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531화 (1,530/1,826)

§ 나는 될놈이다 1531화

정신을 차리고 났을 때, 잔고는 어느새 팍 줄어 있었다.

‘…뭐, 인생의 목표가 돈은 아니니까… 돈은 수단일 뿐이지.’

[카르바노그도 동의합니다.]

길드 동맹처럼 왕국에서 돈을 갈퀴로 긁어내지는 못하더라도, 태현도 이제 어느 정도 기대할 수입이 생겼다.

(쥐꼬리만 한) 세금과 상단 수입, 그리고 고대 제국 유산에서 나오는 보물들.

[그래도 쥐꼬리까지는 아니라고 카르바노그가…]

‘토끼 꼬리 정도는 될 수 있겠지. 그런다고 기분이 나아지지는 않겠지만.’

다른 복잡한 조건 대신 골드만으로 건물을 지을 수 있다는 건 분명 대단한 특혜였지만, 그렇다고 건물이 바로 완성되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는 기다려야 하는 상황.

태현은 다음 퀘스트부터 확인하기로 했다.

‘솔직히, 뭘 시킬지 겁이 나는군.’

이전 퀘스트는 왕국의 등급을 혼자서 올리는 말도 안 되는 퀘스트였다.

다음 퀘스트는 대체 뭐가 나올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설마 제국 영토 다 회복하란 거 나오면….

‘제국이고 뭐고 그냥 무시한 다음 살아야겠군.’

<고대 제국의 후계자-고대 제국 부활 퀘스트>

당신은 당신의 왕국을 가꾸고 번영시키는 것으로 자격을 증명했다. 당신만큼 고대 제국의 부활을 열망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

[?]

그랬나?

태현과 카르바노그는 의아했지만 굳이 뭐라고 하진 않았다. 상대가 좋게 생각해 준다면 거부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그러나 진정한 제국은 왕국 하나만으로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하물며 지금 같은 혼란스러운 시기에는 더더욱 많은 영웅들이 필요할 것이다.

‘NPC 모집 퀘스트인가?’

태현은 그런 거라면 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아키서스 교단이 좀 괴팍한 면이 있긴 했지만 인재들이 없지는 않았으니까.

펠마스, 갈락파드, 에드안 같은 초기 인재들.

그 뒤로 들어온 주교 펠마른(유령이긴 했지만), 탑지기 앙콜라스, 암살자 로샤크 등등.

…그러한 영웅들을 모으기 위해서는 대륙의 군주들에게 협조를 받아야 한다.

대륙의 군주들을 찾아가 당신이 제국 부활의 사명을 받은 후계자임을 설득하라!

그렇게 한다면 당신은 제국 부활에 한 걸음 더 가깝게 다가서게 되리라.

보상: ?, ??

(설득된 대륙의 군주들 0/5)

“…아니.”

태현은 당황했다.

누굴 뭐 어떻게 하라고?

‘설득이 가능한가?’

대륙의 군주들이라고 하면 에랑스 왕국의 왕 같은 사람을 말하는 것 아닌가.

그런 사람들한테 가서 ‘제가 이번에 고대 제국의 부활을 맡게 됐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하면 ‘허허 그런가? 자네가 맡게 됐군! 우리도 물심양면으로 돕겠네!’라고 하진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네가 뭔데?’가 나오겠지!

게다가 고대 제국을 잇는다는 건 실질적으로 지금 대륙에 흩어진 왕국들을 모두 합쳐서 다 지배하겠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었다.

태현이 ‘아닙니다 저는 그냥 순수한 마음으로 남이 시켜서 고대 제국을 부활시키는 거지 딱히 대륙을 전부 지배하려는 음험한 야심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라고 말해봤자….

‘나도 안 믿겠다.’

태현은 한숨을 쉬었다.

어이없는 퀘스트들을 한두 번 깨본 것도 아니고,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절망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어떻게 깨야 하는가?

‘생각을 바꿔보자. NPC가 안 되면 플레이어의 협조를 구해보는 거다.’

지금 대륙의 군주들은 NPC만 있지 않았다. 당장 태현처럼 플레이어들도 있는 것이다.

‘오스턴 왕국의 군주는 쑤닝….’

[카르바노그가 뒤지면 뒤졌지 절대 협조는 안 해줄 것 같다고 말합니다.]

‘하긴 그건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태현도 양심이 있지 쑤닝한테 가서 협조 좀 해달라고 말하기는 미안했다.

아무래도 좀 쑥스러운 만큼 왕국에 몰래 들어가서 필요한 걸 가지고 나오면 몰라도….

[…두 번 쑥스러우면 왕국 망할 거라고 카르바노그가 황당해합니다.]

‘쑤닝 넘어가더라도 아버지나 어르신은 잘 부탁하면 들어줄 거 같기도 해.’

유 회장이야 그렇다 쳐도 김태산도 군주 인정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한 명이 귀한 상황에서는 뭐라도 해봐야 했다.

‘그 다음은 솔직히 모르겠군. 이거 깰 수 있긴 한가?’

* * *

“도와줘서 고마워.”

“맞아요. 고마워요.”

“별거 아니긴 한데… 아니, 별거긴 하죠. 잘츠 왕국이니까.”

유지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태현이나 이다비 같은 사람들은 유지수의 전화번호부에서도 가장 위에 위치한 사람들.

마계로 가자고 해도 같이 가줄 수 있었고 돈 좀 빌려달라고 해도 빌려줄 수 있었다.

근데 잘츠 왕국은 좀….

“잘츠 왕국 전문가가 너밖에 없었어.”

“와. 진짜 듣기 싫은 칭호네요….”

유지수는 몸서리치며 질색을 했다.

어디 가서 ‘와! 잘츠 왕국 전문가!’ 같은 소리 들으면 활을 꺼내서 쏴버릴지도 몰랐다.

“저 어디 가서 물어보면 잘츠 왕국 출신인 것도 안 밝히거든요?”

“그럴 거까지야 있나?”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자꾸 잘츠 왕국 출신이라고 하면 ‘대체 왜?’ 하는 눈빛으로 쳐다본다고요.”

유지수는 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잘츠 왕국에서 시작한 사람들은 나쁘지 않았다.

그저 좀 잘못된 선택을 했을 뿐이지!

태현은 괜히 미안해졌다.

“내가 미안하다.”

“아니, 그 정도까진 아니거든요. 필요하면 마계도 가는데 잘츠 왕국 정도는 갈 수 있죠. 무슨 퀘스트하러 가는데요?”

유지수는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태현과 이다비가 따로 왕국을 돌면서 퀘스트를 진행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확히 무슨 퀘스트인지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원래 직업 퀘스트 같은 건 부모님한테도 알려주지 않는 것이다.

“잘츠 왕국의 첫 번째 왕 알지? 건국왕 잘츠.”

“아. 그 만악의 근원이요.”

“…그, 그래.”

“혹시 그 왕이 타락해서 돌아오는 바람에 레이드하러 가는 거?”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예전 게임들 보면 자주 그랬던 거 같은데.”

“당연히 그런 게 아니지.”

태현의 말에 유지수는 살짝 아쉬웠지만 조금 안도했다.

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 의외로 정상적인 퀘스트인가 보다!

“우린 잘츠 건국왕한테 허락을 받고 왕의 무덤을 도굴하러 갈 거야.”

“…….”

유지수는 황당하다는 듯이 이다비를 쳐다보았다. 이다비는 슬쩍 시선을 피했다.

‘이 두 인간들이 진짜….’

* * *

대괴수 오르기돈.

건국왕 잘츠는 이 괴수를 잡기 위해 탑으로 모험가들을 불러오고 왕관에 숨겨진 비밀들을 가르쳐주었다.

비록 육신은 잃어버리고 유령이 되어버렸지만 대륙의 정의를 위해서 행동을 멈추지 않은 것이다.

오르기돈이 쓰러지고 수많은 왕국 사람들이 환호하고 기뻐했지만, 그들 중 누구도 건국왕의 헌신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그게 영웅이니까!

[많이 흐릿해진 목소리가 모험가들의 도착을 기뻐합니다!]

그런 와중에 태현 일행이 도착하자, 잘츠는 기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본인의 헌신을 잊지 않은 모험가들이 있었구나!

-다들… 기특하다. 내 헌신을 잊지 않다니….

“폐하께서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입니다.”

태현은 저번과 달리 매우 공손하고 친절한 태도로 말했다.

원래 아쉬운 게 많을 때는 사람이 좀 친절해지기 마련.

태현이 과거에 잘츠와 함께 투기장에서 힘을 합치고 싸우나도 같이 갔다지만 지금은 공손해져야 할 때였다.

-하하… 그래… 다 내 덕분….

“?”

태현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카르바노그도 그랬다.

[목소리가 좀 많이 약해지고 희미해진 것 같다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그렇지?’

원래는 좀 더 선명하고 뚜렷한 목소리였는데 지금은 무슨 바람 앞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꺼져가는 목소리.

태현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목소리가 좋지 않은데?”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다 했으니 이제… 사라질….

“…!”

태현은 기겁했다.

한을 푼 유령들이 성불한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지금은 안 됐다.

“폐하께서 가시면 왕국은 누가 지키란 말입니까!”

-왕국은… 내 후손들이 알아서 잘….

“지금 왕국은 개판입니다! 귀족들은 서로 왕이 되겠다고 싸우고, 그 아래 사람들은 다툼에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

옆에서 듣고 있던 이다비가 의아해했다.

그랬나요?

유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괴로워하고 있는 건 사실이죠.”

“아니… 그건 그냥 잘츠 왕국이라서 그런…?”

태현의 뜨거운 목소리가 상대에게 와닿았는지, 비실거리던 목소리가 좀 뚜렷해졌다.

-그건… 좀 당황스럽긴 한데… 알아서 잘….

“가지 마십시오!”

[최고급 화술 스킬을…]

[고대 제국의 후계자 퀘스트를 진행 중…]

[……]

[잘츠 건국왕과 과거에 만난 적이 있습니다.]

[설득에 성공합니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위대한 유산-잘츠 왕국 퀘스트>

잘츠 왕국의 모든 사람들은 왕국을 세운 건국왕 잘츠를 그리워하고 있다.

후손들이 아무리 왕국을 잘 다스린다 하더라도 건국왕을 넘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

태현은 퀘스트창을 보고 눈을 깜박였다.

잘츠가 그 정도로 대단한 왕이었나?

‘솔직히 왕국 만들고 별로 한 일 없어 보였는데.’

잘츠가 왕국을 만들고 잘 다스렸다면 지금 왕국이 이 꼴은 아닐 것 아닌가.

지금 잘츠 왕국은 다른 왕국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열악한 시설에 부족한 것들만 많아서 오죽하면 플레이어들이 ‘쟤 잘츠 왕국 출신이래!’ 하고 놀리고 ‘야, 결투에서 진 놈은 잘츠 왕국으로 가는 거다’ 같은 벌칙으로 쓰고 있었다.

그런 태현의 속마음을 읽었는지 퀘스트창은 이어서 설명을 계속했다.

…만약 건국왕이 더 오래 살아 있었다면 왕국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 것이다.

잘츠 건국왕은 죽음을 거부하기 위해 비열하게 언데드가 되지 않았고, 키메라가 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는 후손들을 위해 영혼을 소모해 목소리를 탑 곳곳에 남겨놓았다.

건국왕은 이 목소리들을 사용해 당신을 과거로 보내려고 한다.

과거로 돌아가 건국왕의 죽음을 바꾸고 왕국을 바꿔라!

보상: ?, ???

“어… 그냥 무덤 위치 알려주시면 제가 알아서 잘 해보겠습니다.”

태현은 그렇게 말했지만 건국왕은 듣지 않았다.

애초에 무덤 위치를 기억할 정도의 능력도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과거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일념뿐.

[카르바노그가 과거로 돌아가면 무덤 위치도 쉽게 알아낼 수 있지 않겠냐고 묻습니다.]

‘하긴. 그것도 맞는 말이군.’

꼭 이 퀘스트를 해내야겠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서 무덤 위치만 알아내고 돌아오는 방법도 있었다.

솔직히 건국왕의 죽음을 막거나 왕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건 보통 노력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그보다는 그냥 건국왕 죽는 거 본 다음 무덤 위치 잘 기억하고 돌아오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과거로 이동합니다!]

* * *

“와아아….”

태현은 몇 번 경험해 봤지만, 과거로 돌아가는 퀘스트는 온갖 퀘스트가 있는 판온에서도 흔한 퀘스트가 아니었다.

가장 독특하고 복잡한 퀘스트!

“다들 조심하자고. 과거로 돌아왔다고 하더라도 여기는 잘츠 왕국이니까.”

태현의 말에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츠 왕국에서 방심하면 안 된다는 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몬스터다! 몬스터가 나타났다!

“역시 잘츠 왕국이군.”

“몬스터들이 심심하면 마을까지 들어오는 게 잘츠 왕국이죠,”

두 잘츠 왕국 전문가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몬스터 좀 마을에 나타난다고 놀라면 잘츠 왕국 플레이어의 자격이 없었다.

-드래곤이다! 드래곤이 나타났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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