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564화 (1,563/1,826)

§ 나는 될놈이다 1564화

굶주린 혼돈의 하수인들은 확실히 많이 성장했다.

예전처럼 유리하다고 신나게 공격했다가는 함정과 매복에 빠져서 엉망진창이 될 수 있다는 걸 느낀 것이다.

-들어라, 사악하고 비열한 아키서스 놈아!

[굶주린 혼돈의 군단장, 오포로스가 함성을 지릅니다.]

-제국 멸망 때 네놈에게 당한 오포로스다!

“오포로스. 억울하고 원통한 건 이해하지만 같은 세력에 들어가 있다고 다 같은 놈으로 취급하는 건 그만둬라!”

태현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아키서스 교단 교황이라고 다 같은 인물 취급하면 쓰나!

그러나 오포로스는 태현을 무시하고 지 할 말만 이어갔다.

-이번에는 다르다. 확실하게 대륙을 멸망시켜주마! 어떤 자들도 마을에서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꽁꽁 묶어서 산 채로 말려 죽여주겠다!

‘으음.’

태현은 상대의 선언에 난처함을 느꼈다.

보통 사악한 적이라면 유혹에 넘어와 주는 게 국룰인데, 상대는 지금 그런 원칙을 깨고 비열하게 굴고 있었다.

[카르바노그가 주제 파악을 못한다고 악담합니다.]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역으로 생각해 보면, 도시 안으로 들어가면 일단 안전하기는 하겠네요.”

“당장은 그렇겠지만 나중에도 계속 밖에 있을지는 알 수 없지.”

-나는 절대 들어가지 않을 거다, 아키서스 놈아!

“…저놈은 뭐 골짜기에 안 들어오긴 하겠지만.”

결국 이쪽에서 먼저 들어가야 한다는 건 확실했다.

태현은 먼저 갔다 온 길드원들을 불렀다.

“자. 다들 이리 와봐라. 너희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다시 나가라고 할 거지?”

“아니야.”

“…진짜 아니야?”

길드원들은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그 경계심 많은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매우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저거 랭커들 맞냐?

“아이템 내놔봐라.”

“…!!!”

길드 동맹 길드원들의 표정이 새파랗게 질렸다.

다시 나가라고 하지 않는 대신 설마 이렇게 장비를 대놓고 뺏다니?

실로 상상도 하지 못한 깡패짓이었다.

“아, 아니. 이건 진짜 좀….”

“야. 내놓으라고.”

“지금 김태현 님께서 너희 장비를 뺏어갈 것처럼 보여? 어? 보고 돌려준다니까??”

성벽 위에 있던 플레이어들이 한둘씩 몰려와서 윽박질렀다.

그 모습에 길드 동맹 길드원들은 자신들이 왕국에서 했던 짓을 반성하게 됐다.

아, 우리가 이렇게 나쁜 짓을 하고 있었구나…!

“뭔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장비 내구도하고 파손 상태 확인하려고 달라고 한 거다. 아까 싸우는 모습 보니까 장비 파손이 좀 심한 거 같던데.”

“…헉?!”

그제야 랭커 중 몇 명은 장비 내구도가 크게 하락하고 저주까지 붙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이다비가 그 모습에 소곤거렸다.

“태현 님. 혹시 몰랐던 거 아닐까요?”

“설마… 이다비. 쟤네들도 나름 랭커에 전원 고렙인데 그걸 몰랐을까.”

“…….”

길드 동맹 길드원들은 입을 다물었다.

솔직히 굶주린 혼돈의 부하들이 너무 세서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자. 내놔봐라. 상태 확인해야 하니까.”

“여기 있다.”

[아이템을 내려놓…]

[아이템을 내려놓…]

옆에서 보고 있던 패러다임 길드원들이 속삭였다.

“이제 우리가 막는 사이 네가 갖고 가는 거 맞지?”

눈을 찡긋거리며 말하는 길드원들의 모습에, 태현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아닌데?”

“…아니야!? 진짜? 괜히 긴장했네.”

“…….”

* * *

‘생각보다 심한데.’

굶주린 혼돈에게 상당히 오염된 찬란한 오스턴 근위대 갑옷:

내구력 110/900, 물리 방어력 620, 마법 방어력 410.

스킬 ‘근위대 가호’ 사용 가능, 스킬 ‘근위대 강림’ 사용 가능, 스킬 ‘근위대 분노’ 사용 가능.

오스턴 왕국에서 싸울 경우 추가 보너스.

오스턴 왕가의 근위대만이 입을 수 있는 갑옷이지만, 굶주린 혼돈의 힘에 오염되어 있다.

(착용 시 굶주린 혼돈에게 저주받을 수 있음)

몇 대 두들겨 맞았다고(사실 꽤 많이 맞긴 했지만) 아이템에 저주가 붙어 온 걸 보니 남 일 같지가 않았다.

굶주린 혼돈이 가진 강함 중 하나.

바로 장비 오염시키기였다.

정화시키려고 한다 하더라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랭커의 장비를 그냥 봉쇄해 버리는 것이다.

장비의 중요성을 생각해 보면 랭커의 양팔을 묶어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

‘남의 일이 아니다. 내 장비도 봉인당하면 귀찮아져. 대체가 거의 불가능하니.’

지금 태현의 아이템 세트는 사실 새로 대작업을 할 거 아니면 발전시키기 힘든 상태였다.

아키서스 화신의 아다만티움 갑옷을 기반으로, 제국 관련 아이템들 세트를 입고 있는 태현!

황제의 셔츠, 황제 살해자 세트, 왕가 장신구 세트, 제국 황제 반지 등등.

하나하나 구하기 힘든 명품이자 최상급 아이템이었다.

무기는 소모품에 가까운 <혼돈과 악마와 불의 검>은 그나마 낫지만, <용의 파멸> 같은 어디서 구하기 힘든 최상급 아이템들은 대체가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아다만티움 갑옷 올리려면 대장장이 기술 스킬 한 단계 올리고, 대장장이 NPC 좀 더 모으고, 대장간 업그레이드 하고, 화염도 어디서 강한 거 하나 구해오고, 음… 게임 끝나겠군.’

[카르바노그가 욕심 너무 부리지 말라고 합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원래 대장장이 출신이었던 만큼 태현은 이런 부분에서는 완고했다.

방망이… 아니, 갑옷 깎는 노인처럼!

아이템을 녹여서 재료로 만든 다음 다시 아이템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일정 부분 손실이 일어났다.

아다만티움처럼 최상위 난위도를 자랑하는 재료라면 더더욱 그랬다.

그런 만큼 여러 번 녹이고 재작업 할수록 손해였다.

게다가 그런 과정에서 각종 페널티도 따로 붙을 테니….

“이다비. 일회용으로 쓸 수 있는 장비들을 아예 새로 만들어야겠다.”

“…어? 진짜요??”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이다비가 깜짝 놀라서 반응했다.

말이 새로 만드는 거지, 랭커 정도 되는 플레이어들이 새로 쓸 수 있는 장비는 절대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제작 스킬이나 시설은 여기 있다지만 들어가는 재료들은….

“우리 창고에 그 정도 재료도 없나?”

“아뇨. 태현 님이 쓸 장비는 당연히 만들 수 있을 텐데, 저기 다른 사람들 장비들까지 다 만드실 생각 아니에요?”

“그건 걔네들이 재료 내라고 해야지.”

“과연… 잠깐, 지금 재료가 없는 사람들은요?”

“빌려주고 갚으라고 해야겠군.”

태현과 이다비가 소곤거리는 모습에, 길드 동맹 길드원들은 알 수 없는 불안함을 느꼈다.

대체 어째서?

* * *

[기계공학 장비 제작 스킬을 사용합니다.]

[카르바노그가 굳이 갑옷 같은 것도 기계공학 장비로 만들어야 할 이유가 있냐고 묻습니다.]

‘무슨 소리야? 나도 스킬 올려야지.’

[……]

이 와중에도 초심을 잃지 않는 모습에 카르바노그는 감탄했다.

아키서스의 화신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것이다.

“일단 골짜기에서 오래 지낸 플레이어, 그리고 앞으로 싸울 일 많은 플레이어한테 우선적으로 좋은 재료를 써서 만들자. 지금 가장 쓸 만한 재료가 아다만티움….”

“…은 끝까지 쟁여두죠 제발.”

“응. 나도 그럴 생각이었어. 최상급 흑철석을 기반으로 속성 방어력 높일 수 있도록 정령석, 조금 불안정하기는 하지만 위력 전체적으로 올려야 하니까 마혼석 넣고.”

태현은 영지 창고에 있는 재료를 기반으로 하나씩 계산에 들어갔다.

일회용으로 만든다 하더라도 대량으로 만들려면 최적의 조합이 필요했던 것이다.

“아키라늄도 조금 있어요.”

“…그… 그걸 넣어야 하나?”

태현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사악한 푸른 금속, 아키라늄.

이 금속 때문에 저주 받은 종족들이 골짜기에도 있지 않던가.

…하지만 그 이후에도 아키라늄은 아주 조금씩 채굴되고 있긴 했다.

[아키라늄을 넣을 경우 아이템이 불안정해질 수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추가 효과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아이템의 스탯이 전체적으로 상승합니다. 상승하는 스탯은 랜덤입니다.]

“…아주 조금씩 넣자.”

태현은 결정을 내렸다.

많이 넣으면 심하게 불안정해지니, 아주 조금씩만 넣는다!

개미의 눈물 만큼씩만 넣는다면 어느 정도 타협이 될 것이다.

‘지금은 일단 스펙이 필요해.’

일회용으로 쓴다고 하더라도 안 좋은 장비를 억지로 쓸 수는 없지 않은가.

상대가 만만한 놈들도 아닌데.

“좋아. 재료 지정 끝냈다! 골짜기에서 싸울 생각 있는 플레이어들 전원 집합하라고 해!”

“네!”

30분 후.

태현은 광장에 모인 사람들 보고 어이없다는 듯이 다시 말했다.

“골짜기에서 싸울 자신 있는 플레이어들 다시 집합!”

“에이….”

“김태현 님! 레벨이 전부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걸 몰라주시다니요!”

“레벨은 허접하지만 진심은 누구한테도 지지 않습니다!”

“게임에서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그냥 성벽이나 지키고 있어!”

“자폭도 할 수 있습니다! 진짠데!”

사람이 얼마 안 모일 줄 알았는데 너무 많이 모여서 문제였다.

이 정도로 의욕이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래도 얼추 정리가 되었다.

고렙 이상에, 태현과 함께 같이 나가서 싸울 자신이 있는 골짜기 플레이어들이 따로 모여서 파티별로 나누기 시작했다.

“파티장 경력 11년! 골짜기 건물 5개 보유! 아키서스 교단 플래티넘 등급! 무사고 운전의 대명사, 김대형의 파티로 오십시오 여러분!”

“오오! 왠지 든든한 이름이야!”

“기분 탓인가??”

“도적이나 검사 출신의 파티장을 믿지 마십시오! 여러분! 딜러 출신이 뭘 알겠습니까? 파티장은 역시 탱커 출신이어야 합니다! 성기사 출신 파티장 아오스가 여러분들을 모시겠습니다!”

나름 골짜기에서 자신 있는 사람들이 파티장을 맡다 보니 그 라인업이 제법이었다.

보고 있던 태현도 살짝 놀랐다.

‘어? 골짜기 수준이 이렇게 높았었나?’

[카르바노그가 감동…

‘첩자는 아니겠지?’

…하려다가 맙니다.]

“견적 냈으니 이제 작업에 들어가야겠군….”

태현은 앞으로 있을 길고 긴 작업에 몸서리를 쳤다.

아무리 오랫동안 대장장이로 뛰었어도, 거대한 견적을 잡았을 때는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참. 너희들은 재료 알아서 내라. 여기 골짜기 소속도 아니잖아.”

“…….”

“…….”

이런 감동적이고 비장한 분위기에서도 계산 놓치지 않는 태현의 모습에, 밖에서 온 길드원들은 속으로 욕했다.

* * *

[작업을 시작합니다!]

[현재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현재 기계공학 스킬이…]

“대장장이들 뭐하냐! 재료 갖고 튀어 와!”

-지금 가고 있습니다!

워낙 사태가 긴박한 만큼 이번에는 대장간을 따로 쓰지도 않았다.

드워프, 고블린, 기계공학 대장장이 플레이어 등 골짜기 내에 있는 기술자들 전원 총집합!

[대장간이 과열됩니다!]

[장비의 힘이…]

게다가 이런 대량생산은 그냥 제작만 하면 되는 게 아니었다.

동시다발적으로 온갖 문제들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이런 문제들에 대응하지 못하면 생산은 바로 중지!

태현은 메시지창을 보자마자 즉시 명령을 내렸다.

“대장간 과열됐다! 예비조!”

-지금 움직이겠습니다!

대장간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드워프들이 장치를 가동했다.

[악마들의 마력을 흡수합니다!]

[마력이 대장간을 보호합니다!]

-크아아악!

-크으으으윽!

마력이 빨려나가자 악마들이 신음을 내뱉었다.

-힘내라, 악마들아! 할 수 있다!

-크… 크윽… 딱히 네놈들이 예뻐서… 힘을 빌려주는 건 아니다… 굶주린 혼돈 놈을 상대하는 거니까….

-아 말할 시간에 마력이나 만들라고!

-개X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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