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565화
하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악마들은 상당히 잘 도와주고 있는 편이었다.
물론 악마들이 지금 안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지만, 일단 악마와 굶주린 혼돈의 사이는 매우 안 좋았던 것이다.
일종의 경쟁 상대!
악마들은 대륙의 사람들을 타락시키고 악마를 섬기게 만드는 걸 원했다.
그에 비해 굶주린 혼돈은 대륙의 사람들을 전부 다 삼켜서 자신의 안에 가둬버리고 싶어 했으니….
악마 입장에서는 귀중한 영혼들을 싹 쓸어가는, 멀리서 온 생태계교란종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굶주린 혼돈 놈에게… 지지 마라…!
-놈의 말에 넘어가지 마…!
악마들은 마력을 쭉쭉 빨리면서도 그렇게 말했다.
옆에서 일하던 플레이어들은 살짝 감동하다가 멈칫했다.
‘근데 악마들한테 이렇게 응원 받는 게 좀 이상하지 않나?’
[대장간의 과열이 사라집니다!]
[모루에 금이 갔습니다! 계속 작업할 경우…]
“모루 교체!”
“모루 교체! 모루 교체!”
플레이어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문제들을 해결했다.
아이템 만드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었는데 이렇게 대장간 문제까지 같이 해결해야 하니 난이도가 몇 배는 더 심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렇게 같이 움직이니… 뭔가 느껴지는 거 같다!’
‘너도 그렇게 생각했냐?’
대장간에서 일하던 대장장이 플레이어들은 서로 뜨거운 눈빛을 교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골짜기의 제작 플레이어들은 의외로 접점이 없었다.
대장장이 기술 전문으로 찍는 플레이어들은 대장장이 기술 전문으로 찍는 플레이어들끼리 놀고,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은 당연히 자기들끼리 놀고….
또 대장장이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도 전문 기술에 따라 파티가 나뉘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어떤 스킬을 익혔든 간에 같은 제작 직업으로서 힘을 합쳐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마치 처음으로 한 팀이 된 것 같은 동질감!
‘이게 우정일까?’
[아이템이 완성됩니다!]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오릅…]
[……]
[……]
철컹!
“파이팅! 다들 힘내자!”
“우리는 골짜기 대장장이들이다!”
작업 하나를 끝낸 대장장이들이 신나게 외치며 옆의 사람들과 손뼉을 쳤다.
그리고 기계공학 대장장이들한테도 손뼉을 치려고 했다.
분명히 기계공학 대장장이들도 그들과 같은 기쁨을 느끼고 있을 테니까!
“아. 진짜 하기 싫다.”
“폭탄 만들고 싶다.”
“흑흑. 왜 이런 장비를 만들어야 하는 거야.”
“…….”
“…….”
그러나 이 상황에도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은 자기들끼리 모여서 우울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질색하며 쳐다보았다.
‘저런 분위기 파악 못하는 놈들!’
* * *
[<굶주린 혼돈과 싸우는 모험가를 위한 상급 태엽 갑옷>를 착용합니다!]
[<굶주린 혼돈과 싸우는 모험가를 위한 상급 태엽 벨트>를…]
[……]
[……]
[세트 아이템을 착용했습니다!]
[추가 효과가 발동됩니다!]
“오… 생각보다 괜찮은데?”
“걱정 많이 했는데 제법이야.”
“스킬들도 여럿이고.”
기다리고 있다가 장비를 받은 플레이어들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호평을 했다.
이런 식으로 급하게 찍어낸 장비가 쓸 만하기는 힘든 법인데도, 그걸 뚫고 태현은 쓸 만한 장비를 만들어냈다.
신기한 것은 플레이어 스타일에 맞춰 스탯 버프가 다르다는 것!
탱커에게는 체력과 HP 위주 버프가, 근접 딜러에게는 민첩과 힘 위주 버프가.
같은 장비인데도 이런 식으로 버프를 나눠서 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랜덤으로 추가 효과가 발동됩니다!]
[<태엽 갑옷의 가호>가 시전됩니다.]
“오오….”
[<멈추지 않는 태엽 갑옷>이 시전됩니다!]
[전투를 하지 않을 시 HP가 떨어집니다!]
“…어어?? 김, 김태현? 이거 좀 이상한…?”
“그냥 입어라. 지금 하나하나 신경 써 줄 시간 없다!”
태현은 정신이 없어서 랭커들의 말을 무시했다.
옆에 있던 다른 플레이어들도 화를 냈다.
“지금 장비를 몇백 개를 만들어야 하는데 사소한 거면 그냥 입으세요!”
“맞습니다! 여기 바쁜 거 안 보입니까!”
“아… 아니. 그냥 스킬 효과가 이상해서 물어본 거야…! 다시 만들어 달라고 한 게 아니라!”
별생각 없이 물었다가 욕만 먹게 된 길드 동맹 길드원들은 괜히 서러웠다.
남의 나라에서 싸우는 것도 슬퍼 죽겠는데 이렇게 괴롭히기만 하고….
“에잇. 우리끼리 시험이나 하자고.”
“그러죠.”
철커덕, 철커덕-
[<굶주린 혼돈과 싸우는 모험가를 위한 상급 태엽 갑옷>이 피해를 흡수합니다.]
[공격이 분산됩니다!]
“나쁘지 않은데?”
“좀 더 공격해 보겠습니다!”
태현이 만들고 있는 태엽 시리즈는 단순히 스탯뿐만 아니라 실전에서도 꽤 괜찮았다.
“겉모습도 괜찮고….”
“이거 나중에 만들어서 팔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러게. 김태현 놈이 대단하긴 해. 하긴 판온 1 때부터 유명한 대장장이였으니까….”
겉모습이 왜 나오냐 싶겠지만, 장비의 겉모습도 의외로 중요한 포인트였다.
같은 능력치면, 아니, 오히려 조금 더 낮더라도 더 멋진 걸 고르는 게 사람의 마음!
그걸 알기에 일류 대장장이들은 아이템을 만들 때 겉모습도 신경을 썼다.
태엽 갑옷은 거대한 중갑 형태에, 여기저기 달린 파이프와 태엽. 그리고 주기적으로 증기를 내뿜는 형태의 갑옷이었다.
약간 스팀펑크 느낌도 나는 판온에서 보기 드문 형태의 갑옷!
이 정도면 성능이 좀 밀려도 나중에 따로 팔아도 인기 좋을 법한 세트 아이템이었다.
게다가 성능도 괜찮았으니….
[랜덤으로 효과가 발동됩니다. HP를 흡수합니다!]
[아키서스 교단에 바칩니다!]
“…????”
“방, 방금 뭐였냐?”
길드원들은 메시지창을 잘못 본 줄 알고 눈을 깜박였다.
갑자기 피가 쭉 닳아버린 것이다.
이게 대체 무슨…?
* * *
“김대형 파티 이쪽으로!”
“아오스 파티는 이쪽!”
“길드 동맹은 이쪽… 아니 자쉬안 님! 그쪽으로 가지 말고 이쪽으로 오시라고요! 다른 쪽 가지 말고!”
“저긴 길드 동맹인가 보다.”
“어휴 시끄러운 놈들.”
아이템이 완성될 때마다 파티들이 모여서 받아갔다.
어느새 골짜기 성문 앞에는 최정예 공격대가 하나둘씩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아. 장비 진짜 이상한데 왜 우리만 신경 쓰는 거 같지?”
“김태현 놈이 우리한테만 이상한 장비 준 거 아니죠?”
“그런 줄 알고 확인해 봤는데 장비 다 똑같더라.”
길드 동맹 길드원들은 이상하게 뒤통수가 찜찜했다.
태엽 세트를 안 입을 수는 없고, 입을 수밖에 없긴 한데, 입으니까 뭔가 자꾸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이거 진짜 괜찮은 거 맞나??
게다가 다른 놈들은 별 불평이 없다는 것도 더 이상하게 느껴졌다.
“태현 님. 길드 동맹 길드원들이 아이템 이상이 있다고 하던데요.”
“어? 아키라늄을 조금 더 넣어서 그런가? 레벨 높은 랭커들은 아무래도 성능 더 높여야 해서 아키라늄도 더 넣었지.”
“그런데 다른 길드원들은 별 말 없는데요?”
“길드 동맹 놈들이 운이 없는 거지.”
태현은 바로 대답했다.
길드 동맹 입장에서는 황당한 소리겠지만 태현은 진지했다.
이건 그냥 운의 영역이었으니까!
태현이 무슨 사악한 수작을 부린 게 아닌 것이다. 그리고 그럴 시간도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강화 스킬 좀 더 돌려서 올리고 싶은데.’
태현은 이제까지 강화 스킬을 상당히 안전하게 써왔었다.
어디까지나 실패하지 않는 선까지만!
만약 실패할 경우 아이템을 새로 구해야 하니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혼자서 장비를 다 구해야 하고 직업 퀘스트도 깨야 하는 입장에서 그런 페널티는 너무 위험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넓은 영지, 좋은 시설, 훌륭한 노동력을 갖고 뛰어난 아이템을 찍어낼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어느 정도 페널티를 감수할 수 있다!
아이템 박살 나는 거 감안하고 강화 스킬을 달릴 수 있는 것이다.
‘태엽 장비 세트가 생각보다 잘 나오긴 했어도 역시 아쉬운 건 사실이니까… 일단 주변부터 뚫고 생각하자.’
“전투 준비! 쓸 수 있는 버프는 전부 다 걸어 놔라!”
태현의 말에 사제 플레이어들부터 시작해서 각종 제작, 예술 플레이어들이 가능한 버프는 다 걸기 시작했다.
“여기 즉석에서 만든 따끈따끈한 골짜기 우동 있습니다! 오늘만 공짜로 드릴게요!”
“골짜기 갈비 완성됐습니다! 원거리 딜러 위주로 오세요!”
“마법사 플레이어들은 MP 옵션 달린 탄산수 마시고 가시면 됩니다!”
“어? 지금 주변 막혀서 식재료 없지 않나?”
“아껴뒀던 걸로 만들었습니다!”
“저번에 사려고 했을 때는 없다면서??!”
“그 가격에는 없다는 거였죠. 아. 조용히 하고 먹기나 해요!”
와구와구-
놀랍게도 꽤 많은 플레이어들이 숨겨놨던 재료들을 꺼내서 요리를 만들어 왔다.
지금 골짜기 주변이 완전히 틀어 막힌 상태라 재료 가격이 팍팍 뛰고 있는데도 내놓은 것이다.
심지어 얼마 전까지는 숨기고 있었는데도!
플레이어들도 다 같이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 뚫지 못하면 골짜기 미래는 없다!
아무리 골짜기에서 이것저것 만들고 하더라도 저렇게 갇혀 있으면 언젠가 말라 죽기 마련.
그럴 바에는 다 쏟아부어서 나갈 준비를 해야 했다.
[버프가…]
[추가 버프가…]
[최고급 전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이 모든 버프들이 하나로 합쳐집니다.]
[<골짜기 공격대의 가호>가 시전됩니다!]
파아아아앗!
“돌격!!”
눈부신 빛과 함께 골짜기 공격대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 * *
-골짜기에서 레이드 개시!!
-뭐? 정말??? 벌써? 너무 위험한 거 아니야?
-제발 뚫어다오!
게시판은 판온과 마찬가지로 혼란스러웠다.
어디 도시가 파괴되었다느니, 어디 성이 날아갔다느니, 어디에 굶주린 혼돈 군단이 나타났다느니….
이걸 악용하는 플레이어들도 나와서 더 혼란스러웠다.
<굶주린 혼돈을 피하는 비결! 이 아이템을 착용하면… 이럴 수가!>
<굶주린 혼돈의 비밀… 충격!>
<길드 동맹 망해서 쑤닝이 지금 감옥 갔다더라.>
└무슨 헛소리야 미친놈아! 길마님 멀쩡하게 계신대!
원래라면 여러 길드들이나 랭커들이 진행하는 생방송을 보며 상황 파악이라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대부분의 길드나 랭커들이 방송을 중지한 것이다.
굶주린 혼돈으로 갈아탄 플레이어들이 생각보다 많았던 탓!
방송을 보고 찾아와서 빈틈을 교묘하게 찔러대니 피해가 너무 심했다. 결국 길드들이나 랭커들도 일단 방송을 중지하고 활동하고 있을 정도로.
덕분에 헛소문은 더욱 퍼지고, 플레이어들은 혼란스러워하고….
그런 와중에 골짜기에서 소식이 날아온 것이다.
준비를 끝낸 김태현이 공격대를 이끌고 나가고 있다고!
-너무 위험하지 않나? 김태현은 길드도 아니잖아. 저런 식으로 하면 배신자들 관리가 안 될 텐데.
-김태현이 너무 착해졌다니까. 판온 1 때였으면 지금 공격대 전원이 폭탄 목걸이 차고 있었음.
-김태현이 생각을 안 했겠냐? 니들이 할 정도면 김태현도 생각을 했겠지.
사람들은 모두 다 평론가가 되어서 엄격하고 진지하게 골짜기 공격대의 성공 확률을 따지기 시작했다.
모두가 뚫어주길 원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불안한 것도 사실이었다.
지금 몇몇 대형 길드들이 굶주린 혼돈 때문에 완전히 개박살 났다는 소문이 돌아서 더더욱 그랬다.
하물며 골짜기는 태현이 정말 자유롭게 풀어 놓은 곳이라 길드처럼 강하게 통제하기도 쉽지 않을 텐데….
“멈추면 배신자다! 옆을 돌아보면 배신자다! 뒤를 돌아봐도 배신자다!”
“의심 받을 짓 하지 마라! 의심 받을 짓 하면 아키서스 형에 처하겠다!”
-…??
-어??
방송을 킨 플레이어들은 생각과는 다른 모습에 당황했다.
공격대의 분위기가 좀 많이 살벌했던 것이다.
자유로운 골짜기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무시무시한 분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