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573화
“상한 식재료를 악마들한테 처리하는 게 재밌다고요?”
태현은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다.
과연 그게 정말 재밌는 것인가?
“아니, 악마들한테 처리하는 게 재밌다는 게 아니라… 물론 그것도 재밌긴 합니다만 그 앞뒤로 이어진 이야기들이 흥미롭지 않습니까?”
“맞는 말입니다. 김태현 선수.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배장욱뿐만 아니라 다른 랭커들도 동의했다.
굶주린 혼돈을 상대하기 위해서 다른 곳까지 가서 데리고 온 이데르고 교단과 악마 공작.
벌써부터 흥미진진하기 그지없었다.
“자. 요리 과정을 촬영하러 갑시다!”
“저희들도 도와드리겠습니다!”
배장욱이 데리고 온 랭커들은 PD를 돕기 위해 나섰다.
지금 자체로도 흥미진진했지만, 이걸 보고 있는 시청자를 위해서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줄 필요가 있었다.
이걸 보고 있는 시청자는 과연 무엇을 궁금해할까?
“와우! 정말 맛있어 보이는 수프에요! 저도 조금 맛볼 수 있을까요?”
그건 바로 방송에서 나오는 요리의 맛이었다.
요리사들이 열심히 요리하는 건 기본이고, 그걸 먹고 맛을 표현하는 사람도 필요한 것이다.
“…이게 맛있어 보이신다고요??”
파워 워리어 요리사들은 미친놈 보듯이 배장욱을 따라온 랭커들을 쳐다보았다.
지금 수프 위로 해골 모양의 거품이 떴다가 사라졌는데…?
“네! 너무 맛있어 보여요!”
“이거 악마들 주려고 만드는 거거든요? 사람 먹는 게 아니에요! 상한 재료들 들어갔….”
“야. 쉿쉿. 악마들 들으면 어쩌려고 큰 소리로 말해.”
요리사들이 말려도 랭커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방송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철저한 프로들이었던 것이다.
랭커, 노유리가 국자를 꺼내 들었다.
“그러면 한 번 맛있게 먹어볼게요!”
“저흰 책임 안 집니다?”
“음. 향기부터가 정말… 으에엑.”
음미하며 들이켜려던 노유리는 결국 참지 못하고 옆으로 뱉어냈다.
[<악마를 위한 정체불명의 수프>로 인해 HP가 감소합니다!]
[……]
‘대체 뭘 넣고 끓였길래 이런 지옥의 음식이 나와!?’
노유리는 경악했다.
여기 모인 요리사 플레이어들 정도면 다들 레벨 높은 사람들일 텐데….
“향, 향이 정말 강하네요! 이국적인 향기라서 안 맞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아하하!”
“그야 마계의 향기니까 이국적이긴 한데….”
“야. 빨리 저쪽으로 가자.”
랭커들은 허겁지겁 이동했다.
악마들을 위한 요리보다는 그래도 이데르고 교단을 위한 요리가 좀 더 나을 것 같았다.
“앗! 먹어보러 오셨습니까?”
콜린은 반가운 표정으로 환영했다. 아까와는 좀 다른 태도에 랭커들은 안심했다.
“자! 쭉 들이켜보세요! 건강에도 좋고 맛에는 별로 안 좋지만 그게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잠, 잠깐 요리가 왜 녹색…?”
그것도 건강한 녹색이 아닌 거무튀튀하고 징그러운 녹색이었다.
[<지독한 쓴맛의 녹즙>을 마십니다!]
[버프를…]
“구에에에엑!”
“게에엑.”
랭커들은 차마 더 이상 마실 수가 없었다.
뭘 넣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진짜 너무하다!
멀리서 다른 일을 하고 있던 배장욱이 달려왔다.
“여러분들! 이거 평소 하던 음식 방송도 아닌데 그렇게 억지로 먹고 리액션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러면 좀 빨리 말하시던가요!!”
평소에 절대 배장욱한테 화를 내지 않는 랭커들이었지만 이번에는 조금 화가 났다.
* * *
-성을 함락시켜라!
성 아래에 새카맣게 모인 병사들.
굶주린 혼돈의 전사들뿐만이 아니라 그들이 부리는 노예병들도 있었다.
“카달타 성은 절대 내줄 수 없다!”
길드 동맹 길드원들은 이를 악물고 성벽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오스턴 왕국에 위치한 길드 동맹의 영지들은 정말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은 철저한 방어 준비가 되어 있었다.
워낙 시련을 많이 겪었던 것이다.
다른 길드가 길드 동맹이 당한 시련의 1/10만 겪었어도 박살이 났을 정도의 시련!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이번 공격은 정말 살벌했다.
[굶주린 혼돈의 전사들이 <거대한 혼돈의 창>을 소환합니다!]
[<거대한 혼돈의 창>이 성벽을 공격합니다!]
[성벽의 내구도가 크게 감소합니다!]
[……]
[……]
굶주린 혼돈의 전사들이 몇 번 손을 휘두르면 그렇게 단단했던 성벽이 쪼개지고 흔들렸다.
그러면 이제 노예병들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왔다.
워낙 적의 숫자가 많아서 유리한 이쪽이 먼저 지칠 지경이었다.
“카달타 성에서 후퇴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벌써 동문이 점령당했습니다! 이대로 밀리면 그냥 끝장입니다! 탈출도 못할 수도 있어요!”
“크윽….”
카달타 성주를 맡고 있는 길드 간부는 앓는 소리를 냈다.
개인적인 욕심은 물론이고, 길드 동맹 전체를 봤을 때 성 하나씩을 잃는 건 큰 손해였다.
하지만 쉽게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카달타 성은 길드 동맹 입장에서도 중요한 성이었다.
“저, 저거….”
“!”
길드 동맹 길드원들은 눈을 크게 뜨고 한쪽을 가리켰다.
성벽 아래 먼 곳에, 어디서 본 듯한 놈이 한 명 있었다.
바로 스미스였다.
“스미스 놈이 굶주린 혼돈하고 같이 움직이고 있다고?”
“그렇다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스미스가….”
“그때 결승전 보시지 않았습니까! 스미스가 굶주린 혼돈의 힘을 썼던 걸!”
처음에는 간부도 바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만큼 스미스의 이미지가 올곧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굶주린 혼돈 쪽으로 갈아타는 플레이어들이 제법 많이 나오고 있다지만, 이름난 플레이어들 중에서 대놓고 갈아타는 사람은 드물었다.
굶주린 혼돈 때문에 일반 플레이어들은 마을 밖으로 나오지도 못했고, 게임단의 리그 일정은 그대로 멈춘 상태였다.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이런 상황에서 악 세력에 참가하면 인기에 타격이 만만찮게 갈 수 있었다.
스미스도 당연히 그걸 알고 있을 텐데….
‘진짜 있잖아!’
간부는 자기 두 눈으로 확인하고 경악했다.
정말 스미스가 저 밑에 있었다.
“항복하십시오!”
“…스미스! 이 새끼! 너 진짜 너무한 거 아니냐?”
“뭐가 말입니까?”
“지금 리그고 뭐고 굶주린 혼돈에게 넘어가고 있는데, 그쪽에 갈아타?! 김태현도 그딴 짓은 안 해 이 새끼야!”
간부는 격노해서 스미스를 힐난했다.
아무리 경쟁자라고 해도 이번에는 선을 넘었던 것이다.
길드원 중 한 명이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생각했다.
‘김태현은 할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예전이었다면 이런 비난에 스미스도 당황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스미스는 한 차례 각성한 스미스였다.
아니, 그 상태에서 결승전에서 진 덕분에 또 한 번 더 각성한 상태!
미움 받을 용기라면 아주 충만한 상태였다.
“시끄럽습니다. 항복하시거나 죽거나 택하십시오. 솔직히 굶주린 혼돈이나 쑤닝이나 별 차이 없지 않습니까?”
스미스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대답했다.
길드 간부는 손가락으로 전통적인 욕을 표현한 다음 명령을 내렸다.
“플랜 K 가동시켜!”
“플, 플랜 K라면….”
김태현에게 성을 뺏기거나 기습당해서 점령당했을 때의 최후대책.
플랜 K!
그걸 설마 스미스 때문에 쓰게 될 줄이야.
“…알겠습니다!”
길드원들은 망설이지 않고 움직였다. 그만큼 상황이 심각했던 것이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스미스한테 성을 뺏길 수도 있다!
[지진이 일어납니다!]
[……]
[카달타 성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
굶주린 혼돈 군세 쪽에 있던 스미스가 경악한 표정으로 카달타 성을 쳐다보았다.
그 거대하고 단단하던 성이 안쪽에서부터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스미스, 길드 동맹을 얕보지 마라! 카달타 성을 가질 수 없다면 차라리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겠어!”
“비열하고 치사한 짓을!”
“…누가 할 소리를 이 새끼가!”
“성주님! 속으시면 안 됩니다! 스미스가 유인하는 겁니다!”
울컥한 간부가 내려가서 붙으려는 걸 길드원들이 애써서 말렸다.
“통로로 도망칩시다! 가야 합니다!”
“이 원한은… 반드시 갚고 말겠다. 스미스! 아키서스 교단에 가입하는 한이 있더라도…!”
간부는 이를 갈며 맹세했다.
카달타 성의 복수는 반드시 하고야 말리라!
[카달타 성이 완전히 파괴됩니다.]
“길드 동맹이 생각보다 끈질기군요.”
스미스는 완전히 잿더미가 된 카달타 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놀랍긴 했지만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충격은 이미 결승전 때 다 받았던 것이다.
결승전 때 지고 나서, 스미스는 생각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진다면 대체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는가?
쓸 수 있는 수단이란 모조리 다 쓰고 심지어 선수들 실력은 미국 팀이 더 높았는데도!
태현이었다면 아마 ‘야 그거 투기장은 운도 어느 정도 작용하니까 괜히 오바하지 마라’ 같은 소리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스미스는 그런 패배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게다가 굶주린 혼돈은 스미스에게 빌려준 빚이 있었다.
[굶주린 혼돈의 힘이 당신을 조르기 시작합니다!]
<굶주린 혼돈의 거래-굶주린 혼돈 퀘스트>
당신은 굶주린 혼돈의 방패를 손에 넣고 직접 굶주린 혼돈을 만나서 계약을 하는 영광을 누렸다.
이제 그 영광을 조금이나마 갚을 때가 왔다!
굶주린 혼돈의 명령에 따라 대륙을 파괴하라.
만약 명령을 거절한다면 굶주린 혼돈의 보복이 있을지어다!
보상: ?, ???, ???
[굶주린 혼돈의 힘을 거절할 경우 막대한 페널티가 발생합니다!]
[……]
[……]
[……]
악마와의 거래는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말이 있었지만, 굶주린 혼돈과의 거래는 한 술 더 떴다.
도중에 조금이라도 멈춘다면 어마어마한 페널티가 플레이어의 레벨과 스탯을 깎아버렸다.
“스미스 님. 이번에 게임단에서 퀘스트 방송을 꼭 해야 한다고 했는데 괜찮을까요?”
“상관없습니다.”
“…?”
“퀘스트 방송이 꼭 굶주린 혼돈 반대편에서 하란 법은 없으니까요. 저는 굶주린 혼돈 편에서 할 겁니다.”
“…!!”
스미스 친위대는 스미스의 말을 듣고 전율했다.
어떤 반응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어마어마한 관심이 여기에 쏟아진다는 것!
* * *
-생각해 보니 산맥보다 여기가 좋은 것 같아.
-맞아. 등 따습고 배가 부르면 마계나 여기나 고향 같게 느껴지지.
-뒤에서 신성력이 강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악마들의 평판이 올라갑니다!]
[악마들의 만족도가…]
사실 일개 악마들의 삶은 고달프기 짝이 없었다.
공작이 까라면 까야 하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대륙으로 가라면 가야 했고, 웬 짜증나는 인간 놈 계약 해달라고 하면 계약 해줘야 했고….
그런 와중에 골짜기 앞에서 휴식은 워라밸을 떠올리게 만드는 편안함이 있었다.
이것이 힐링인가?
그러나 그런 달콤함은 아주 짧았다.
[굶주린 혼돈의 짐승들이 나타납니다!]
[굶주린 혼돈의 사냥개들이 달려오기 시작합니다!]
-기습이다! 전투 준비!!
-굶주린 혼돈 놈이 감히!
처음에 적이 나타났을 때만 해도 이데르고 교단이나 악마들 모두 크게 놀라지 않았다.
상대가 군단도 아니고 기껏해야 굶주린 혼돈의 짐승들이었으니까.
물론 일반 짐승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고 사나운 놈들이었지만, 그들 정도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굶주린 혼돈의 사냥개들이 달려오기 시작합니다!]
[굶주린 혼돈의 사냥개들이 달려오기 시작합니다!]
[굶주린 혼돈의 사냥개들이 달려오기 시작합니다!]
[……]
-…….
-…….
맹수 크기의 덩치를 가진 사냥개들이 지평선을 꽉 채우고 몰려드는 모습.
그 모습에 악마들부터 이데르고 교단의 사제들까지 경악했다.
왕국을 뒤덮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물량이 이 골짜기로 몰려들고 있었던 것이다.
-아키서스 놈! 어떻게 할 거….
악마들은 일단 태현부터 찾았다.
그러나 태현은 벌써 성벽 위에 올라가 있었다.
“자! 싸우자!”
-…너는 성벽 위에서 싸울 거냐?
“그런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