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575화
방송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다 ‘파이토스 교단이 아니라 아키서스 교단 NPC인 듯’ 하고 결론을 내렸다.
파이토스 교단이 저런 부분에서 능력을 보여준 적이 드물었던 것이다.
그나마 최근에 있었던 대형 퀘스트도 주교 실종된 걸 찾아오는 퀘스트였으니 플레이어들이 신뢰를 가지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겉모습은 멀쩡해도 대륙의 위기에서는 별로 한 거 없는, 빛 좋은 개살구!
그게 바로 파이토스 교단의 최근 이미지였다.
“파이토스 교단… 고맙다! 이런 능력이 있었을 줄은 몰랐는데!”
“맞아요. 이런 능력이 있었으면 좀 진작에 나서지!”
“그러게. 나도 그런 생각을 하긴 했지. 생각해 보니까 화나는데. 왜 이제까지 가만히 있었지?”
“저번에 태현 님이 굶주린 혼돈 퀘스트 깰 때도 별로 도움 안 됐었죠.”
태현과 이다비는 처음에는 감사해하다가 살짝 화가 나기 시작했다.
저런 능력이 있었는데 왜 이제까지 가만히 있었단 말인가?
[카르바노그가 아마 교단 내에서 서로 의견 다툼이 있어서 쉽게 움직이지 못했을 것 같다고…]
태현을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아키서스 교단과 달리, 대형 교단들은 보통 파벌이 여러 개였다.
능력 있는 대주교들과 성기사단장들이 있는 만큼 그 중심으로 파벌들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카르바노그가 아키서스 교단은 인재들이 부족한 게 어떻게 보면 장점일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건 아니지. 선 넘지 마라 카르바노그.’
태현은 정색했다.
어디서 은근슬쩍 포장질을….
주교들이 많으면 좋은 거지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란 말인가!
[파이토스 교단 망치기사단의 단장, 아크락스가 당신에게 인사합니다!]
[파이토스 교단의 망치기사단은 교단의 성기사들 중에서도 가장 완고하고 전투적인 이들입니다!]
[이들의 합류는 커다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오….’
메시지창은 또 그럴듯했다.
태현은 살짝 마음이 흔들렸다.
“태현 님. 속지 마세요. 어차피 파이토스 교단이라 나중에 분명 발목 잡고 상처 받으실 듯.”
“…….”
이다비의 정확한 현실 예측이 태현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다.
하긴 그건 그렇지!
-교황 성하. 처음 뵙겠소. 망치기사단을 이끌고 있는 아크락스라고 하오.
“그래. 반갑다. 도와줘서 고맙군. 아크락스. 그런데 궁금한 게 있는데, 저 짐승 군단들을 어떻게 떨쳐낼 수 있는 거지?”
태현은 가장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파이토스의 나팔이란 걸 썼다는 건 알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저렇게 쫓아가는 사냥개들을 어떻게 따돌릴 수 있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특수한 스킬이라도 있나?
-어렵지 않소. 먼저 가장 충성스럽고 신앙심 강한 망치 성기사들을 뽑는 것으로 시작하오.
“그렇겠지. 그 다음은?”
-나팔을 사용해서 사냥개들을 유인하고, 성기사들은 바다로 향하오.
“과연… 바다로 들어가는 건가. 그 다음은?”
-바다 속에서 영원히 사냥개들을 봉인시키는 것이오.
“…?”
“?”
태현과 이다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그러면 성기사들은 못 나오지 않나?”
-그렇소.
“…….”
태현은 질색했다.
이런 미친놈들이?!
“정신 나간 놈들 아니야??”
“아키서스 교단도 저러지는 않잖아요!”
태현과 이다비는 서로 속삭이며 경악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크락스는 강하게 말했다.
-교황 성하! 성기사들의 희생으로 군단을 일시적으로 물리쳤지만, 아직 대륙의 많은 곳은 굶주린 혼돈의 어둠으로 신음하고 있소. 이 땅들을 회복시켜야 하오!
<망치 성기사들의 합류-파이토스 교단 퀘스트>
파이토스 망치기사단의 단장, 아크락스는 성기사들을 이끌고 당신에게 합류했다.
지금 굶주린 혼돈과 맞서 싸우는 세력 중 가장 적극적이고 많은 성과를 거둔 것은 당신.
그런 당신에게 아크락스가 찾아온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크락스를 실망시키지 않도록 굶주린 혼돈과 싸워라! 아크락스가 실망할 경우 떠날 수 있다.
보상: ?, ???
‘아. 교단 NPC들은 일단 공적치 포인트 높은 쪽으로 찾아가는 건가?’
그런 거라면 태현 쪽에 찾아온 것도 이해가 갔다.
다른 쪽의 진행도를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지금 태현처럼 굶주린 혼돈과 많이 싸운 플레이어도 드물 테니까.
전사 군단 하나 전멸시키고 짐승 군단 하나 반파시켰으니….
“아크락스. 합류해 준 건 고마운데 다른 사람들은 더 없나?”
태현은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파이토스 교단에 망치기사단만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여러 사제단부터 시작해서 각종 단체가 있는 만큼 더 받을 수 있다면….
‘다른 놈들이 가져가기 전에 미리 선점을 해둬야 해.’
태현도 이 대륙 퀘스트가 경쟁이 치열해질 거라는 것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각종 랭커들부터 대형 길드들까지 생방송으로 중계를 한다고 했으니 어마어마한 투자가 들어가리라.
지금이야 퀘스트 초반이라 가진 밑천 쏟아 붓는 태현이 앞서나간다지만 시간이 지나가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상황.
챙길 수 있는 건 미리 챙기는 게 좋다!
-당연히 있소.
“…어. 그놈들은 다 어디 있지? 같이 싸우면 좋을 것 같은데.”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아크락스는 갑자기 침통한 표정을 짓더니 목소리를 깔았다.
-…교단의 어리석은 자들은 신전에 틀어박혀 있소! 대륙이 불타고 있는데 신전부터 지켜야 한다고 하고 있지!
‘괜히 물어봤군.’
-하지만 교황 성하라면 이해해 줄 것이라고 믿소.
“어… 뭘 말이냐?”
-굶주린 혼돈과 싸워야 한다는 것을!
“그건 그렇지.”
-그리고 싸우지 않으려고 하는 배신자들은 모두 처벌해서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응?”
<반대파 처벌-파이토스 교단 퀘스트>
파이토스 망치기사단의 단장, 아크락스는 지금 교단의 상황에 매우 절망하고 있다.
하지만 기사단장 아크락스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인물.
아크락스는 파이토스 교단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말을 듣지 않는 자들을 모조리 처벌하려고 한다.
기사단장을 도와 파이토스 교단의 배신자들을 처벌하라!
보상: ?, ???
“…….”
“…….”
태현과 이다비는 정색했다.
‘뭐 이런 미친 퀘스트가 있냐?’
얻는 것과 비교해서 잃는 게 너무 많은 퀘스트였던 것이다.
지금 굶주린 혼돈과 싸워야 하는 와중에 파이토스 교단의 말 안 듣는 놈들하고 싸우라고?
이걸 해도 문제였다.
하는 순간 간신히 돌려놨던 파이토스 교단 평판, 친밀도는 대하락!
“아크락스. 미안하군. 우리 교단은 의견 충돌이 일어났을 때 그런 방식으로 해결하지 않아. 같은 신앙의 형제들끼리 피를 볼 수는 없으니까.”
옆에서 이다비가 당연하다는 듯이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의견 충돌이 없을 수밖에 없는 구조긴 했지만, 어쨌든 저런 식으로 해결하지 않는 건 사실이었다.
평화롭게 해결해야지!
-말… 말도 안 되오! 교황 성하! 정말 평화로운 방법으로 해결한단 말이오??
아크락스는 못 믿겠다는 듯이 부르짖었다.
아키서스 교단에서 그런 평화로운 방법을 쓴다는 게 영 믿기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 새끼 아키서스 교단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태현은 살짝 발끈했지만 인자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아키서스 교단이 중요시하는 건 무엇보다도 평화와 화합이지.”
-…….
[현재 명성이 매우 높습니다!]
[화술 스킬이 매우 높습니다!]
[……]
[……]
[보너스를 받습니다!]
[아크락스가 설득되지 않습니다! 설득에 실패합니다!]
[화술 스킬이 조금 오릅니다.]
-인정할 수 없소! 배신자들에게 필요한 건 철과 망치지, 따뜻한 설득이 아니란 말이오! 교황 성하도 평화 때문에 물러진 게 틀림없소!
-아니 이 새끼가 지금 뭐라는 거야?
-지금 누굴 보고!
옆에서 듣고 있던 아키서스 성기사들이 발끈했다.
지금 대륙에서 가장 지독한 사람을 뽑는다면 성기사들은 당연히 그들의 교황을 뽑을 것이다.
아키서스 교황에게 성격이 나쁘다고 말하는 건 참아줄 수 있었지만, 성격이 무르다고 말하는 건 절대 참아줄 수 없었다.
[역병 선장, 폴로뮤스가 향후 계획을 위해 대화를 요청합니다!]
[빙결공, 푸르네우스가 향후 계획을 위해 대화를 요청합니다!]
-이번 습격은 위험했다. 이대로 있으면 먼저 말라 죽을지도 모르겠군. 놈들의 근거지를 찾아서 선공을 해야 해! 놈들의 땅에 역병을 풀어야 한다.
-더러운 역병쟁이 놈의 말에 동의하고 싶지는 않지만 일리가 있는 말이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 반격을 해야 한다!
-…….
아크락스는 폴로뮤스를 한 번 보고, 푸르네우스를 한 번 보더니, 다시 한번 태현을 쳐다보았다.
-교황 성하??
“평화와 화합. 평화와 화합이 중요하다고 했잖나.”
* * *
[굶주린 혼돈의 오크들이 나타납니다!]
[굶주린 혼돈의 힘을 받아들인 족장, 파랄이 사나운 함성을 터뜨립니다!]
“후퇴! 후퇴해라!”
“오크들아! 정신 차려라! 굶주린 혼돈을 믿어봤자 남는 건 하나도 없어!”
판온에서 오크들이 가장 많은 지역, 우르크 지역도 혼돈 그 자체였다.
가장 커다란 길드인 <최강지존무쌍> 길드와 그 길드와 연합해 있던 다른 군소길드들은 지금 정신 없이 싸우고 있었다.
굶주린 혼돈의 군단이 직접 나타나진 않았지만 오크 부족들 중에 굶주린 혼돈으로 갈아탄 자들이 계속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 영향에 플레이어들 중에서도 갈아탄 놈이 나올 정도였다.
“저… 저 현성이 저놈! 널 믿었는데!”
길드원이었던 플레이어, 김현성이 굶주린 혼돈으로 갈아타자 오크 아저씨들은 충격에 빠져 비난했다.
“흥! 당신 밑에서 얼마나 괴로웠는지 알기나 해? 매번 재미없는 개그에 억지로 웃기나 해야 했다고!”
“뭐!? 그게 재미가 없었다고!?”
“현성이 이놈! 네가 유우머 감각이 없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여기 혈맹을 버리고 굶주린 혼돈으로 갈아탈 줄이야!”
“…….”
김현성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고 공격 신호를 보냈다.
“공격! 여기입니다!”
“여기도 틀렸다! 후퇴해!”
우르크 지역은 워낙 험한 산맥들이 많은지라 크고 작은 요새들이 여럿이었다.
오크들은 거기에서 싸우다가 안 되면 뒤로 후퇴했다.
[요새가 함락됩니다!]
“야! 절대 남 주지 마라!”
“알고 있습니다!”
[묻어놨던 폭탄이 터지기 시작합니다!]
[요새가 파괴됩니다!]
“효과 좋네! 잘한다!”
“칭찬 감사합니다.”
골짜기에서 우르크 지역으로 출장왔던 기계공학 대장장이 플레이어가 쑥스러워했다.
오크 아저씨들은 감탄했다.
이렇게 효과가 좋을 줄이야!
“그래! 역시 골짜기 출신 기계공학 대장장이는 믿을 만하다니까.”
“야. 근데 가까이 다가오지는 마라.”
감탄은 감탄이고 무서운 건 무서운 거였다.
기계공학 대장장이가 얼마나 자폭 많이 하는지 아는 입장에서는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가면 위험한 거 아니냐? 벌써 요새 스무 개 넘게 잃은 거 같은데.”
“위에서 이야기 하고 있나 봅니다. 아마 대책이 나오겠죠.”
오크 길드원들도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것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다.
굶주린 혼돈과 싸워서 계속 밀리고만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야 끌고 있었지만 이렇게 싸우면 결국 질 뿐.
-길드원들은 산맥 밑으로 집합한다!
“!”
“집합을?? 요새 버려놓고?”
“진, 진짜 그렇게 해도 되나?”
수십 개가 넘는 요새들이 있는데 그걸 포기하고 아래로 집합하라니.
오크 길드원들은 당황해하면서도 일단 모였다.
“…….”
“이… 이게 뭐야?”
그리고 모인 길드원들은 경악했다.
집합 장소는 그야말로 오크의 바다였던 것이다.
이렇게 많은 숫자가 한 곳에 모인 적이 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