 생깁니다.”

“길드 이미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스미스 같은 놈도 욕을 엄청나게 먹고 있는데, 당장이야 불을 끌 수 있어도 나중에 굶주린 혼돈 퀘스트가 그냥 끝나버리면 시궁창 이미지만 남는 겁니다!”

간부들이 말리자 쑤닝은 멈칫했다.

나름 간부들의 말도 일리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찬성하는 간부들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최근에 들어온, 투자자의 아들인 자쉬안 같은 간부들이었다.

“길마님! 잘 생각해 보십시오! 길드 이미지는 이미 시궁창 이미지입니다!”

“…….”

“…….”

화끈한 발언에 간부들은 황당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저 새끼 진짜 투자자 아들이라고 대가리 속에 뇌 대신 솜뭉치 넣어 다니는 거 아니냐??’

“길드 동맹이 사람들한테 존중받는 이유는 강한 힘을 가져서지, 이미지가 좋아서가 아니란 말입니다! 저희가 더 강해져서 장악을 해버리면 욕이야 좀 먹겠지만 사람들은 결국 우리 길드에 들어올 겁니다. 투자받은 돈을 생각하세요! 그 돈을 그냥 날려 버리실 겁니까!”

“…!”

쑤닝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길드 동맹은 일개 길드가 아니었다.

각종 투자자들한테서 거액을 받은 이상 제대로 굴려야 한다!

“맞는 말이다! 언제부터 내가 이미지를 신경 썼다고.”

“맞습니다!”

“스미스 놈,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는 놈 주제에 다른 선수들 도움받아서 날뛰는 거 보십시오! 심지어 이번에는 굶주린 혼돈까지! 절대 용서할 수 없습니다!”

“김태현 놈보다 더 비겁하고 짜증 나는 놈입니다! 그런 놈한테는 질 수 없지 않습니까!”

결국 쑤닝은 <녹슬어버린 고대 제국 황실의 지팡이>을 잡아들었다.

* * *

“와. 생각보다 엄청 치열하게 싸웠군.”

태현은 오스턴 왕국으로 이동하면서 다른 쪽 방송들을 챙겨봤다.

여러 게임단들이 어떻게 퀘스트 깨고 있나 찾아보려고 한 거였는데….

‘이 새끼들 왜 퀘스트를 아무도 안 깨는 거 같지…?’

스미스는 진짜 작정을 했는지 굶주린 혼돈으로 갈아탔고, 길드 동맹이나 미다스는 개처럼 두들겨 맞고 쫓겨났다.

다른 왕국에 있는 대형 길드들은 뭐하나 영상을 찾아봤는데 딱히 별 영상이 없었다.

아마 준비를 하고 있거나 눈치를 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 우리도 그냥 영지에 있을 거 그랬나??”

태현은 갑자기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배장욱은 뒤에다가 손짓했다.

-한동안 투덜댈 거 같으니까 다른 곳 찍고 있도록.

-예!

배장욱이 김태현 선수와 같이 다니면서 느낀 건, 생각했던 모습과 이미지가 좀 다르다는 것이었다.

원래 배장욱이 알고 있던 태현의 모습은 차갑고 냉정하고 오만한 천재 선수였는데….

실제 모습은 생각보다 잔소리가 상당히 많았다.

-야. 넌 대체 왜 스킬을 그렇게 헤프게 쓰냐? 평타 두 번 쓰고 스킬 한 번 넣으라고 했잖아.

-그, 그게… 이게 싸우다 보니까 정신이 없어서….

-네가 그렇게 자꾸 까먹으니까 저번에 청소를 할 때도 쓰레기통 비우는 걸 까먹는 거야.

-아니 그게 왜 지금 나오는… 케인은 그리고 나보다 더 까먹는….

-지금 케인하고 비교하고 싶냐?

-아, 아니야. 잘못했어.

…이런 대화들을 듣다 보면 저게 김태현 선수인지 아니면 초등학교 선생님인지 슬슬 헷갈리기 시작했다.

“야. 태현아. 다른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 때 먼저 움직이니까 의미가 있는 걸지도 몰라.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잖아.”

“벌레도 자고 있을 정도로 일찍 일어나면 굶어 죽는데 뭔 헛소리야?”

최상윤의 말에 태현은 냉정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이다비가 위로했다.

“먼저 움직여서 불리할 수야 있겠지만, 퀘스트 선점에는 유리할지도 몰라요.”

“하긴 그건 그렇지.”

‘저런 개새…?’

최상윤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태현을 노려보았다.

저놈 저거…!

“김태현 선수!!”

“?”

멀리서 한 무리의 플레이어들이 나타나자 태현은 의아해했다.

지금 필드에 사람이라고는 거의 없는 상황인데 누구지?

“길드 동맹 쪽 간부인데요? 얼굴 본 적 있어요.”

“그렇군. 공격 준비!”

달려 나오던 간부들은 갑자기 앞에 있던 플레이어들이 무기를 겨누자 기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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