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533화 (1,532/1,826)

§ 나는 될놈이다 1533화

케에… 케에… 케에에엑!!

궁지에 몰린 드래곤 키메라들은 마지막 발악을 준비했다.

[드래곤 키메라들이 마력을 한 곳으로 모읍니다!]

[키메라 브레스가 준비됩니다!]

-안 돼! 모험가들을 지켜라!

잘츠는 그 모습을 보고 크게 외쳤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자신이 직접 말을 몰아서 앞으로 내달렸다.

-폐하! 안 됩니다!

뒤에서 따르던 사냥꾼들이 다급하게 외쳤지만 잘츠는 멈추지 않았다.

-이 비겁한 짐승들아! 모험가들을 공격하지 말고 날 노려라! 내 심장이 여기 있다!

“…….”

[…….]

태현과 카르바노그는 슬슬 과거가 아니라 굶주린 혼돈의 악몽으로 끌려온 게 아닌가 의심되기 시작했다.

잘츠… 맞나??

일단 겉모습도 너무 달라지긴 했지만, 잘츠는 원래 좀 케인 같은 구석이 있었다.

겁 많고 치사하고….

골드 드래곤 고이오노스의 투기장에는 수많은 제국의 영웅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 잘츠는 그리 눈에 띄는 영웅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겉모습도 바뀌고 성격도 저렇게 화통한 전사로 바뀌자 의심부터 됐다.

뭘 잘못 먹었거나 이상한 것에 오염된 게 아닐까??

-주… 주인이시여. 원래 전사는 사흘만 지나도 눈을 비비고 봐야 할 정도로 달라지는 법 아닌가?

용용이는 태현에게 그렇게 말했다.

저렇게 열심히 싸우고 있는 전사한테 너무 심했던 것이다.

“아니. 사람은 안 변해.”

[카르바노그 동의합니다.]

-…….

둘이 그러거나 말거나, 잘츠는 부하들을 이끌고 드래곤 키메라들을 사냥했다.

꽝!

-크윽!

-폐하!! 괜찮으십니까!

드래곤 키메라의 브레스를 얻어 맞은 잘츠는 비틀거리고 피를 흘리면서도 호탕하게 웃었다.

-상관없다! 죄 없는 모험가들이 흘리는 것보다, 내가 다치는 게 나으니까!

-폐하!!!

“정신 공격 받는 기분이군….”

태현은 그렇게 말하며 용용이를 타고 날아들었다.

한시라도 빨리 전투를 끝내지 않으면 태현이 견디기 힘들 것 같았다.

-아, 내 오랜 친우여! 투기장에서 만난 지 참으로 시간이 많이 흘렀구려! 그때 제국의 미래를 걱정하며 같이 힘을 합쳤던 게 마치 어제 같은데!

“…제발 평범하게 말하면 안 되나?”

-나는 평범하게 말하고 있네! 하하! 오랜만에 만나서 어색한가 보군! 나는 반가운데!

“…….”

키에에엑!

드래곤 키메라가 덤벼들어준 덕분에 대화가 잠시 끊겼다.

태현은 속으로 감사했다.

‘고맙다!’

* * *

[드래곤 키메라들을 격퇴했습니다.]

[잘츠 왕국 내에서 평판이…]

[공적치 포인트를…]

[……]

드래곤 키메라들을 모두 격퇴하고, 태현은 아래로 내려왔다.

마을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습격에 겁을 먹고 아직도 숨어 있….

…지는 않고 태연하게 나와서 주섬주섬 자기 할 일을 했다.

-아이고. 또 저놈들이야??

-올 거면 그냥 한 번에 올 것이지 자꾸 사람 귀찮게 나눠서 오고 그런대?

-할머니. 큰일 날 소리 하지 마세요. 한 번에 몰려오면 피해가 더 커진다구요.

-이놈이… 나 젊었을 적에는 저런 놈들이 수백 마리는 몰려 왔었어!

“…….”

이다비와 유지수는 유독 지친 표정이었다. 태현은 이해가 간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 사람들이 귀찮게 굴었어?”

“귀찮게가 아니라 지겹게죠.”

유지수는 냉정하게 대답했다.

잘츠 왕국에 오래 있었던 플레이어답게 벌써 이 마을의 파악이 끝난 것이다.

-아니! 새로 온 모험가들인가?

-네. 새로 왔….

-잘 됐네. 여기가 참 좋은 마을이야.

-아. 네.

-요즘 이런 마을이 없어! 다 나가봐. 심심하면 파괴되고 박살이 난다고! 제국이 멸망하고 나서 살기 좋은 곳이 얼마 없다니까!

-예, 예, 예.

-온 김에 여기 주민이 되면 참 좋겠네! 자. 여기 주민이 되겠나?

-앗! 드래곤 키메라가 다 잡혔군요! 나가봐야겠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렸다면 강제로 마을 주민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

어차피 과거로 날아온 거긴 했지만 오싹한 경험!

“그런데 어차피 한동안 여기서 퀘스트 할 거면, 마을 주민으로 지내도 괜찮지 않나요?”

“안 되죠!!”

“안 돼.”

유지수와 태현은 이다비의 말에 강하게 대답했다.

“앗. 어째서인가요?”

“그냥요.”

“그냥.”

“…….”

둘의 말에 이다비는 할 말을 잃었다.

아니….

그냥이 어디 있어!

-모험가들! 이리로 오게나! 다들 듣게! 여기 이 모험가들이 새로 우리 왕국에 찾아왔다네!

-와아아아아아아! 새 모험가들이 찾아왔어!

-모두들 박수를 쳐주자고!

잘츠를 포함해서 친위대가 태현 일행을 불렀다.

‘앗’할 틈도 없이 마을 사람들 모두가 일행에게 박수를 쳐주기 시작했다.

“…….”

그 반응에 일행은 할 말을 잃었다.

마치 나가기도 전에 문 막고 가입 축하한다고 박수를 치는 다단계 회사 같은 느낌!

-안 그래도 요즘 점점 더 많은 적들이 왕국을 위협하고 있어서 걱정이 많았는데, 이렇게 든든한 모험가들이 나타나다니 왕국의 기쁨이군!

-폐하께서 그만큼 뛰어나신 덕분입니다!

-하하하! 사람 참! 하하하!

황당하긴 했지만 태현은 슬슬 냉정을 되찾았다.

‘뭐… 지금 상황이 엄청나게 나쁜 상황이 아니긴 하지.’

오히려 무난하게 좋은 상황이었다.

잘츠를 돕고 왕국을 더 낫게 만드는 게 일단 목표였으니, 잘츠에게 인정 받고 왕국 사람들에게 인정 받는 지금이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

그냥 묘하게 기분이 나쁜 게 문제였지!

“되게 기분 나쁜데 저만 그런 거 아니죠?”

“응. 나도 기분 나쁘니까 걱정 마라.”

-내 오랜 친우여. 저번에 투기장에서 봤을 때도 알았지만, 자네는 아주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었지.

잘츠 왕은 태현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태현은 본능적으로 아니라고 시치미를 떼려다가 멈칫했다.

‘어차피 왕국 강화는 해야 했지?’

원래라면 귀찮은 일 피하려면 ‘저 기계공학 모르는데요?’라고 해야 했지만 지금은 반대 상황.

“내가 아주 전문가지.”

-역시! 그럴 줄 알았네! 자. 자네한테 전권을 맡길 테니 이 마을을 아주 멋지게 꾸며주게나!

[마을의 임시 영주가 되었습니다!]

[모든 권한을…]

[……]

[……]

“…내가 할 말은 아니긴 한데 처음 본 사람한테 이렇게 멋대로 중요한 권한을 줘도 되나?”

-그럼!

“원래 영주가 있을 텐데 물어봐야 하지 않나?”

태현의 말에 잘츠는 뒤에 있던 NPC를 향해 외쳤다.

-이봐. 내 친우한테 맡겨도 되겠지? 응? 맡겨도 되겠지??

-예… 예! 물론입니다! 영, 영광이지요!

“…….”

아무리 봐도 상대의 표정이 흐릿했기에 태현은 속으로 생각했다.

‘왜 뒤진 건지 살짝 짐작이 가는 거 같기도 한데….’

저렇게 살면 없던 원수들도 생기지 않을까?

* * *

[오랜 전쟁으로 인해 주변이 황폐하게 변했습니다. 마을에 식량이 부족합니다!]

[오염된 땅에서 계속해서 몬스터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마을의 방어력이 낮습니다.]

[……]

[……]

고대 제국이 멸망하고 여러 나라들이 쪼개지는 혼란기는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원래 푸른 하늘은 붉은색으로 타오르고 있고, 울창하게 번성하던 녹색 숲은 부서지고 박살이 나서 몬스터들의 소굴로 변한 상황.

그런 와중이니 잘츠가 세운 왕국도 그리 풍족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태현은 별로 절망하지 않았다.

…이런 경험이 많아도 너무 많았던 것이다.

“골짜기와 별 차이도 없군.”

“차라리 골짜기가 더 힘들었죠.”

“…….”

유지수는 두 사람을 매우 안쓰럽게 쳐다보았다.

얼마나 개고생을 했으면 이 꼴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먼저 나온단 말인가.

“지수야. 할 말이라도 있니?”

유지수가 안쓰럽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자 그걸 눈치챈 태현이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두 분이 바로 작업 들어가는 게 아주 멋지다고 생각했죠!”

“그래?”

“그 정도는 아닌데….”

태현과 이다비는 코밑을 훔치며 쑥스러워했다.

우리가 그렇게 잘했나?

“일단 식량부터 만들자고.”

“땅 개간하시게요?”

“응? 아니. 드래곤 키메라 해체해서 식재료로 만들 건데.”

“좋은 생각이시네요.”

두 전문가의 대화는 너무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서, 유지수는 순간 그냥 넘어갈 뻔했다.

“잠, 잠깐. 그래도 돼요?”

“뭐가?”

“드래곤 키메라 해체해서 쓰는 거….”

“아아. 오해하지 마.”

태현은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드래곤 키메라만 쓰는 게 아니라 주변에 있는 다른 것들도 식재료로 쓸 거니까.”

“그런 뜻 아니거든요!?”

참던 유지수가 결국 폭발했다.

“아까 보니까 온갖 독에 이상한 기술 다 쓰는데 먹을 수 있는 거냐고 묻는 거였어요!”

유지수의 말에 둘은 별로 놀라지도 않고 대답했다.

“그런 소리였어? 당연히 먹을 수 있지.”

“처리 잘 하면 먹을 수 있어요.”

“…….”

유지수는 상식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가 이상한 건가!?

‘그, 그런가? 원래 저게 정상인 건가…?’

보통 사냥꾼으로 플레이하면 먹을 수 있는 몬스터와 먹을 수 없는 몬스터부터 가리게 됐다.

-저건 가죽을 벗기고 해체를 하십시오. 먹을 수 있는 몬스터입니다. 음. 저건 못 먹는 몬스터군요. 그냥 버리자구요.

-아까운데 챙길 수는 없나요?

-먹었다가는 큰일 납니다. 중독부터 시작해서….

딱히 사냥꾼만 그러는 게 아니라 일반적인 플레이어들도 다 그러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척척척-

태현은 솜씨 좋게 드래곤 키메라를 도축해 나갔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요리 스킬 최고급까지 찍은 실력은 어디 사라지질 않는 것이다.

[<아키서스의 권능 요리>를 사용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아키서스의 힘으로 요리합니다!]

[<사악한 아키서스의 독> 스킬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식재료가 이미 독성이 한계치까지 차 있습니다.]

‘…….’

이미 충분히 독성 넘치는 재료라서 독을 추가로 넣을 수 없다는 메시지 창에, 태현은 살짝 멈칫했다.

‘뭐 내가 먹을 거 아니니까.’

태현은 넓적하게 자른 고깃덩이들을 양념에 재우듯 손으로 주물렀다.

차이점이 있다면 양념이 아니라 태현의 신성력으로 물들인다는 점이었다.

그러자 독기를 풀풀 풍기던 고깃덩이들이 권능의 힘으로 그 모습을 변해가기 시작했다.

[<아키서스의 권능 요리>로 <잘 염장된 청어 요리>가 완성됩니다!]

“…????”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유지수는 깜짝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방금 고깃덩이가 생선으로 변하지 않았나?!

“이다비. 캔 좀 줄래?”

“여기요.”

[밀봉했습니다. <잘 염장된 청어 통조림>이 완성되었습니다!]

[<아키서스의 권능 요리>로…]

[……]

[……]

분명 오염된 기운을 지독할 정도로 뿌리고 있던 드래곤 키메라들의 시체들이 빠르게 사라지고, 그게 전부 먹을 수 있는 멀쩡한 식품들로 변하는 모습.

‘이게… 이게 기적…?’

유지수는 순간 그런 생각을 했다.

교단의 힘이 이런 건가?!

“앗. 좀 부족하군.”

“제가 잡아오죠.”

유지수가 일어섰다. 태현은 괜찮다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

“여기 돌멩이 있으니까 그거 쓰면 돼.”

“아, 아니 그건 진짜…?!”

유지수가 말리기도 전에 돌멩이들이 태현의 손에 들어갔다.

그리고 따끈따끈한 감자로 변했다.

“!??!?”

“자. 빨리 끝내자고.”

척척척-

태현은 남은 양을 빠르게 해치웠다.

[마을의 식량 창고를 가득 채웠습니다!]

[더 이상 빠를 수 없을 정도로 신속하게 채웠습니다! 추가 경험치를…]

[……]

태현은 유지수의 표정이 매우 복잡미묘한 걸 보고 살짝 걱정이 됐다.

“이다비. 지수가 왜 저러지? 사냥 못 해서 지루한 건가?”

“그럴 수 있지 않을까요? 빨리 싸울 수 있는 퀘스트를 준비해야….”

“아니거든요?!”

유지수는 어이가 없어서 외쳤다.

예전에는 태현이 좀 비상식적이고 이다비는 상식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 생각이 바뀌었다.

둘이 그냥 똑같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