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561화
하지만 결과는 이미 정해진 상태였다.
유지수와 김태현이 들어가겠다고 말하는데, 둘이 더 이상 막을 수는 없었다.
“오. 안에는 제법…?”
태현은 놀라워했다.
게임단 중에는 자본이 없다 보니 열악한 시설에서 먹고 자는 경우도 많았는데, 구정 게임단은 제법 깔끔한 건물에 번드르르한 내부까지 갖고 있었다.
이 정도면 괜찮은 편인데?
유지수도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신기한데요?”
“그러게 말이다.”
“다들 놀라십니다. 저희 게임단은 다른 건 몰라도 선수들에게 투자는 확실히 하니까요.”
강재황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을 덧붙였다.
‘이상한데.’
태현은 여기 오기 전에 나름 정보를 찾아보고 왔었다.
아는 선수들한테 연락을 돌려서 구정 게임단에 대해 물어본 것이다.
-히익! 왜 연락을… 아. 그냥 물어보려고 했다고? 난 또 뭐라고. 하하.
-김, 김태현인가? 진짜 김태현 맞나? 케인인데 김태현인 척하는 거 아닌가? 이거 방송 찍는 거면 다시는 그쪽 얼굴을 보지 않겠어!
-구정 게임단? 혹시 구정 게임단 선수 중에 쓸 만한 선수를 인수하려는 건가? 이름 혹시 알려줄 수 있나? 아니, 새치기하려는 건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 그래. 앞글자만이라도 좀….
…선수 본인들은 별로 도움이 안 되긴 했지만, 그래도 자기들끼리 열심히 인맥을 동원해서 정보를 물어왔었다.
그 결과 구정 게임단에서 뛰었다가 나간 선수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대표가 돈에 미친 놈이라던데?
-선수들 거의 돈도 못 받았다고… 겉모습은 멀쩡한데 속지 말라고 하더라고.
-계약서가 거의 말장난 수준이라던데.
-원수 아니면 추천하지 말라더라.
태현은 계단을 올라가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건물이야 깔끔했지만 그 안을 채운 것도 중요했다.
여러 시설들의 상태는 어떠한가?
“오. 이런 운동 시설들까지….”
“하하. 김태현 선수께서는 역시 알아보시는군요. 긴 리그를 버티기 위해서는 체력 또한 중요합니다. 그 체력을 위해서는 이런 게 필요하지요.”
‘…고장난 게 많군.’
태현은 눈치챘지만 굳이 말하진 않았다. 모르는 척 넘어갔다.
“식사는 여기서 준비됩니다.”
“식사까지 나옵니까?”
“그럼요. 물론 비용은 많이 들지만, 선수들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지요.”
태현은 슬쩍 훑어보았다. 놀랍게도 여기서는 흠잡을 게 없어 보였다.
당연히 구정 게임단도 장사하려고 하는데 미리 준비를 해놓은 것이다.
겉모습만 봤을 때는 딱히 알기 힘든 상황!
“지금 선수 애들이 휴가를 나가긴 했지만 한둘 정도는 남아서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과연.”
사실 휴가보다는 도저히 못해먹겠다며 도망친 사람들이 더 많았지만, 강재황은 입술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처음에는 긴장했었는데 지금 보니 분위기가 제법 괜찮았다.
생각해 보니 김태현도 아직 애송이.
세계 최고의 선수라고 온갖 곳에서 띄워주긴 했지만 닳고 닳은 강재황을 당해내기는 힘든 것이다.
주대한도 침착을 되찾고 매우 가식적인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여기 김태현 선수다. 둘 다 팬이지.”
“우… 우와…!”
“영, 영광입니다!”
남아 있던 선수 둘이 태현을 보더니 깜짝 놀라서 달려왔다.
강재황은 눈빛으로 말했다.
-미리 준비한 대로 하는 거다. 알겠지?
탈주한 선수들이 많은 와중에 아직 남아 있는 선수들은 약점을 단단히 잡혔거나 겁을 먹어서 도망치지 못하는 선수들이었다.
강재황은 두 명을 따로 뽑아서 준비시켜놨었다.
목적은 당연히 게임단 칭찬을 늘어놓는 것.
“구정 게임단 정말 너무 좋습니다.”
“케인 선수도 여기 오시면 더 좋아하실지도 모릅니다!”
듣고 있던 유지수는 의아해했다.
그렇게까지 잘 챙겨줄 수가 있나?
‘불가능할 것 같은데?’
선수들이 열심히 떠들자 강재황은 흐뭇하게 웃었다.
이 정도면 쐐기가 박힌 것 같았다.
“자. 그러면 이쪽으로 오시죠. 남은 시설들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강재황이 먼저 돌아선 그 순간, 선수들은 태현에게 입 모양을 벙긋거리며 소리 없이 말을 했다.
-여기 별로입니다!
-그냥 도망치세요!
“…….”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볼 만큼 다 본 것 같았다.
대화가 끝나고, 태현과 유지수가 돌아가자 강재황은 만족스럽게 말했다.
“긴장한 것보다 잘 끝났군.”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기껏해야 선수 한 명이라니까요. 선수들 게임만 해서 사회 물정 하나도 몰라요.”
“그래. 나도 괜히 긴장한 것 같다. 완전히 혹한 눈빛이었지?”
태현과 유지수는 꽤 솔깃해하는 것 같았다.
이대로라면 꽤 비싸게 팔릴 게 분명….
“?”
건물 앞에 차가 멈추더니 그 안에서 양복 입은 사람들이 걸어 나왔다.
뭐지?
* * *
“세상에 미친놈들이 너무 많다니까.”
태현의 말에 다른 플레이어들은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김태현. 이상한 게임단들이 많지. 우리나라에도 사기꾼 같은 게임단들이 몇 개 있었어.”
“어떻게 됐지?”
“갱단이 엮여 있었는지 대표가 총 맞던데.”
“…….”
태현과 유지수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에 경악했다.
“한국은 총 안 맞나?”
“우린… 변호사를 보내서 해결하지 보통.”
“저런. 그러니까 사기꾼들이 계속 나오는 거 아닌가?”
‘대화가 이상한데…?’
듣고 있던 이다비는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확실히 이상한 게임단들이 많은 건 사실이었다.
판온이 인기를 끌면 끌수록 온갖 어중이떠중이들이 다 몰려오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사기꾼들이 같이 들어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런 게임단이 한둘이 아닐 테니까… 음. 다른 선수들이 부당한 일을 겪으면 말하라고 해야겠어요. 도와줄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태현은 의아해했지만 굳이 말하진 않았다.
이다비가 그렇게 하고 싶다면 말릴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 연락 오면 같이 도와줄게.”
“네!”
둘의 대화에 다른 길드의 플레이어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김태현이 저런 품격 있는 대화를 나눌 줄이야?
‘누구 죽일까’ ‘다음 주는 어디를 털까’ 같은 대화를 주로 할 줄 알았는데….
‘게임하고 밖의 이미지는 확실히 다르구나!’
‘그러면 게임에서 보이는 모습은 컨셉에 가까운 건가? 사실 사람은 착할 수도….’
‘그건 아니야. 선 넘지 마라.’
길드 동맹 길드원이 듣다가 정색하자, 다른 길드원이 바로 고발에 나섰다.
“김태현! 길드 동맹 놈이 너 욕했어!”
“이 샊…!”
“또 욕했냐? 참 나… 내버려 둬라.”
태현은 지겹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길드 동맹 길드원은 얼굴을 붉혔다.
“안 했어! 안 했다고!”
“그래. 안 했겠지.”
“진짜 안 했다고!! 믿어줘라!”
“여러분. 자꾸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빨리 착한 일이나 하세요 좀.”
이다비가 성가시다는 듯이 플레이어들을 재촉했다.
지금 대형 길드의 길드원들은 선행을 위해 이 도시를 누비고 있었다.
퀘스트 난이도만 보면 그냥 잡퀘 수준이었지만….
평소에 착한 일 안 하던 사람에게 이런 건 은근히 까다롭고 어려운 일이었다.
“혹시 뭐 들어드릴 거라도 없습니까?”
-강도다! 강도야!!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NPC들의 푸대접은 물론이고….
“차고 있는 장비들 내구도가 좀 낮아 보이는데, 내가 깔끔하게 만들어줄까?”
“으악! 길드 동맹!! 내 장비를 뺏으려고!!”
“…….”
플레이어들의 오해까지!
<파워 엠퍼러>의 케리드는 옆에서 혀를 쯧쯧차며 말했다.
“그러니까 평소에 플레이어들을 적당히 괴롭혔어야지.”
“우리가 누구를 괴롭혔다고!”
길드 동맹 길드원들은 성질을 냈지만 그런다고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착한 일 해드립니다! 간단한 부탁 받습니다!”
“여러분 구걸 좀 해주십시오!”
-저 모험가들 대체 뭐하고 있는 건가?
-쉿. 미친놈들이 분명하군!
잘츠 공화국 NPC들은 그런 길드원들을 질색하며 지나갔다.
“크윽… 그렇게 많던 거지들이 다 어디 간 거야?”
평소에 도시 광장에서 ‘여러분 실버 하나만 주세요!’ ‘장비 버려주세요!’ 같은 식으로 구걸하던 초보자들.
그렇게 많던 플레이어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당연했다.
지금 잘츠 공화국이 새로 바뀌어서 열린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거지들이 여기까지 올 리 없었던 것이다.
지금 이 주변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고렙 이상!
그런 만큼 구걸하려는 사람들은 없다고 봐야….
“실례지만 돈 좀 주십시오!”
“????”
“거지잖아?!”
아무 장비 없이, 당당하게 바가지 하나 들고 구걸하는 플레이어를 보자 길드원들의 눈빛이 번쩍 뜨였다.
“비켜! 내가 돈 줄 테니까!”
“이 자식이 지금 어디서… 내가 너보다 앞에 있는 거 안 보이냐?”
“안 비키면 여기서 네놈의 피를 볼 수도 있….”
떠드는 와중에 발빠른 플레이어 한 명이 앞으로 나가서 재빨리 적선을 하려고 했다.
“여기 1실버….”
“잠깐.”
“?”
“자선을 베푸는 것도 좋지만, 과연 1실버가 선행으로 인정이 될까요?”
“…!”
“좀 더 넉넉하게 내는 게 확실하지 않겠습니까?”
“그럴듯하군… 그럼 10실버로….”
“잠깐. 내가 11실버 낼 테니 내 돈을 받는 건 어때?”
“이, 이런 미친놈이…! 야! 뭐하는 거냐!”
“뭐하는 거냐니. 꼬우면 비켜.”
구걸하는 플레이어한테 돈을 줬을 때 몇 명까지 인정이 될 지 알 수 없었다.
재수 없는 경우 맨 처음 사람만 인정될 수도 있는 상황.
무조건 가장 먼저 내야 했다.
거지는 흥미롭다는 듯이 팔짱을 끼었다.
“확실히… 선행으로 인정되는 건 한 명뿐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자. 여기 11실버.”
“하지만 다른 분들의 의견도 좀 들어보고 싶군요.”
“…12실버?”
“20실버!”
거지는 신이 난 표정으로 손뼉을 쳤다.
“자! 여러분! 좀 더 올려 보십시오! 여기 저 같은 거지가 또 몇 명이나 있겠습니까? 이번 기회를 놓치면 선행을 못 채울 수도 있습니다!”
“30! 50!”
“1골드!!”
길드원들은 무엇에 홀린 것처럼 가격을 올렸다.
최면에 걸린 것이다.
거지가 왜 선행 퀘스트를 알고 있는 건지, 왜 가격을 서로 다투면서 올리고 있는 건지 의심하지 못하고 무작정 달리는 길드원들!
“이겼다! 내가 이겼다고!”
“미친놈아! 그렇게 돈을 많이 주면 어떡해!”
“하. 이게 선행이지! 그렇게 쪼잔하게 돈을 쓰니까 선행이 안 되는 거다!”
[선행을 했습니다!]
[남은 퀘스트…]
남은 길드원들은 투덜거리고 불평하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겉으로는 미친놈이라고 욕했지만 속으로는 아쉬움이 남았다.
‘돈을 더 쓸 걸 그랬나?’
‘아. 할당량 채우고 깔끔하게 김태현하고 갈라져야 하는데….’
“여러분.”
“??”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돈 좀 주시지요.”
“…….”
골목 돌자마자 새로 나타난 다른 거지 플레이어에, 길드원들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체 왜 여기까지 와서 거지 짓을 하는 거지?
“10 골드!!”
“정신 나갔냐!? 시작부터 뭐하는 짓….”
“10 골드 50 실버!!”
“…11 골드!!”
한 번 붙은 경쟁은 멈출 수 없었다.
* * *
“덕분에 빠르게 끝낼 수 있었다. 다들 고맙다.”
“아닙니다! 언제든지 불러만 주십시오!”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진심을 담아 외쳤다.
이런 일이라면 몇백 번을 해도 좋았다.
세상에 이렇게 날로 먹는 장사가 또 어디 있겠는가.
구걸을 하면서 서로 경쟁을 붙일 수 있다니…!
“그래.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부를 테니까. 잘 부탁한다.”
‘다음이 있나!?’
태현의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이다비는 의아해했다.
이런 미친 상황이 다시 일어날 것 같지는 않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