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555화
…그리고 정확히 찾아온 대형 길드 파티마다 그런 생각을 했다.
-가장 비싼 곳부터 들어간다!
-역시… 다른 놈들은 생각지도 못했을 겁니다!
-갑시다!
우르르 달려가는 대형 길드 파티들!
사람 생각하는 건 다 똑같았던 것이다.
“…….”
“…….”
그 결과 파티들은 서로 길에서 마주치고 어색해했다.
‘아니 이 새끼들 왜 다른 곳으로 안 가고 여기로 왔어?’
‘이 자식들은 죽지도 않고 왔네.’
‘스파이라도 붙여놨나 왜 다들 가는 길이 똑같아?’
어색한 분위기.
랭커들은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보일러> 길마 가텐 아니십니까.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번에 왕궁 명화 납품 퀘스트에서 대활약을 하셨다는데….”
<보일러> 길드는 예술 계열 길드들이었다.
화가, 조각가, 음유시인 등 다양한 예술 직업 랭커들이 뭉쳐 있는 길드!
전투력이 부족해 보일 수 있어도 여러 대형 길드들과 연계가 되어 있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길드였다.
가텐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제 덕분이 아니라 길드원들 덕분이죠. <패러다임> 길드도 요즘 잘 나가시던데. 다 홍길동 길마님 덕분 아닙니까?”
“별말씀을.”
옆에서 듣고 있던 길드 동맹 길드원 하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니샤오양 님. <패러다임> 길마는 미국인 아닙니까? 근데 왜 홍길동이라고 불리죠?”
“아마 아이디 만들 때 한국인인 척하려고 저렇게 지었던 걸로 안다.”
“…….”
길드원은 황당해했지만, <패러다임> 길마 홍길동은 그렇게 우습게 볼 사람이 아니었다.
‘한국인으로 위장하면 한국 플레이어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는 건 물론이고 다른 놈들도 나를 우습게 보지 못하겠지?’라는 냉정한 판단에서 볼 수 있듯이, 길드 운영에 있어서 한 치의 실수도 보이지 않는 뛰어난 전략가였던 것이다.
‘그냥 얼빠진 놈 같은데….’
물론 그런 말을 듣는다고 해서 길드원들한테 납득이 되는 건 아니었다.
한국인인 척 하려고 한국인 이름 짓는 것 자체가….
“여기서 계속 이야기만 할 생각인가? 슬슬 들어가고 싶군.”
랭커 중 한 명이 묵직한 저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 모습에 다들 긴장한 시선을 던졌다.
장비가 범상치 않았던 것이다.
‘레벨이 최소 300 이상이다!’
한 때는 마의 벽이라고 불렸던 레벨 300의 벽.
이걸 깬 랭커들이 제법 나오긴 했다지만 여전히 300을 넘은 랭커는 무시할 수 없는 상대였다.
“케리드… 케리드 같은 랭커를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게 말이다.”
케리드. 전사 랭커 중 이름 높은 사람이었다. 길드 동맹 길드원들도 바로 이름을 듣고 알아차릴 정도로.
“길드에 가입 안 했다고 알고 있었는데, 아니었습니까?”
“최근에 <파워 엠퍼러>에 가입했지.”
“<파워 워리어>요?”
“아니. <파워 엠퍼러>.”
“<파워 워리어>가 새로 길드를 냈나요?”
길드 동맹 길드원들의 대화에 케리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니다…!’
케리드는 화를 내고 싶었지만 참았다. 스스로의 체면만 무너지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이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케리드 님. 드디어 길드에 가입하셨다고요!? 축하드립니다! 그만큼 대단한 길드시겠네요! 어디 길드신가요?
-음. 파워 엠퍼러 길드일세.
-파워 워리어! 거기 괜찮죠.
-아니. 파워 엠퍼러.
-파워 워리어를 잘못 아신 게 아니라요?
-파워 엠퍼러라고 했네.
-아하. 그렇군요. 혹시 파워 워리어랑 상관이 있나요?
-…파워 엠퍼러라고 했지 않나!!
-죄, 죄송합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케리드는 아직도 부끄러웠다.
스스로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한테 화를 내다니.
…그러나 아무리 통제하려고 해도 가는 곳마다 ‘오 파워 워리어에 가입하셨나요?’이러는 건 진짜 좀 힘들었다.
-이보시오. 대체 왜 <파워 엠퍼러>라고 지은 겁니까?
-아… 아니. 케리드. 우리도 이런 상황이 올 줄 몰랐지. 길드원들 사이에서 투표를 해서 길드 이름을 고른 건데 <파워 워리어> 하고 비슷하다고 될 줄이야… 그렇다고 지금 바꾸면 그건 그거대로 웃기는 일이 될 거고.
-…….
<파워 엠퍼러> 길마는 예전부터 케리드와 인연이 있는 나이 지긋하고 성품 좋은 인격자였다.
다만 그의 실수는 새로 만들 길드 이름을 길드원들 인기투표로 지었다는 것뿐!
-괜찮네. 들어보니 <파워 워리어>는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은 것 같던데 우리 길드도 알아주면 좋겠어.
케리드는 회상에서 깨어났다.
길드 동맹 길드원들뿐만 아니라 다른 길드 파티까지 ‘파워 엠퍼러는 파워 워리어의 이름을 베낀 거냐 안 베낀 거냐’로 싸우고 있었다.
“파워 엠퍼러 길마를 아는데 그럴 사람이 아니라니까.”
“그럴 사람이 아니기는 뭐가 아니야. 그러면 이게 안 노린 거냐? 무조건 노렸지.”
떠드는 랭커들을 본 케리드는 그냥 무시하고 들어가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들어가겠다. 같이 경쟁하고 싶은 사람들은 따라오도록.”
“…!”
케리드의 말에 떠들던 랭커들도 정신을 차렸다.
여기 떠들러 온 게 아니라 먼저 퀘스트 깨려고 온 것 아닌가.
“어디 한번 해보자고. 케리드.”
“후후. 우리도 지지는 않을 거야.”
길드 동맹의 간부, 니샤오양은 인상을 찌푸렸다.
분위기가 별로 좋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간부 자쉬안이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왜 다른 파티가 우리를 다 노려보는 거 같지?”
“그야 자쉬안 님. 우리가 길드 동맹 소속이지 않습니까.”
여러 대형 길드가 힘을 합친 초대형 길드가 길드 동맹인 만큼, 판온의 다른 대형 길드들은 길드 동맹한테 맞은 적이 한두 번쯤은 있었다.
게다가 길드 동맹만큼 커다란 왕국을 굴리는 길드도 없지 않은가.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다른 놈들은 몰라도 길드 동맹한테는 절대 못 주지.’
‘만약에 여기서도 놈들이 장악하면 오스턴 왕국까지 연계가 되서 진짜 귀찮아진다.’
‘길드 동맹 새끼들은 그냥 재수가 없어.’
자쉬안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우리가 잘나가니까?”
“…….”
“…….”
그 말에 쳐다보는 시선이 더욱더 날카로워졌다.
니샤오양은 한숨을 쉬었다.
‘다른 놈하고 올걸….’
길드 동맹 간부들이라고 다 능력 있고 쓸 만하진 않았다.
자쉬안 같은 경우는 인맥으로 들어온 케이스!
길드 동맹에 크게 투자한 분의 아들인 만큼 길드 동맹도 안 받아줄 수 없었던 것이다.
“…잠깐. 뭔가 이상한데.”
서로 경쟁하듯 달려가던 파티들은 뒤늦게 이상함을 깨달았다.
…지금 왕궁으로 달려가고 있는데 왜 아무도 안 막은 거지?
* * *
-이번에는 아주 조금 어려워지긴 했지만 여전히 쉬운 시험입니다. 300장 중 하나….
“본체가 정말 없나? 그러지 말고 잘 기억해 봐. 네 본체가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잖아?”
[최고급 화술 스킬을…]
[설득에 실패합니다!]
[기억을 불러내지 못합니다!]
-없습니다!
‘칫.’
무덤지기는 매를 버는 재주가 있었다.
아무리 태현에게 유리한 시험이라지만 이렇게 자꾸 확률이 올라가면 언제 실패가 뜰지 모르는 것이다.
‘내가 지금 찾아야 하는 건 <고대 제국 유탄 머스킷>인데.’
기계공학 전설 스킬 퀘스트.
저번에 <투박한 유탄 머스킷>을 만들었던 태현은 얼떨결에 기계공학 전설 스킬 퀘스트를 추가로 받게 되었다.
잘츠의 무덤에 있는 <고대 제국 유탄 머스킷>을 찾아서 제작법을 확인한 다음 기존 머스킷을 보강하라고!
그래서 이렇게 기나긴 여정을 거쳐서 무덤까지 찾아온 건 좋았는데….
‘무덤의 방이 너무 많단 말이지….’
“무덤지기. 정말 모르나? <고대 제국 유탄 머스킷>의 위치를?”
-죄송합니다. 고대 제국의 무기를 보관하고 있는 방은 <1번 고대 제국의 무기 보관소>, <2번 고대 제국의 무기 보관소>, <3번…>
“와. 진짜 매를 버는데요?”
유지수가 정말 한 대 때리고 싶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태현도 동감이 갔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아쉬운 사람이 찾아야지!
“좋아. 다음 무기가 있는 방으로 가자.”
-알겠습니다! 자. 상자가….
다시 한번 나온 시험.
태현은 살짝 불안한 마음으로 도전했고, 성공했다.
-훌륭하십니다! 안내하겠습니다!
* * *
“네 도움 같은 건 필요 없어!”
-그러셔도 됩니다!
“흥. 우리 레벨이 몇인데 던전에서 길 찾는 스킬 하나 없을까? <흐릿한 지도> 스킬을 써!”
“…안, 안 써집니다.”
“그… 그러면 <방향 선물> 스킬은?”
“그것도 안 써지는데요.”
“…오면서 지도 기록은 했지? 일단 빠져나갈….”
“길이 바뀌었습니다!”
“…….”
“…….”
자리에 모인 파티들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던전이 복잡해 봤자 던전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웠던 것이다.
그들이 갖고 있던 스킬, 주문서, 각종 아이템 등등이 모두 다 막힌 상황!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숨기지 말고 방법 있으면 꺼내놓죠.”
“우리도 없네. 있으면 진작 말했겠지.”
“이렇게 랭커들이 많은데 아무도 방법이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도저히 못해먹겠군. 우린 따로 움직이죠!”
“누가 붙잡을 줄 알았나? 흥!”
그렇게 파티들은 흩어져서 움직이기로 했다.
방법이 모두 막혔지만 랭커들은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그들의 레벨과 경험이 있는 만큼 방법을 새로 찾아낼 수 있으리라고 믿었던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무덤지기가 힌트 같다. 다시 불러보죠.”
“시험을 한번 해볼까요?”
“그래. 무슨 시험인지 한번 보자고. 남들보다 앞서 갈 수 있다면….”
잠시 후.
[<무덤지기의 상자>에서 증표를 뽑습니다!]
[악명이 높습니다!]
[아키서스 교단을 믿지 않습니다!]
[……]
[…페널티를 받습니다!]
[<실패의 증표>를 뽑습니다!]
[불운이 닥쳐옵니다!]
-실패하셨습니다! 조심하십시오!
“…음? 뭘 조심….”
[<지하 미궁의 굶주린 악마>가 나타납니다!]
-침입자! 살과 뼈와 피를 내놓아라!
“!!!!”
곳곳에서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애초에 확률적으로 너무 불리한 테스트!
‘시험도 함부로 볼 수가 없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일단 공략은 중지하고 나갈 생각부터 먼저 해야겠네.”
“알겠습니다. 케리드 님.”
케리드는 가장 먼저 포기하고 나갈 방법을 찾기로 결심했다.
던전에서 전멸은 절대로 피해야 하는 상황!
“…으아악! 적! 적입니다!”
“어디!”
“아. 적이 아니라 다른 파티… 어!”
말하던 길드원들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익숙한 얼굴이 보였던 것이다.
바로 김태현 일행이었다.
하지만 길드원들은 태현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알아보았다.
“뭐야. 우리 말고도 들어온 사람이 있었나?”
“파, 파워 워리어 길마…!”
“?”
이다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통 태현이랑 같이 있는데 태현보다 그녀를 먼저 알아보는 경우는 드물었던 것이다.
“아. 혹시 <파워 엠퍼러> 길드원이신가요?”
이다비는 길드 마크를 보고 바로 알아차렸다. 길드원들은 괜히 좀 민망하고 부끄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태현이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파워 워리어>랑 상관이 있는 길드인가?”
“아뇨. 없어요.”
“있는 거 아니에요?”
“진짜 없는데….”
“이다비 너야 몰라도 저쪽에서 <파워 워리어> 이름을 비슷하게 따온 걸 수도 있지 않나?”
“그러…지는 않을 걸요? 길드원 인기투표로 정한 거라고 들었는데요….”
이다비의 해명에, <파워 엠퍼러> 길드원들은 속으로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파워 워리어> 길마는 정말 마음이 넓고 착하고 선량한 사람이구나…!
케리드도 살짝 감동 받은 표정으로 헛기침을 했다.
“만나서 반갑소.”
“아. 네. 반가워요.”
“파워 워리어의 명성은 예전부터 많이 듣고 있었소. 판온에서 손꼽히는 훌륭한 길드지.”
“네?”
이다비는 케리드를 수상하게 쳐다보았다.
‘무슨 꿍꿍이지 이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