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532화 (1,531/1,826)

§ 나는 될놈이다 1532화

태현은 귀를 의심했다.

‘…드래곤??’

마을에 야수 몬스터들이 들어왔다.

그럴 수 있었다. 종종 에랑스 왕국에서도 있는 일이었으니까.

마을에 와이번 같은 대형 괴수 몬스터들이 나타났다?

그것도 그럴 수 있었다. 치안 좋은 왕국에서는 보기 힘든 일이었지만 잘츠 왕국에서는 종종 와이번이 나타나곤 했다.

근데….

마을에 드래곤이 나타나는 건 좀 심하지 않나?

“고대 제국이 멸망할 때에는 이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던 걸까요?”

“지금 그런 거 생각하실 때가 아니거든요! 피해야죠!”

유지수는 기가 막히다는 듯이 외치며 이다비의 손을 잡아끌었다.

잘츠 왕국에서 느릿느릿한 플레이어는 살아남지 못했다.

광장에서 당근 감자 팔 때도 귀를 쫑긋 세우고 오감을 갈고닦아야 무슨 상황에라도 대비할 수 있었다.

“유지수. 이다비를 부탁할게! 안전한 곳으로 들어가 있어!”

“걱정 마세요!”

태현은 유지수에게 외쳤다. 회피력에 추가 목숨 권능까지 갖고 있는 태현은 드래곤과 대면해도 몇 번은 버틸 수 있었다.

그에 비해 이다비나 유지수나 둘 다 HP가 높지 않은 유리몸 원거리 딜러.

재수 없으면 드래곤의 선제공격 몇 번에 그대로 로그아웃당할 수 있었다.

‘고대 제국이 망해도 그렇지 드래곤은 좀 심하지 않나…?’

[드래곤 키메라를 발견합니다!]

[드래곤의 피를 이어 받은 이 키메라는, 수많은 키메라들 중에서도 가장 흉악한 키메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놈의 발톱과 브레스를 주의하십시오!]

다행히 진짜 드래곤은 아니었다.

드래곤처럼 생기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가짜!

-저런 흉악한 놈이 존재하다니…!

-주인님. 저것들을 당장 죽음으로 돌려보내야 합니다!

보기 드물게 두 드래곤들이 감정을 터뜨렸다.

용용이와 흑흑이 모두 분노한 눈으로 드래곤 키메라를 노려보고 있었다.

자부심 높고 오만한 드래곤들이 보기에, 저 드래곤의 피를 이용해 만든 괴물들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가짜들!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태현은 살짝 뜨끔했다.

누가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이야 아이디어 좋네 악마는 못 섞나?’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긴 처치는 해야겠지.’

딱 봐도 드래곤 키메라들은 눈깔이 뒤집혀져 있었다.

고대 제국 출신인지, 굶주린 혼돈한테 오염되었는지, 아니면 그냥 잘츠 왕국이 싫어서인지는 몰라도 매우 적대적인 상태.

죽기 싫으면 먼저 쳐야 했다.

“가자!”

-역시 주인님이십니다. 주인님도 저 사악한 키메라를 용서할 수 없으셨군요!

“뭐 그렇다고 치자고.”

태현은 대충 대답하고 검을 뽑아 들었다. 용용이도 화가 났는지 빠르게 날아오르며 위협하는 소리를 냈다.

-감히 신성한 드래곤의 피로 이런 짓을 저지르다니!

‘따지고 보면 용아병이랑 비슷한 것 같은데.’

태현은 속으로 생각했다.

용의 뼈나 발톱을 사용해서 소환하는 전사들.

보통 스켈레톤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어마어마한 강함을 자랑하는 소환수들이었다.

그렇게 따지면 드래곤 키메라도 비슷한 것 같은데….

[드래곤 키메라가 브레스를 사용합니다!]

쿠오오오!

귀를 찢는 굉음과 함께 굵은 얼음 기둥이 하늘을 꿰뚫으며 날아들었다.

용용이와 흑흑이는 성난 소리를 내며 회피 기동을 펼쳤다.

-브레스는 저렇게 쓰는 게 아니다. 내가 뭔가 보여주겠다!

“…용용아. 너 소환되자마자 브레스 세게 썼다가 레벨 다 소모해서 내내 고생한 거 알지?”

-…살살 쏘겠다.

용용이는 분노를 억누르고 살살 브레스를 준비했다.

나가더라도 레벨이 감소하지 않을 정도로만!

꽈르릉!

천둥 소리와 함께 번개 줄기가 그대로 쏘아져 나가 드래곤 키메라 하나를 강타했다.

퍽!

드래곤 키메라는 제대로 타격을 받았는지 비틀거리며 추락하기 시작했다.

“흑흑이. 끝내라!”

-알겠습니다!

블랙 드래곤이 허공을 유연하게 휘저으며 달려들었다.

흑흑이는 몸집을 거대하게 부풀리며 발톱을 내세우고 휘둘렀다.

콰직!

감전된 드래곤 키메라가 강하게 저항하지 못하는 틈을 타 흑흑이는 공격을 퍼부었다.

드래곤하면 마법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원래 드래곤은 육체적 능력도 극한에 도달한 종족.

흑흑이 정도 되면 육탄전도 충분히 펼칠 수 있었다.

-크하하! 이 가짜 놈! 죽어라! 죽어! 어디서!

‘…너무 품위가 없지 않나?’

멀리서 보고 있던 태현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물론 흑흑이한테 공격하라고 시키긴 했지만 왜 이렇게 악당 같이 때리냐?

드래곤 키메라들도 그렇게 생각한 모양이었다. 브레스를 갈긴 용용이가 아닌, 붙어서 발톱을 휘두르는 흑흑이를 노려보았다.

끼에에에엑!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와 함께 드래곤 키메라들이 사방에서 흑흑이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이 제법 빠르고 기민해서 흑흑이는 당황했다.

-잠, 잠깐. 정정당당하게 1:1로….

“그 말이 퍽이나 통하겠다!”

태현은 말과 함께 용용이 위에서 날아올랐다. 여러 적들을 상대해야 하는 만큼 시선을 분산시켜야 했다.

쾅!

폭발과 함께 태현의 몸이 도약했다. <폭발 도약> 스킬로 거리를 좁히고 있었던 것이다.

드래곤 키메라들에게도 폭발을 일으키며 도약하는 인간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던 것 같았다. 키메라들은 질색하는 소리를 내며 날개를 펄럭거렸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아키서스의 첫 번째 일격!

태현의 손끝에서 연속 공격이 펼쳐졌다. 강력한 기운을 흩뿌리며 작렬하는 검격이 정확하게 드래곤 키메라의 날개를 공략했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지속적인 데미지로 인해 드래곤 키메라가 날개를 사용하지 못합니다!]

보통 드래곤이었다면 감히 자기 몸 위에 올라탄 인간에게 따끔한 대가를 치르게 했을 것이다.

등 위에 있는 인간을 직접 손으로 치우진 못해도 드래곤에게는 마법이 있었으니까.

게다가 마법을 쓰지 않더라도 드래곤의 비늘은 그 자체로 단단한 갑옷과 같아서 쉽게 공격이 통하지 않았다.

그러나 드래곤 키메라들은 그렇게 마법에 능하지도 않았고, 비늘도 약한 부분들이 많았다.

이미 한 번 드래곤을 잡아본 적 있는 태현에게 드래곤 키메라는 할 만한 상대였다.

키에에에에에!

“!”

태현은 드래곤 키메라들의 움직임이 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드래곤보다는 약했지만 이 키메라들에게는 드래곤에게 없는 장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집단행동이었다.

사자를 사냥하는 하이에나들처럼 집요하게 덤벼드는 키메라들!

그리고 키메라들이 노리는 건 흑흑이였다.

-왜?! 어째서!?

흑흑이는 억울하다는 듯이 외치며 날았다.

명령 내린 것도 태현이고 주인도 태현이고 방금 한 놈 추락시킨 것도 태현인데 왜!

하지만 그렇게 영리하지 못한 드래곤 키메라들 입장에서는 등 뒤에 달라붙는 쪼그만 인간보다는 사납게 덤벼드는 블랙 드래곤이 더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일단 위험한 놈부터 조지고 보자!

-주인님! 주인님! 주인님!

“알겠으니까 한 번만 불러라. 누가 보면 네가 키메라인 줄 알겠다.”

태현은 한숨을 쉬며 지원을 위해 달려갔다. 멀리서 날아온 용용이가 태현을 태웠다.

-캬오오!

태현의 어깨 위에 앉아 있던 불불이가 흥분한 소리를 내며 마법을 시전했다.

-사디크의 화염탄!

“!”

거대한 화염탄이 날아가서 작렬하는 모습에 태현은 깜짝 놀랐다.

<아키서스의 성장> 스킬로 인해 불불이가 낮은 확률로 경험한 스킬들을 배울 수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벌써 이렇게 쓸 만하게 사용할 줄이야.

“잘했다. 불불아!”

태현의 말에 불불이는 신이 난 모양이었다. 다시 한번 스킬을 사용했다.

-사디크의 화염탄!

-야! 제대로 쏴라!

흑흑이는 기겁해서 몸을 돌렸다. 한참 드래곤 키메라들과 육탄전을 벌이고 있는데 자기한테 화염탄이 날아온 것이다.

저 새끼 저거 일부러 저런 거 아니야?

-으음. 블랙 드래곤의 마법 방어력을 믿고 광역기를 쓴 것인가?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용용이의 말에 흑흑이는 분노했다.

저거 지가 맞는 거 아니라고 좋게 해석해 주는 거 봐라!

-하지만….

-하지만이고 뭐고 빨리 와서 도우라고!

흑흑이는 드래곤 키메라들을 발톱으로 후려갈기고 꼬리로 날려 버리면서 외쳤다.

하지만 키메라들은 끈질겼다.

마치 시체에 달려드는 파리 떼처럼 계속해서 흑흑이한테 붙으려고 들었다.

몇 마리가 죽든 신경 쓰지 않고 흑흑이를 땅으로 끌어내리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느껴졌다.

-이데르고의 역병 분신!

-야!!!!

이 와중에 불불이가 또 한 번 번거로운 스킬을 사용하자 흑흑이는 고함을 질렀다.

광역 스킬은 아니었지만, 역병 분신은 주변에 지속적으로 역병 데미지를 흩뿌리는 것이다.

이 자식이 진짜…!

-안 되겠다. 흑흑이여. 조금만 참아다오!

-…하지 마라? 하지 마라?? 진짜 하지 마라?!

흑흑이는 불길한 미래를 직감하고 외쳤지만, 용용이는 멈추지 않았다.

-연달아 거듭하는 번개의….

-야!

흑흑이는 마법을 막아내기 위해 방어 태세를 굳혔다.

용용이가 광역기를 써도 버텨낼 수 있도록.

파지지지지직!

허공에서 번개가 연달아 치며 드래곤 키메라들을 후려갈겼다. 한 번 갈기고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연달아 치는 번개에 드래곤 키메라들이 비틀거렸다.

…흑흑이도 맞긴 했지만 흑흑이는 참았다. 확실히 이 개떼처럼 달려드는 키메라 놈들을 쫓아내야 했다.

번개가 멈췄다.

키에에에엑!

비틀거리는 드래곤 키메라들. 번개 때문에 군데군데 타고 너덜너덜해져 있었지만 여전히 버티고 있었다.

-야!!

-아, 아니. 이게 왜 안 죽지?

용용이는 당황했다. 이 정도면 드래곤 키메라들이 추락할 줄 알았는데 꿋꿋이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캬오오.

-아! 그렇구나. 흑흑이 때문에 힘을 조절한 바람에 드래곤 키메라들도 버틸 수 있게…!

-그걸 지금 말이라고 지껄이는 거냐!? 너 드래곤 맞냐!?

두 드래곤의 대화를 듣고 있던 태현은 폭탄을 꺼내 들었다.

아무래도 용용이가 마음이 약해서 강하게 공격하지 못하는 거 같으니, 태현이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불길한 낌새를 느낀 흑흑이가 비명을 질렀다.

-기다리십시오!

“걱정 마라. 흑흑아. 안 죽는다.”

-안 죽는다고 다 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주인님!

“날 믿지?”

-안 믿습니다!

어지간하면 믿겠다고 할 흑흑이가 저러는 걸 보니 정말 무서운 모양이었다.

그러나 태현은 무시했다.

환자가 무섭다고 한다고 의사가 주사를 놓지 않을 수는 없는 법.

드래곤 키메라들을 떨어뜨려야 한다!

절체절명의 흑흑이를 구한 건 아래에서 나타난 사냥꾼들이었다.

-저 키메라들을 해치워라!

굵은 목소리와 함께, 저 아래에서 날개 달린 말들을 타고 있는 사냥꾼들이 나타났다.

그 사냥꾼들을 이끄는 대장은 실로 위풍당당했다.

가장 크고 아름다운 말을 타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각종 화려한 장비들로 몸을 감싸고 있었다.

부리부리한 눈빛에 거대한 풍채.

손에는 사람 크기만 한 활을 들고 있는 사냥꾼.

끼이이이익-

화살도 그냥 화살이 아닌, 사실상 창에 가까웠다.

시위에 걸린 창이 마력을 받아 찬란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드래곤 키메라들도 뭔가 이상함을 깨달았는지 급히 고개를 돌리려고 했다.

그러나 사냥꾼의 공격이 먼저였다.

쐐애액!

창이 날아들더니 키메라들을 꿰뚫었다. 하나를 꿰뚫어도 창의 기세는 죽지 않았다. 멈추지 않고 계속 날아가는 창이 키메라들을 난타했다.

안 그래도 용용이의 마법과 흑흑이의 공격 때문에 너덜너덜해져 있던 키메라들은 하나둘씩 떨어져나갔다.

그 모습에 사냥꾼들이 이름을 외치며 환호했다.

-잘츠 폐하 만세! 위대한 건국의 왕!

“…?!”

태현은 진심으로 놀랐다.

‘아니. 사람 골격하고 얼굴이 바뀌었는데?’

저 정도면 아예 다른 사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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