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562화
-기다리고 있었다네.
선행 퀘스트를 끝내자, 골돌골랑은 더 이상 뭐라고 하지 않고 흔쾌히 도와주기로 결정했다.
-자네가 뼛속까지 사악한 인물이라는 건 오해였던 것 같군.
[카르바노그가 사실 오해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기억해 주게. 기계공학은 파괴와 증오를 위한 스킬이 아니야! 기계공학은 평화와 사랑을 위한 스킬일세.
“…?”
[?]
태현과 카르바노그는 동시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세상에는 가끔 아무리 좋게 말해도 설득력이 부족한 말이 있었다.
기계공학에….
평화와 사랑을 위한 게 있나?
‘그럴 거면 폭탄을 넣지 말던가 폭탄 원툴로 스킬 구성을 해놓고 이제 와서 평화와 사랑이라고 해봤자….’
[카르바노그가 적을 모두 죽이는 것도 일종의 평화 아니냐고 말합니다.]
‘그럴듯하다.’
-자. 제작을 도와주겠네. 내 제자들과 함께 움직이도록 하지.
골돌골랑은 한 번 결정하자 빠르게 움직였다.
필요한 장비들을 챙기고 제자들까지 동원해서 움직일 준비를 했다.
골짜기에서 다 같이 <고대 제국 유탄 머스킷>을 만들기 위해서!
태현도 고개를 끄덕였다.
잘츠 공화국에서 좀 더 퀘스트를 깨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았지만, 태현의 퀘스트가 우선이었다.
‘깨고 다시 오면 되니까.’
“…잠깐. 우리는 왜 따라가고 있는 거지?”
“쉿. 조용히 해. 김태현 놈이 퀘스트 날로 깼다고 트집 잡으면 귀찮아진다.”
같이 있던 다른 길드원들은 수군거리며 태현의 뒤를 쫓았다.
빚진 걸 이런 식으로 왔다 갔다 하는 걸로 갚으면 오히려 이득이었다.
얌전히 가자!
* * *
-훌륭한 대장간일세!
“고맙습니다.”
-…그런데 악마들은 좀….
“음.”
태현의 말에 대장간에 있던 드워프 NPC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악마들은 좀 그렇긴 하지!
“골돌골랑 님. 기계공학이 무엇을 위한 스킬이라고 하셨습니까?”
-평화와 사랑을 위한….
“그렇습니다. 저기 갇혀 있는 악마들이 보이십니까? 저 악마들은 파괴와 증오 대신 평화와 사랑을 배웠습니다. 기계공학의 힘 중 하나입니다.”
-…저게??
골돌골랑은 당혹스러워했다.
저게… 평화와 사랑??
그러자 포병대 죄수 관리를 맡은 드워프 NPC가 바로 성수를 장전했다.
-야. 웃어. 웃으라고.
-우… 우린 행복합니다! 우리는 행복합니다!
“보십시오. 행복하죠?”
[화술 스킬이 매우 높습니다!]
[골돌골랑이 혼란에 빠집니다!]
[……]
-하긴 절대적인 건 없는 걸지도… 제작이나 하세.
“아주 잘 생각하셨습니다.”
골짜기에는 <악마의 대장간>부터 시작해서 여러 대형 대장간들이 있었다.
숙련된 기계공학 달인인 만큼 골돌골랑은 <악마의 대장간>에서 제작을 진행하려고 했다.
“흥. 기계공학으로 평화와 사랑이라니. 어디서 애송이 같은 소리를….”
“기계공학의 정수는 화약과 폭발, 철과 피로 구성된 거지. 큭큭.”
음침하게 큭큭대는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을 본 태현은 단호하게 말했다.
“니들은 입 다물고 있어라.”
“힝. 네.”
분위기 잡고 있던 이들은 시무룩해져서 구석으로 찌그러졌다.
[작업이 시작됩니다!]
[골돌골랑이 제자들과 함께 <고대 제국 유탄 머스킷> 골렘 생산 공장을 제작합니다!]
[골렘 생산 공장은 자동적으로 아이템을 제작해냅니다.]
[현재 대장장이의 숫자가 적습니다. 골렘 생산 공장의 속도가 내려갑니다.]
[현재 대장장이의 스킬이 낮습니다. 골렘 생산 공장의 속도가 내려갑니다.]
쩍-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저게 대체 뭐냐!?
한 번 만들어두면 알아서 아이템을 만들어내는 아이템이라니.
이제까지의 기계공학 상식을 뛰어 넘는 무시무시한 기술이었다.
저걸 응용하면??
폭탄이 복사가 되고, 폭탄 골렘도 복사가 되고, 폭탄 동상도 복사가 되고, 폭탄 성벽도 복사가….
‘대단한데?’
태현도 솔직히 감탄했다.
골돌골랑이 나름 고대 제국 때부터 있던 기계공학 스킬을 전수 받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실로 어마어마한 기술력.
-저… 다들 좀 도와주면 안 되겠나? 손이 부족한데….
“지금 갑니다!”
“어르신. 여기 마실 것 좀 드시지요!”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은 방금까지의 태도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돌변했다.
너무너무 멋지다!
그 모습에 악마 대장장이, 사루온은 쓸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제자 키워봤자 다 쓸모없다더니 아주… 머리 검은 짐승 놈들 같으니….
* * *
“하늘이 좀 어두워진 거 같지 않아?”
“곧 밤이라 그렇겠지.”
“…야. 미친놈아. 지금 낮이야…!”
시간감각이 마비된 친구의 말에, 플레이어는 황당하다는 듯이 반응했다.
“어? 낮이었다고?”
낮치고는 지나치게 시커먼 하늘의 색.
그리고 그 어둠은 점점 더 퍼져 나가고 있었다.
번쩍!
[대륙에 퍼진 혼란, 파괴, 분열의 힘이 더욱더 상승합니다.]
[굶주린 혼돈의 힘이 한 단계 더 강해집니다!]
으핫핫핫핫핫!
[굶주린 혼돈의 군단이 대륙을 침공하기 시작합니다!]
<굶주린 혼돈의 군단-굶주린 혼돈 퀘스트>
생존하십시오!
보상: ?, ???
퀘스트 등급: 전설
“…….”
“…….”
짧고 굵은 퀘스트 설명.
플레이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망쳐!!!!”
“모두 도시 안으로 도망치세요!!”
“늦으면 죽는다! 늦으면 죽어!”
“지금 제 자리를 뺏으려는 개수작질이신 건가요?”
“…뛰라고!”
플레이어들의 비명과 함께, 대륙 곳곳에 굶주린 혼돈의 군단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몇몇 곳에서는 한번 붙어보자는 식으로 덤빈 파티들이 있었지만….
[HP가 0이 되어…]
[로그아웃…]
“뭐, 뭐 이렇게 강하냐?!”
“저번에 봤던 하수인은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가소로운 필멸자 놈들 같으니! 다시 한번 덤벼봐라!
“아닙니다! 저희는 그냥 도망치겠습니다!”
-…이 왕국 놈들은 왜 이렇게 다 재수가 없지?! 잡아라! 죽여 버려!
* * *
[아키서스 성기사들이 <고대 제국 유탄 머스킷>으로 무장합니다!]
[교단의 명성이…]
열심히 제작 뛰고 있던 태현에게도 퀘스트 소식은 들어왔다.
갑자기 수십 개 넘는 정보가 한 번에 들어오자, 태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였다.
“그렇군. 하긴 플레이어 놈들이 굶주린 혼돈이랑 계약 많이 하고, 악마 놈들도 대륙에 늘어났고, 악신 교단도 많이 늘어났으니, 굶주린 혼돈의 힘이 강해졌어도 이상할 건 없지.”
“예상하고 있으셨던 건가요?!”
이다비가 깜짝 놀라서 외쳤다.
이것마저 태현의 예상 안에 있었다면….
그러나 태현은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예상은 무슨… 이거까지 어떻게 예상하겠어. 이다비. 망한 거 같은데.”
“…아, 아니. 그 정도는 아니지 않을까요? 골짜기 멀쩡한데….”
“골짜기야 멀쩡한데, 왕국이 다른 곳들이 문제지. 지금 이거 한눈에 봐도 막을 규모가 아닌 거 같다.”
워낙 멘탈이 단단해서 표정 유지하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이었다면 바닥에서 데굴데굴 구르면서 엉엉 울었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 영상들만 봐도 대충 견적이 나오는 것이다.
‘저번보다 더 강화된 군단들이 왕국 곳곳에 출몰했군. 왕국에서 다른 왕국 가지 못하도록 국경이 차단됐고. 플레이어들이 도시나 성 밖을 돌아다니지 못하도록 필드 곳곳도 점령했고. 아주 사방을 다 공격하겠다는 속셈인데….’
골짜기나 수도 같은 곳을 지킨다고 해도 저런 식으로 밖이 다 불타버리면 페널티가 어마어마하게 왔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혼자 망하는 게 아니라는 점 정도?
지금 판온에서 영지 있는 플레이어들 중 이번 퀘스트에서 안 망할 사람은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유 회장 정도는 좀 늦게 망할 수도 있겠지만, 굶주린 혼돈이 내버려 둘 것 같지는 않으니 시간문제였다.
이다비는 태현의 어깨를 잡고 앞뒤로 흔들었다.
“태현 님! 정신줄 붙잡으셔야 해요!”
“이다비. 왕국 불타기 전에 그냥 평소에 밉상이던 랭커 놈들이나 조지고 다닐까?”
태현은 살짝 진심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예전이면 모를까, 지금은 판온 최상위권 랭커들 상대로 제법 가능성 있는 싸움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상대들도 굶주린 혼돈 때문에 정신없을 것 같으니, 이때 확실히 밟아 놓으면 왕국이 불타더라도 좀 행복할 것 같았다.
“태현 님.”
이다비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판온 1이라면 그렇게 하셔도 되겠지만 지금은 아니잖아요.”
“맞는 말이야.”
진지한 이다비의 태도가 태현을 정신줄 붙잡게 만들었다.
랭커 놈들 조지고 다니는 건 게임 접기 전에 해도 됐다.
중요한 건 접기 전에 무엇을 남기느냐?
후회를 남기느냐, 아니면 할 거 다 했다는 만족감을 남기느냐.
게임을 한다면 무조건 후자여야 했다.
“최선을 다해서 싸워보자.”
“믿고 있었어요!”
“가능하면 북쪽으로 굶주린 혼돈 애들을 보내면 좋겠는데.”
“그것도 나쁘지 않죠.”
[카르바노그가 감동한 스스로가 후회된다고 투덜댑니다.]
시작하자마자 싸움 피하려는 둘의 모습에 카르바노그가 투덜거렸다.
* * *
“김태현. 우리는 돌아가야겠다.”
니샤오양은 일부러 단호하게 말했다.
태현이 괜히 붙잡을까봐 표정에 힘도 더 주었다.
밖으로는 숨기고 있었지만 지금 오스턴 왕국 상황도 여기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았다.
굶주린 혼돈의 군단이 벼락처럼 사방에 나타나서 날뛰고 있는 바람에 어디가 파괴되고 어디가 점령당한 건지 제대로 파악도 되지 않는 상황.
길드 동맹은 지금 초비상 상태였다.
김태현을 상대할 때 쓰려고 준비해놨던 경보 단계를 사용할 정도!
“가라.”
“우리는… 어?”
“가라고.”
“그, 그래.”
길드 동맹 길드원들은 뭔가 얼떨떨한 기분으로 나왔다.
그래도 좀 붙잡을 줄 알았는데….
“김태현 저 자식이 우리를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닙니까?”
“야. 닥쳐. 들렸다가 붙잡히면 어쩔 건데.”
길드 동맹 길드원들은 탈것을 불러낸 다음 날아올랐다.
골짜기 앞에서 좀 빠져나온 다음 날아서 쭉 올라가면 오스턴 왕국까지는 금방이었다.
[굶주린 혼돈의 군단이 당신들을 파악합니다.]
[공격이 시작됩니다!]
-쏴라! 건방진 놈들이 감히 도망치려고 하는구나!
[굶주린 혼돈의 마법이 작렬합니다!]
흡사 마법 대포에서 쏘아내는 것마냥 강력한 마력의 줄기가 아래에서 위로 쏘아져나갔다.
“!!!”
길드원들은 경악해서 회피를 펼쳤다. 위로 날아오르고 옆으로 트는 식으로 급히 꺾었다.
[굶주린 혼돈의 괴수들이 나타납니다!]
캬아아아아악!
“?!”
그러나 산 넘어 산이라고, 하늘에도 이미 굶주린 혼돈의 괴수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이 정도였나!?’
국경이 봉쇄되고 필드가 사실상 봉인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만 해도, ‘그건 레벨 낮은 놈들 이야기고 우리는 다르지’라고 생각했던 길드원들이었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나도 살벌했다.
진짜 공중에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
“후퇴! 후퇴!”
“뒤로 빠집시다!”
길드원들은 이를 악물고 도망쳤다. 굶주린 혼돈의 괴수들도 골짜기 위까지 쫓아오진 않았다.
골짜기는 누가 봐도 살벌한 방어력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어? 길드 동맹 놈들 아니야? 왜 다시 돌아오지?”
“그러게? 수상한데.”
골짜기 성벽 위에서 보초 서고 있던 플레이어들은 다시 돌아온 길드 동맹 길드원들을 보며 수상하다는 시선을 던졌다.
“돌아왔다. 사실 그냥 가려고 하니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도와주려고….”
“말하는 거 보니 진짜 수상하다! 굶주린 혼돈 놈하고 계약했나 봐!!”
“…아니야!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