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549화
“왜 그래?”
“없던 건물이 새로 생긴 것 같아서. 누가 와서 지은 건가?”
“무슨 말도 안 되는 미친 개소리를 하는 거야?”
“…그, 그렇게까지 말할 건 없잖아.”
말을 꺼낸 플레이어는 상처 받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상대방도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미안. 하지만 너도 알잖아. 여기에 새로 건물 지을 사람은 없다는 거. 네가 헛된 희망을 가졌다가 상처 받는 걸 보고 싶지 않아.”
“크윽…!”
잘츠 왕국 플레이어들은 모두 같은 아픔을 안고 있었다.
-와. 이거 봤어?! 대장장이 길드 <제자일>이 새 대장간 건물을 지었어! 그냥 대장간 건물이 아니야. 옆에는 길드 하우스가 연결되어 있고 제작에 쓸 수 있는 요리와 포션을 바로 공급할 수 있게 음식점하고 포션 상점까지 붙여놨어! 이 정도면 거의 종합 쇼핑몰 아니냐!?
-요즘 길드들이 길드 하우스 지으면서 점점 더 화려하게 짓는 거 같지?
-그렇지. 이것도 다 경쟁이니까. 분명 에랑스 왕국 말고도 잘츠 왕국에 이런 건물들이 들어올 거야!
-와…! 그러면 진짜 좋겠다! 여기 NPC들 쓸 만한 건물 진짜 안 지어주잖아! 맨날 화살만 팔고!!
-길드들이 분명 여기에 오면 이것저것 다 지어주겠지??
…하지만 대형 길드들은 잘츠 왕국에 오지 않았다.
아무리 다른 왕국 세금이 비싸고 자리가 좁아도 꾸역꾸역 거기에 자리 잡고 길드 하우스를 지었다.
-너무한 거 아니냐!?
-야! 잘츠 왕국 오라고!
-잘츠 왕국에 있는 길드들은 왜 길드 하우스를 안 짓는 거야!
-여러분. 양심껏 생각해 보세요. 잘츠 왕국 길드가 돈이 있겠어요?
-…….
NPC도 새 건물을 안 짓고, 플레이어들도 새 건물을 안 짓고….
이 악순환이 반복되는 곳이 바로 잘츠 왕국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플레이어가 헛된 희망 갖지 말라고 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면 이 건물은 뭐지?”
“아마 은퇴한 사냥꾼 NPC가 새운 새 화살 가게겠지. 덫 가게거나. 아니면 둘 다 팔 수도 있고.”
“제발 제작 직업 좀 배려해 줬으면 좋겠는데….”
[<모험가들의 휴식을 위한 연금술 카페>를 발견합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경험치가 오릅니다!]
“…?”
“?!?!?!”
잘츠 왕국 플레이어들은 기절할 듯이 놀랐다.
“카… 카페?? 그… 요리 스킬로 만든 음식이나, 연금술 스킬로 만든 음료를 팔고, 분위기 좋고 버프도 들어가는 공간을 제공해 주는 바로 그 전설의 건물을 말하는 건가??”
“나, 나 카페 처음 본다…!”
번영한 도시에는 이런 식으로 요리나 음료를 파는 카페들이 여럿 있었다.
레벨업과 퀘스트만 하지 않아도 되는 게 판온의 매력.
느긋함을 즐기는 플레이어들은 접속해서 이런 카페에 앉아 판타지스러운 음료 한 잔 하며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곤 했다.
…하지만 잘츠 왕국 플레이어들은 이런 게 처음이었다.
“가짜 아냐? 사기 아냐? 함정 아냐?”
“들… 들어가볼까?”
“들, 들어가도 되나? 우리 같은 사람이?”
“왜 그렇게 말하고 그래!”
둘은 주저주저하며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모험가들의 휴식을 위한 연금술 카페>는 고대 제국 시절부터 내려오던 유서 깊은 건물입니다!]
[모든 요리에 추가 보너스가…]
[버프에 추가 보너스가…]
“진… 진짜야! 게다가 함정도 없어!”
-어서 오십시오. 손님들.
그럴듯한 제복을 차려입은 NPC가 나왔다.
“어, 어, 어디서 나오신 분이신가요? 혹시 사냥꾼? 궁수? 파수병? 정찰병?”
-저는 가문 대대로 이 가게를 맡아서 연금술과 요리를 익힌 사람입니다.
“말… 말도 안 돼! 여기에 그런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고!”
잘츠 왕국 플레이어들은 기도했다.
꿈이라면 제발 깨지 말아다오!
* * *
[악마들이 도망칩니다!]
-크핫핫핫! 악마들의 마을에 불을 질러라!
-제발 이러지 말아주십시오! 저희가 애써서 잡아온 인간 제물이란 말입니다! 이 제물을 빼앗아 가시면 우리는 뭘 먹고 살란 말입니까!
-에잇! 이거 놔라! 알아서 살란 말이다! 우리가 악마 놈 사정까지 생각해 줘야 하나!
잘츠의 부하들은 사납게 웃으며 악마들의 마을을 짓밟았다.
선량한 악마들은 붙잡아 온 인간들을 뺏기고 엉엉 울었다.
-으흑흑! 아키서스 이놈! 용서치 않겠다!
-기껏 잡아온 제물들을 뺏어가다니! 네놈의 땅에도 굶주림이 닥치리라!
“…….”
태현은 솔직히 억울했다.
잘츠 놈이 하고 있는데 왜 나한테 그러냐…!
‘하지만 필요한 작업이긴 해.’
마계의 악마들은 왜 꾸역꾸역 대륙으로 내려오는가?
그만큼 대륙의 종족들이 탐스럽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뿜어내는 영혼의 감정은 악마의 먹이가 되기 마련.
태현이 악마를 붙잡아서 악마의 마력을 착취하는 것처럼, 악마도 대륙의 종족들을 붙잡아서 착취하고 싶어 했다.
그렇다면 마계의 악마들을 약하게 만들려면 악마들의 마을을 전부 다 부수고 갇혀 있는 영혼들을 해방시켜줘야 했다.
…근데 이상하게 이쪽이 악당 같다!
-크핫핫핫핫핫!
-으핫핫핫핫핫!
-와하하하하하!
호쾌하게 웃는 잘츠와 본할라드. 그리고 부하들!
웃음소리가 묘하게 사악한 느낌이었다.
[악마 마을 열 군데를 파괴했습니다!]
[마계에서 악명이 오릅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
[……]
“들어갔다! 제대로 들어갔어!”
-훌륭하십니다! 모험가 님!
-나이스 샷이십니다!
“…….”
태현과 이다비는 황당하다는 듯이 유지수를 쳐다보았다.
처음에는 ‘아 잘츠 왕국 놈들 너무 싫어요’ 하던 유지수였지만 순식간에 적응이 끝나 있었다.
잘츠 친위대를 이끌고 다니면서 악마 사냥을 즐기고 있는 모습!
유지수는 뿌듯하게 양손을 들어 올리면서 친위대의 환호를 받았다.
[<친위대 백인대장>의 직위를…]
‘저렇게 승진을 빨리 해도 되나?’
뚝-
신나게 웃던 잘츠와 본할라드는 웃음을 멈추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태현에게 다가왔다.
-교황 성하. 지금까지 승리를 거두고 있지만, 슬슬 경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악마 놈들이 점점 안 보이는 걸 보니, 다른 곳으로 도망쳐서 모이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게다가 소문이 퍼졌을 테니, 다른 악마 공작이 지원군을 보냈을지도 모릅니다.
“고맙다. 다 너희들 덕분이다.”
-별말씀을….
-딱, 딱히 쑥스러워서 시선을 피하는 건 아닙니다.
[친밀도가 오릅…]
‘욕한 건데.’
태현은 욕한 거였지만 두 영웅들은 흐뭇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면 슬슬 대륙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볼까?”
-이번에 오는 악마들만 다 죽이고 가면 안 되겠습니까?
-본할라드 놈의 말을 듣고 싶지는 않지만 이번에는 제법 일리가 있습니다.
-흥. 잘츠 놈. 가끔은 머리가 돌아가는군.
“…….”
태현은 갑자기 둘이 싸울 때가 그리워졌다.
괜히 화해시켰나?
‘저 자식들 친하니까 되게 짜증 나네.’
“죽이는 것도 좋은데 대륙으로 돌아갈 길을 찾아놔야지.”
마계에 들어올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대륙으로 돌아갈 길을 찾는 것이었다.
아예 다른 차원의 공간이다 보니 출구를 찾지 못하면 영원한 마계의 미아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태현 같은 경우는 출구를 아키서스 교단 대신전에 박아놔서 그런 걱정을 해결해놨다.
하지만 지금은 까마득한 과거였고, 위치도 전혀 모르는 장소.
출구는 새로 찾아야 했다.
-다 죽이면 악마 놈들이 털어놓을 겁니다.
-본할라드 놈이 오늘 맞는 소리만 하는군….
“…….”
태현은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 자식들이 진짜….
“악마다!!”
유지수가 신나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잘츠 친위대도 벌떡 일어나서 전차를 향해 달려갔다.
“내 거야! 저건 내 거야!”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백인대장님!
-먼저 쏘는 자가 주인입니다!
사나운 궁수들이 신나서 달려들자, 다가오던 악마는 기겁해서 백기를 흔들었다.
-사절단! 사절단이오! 우리는 사절단이란 말이오! 협상을 하러 왔소!
“…….”
-…….
“…사절단으로 위장한 첩자 아닐까?”
-과연…!
“지수야. 진정해라.”
태현은 유지수를 말렸다. 유지수는 매우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악마 사절단은 벌벌 떨며 안으로 들어왔다.
주변에 데스 나이트들부터 시작해서 쟁쟁한 적들이 많은 만큼 악마라도 무서울 수밖에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둠 나이트 본할라드님.
-안녕하다.
-그리고 건국왕 잘츠 폐하….
-그래.
-마지막으로, 까득, 아키서스 교단의, 까드득, 교황 성하….
“…….”
악마는 태현을 부를 때 피눈물을 흘리며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말했다.
‘그냥 저럴 거면 오지 말지 왜 왔냐?’
태현은 어이없어했다.
-항복을… 하러… 왔습니다. 크흑!
“!”
상대의 말은 자리에 있던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다.
악마들이 항복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아무리 두들겨 맞아도 독기 가득하게 덤비는 게 악마들 아니었던가?
-속임수가 분명합니다! 교황 성하!
-맞는 말입니다! 악마들이 항복할 리가 없지! 악마들은 절대 믿을 수 없는 교묘한 존재들 아닙니까!
“음… 뭐… 항복할 수도 있지 않나?”
-?!?
-!?
태현의 반응에 둘은 당황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교황 성하!? 악마들은 절대 굴복하지 않습니다!
“아니… 굴복하던데.”
-그, 그렇습니까!?
-아키서스 교단에서는 이미 해봤나 보군.
-과연 아키서스 교단….
둘은 감탄했다.
악마를 굴복시킬 수도 있긴 하구나!
그냥 죽여야만 되는 줄 알았는데….
까드드득!
태현의 말에 악마 사절단은 더욱더 살벌하게 노려보았다.
-감히 어디서 눈깔을!
-죄, 죄송합니다. 그리고 저희가 항복하는 건 속임수가 아닙니다. 저희의 주인님, 자비공 로프로지에 님께서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뭐!? 악마 공작이 쓰러졌다고!?
잘츠가 깜짝 놀랐다.
-교황 성하! 이건 확실히 속임수입니다!
-이번에는 잘츠 말이 맞습니다. 교황 성하. 악마 공작이 왜 갑자기 쓰러진단 말입니까?
“…저건 속임수가 아니다. 왜냐하면 로프로지에가 스스로를 희생해서 우리를 이쪽으로 소환한 거거든.”
메시지창을 본 태현은 진실을 말해주었다.
그 말에 둘은 깜짝 놀랐다.
-과연…!
-악마 공작이 그렇게까지 해서 부르다니. 참으로 놀랍습니다.
-주인이 죽었다면 기회 아닙니까? 그냥 다 쓸어버립시다!
“아니. 이야기는 좀 들어보자.”
태현은 둘을 막았다. 벌벌 떨던 악마 사절단은 태현의 개입에 감사해….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대체 무슨 속임수를 꾸미는 거지?’ 하는 눈빛!
“그래서 항복을 받아주면 너희는 뭘 해줄 수 있지?”
-로프로지에 님을 대신해서 새 악마 공작의 자리에 오르시는 게 어떻습니까?
“…!”
악마 공작 아키서스!
[카르바노그가 그거 진짜 개쩔겠다고 감탄합니다…!]
보고 싶긴 하다!
하지만 세상에는 카르바노그처럼 미친 토끼만 있는 건 아니었다.
쉬익!
-혓바닥 조심해서 놀려라, 놈! 감히 교황 성하한테 어디서!
본할라드는 살벌하게 악마를 노려보며 위협했다. 목에 칼이 들어온 악마는 기겁했다.
-한 마디만 더 잘못 지껄이면 네 심장이 꿰뚫려 있을 거다.
잘츠도 화살을 겨누며 협박했다.
-아, 아닙니다. 실언이었습니다! 싫으시면 잊어 주십시오!
‘아쉬워라.’
태현은 살짝 아쉬웠다.
물론 악마 공작의 자리 같은 걸 가졌다가는 페널티가 어마어마할 테니 어쩔 수 없었지만, 원래 감투는 있어서 나쁠 게 없는 것이다.
게다가 대륙의 영지와 달리 마계의 영지는 개판을 쳐도 됐다.
영지 창고에 있는 재산 다 꺼내고, 세금 100%로 최대한 뜯어낸 다음 반란 일어나면 버리고 대륙으로 가면….
악마 사절단도 거절은 예상하고 있었는지 다음 제안을 꺼냈다.
-…<잊혀진 악마왕의 지팡이>의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