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540화 (1,539/1,826)

§ 나는 될놈이다 1540화

스태프들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둘의 뜻은 바뀌지 않았다.

자기가 먹을 건 자기가 스스로 챙기자!

“그런데 선수들이 하기 싫어하면 어떡하지?”

케인의 지적은 합리적이었다.

태현은 케인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왜, 왜 날 봐!? 난 요즘 열심히 일하고 있잖아!”

“네가 말 꺼냈으니까 널 보면서 이야기하지 그럼 이세연을 보면서 이야기하리?”

태현의 반응에 주변 스태프들은 속으로 생각했다.

‘정말 집안일을 안 하던 게 사실이었나 봐.’

‘사람 새끼가 아닌 듯….’

‘쉿. 그런 생각하지 마.’

스태프들의 싸늘한 시선을 느꼈는지 케인은 급히 화제를 돌렸다.

“여기까지 나왔는데 만들기 싫어할 수도 있지 않겠어?”

“그렇겠지. 적당한 이유를 붙이면 되지 않을까.”

태현의 말에 이세연도 동의했다.

“원래 이상한 체험도 그럴듯한 이름을 붙이면 멀쩡해 보이잖아.”

비싼 돈 내고 벌레 나오는 옛날 건물에 머물면서 회초리 맞는 체험을 누가 좋아하겠냐마는 거기에 <한국 전통 체험> 같은 걸 붙여 놓으면 느낌이 좀 달라졌다.

그래서….

“자. 다들 제자리로 돌아가서 팀을 짜라.”

태현은 싸우고 있는 선수들을 보며 말했다.

마침 싸우고 있었던 만큼 이유를 대기도 쉬워졌다.

“다 준비했나 보군. 갑자기 이런 일을 시키는 게 이해가 안 되는 사람도 있겠지.”

태현은 무게를 잡고 입을 열었다.

원래도 이런 식으로 사기 치는 것에 능한 태현이었지만, 게임단을 운영하고 나서부터는 훨씬 더 실력이 늘었다.

다른 사람들을 상대하고 여러 기업 담당자들과 이야기를 하면 자연스럽게 늘 수밖에 없는 기술.

-케인. 네가 지금 저기를 청소하지 않는 건, 단순한 귀찮음이 아니라 네 약점을 드러내는 거다. 이런 부분에서 안일한 게 네 플레이에서도….

-그냥 시켜 이 자식아! 시키면 되잖아! 왜 그러는데 정말!

“멀리서 왔는데 대접도 안 해주고 직접 자기가 먹을 걸 준비해야 하는 게 짜증이 나서, ‘방송 끝나면 SNS에 욕해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야.”

“…아, 아니.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런 미친놈이 어디 있다고?”

선수들은 황당해했다.

저렇게 말하면 나중에 SNS에 조그마한 불평 하나도 올리기 힘들 것 아닌가!

‘김태현 저 자식 일부러 저러는 거 아니야?’

‘무슨… 김태현이 길드 동맹도 아니고 그런 쪼잔한 짓을 할 것 같아? 실례되는 소리 하지 마.’

“괜찮은 한정식집에 데리고 가서 모두 대접하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아. 하지만 나는 조금 귀찮더라도 이렇게 직접 만들어서 서로 대접해 주는 게 모두의 기억에 더 남을 일이라고 생각했어. 여기 모인 선수들은 전 세계에서 왔지만 다 같이 판온을 즐기는 친구들이잖아.”

“…….”

“…….”

“그리고 팀원들과 같이 음식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여러모로 뜻깊은 일이기도 해. 평소에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 놈도….”

‘케인인가?’

‘케인 말하는 건가?’

‘나, 난가?’

태현은 별생각 없이 대충 말하고 있는 거였지만 듣는 사람들은 시선을 한 곳으로 던졌다.

“…이렇게 같이 일을 하다 보면 생각을 알게 되고 친해지게 되는 거지.”

“과연….”

태현의 말은 자리에 있던 선수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겼다. 몇몇은 감명받은 표정으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하긴, 여기까지 와서 다른 선수들하고 싸우다니 우리가 유치했어.”

“내가 사과한다. 하긴 생각해 보면 여기 있는 선수들은 다 본선에 진출한 선수들. 세계에서 손꼽히는 선수들이잖아. 다들 대단한데 우열을 나누는 게 바보 같은 짓이지.”

“맞아!”

“…….”

“…….”

모두 훈훈하게 화해하는 동안, 중국 선수들은 속으로 쌍욕을 했다.

‘이 새끼들이… 우리는 안 보이냐??’

너무나 자연스럽게 준 상처!

본선에 못 나간 선수들도 있었던 것이다.

* * *

요리가 완성되고 선수들은 훈훈하게 서로 음식을 권했다.

“조너선. 여기 우리가 만든 거 먹어봐. 슈바인학센을 만들어봤어.”

족발 비슷하게 생긴 고기요리에 조너선은 감탄하며 받았다.

“오오…! 맛있어 보여!”

“조너선. 여기 우리 것도 먹어보라고. 푸틴이야.”

“이름이 좀…? 그래도 맛있어 보인다!”

이름은 좀 그래 보여도 감자튀김에 듬뿍 치즈를 얹고 소스까지 뿌린 이상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조너선은 기쁘게 받았다.

그리고 답례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자. 애들아. 내 요리도….”

“앗! 저기 김태현이 음식 나눠준다!”

“받으러 가자! 궁금하잖아. 조너선! 너도 같이 가자!”

“아, 아니. 일단 내 요리도….”

“서둘러! 그건 내려놓고! 늦게 가면 다 뺏길 거야!”

“그, 그런가?”

아무래도 한국에 온 만큼 한국 요리는 좀 먹어봐야겠다고 벼르는 선수들이 많았다.

벌써 늘어선 줄!

“이건 뭐야?”

“잡채.”

“오… 신기한데.”

“…??”

태현은 중국 선수들이 잡채를 보고 신기해하는 모습에 당황스러워했다.

중국 요리집 가면 잡채 나오지 않나?

그걸 본 이세연이 말했다.

“잡채를 먹는 지역이 아닌 거겠지.”

“아하. 그런가?”

‘…?’

옆에서 듣고 있던 스태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아닌 거 같은데?

정확히 말하자면 잡채는 중국 요리집에서 나오긴 하지만 딱히 중국에서 먹는 요리는 아닌….

‘에이. 말하지 말자.’

방송 흐름 깰까 봐 스태프는 입을 다물었다.

이다비가 말을 덧붙였다.

“혹은 잡채를 먹을 만한 상황이 아니었을지도….”

“저런….”

태현은 안쓰럽다는 듯이 중국 선수를 보며 수북이 담아줬다.

“???”

“많이 먹어라.”

그릇 가득 담아온 중국 선수들은 수군거렸다.

“…저 자식 혹시 우리 본선 탈락해서 위로해 주려고 저러는 건가?”

“기분 좋으면서 기분 더러운데.”

고마우면서도 찜찜한 기분!

그렇게 식사가 끝나고, 촬영은 훈훈하게 끝났다.

하연은 끝날 때 서로 선수들이 응원해 주며 악수하는 모습을 보고 정말로 놀랐다.

이게 정말 아까 그 선수들이 맞나?

‘말도 안 돼…!’

아까는 서로 죽일 듯이 욕하던 선수들이 ‘너 잘하더라’ ‘후후 너도’ 같은 칭찬을 하며 응원을 해주고 있었다.

물론 몇몇 선수들은 유독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건 그냥 기분 탓이라고 생각했다.

‘이게 방송의 힘인 걸까?’

하연은 배장욱 PD가 무슨 그림을 그렸던 건지 이제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단순히 흥미만을 불러일으키는 게 아닌, 전 세계에서 온 선수들을 화합시키고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물해 주려고 했던 것이다.

“피디님. 정말 감동했어요!!”

“네? 무슨 소리십니까?”

“?”

“??”

* * *

방송은 당연히 화제를 만들었다.

그냥 선수들이 숨만 쉬어도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볼 정도로 관심을 많이 받고 있던 상황.

그런 와중에 저런 내용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와. 저런 특집을 할 줄은 몰랐다.

-진짜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지?

-원래 집에 속 썩이는 놈 한 명 있으면 생각이 깊어지잖아.

-아하!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감동을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몇몇 사람들은 감동적인 화해보다는 다른 것에 주목했다.

-저기 영국 선수하고 독일 선수하고 진짜 싸운 거 맞지?

-대본 아닌가?

-야. 미쳤다고 저런 대본을 누가 받아줘. 진짜 싸운 거지?

-게시판에 벌써 올라왔던데….

-아 아깝다. 김태현은 왜 말린 거지? 둘이 실제로도 싸워보고 판온에서도 싸워봤으면 얼마나 재밌었을까?

-그러게 말이야. 야. 그런데 중국 선수들은 왜 저렇게 슬픈 표정으로 앉아 있지?

-희한하네.

-여기 장면에서 뭐라고 말하는 거지? 목소리가 작아서 잘 안 들리는데.

-‘우리 본선 탈락해서 위로해주려고 저러는 건가?’라고 말하는듯?

-오….

-아….

사정을 깨달은 사람들은 탄식했다.

생각해 보니까 저기서 한 팀만 본선 탈락을….

-아앗….

-우리가 그것도 모르고… 미안합니다.

-방송국이 너무하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런 사람을 초대하고 그래!

-그러게 말이야!

정말 잔인하다!

-김태현이 잡채를 두 배로 퍼주길래 잡채가 쉬었나 했는데 그냥 불쌍해서였군.

-야. 나 같아도 두 배로 주겠다.

-이제야 저 표정이 이해가 가네.

-와. 너무 불쌍한데. 다들 웃으면서 서로 칭찬하는데 중국 선수들만 혼자 쓸쓸하게 앉아 있어.

-앞으로 보이면 욕하지 말고 응원 좀 해줘야겠다.

-어… 무리일 듯. 쟤 게임단 1군에서 잘려서 다음 시즌부터 안 보일 거임.

-…….

-잡채라도 먹었으니까 된 거야!

-그래. 한국에 온 김에 관광이라도 많이 하고 가!

방송도 보고 반응도 확인한 태현은 의아해했다.

“중국 게임단은 마케팅 방향을 바꾼 건가?”

“그럴 수 있지.”

이세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은 무관심이 가장 무서운 시대였다.

게임단으로서 관심을 못 받는 것만큼 치명적인 것도 없는 상황.

성적이 안 좋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성적이 안 좋으면 그건 그거대로 마케팅을 해야 했다.

-이번 시즌에서 꼴찌를 탈출하면 팬 여러분들에게 상품을….

-저희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면 호화 이벤트를!

“그건 그거대로 슬픈데. 걔네 투자 엄청나게 하지 않나?”

“그러게. 신기하네. 위에서 뭐라고 안 하나?”

“돈이 되니까 그런 건가? 어쨌든 앞으로 만나면 응원해 줘야겠군.”

성적 안 나오는 불쌍한 컨셉으로 간다면 거기에 맞춰서 응원해 줄 수 있었다.

태현은 앞으로 공식적인 자리에서 중국 선수들을 만나면 그런 장단에 맞춰주기로 마음먹었다.

‘일부러 예선 탈락 언급을 피했는데, 앞으로는 언급을 해줘야겠어.’

“저. 여러분들. 제가 할 말은 아닌데 긴장 좀….”

“긴장 풀려고 한 거지.”

“이번에는 김태현 말이 맞아. 시작 전이라고 가만히 굳어 있을 필요는 없으니까.”

태현과 이세연은 일어섰다.

이제 곧 경기 시작이었다.

예선과 본선의 모든 경기들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있었던 것이다.

긴장 안 하는 태현이나 이세연도 심장이 조금은 빠르게 뛰는 기분이었다.

“무슨 생각 하고 있어?”

“운이 좀 좋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왜 날 쳐다보면서 그런 말을?”

이세연은 수상쩍다는 듯이 물었다.

‘이 자식… 혹시 판온 1에서 싸웠던 생각하는 거 아니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오해야.”

“아. 그래.”

“판온 1 때 생각을 좀 하긴 했지만….”

“오해가 아니잖아!”

“가자고. 이기든, 지든 이번 경기가 끝나면 한동안 속이 시원할 것 같아.”

태현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그들은 최선을 다해서 준비해 왔었다.

이제 그 결과를 볼 뿐!

-아키서스의 영혼관!

[<아키서스의 영혼관>을 사용합니다!]

태현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었다.

이번 판온 월드컵은 ‘누가 누가 더 사기 잘 치나’의 싸움이 될 것이라고.

그런 와중에도 왜 사기 스킬이 그렇게 많이 보이지 않았는가?

‘사기 스킬은 대체로 다 쿨타임이 길고 페널티가 크니까.’

이번에 쓴다고 이기는 게 아닌 이상 사기 스킬은 그렇게 막 쓸 수 있지 않았다.

아마 몇몇 플레이어들은 아껴뒀던 스킬들을 쓸 기회도 놓치고 탈락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승전은 아니었다.

서로 아껴뒀던 것을 모두 쏟아부어도 된다.

최상위권 랭커들인 미국 선수들이 개사기를 칠 것은 이미 예상된 바.

지지 않으려면 이쪽도 치고 나가야 했다.

[굶주린 혼돈의 전사, 가트프리드의 영혼은 봉인되어 사용할 수 없습니다.]

[가트프리드의 힘을 꺼내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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