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556화 (1,555/1,826)

§ 나는 될놈이다 1556화

파워 워리어를 적당히 칭찬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하지만 저렇게 과하게 칭찬하는 사람은?

‘100% 수상해…!’

“태현 님. 저 사람 수상해요.”

“어…. 어? 왜? 파워 워리어 훌륭하잖아.”

태현의 말에 이다비는 살짝 감동했다.

하지만 공은 공, 사는 사.

이다비는 즉시 대답했다.

“아닌데요.”

“…그, 그래.”

이다비가 보기에 파워 워리어는 대형 길드가 아니었다.

물론 길드원들 숫자만 보면 어마어마하긴 했지만 길드의 강함이란 건 원래 그런 걸로 결정되지 않았다.

길마의 명령 한 번에 동원되는 정예 랭커들.

레벨 높고 경험 많은 고렙 플레이어들.

그리고 훈훈하면서도 예의 바른 분위기와 잘 짜인 길드 규칙, 오랜 길드의 역사 등등.

이런 것들이 있어야 어엿한 대형 길드가 될 수 있었다.

‘너무 엄격한 거 아니야?’

태현은 옆에서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다비의 표정이 너무 엄해서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리고 길마인 이다비가 더 잘 알기도 할 테고….

“파워 워리어를 저렇게 칭찬하는 걸 보니 무슨 꿍꿍이가 있어요.”

“으음. 그런 사람 같진 않은데….”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도 수상한 놈들만 많이 만나보다 보니 태현은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었다.

가식적으로 웃거나 손을 움찔대면서 무기에 가까이 대거나 계속 태현을 위아래로 훑으면서 견적을 내거나 하는 등등.

이런 게 바로 수상한 짓이었다.

그에 비해 케리드는 가만히 서서 예의 바르게 기다릴 뿐.

만약 저게 수상한 꿍꿍이를 갖고 있는 거라면 정말 대단한 거였다.

완벽한 위장!

“지수야. 어떻게 생각하니?”

“그냥 일단 쏴보면 가려지지 않을까요? 죽으면 안 수상한 사람일 거고 안 죽으면 수상한 사람일 듯?”

유지수의 반응에 태현은 반성했다.

태현이 판온 1에서 하던 짓 아니었던가!

‘이게 남이 하는 걸 보니 양심이 살짝 찔리는데.’

“그보다 우리가 먼저 들어왔는데 따라 들어온 거잖아요. 이쯤이면 그냥 죽여달라는 거 아닌가요?”

“난 근데 던전 점령하는 타입은 아니거든.”

다른 대형 길드들과 달리 태현은 ‘내가 먼저 왔음 자리임’ 같은 소리를 잘 하진 않았다.

저런 소리를 하는 놈들을 묫자리에 처박으면 모를까….

‘죽이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이다비 말을 무시하기도 그렇군.’

태현은 그냥 상대와 거리를 벌리기로 결심했다.

정말 수상쩍은 상대라면 반응을 보이겠지.

“그러면 이만….”

“잠깐. 김태현 선수.”

“!”

태현은 놀랐다.

가는 사람을 붙잡으려고 하다니.

정말 수상한 꿍꿍이가 있었던 걸까?

“크흠. 그러니까….”

케리드는 멋쩍은 표정으로 헛기침을 한 다음 입을 열었다.

“던전에서 빠져나가는 길을 혹시 아시오?”

“…….”

* * *

어색한 침묵.

파워 엠퍼러 길드원들도 민망했는지 시선을 피하다가,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저희가 꼭 길을 잃었다기보다는, 그러니까 그게, 급한 일이 생겨서 던전을 나가려고 하는데 여기서 시간을 오래 쓰면 안 될 거 같아서 조언을 좀 여쭙고자….”

“…그, 그렇군.”

태현 일행은 상대방을 안쓰럽게 쳐다보았다.

‘길 잃었네요.’

‘길 잃은 거 맞지.’

내로라하는 판온의 랭커들도 언제나 승리하는 건 아니었다.

판온의 던전들은 매번 바뀌었고 랭커들도 방심하면 크게 다칠 때가 있었다.

바로 지금 같은 상황!

스킬, 아이템 다 봉인된 곳에서 지형지물까지 계속 변화하는 미궁이다 보니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당할 수밖에 없었다.

‘부끄러워할 것 없는데.’

솔직히 랭커쯤 돼서 ‘던전 탈출하는 길을 모르겠어’라고 말하는 게 부끄럽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정말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이게… 던전이 좀 어려운 곳이니까, 그렇게 말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다들 너무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예….”

파워 엠퍼러 길드원들은 수치심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덤지기를 불러야겠군.”

-부르셨습니까?

펑하고 다시 나타난 무덤지기의 모습에, 파워 엠퍼러 길드원들은 당황했다.

“아, 아니. 김태현 선수. 저 샊… 저 정령은 의지 안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저놈… 아니, 저 정령은 좀 이상해요.”

[<무덤지기의 상자>에서 증표를 뽑습니다!]

[행운 스탯이 매우 높습니다!]

[아키서스의…]

[……]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통과의 증표>를 뽑습니다!]

“자. 여기 사람들한테 탈출구 좀 가르쳐줘.”

-알겠습니다. 따라오십시오.

“!?!?!?”

“!?!??!”

파워 엠퍼러 길드원들은 어안이 벙벙해진 얼굴로 무덤지기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던전에서 나오는 데 성공합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

던전 탈출할 때 이 정도로 보상을 주는 것 자체가 난이도를 증명했다.

하지만 길드원들은 아직도 황당했는지 메시지도 못 보고 눈만 깜박거렸다.

“김… 김태현 선수한테 고맙다고 전해야겠군.”

“그, 그러게 말입니다.”

파워 엠퍼러 길드원들은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야 충격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도시의 다른 퀘스트를 깨보러 가보시겠습니까?”

“일단 그래야겠군. 여기 왕궁은 위험해 보이니… 음. 김태현 선수가 나오면 뭐라도 보답을 해줘야 할 것 같은데.”

“좋은 생각이십니다. 쓸 만한 퀘스트 찾아서 보답을 해주죠.”

파워 엠퍼러 길드원들은 기본적으로 받으면 그 은혜를 갚으려고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기본 인성을 가진 사람들이었기에 길드 생활 안 하던 케리드가 가입하게 된 것!

* * *

“태현 님. 파워 엠퍼러 길드원들이 던전 나오면 보답하고 싶으니 연락해달라고 하는데요.”

“이 자식들 진짜 수상해지는데?”

태현은 질색했다.

보통 저런 식으로 말하는 놈들은 90% 확률로 대기하고 있다가 공격하는 것이다.

왜 던전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겠는가?

던전의 보상을 뺏기 위해서!

‘처음에는 몰랐는데 이쯤 되면 이다비 말이 맞는 거 같군.’

“절대 믿지 말죠.”

“그래. 그래야겠다. 자. 무덤지기. 다음 위치를 확인해 봐야겠는데….”

콰당탕콰당!

굉음과 함께 앞의 통로 벽이 부서지고 먼지가 피어올랐다.

[<지하 미궁의 굶주린 악마>가 <살점 물어뜯기>를 시전합니다!]

“으악!”

비명과 함께 <패러다임> 길드원이 나뒹굴었다.

동료를 한 명 잃은 패러다임 길드원들이 화를 내며 외쳤다.

“길드 동맹 놈들아! 왜 이렇게 못 싸워!”

“닥쳐! 지금 그쪽이 실수해서 뚫린 거 아니냐!”

니샤오양은 벌컥 화를 냈다.

사실 워낙 혼란스러워서 누가 잘못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럴 때 중요한 건 목소리를 크게 하는 것이었다.

밀리면 자기 탓이 된다!

[<지하 미궁의 굶주린 악마>가 힘을 흡수하고 포만감을 느낍니다.]

[더욱더 강해집니다!]

“!”

“뒤로! 뒤로 빠져!”

두 길드의 플레이어들은 진형을 무너뜨리고 뒤로 달리기 시작했다.

방금도 상대하기 힘들었는데 여기서 더 강해진다는 건…!

“자쉬안 님. 이쪽으로 오십시오!”

“그냥 잡아보면 안 되나!?”

“아. 개소리하지 말고 이리로 오시란 말입니다!”

[<지하 미궁의 굶주린 악마>가 <공포의 환상>을 시전합니다!]

[저항에 실패합니다!]

[주변이 뒤바뀝니다!]

“조심해! 환상이다!”

“길 바뀌었어도 그냥 달려!”

몬스터 중에는 환각을 보여주는 몬스터도 있었다.

이럴 때 대처하는 요령은, 처음 봤던 걸 그대로 믿는 것이었다.

길이 바뀌더라도 눈을 믿지 말고 그냥 달려야 한다!

“앞에 적이 새로 나타났습니다!”

“환상이다! 무시해!”

“…김, 김태현인데요!?”

“환상이라니까! 무시하라고!”

“알, 알겠습니다. 무시하고….”

길드 동맹 길드원들은 침을 삼키고 무기를 휘둘렀다.

김태현이라고는 해도 환상이라고 생각하니 좀 덜 무서웠다.

“뭘 무시해 미친놈들아.”

태현은 짜증 섞인 얼굴로 앞에 있는 놈의 방패를 후려갈겼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

묵직하게 들어오는 공격에 길드원들은 당황했다.

환상인데!?

“공격하는데요?”

“환상이라고 멍청한 자식아! 빨리….”

외치던 니샤오양은 멈칫했다.

그한테도 김태현이 보였던 것이다.

‘나도 김태현을 가장 무서워했나!?’

“비켜라. 내가 공격….”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크아악!”

환상한테 정말로 공격 받을 줄 몰랐던 니샤오양은 뒤로 나뒹굴었다.

“정신 차려라. 멍청한 놈들아. 환상 아니거든?”

“말… 말하는 환상… 크악! 크악! 환상 아닌 거 같습니다!”

몇 대 두들겨 맞자 길드원들은 정신을 차렸다.

‘김태현도 여기에 와있었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미친 듯이 쪽팔림이 몰려왔다.

환상도 아닌데 환상이라고 생각하고 뻘짓을 했으니 얼마나 미친놈처럼 보였을까!

“이다비. 이거 잘 찍었지?”

“네. 길드 영상에 올릴게요.”

태현은 이다비와 속닥였다.

나름 경력이 쌓이다 보니 이제 재밌는 영상이 뭔지 바로 감이 온 것이다.

이건 조회수 대박이다!

태현과 이다비의 꿍꿍이는 눈치채지 못하고, 니샤오양은 입을 열었다.

“김… 태현.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우연이군. 우리도 이 던전을 공략하고 있었다.”

“그러냐?”

방금 창피함 때문인지 니샤오양은 최대한 품위를 지키려고 했다.

그러나 자쉬안은 그러지 않았다.

“김태현 선수! 팬입니다!”

호다닥 달려들어서 악수를 청하는 자쉬안!

“길드 동맹에 들어오시면 참 좋을 텐데 말입니다.”

“하하. 미친 소리 하고 있군.”

“욕하시는 것도 멋지십니다!”

“야… 자쉬안….”

길드원들은 황당하다는 듯이 자쉬안을 노려보았다.

길드 동맹 길드원들한테는 일종의 국룰 같은 게 있었다.

-새로 가입한 길드원들 중에 김태현 만났다고 사인해달라는 새끼 나오면 뒤질 줄 알아라.

-니들이 지금 생각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 누구 때문에 우리 나라 선수가 떨어졌는데!

-저기 전 중국인이 아닌데….

-…시끄러워! 김태현한테 필요 이상으로 아는 척 하거나 친한 척 하는 놈 나오면 길드 규칙으로 처벌하겠다!

하도 태현한테 많이 당했던 만큼 길드원들이 팬처럼 구는 꼴을 봐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자쉬안은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투자자 업고 들어온 사람이었으니까.

“저는 사실 길드 동맹이 아니라 파워 워리어에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왜?”

“부모님께서 길드 동맹에 투자했다고… 참. 저희 집이 좀 잘 사는 편이거든요. 혹시 김태현 선수께서 놀러 오신다면 꼭 초대하고 싶습니다!”

그걸 듣던 유지수가 옆에서 가소롭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어디서 같잖은….

[<지하 미궁의 굶주린 악마>가 울부짖습니다!]

도망에 늦은 패러다임 길드원들을 박살 낸 악마가 진형을 뚫고 달려나오기 시작했다.

태현 일행도 그걸 보고 곧바로 싸울 준비에 들어갔다.

‘뽑기 잘못하면 저런 놈이 나오는 모양이군.’

태현은 눈으로 주변을 가늠했다.

태현이야 어차피 탱커 없이도 잘 사는 사람이었지만 이다비나 유지수는 탱커 없으면 이런 던전에서 취약한 직업.

‘음….’

태현은 길드 동맹 길드원 중 좀 장비 무겁게 있고 탱커 같아 보이는 길드원을 붙잡았다.

“??”

“앞으로 가라!”

“어? 어?? 어???”

“너도!”

“아, 아니. 왜 이러십니까! 미쳤습니까!?”

태현은 검을 휘두르며 탱커들을 한 곳으로 몰았다.

진짜 죽일 듯이 휘두르면 플레이어도 알아서 겁먹고 움직이게 되어 있었다.

일시적으로 만든 벽!

‘이 정도면 되겠군.’

태현은 안심한 다음 시선을 돌렸다. 악마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공격 준비! 여기서 튀는 놈이 있다면 그 자식부터 붙잡아서 폭탄으로 만들어주겠다!”

“…!”

어떤 협박보다 무서운 협박에, 무너져 있던 길드원들도 일단은 무기를 붙잡았다.

[<지하 미궁의 굶주린 악마>가 아키서스의 힘을 알아챕니다!]

[<지하 미궁의 굶주린 악마>가 아키서스의 신도들을 공격하지 않고 피해갑니다!]

“…으아아아아악! 김태현! 김태현 이 자식아!!”

“어. 미안하다. 나도 이럴 줄은 몰랐군.”

태현은 잘츠의 치밀한 준비에 감탄했다.

이 정도로 잘 해놓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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