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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574화 (1,573/1,826)

§ 나는 될놈이다 1574화

-…….

악마들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저렇게 끝없는 적들이 몰려오는데 지 혼자 성벽 위에서 싸우겠다고?

최소한 같이 내려와서 싸우던가 성문을 열어주고 성벽 위로 올라가게 해주던가 해야 하지 않나??

“걱정하지 마라. 악마들! 지원해 주겠다. 사실 여기 골짜기의 전사들은 원거리 공격의 달인이다!”

-개소리하지 말고 내려와!

악마들은 분노한 목소리로 외쳤다.

게다가 성벽 위에 배치된 대포들은 이상하게 뒤통수가 따끔따끔했다.

저게 조준 한 번 잘못 날아오면 악마들도 같이 날아가는 것 아닌가!

태현은 무시했다. 어차피 무시해도 되는 소리였다.

왜냐하면….

카카카카카카카카칵!

[굶주린 혼돈의 사냥개들이 <혼돈의 발톱>을 사용합니다!]

[굶주린 혼돈의 사냥개들이 <혼돈의 발톱>을 사용합니다!]

[굶주린 혼돈의 사냥개들이 <혼돈의 매복>을 사용합니다!]

[……]

굶주린 혼돈의 짐승들이 이미 악마들의 코앞까지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하찮은 짐승 놈들이 감히!

[빙결공이 냉기를 불러오기 시작합니다!]

[서리폭풍이 주변을 휩씁니다!]

상황이 심각하단 걸 깨달았는지 빙결공도 튀어나와서 직접 창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기다랗고 날카로운 얼음 창이 바닥을 찍을 때마다 어마어마한 얼음 파도가 솟구치면서 사냥개들을 쓸어버렸다.

…그러나 쓸려 나가는 사냥개들보다 덤벼오는 사냥개들 숫자가 더 많았다.

게다가 짐승들 중에는 사냥개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굶주린 혼돈의 맹독괴수가 나타납니다!]

[혼돈의 맹독을 사용합니다!]

사냥개보다 몇 배는 커다란 덩치를 가진, 거대한 오징어 같은 몸집을 가진 괴수가 독을 거침없이 쏘아대기 시작했다.

최상급 악마들도 감히 그걸 상대할 수 없어서 기겁하면서 피할 정도였다.

-이데르고 교단이여, 결집하라!

-성기사들, 벽을 쳐라! 역병으로 오지 못하게 막아라!

폴로뮤스는 태현과 악마들의 추잡한 싸움은 무시하고 자기 할 일을 했다.

[역병 선장, 폴로뮤스가 이데르고의 조각을 꺼냅니다!]

“!”

성벽 위에 있던 태현은 이데르고의 조각을 알아보았다.

이데르고 교단만의 장점!

그것은 이데르고 신이 조각조각 쪼개져 있는 파편을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

일개 조각이라고 하더라도 신의 힘을 부분적으로 쓸 수 있다는 건 어마어마한 장점이었다.

…실제로 태현이 그걸 뺏어서 쓰기도 했었고!

[역병의 힘이 강림합니다!]

이데르고 교단 주변으로 어마어마한 역병이 돌기 시작했다. 살이 썩고 뼈가 문드러지고 피가 말라버리는 역병이었다.

아무리 강한 사냥개들이라 하더라도 여기에는 버틸 수 없었다. 픽픽 쓰러지고 나뒹굴었다. 그리고 그렇게 쓰러지는 순간 시체도 남기지 못하고 순식간에 썩어버렸다.

-야 이 미친놈들아!!

악마들은 기겁해서 이데르고 교단을 욕했다.

역병 장판을 까는 건 좋은데 그들한테까지 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데르고 교단을 중심으로 불온하게 퍼져나가는 역병의 기운들!

게다가 이데르고 교단도 교단인 만큼 신성력이 충만했다.

-알아서 피해라!

폴로뮤스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악마들은 극도로 분노했다.

-대륙 놈들은 교단이나 굶주린 혼돈이나 다 똑같은 놈들이다!

-무슨 이런 놈들이 있단 말이냐!

그러나 악마들은 아직 알지 못했다.

그들의 뒤에 이데르고 교단보다 더 위험한 놈들이 있다는 것을.

“아키서스 교단 총공격 개시!”

“공격 개시! 공격 개시!”

깃발이 펄럭이고 곳곳에서 신호용 마법이 솟구쳐 올라왔다.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플레이어들부터 NPC들까지 준비하고 있던 화력을 닥치는 대로 퍼붓기 시작했다.

꽈과과과과과과과과광!

성벽 위 대포가 발사되고 포탄이 사냥개들을 볼링 치듯이 밀어버렸다.

화살은 물론이고 새로 든 유탄 머스킷이 닥치는 대로 사냥개들을 난타했다.

그걸 뚫고 성벽까지 접근한 놈들에게는 대기하고 있던 플레이어들이 아예 폭탄을 집어 던졌다.

보고 있던 쪽이 먼저 질리는 어마어마한 방어였다.

[폭탄이 터집니다!]

[폭탄이 추가로…]

[폭탄이…]

[폭발의 힘이 하나로 합쳐집니다. 임시적으로 지진이 일어납니다!]

쿠르르르릉!

-환장하겠군! 뭐하는 거냐!!

싸우던 악마들은 뒤를 보며 외쳤다. 아무리 광역기가 좋아도 그렇지 정도가 있었다.

이건 뭔 미친놈들도 아니고!

* * *

‘이… 이런 물량전은 어디서도 본 적이 없다!’

배장욱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만큼 성벽 위에서 보는 광경은 대단했다.

“피디님! 이쪽으로 오세요! 위험합니다!”

같이 온 랭커들도 싸우고 있을 정도로 성벽 위 상황은 정신이 없었다.

태현부터 시작해서 팀 KL 선수들도 각 구역에 배치될 정도로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 골짜기 맞음??

-골짜기가 아닌 거 같은데? 왜 악마가 있어?

-원래 골짜기에는 악마가 종종 보였어.

-아니. 악마가 보이긴 했는데 저 정도는 아니지!

-게다가 이데르고 교단도 있는데?

배장욱만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니었다. 보고 있던 사람들의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힘과 힘의 대결!

아무런 기교나 계략 없이 뚫느냐 마느냐의 싸움은 어마어마하게 치열했다.

“…이거 진짜 계속 오는 건 아니죠?”

이다비가 질린 표정으로 물었다. 태현의 뒤에서 계속 버프를 걸어주고 있는 만큼 상황을 가장 넓게 볼 수 있는데도, 슬슬 두렵기 시작했다.

이렇게 잡았는데도 끝이 안 나면 대체 몇 마리가 더 오는 거지?

‘내가 너무 어그로를 끌었나?’

태현은 살짝 반성했다.

하긴 군단 하나 날려 버리고 악마에 이데르고 교단에 모아놨으면 굶주린 혼돈 입장에서는 안 그래도 짜증 나는데 진짜 화가 났을 수도 있었다.

-이번 기회에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아키서스 놈을 잡아버리자!

…같은 걸지도 몰랐다.

“이렇게 나오니까 정말 답이 없군. 어떻게 공략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태현도 이번에는 솔직히 마땅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냥 어마어마한 숫자로 밀고 들어오는데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유리한 위치에서 계속 잡고 잡고 잡을 뿐!

“성벽 위로 달라붙는 놈들 떨쳐내라! 교대해서 막아내!”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

그러나 태현은 흔들리거나 겁먹지 않았다.

설사 정말 끝까지 막지 못한다 하더라도 지금은 싸울 때였다.

적이 무너지기 1초 전일 수도 있었고 10초 전일 수도 있었다.

내가 힘든 만큼 상대도 힘들다!

‘…라고 생각하자!’

“11구역 뚫렸습니다!”

“내가 간다!”

성벽 위에서도 랭커들은 몇 배로 바쁠 수밖에 없었다. 랭커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뚫린 구멍을 막아냈다.

태현은 그러는 와중에도 스킬을 써서 적을 둘러보았다.

‘보스 몬스터 없나? 진짜 없나?’

[카르바노그가 우두머리가 따로 없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우두머리가 있다면 태현이 이 군세에 뛰어들어서 암살이라도 해보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짐승 군단에는 그런 것도 없었다.

아무 계략도 공략도 없는 순수한 물량의 싸움!

“더 이상 시체 소환도 안 됩니다! 이 자식들 진짜 너무 사기 같아요!!”

한쪽에서 흑마법사 플레이어들이 비명을 질렀다.

시체를 소환하면서 같이 물량 싸움을 할 수 있는 직업 중 하나가 백기를 든 것이다.

굶주린 혼돈의 사냥개들은 죽어도 그 시체로 언데드를 만들 수가 없었다.

흑마법사가 물량전에서 지는 어이없는 상황이 나오다니!

‘1시간 정도… 1시간 정도 버티나?’

태현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생각하려고 애썼다.

성벽 곳곳을 타고 오르는 사냥개들. 지금은 버티고 있었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몰랐다.

플레이어들의 피로도도 있고, 준비한 물자도 있으니….

1시간 안에 방법을 만들어야 한다!

‘동상 꺼내오고, 성벽 밑에 준비해놨던 폭탄은 최후의 수단인데… 어차피 한 번 쓸어봤자 사냥개들은 계속해서 올 거고. 의미가 없다. 젠장. 물량이 이렇게 무서운 거였나?’

부우우우우우우우-

그때 골짜기 멀리서, 어둠을 뚫고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혼란스러운 혈전 속에서도 들리는 맑고 청아한 나팔 소리였다.

크르르륵?

크륵?

죽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덤비던 사냥개들도 그 소리에 당황했는지 멈칫하고 돌아봤다.

-아키서스 교단의 교황이 대륙을 위해 싸우고 있다! 우리가 도와야 한다!

굶주린 혼돈의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라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눈부신 빛과 함께 나오는 거룩한 목소리 덕분에 상대가 누군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대륙의 다른 교단이 지원하러 온 거구나!

“데메르 교단인가?! 데메르 교단이면 좋겠는데…!”

태현은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지금 상황에서 데메르 교단처럼 버프 최적화 교단이 도와준다면 그만큼 든든한 것도 없었다.

다시 한번 회복해서 처음부터 막아낼 수 있을 테니까!

“데메르 교단 말고 아흐줄락 교단도 좋을 거 같아요!”

이다비도 기대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마법사들이 많이 믿는 교단인 만큼 이런 대규모 물량전에서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다.

“아흐줄락 교단도 좋겠….”

[파이토스 교단의 망치 성기사들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

“…….”

태현과 이다비는 멈칫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아!”

둘의 복잡한 속마음을 모르는 골짜기 플레이어들은 일단 환호하고 봤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지원이 왔으니까!

물론 그중에 몇 명은 태현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어… 어? 파이토스 교단이야?”

“왜… 왜 하필 파이토스 교단이지? 이 상황에서는 별로 도움 안 될 것 같….”

도와주러 온 건 고마웠지만 파이토스 교단의 성기사들은 지금 상황에서 딱히 도움이 될 것 같지가 않았다.

그냥 다른 교단하고 같이 오면 안 됐나…?

그러나 그런 무례한 의심에도 불구하고, 파이토스 교단의 망치 성기사들은 자기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파이토스의 나팔이 울려 퍼집니다!]

[사냥개들이 성기사들을 쫓기 시작합니다!]

“…!”

“!!!”

파이토스 교단의 망치 성기사들은 싸우는 대신 사냥개들의 어그로를 닥치는 대로 끌기 시작했다.

강력한 교단의 유물이 있어서 가능한 일!

-이쪽으로! 이쪽으로!

성기사들은 사냥개들을 잔뜩 끌어 모은 다음 바다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골짜기 앞에 그렇게 모여 있던 사냥개들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기 시작했다.

남은 놈들도 제법 있었지만 숫자만 줄면 이놈들은 별 거 아니었다.

[굶주린 혼돈의 짐승들을 막아내는 데에 성공합니다!!]

[명성이 아주 크게 오릅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전술 스킬이…]

[검술 스킬이…]

[……]

[……]

[……]

[굶주린 혼돈의 힘이 아주 조금 약해집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해냈다!!!!”

골짜기를 뒤흔들 정도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플레이어들은 서로 껴안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만큼 치열했던 싸움이었다.

골짜기를 공격한 적들이 이제까지 없던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아무런 변화 없이 똑같이 숫자로만 밀어붙이는 무시무시한 적은 처음이었다.

“파이토스 교단이 도와주다니!”

“그래도 교단이 뭔가 하긴 하는구나!”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그냥 순수히 감사했지만, 몇몇 플레이어들은 살짝 미안해했다.

“파이토스 교단한테 도움을 받을 줄은 몰랐는데.”

“그러게 말이야. 그냥 성기사들 돌격한 다음 다 같이 죽을 줄 알았지.”

하지만 이건 아주 가벼운 수준이었다.

생방송에서는 토론이 벌어지고 있었다.

-저거 파이토스 교단 성기사라니까!? 내가 파이토스 교단 소속이라서 잘 알아!

-이거 완전 악질이네. 아무리 파이토스 교단을 홍보하고 싶어도 그렇지 그런 거짓말을 해? 아키서스 교단 NPC겠지! 싸우는 동안 뒤에 보내서 나팔을 불게 한 거 아니겠어?

-맞아. 아키서스 교단 NPC야. 내가 보니까 저 갑옷 모양이 아키서스 교단 스타일인듯.

-내가 아키서스 교단 플래티넘 등급인데 아키서스 교단이다.

-플래티넘 등급이 그렇다면 그런 거지. 암.

-…니들 앞으로 상자에서 뭐 뽑을 때마다 무조건 최하만 나와라!!

결국 파이토스 교단 플레이어는 화를 내고 사라졌다.

그 감정적인 모습에 다른 사람들은 안쓰러워했다.

-쯧쯧. 꼭 논리에서 부족한 놈들이 저렇게 화를 낸다니까.

-파이토스 교단 소속이라 그렇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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