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528화
“하긴 폭발 좀 해도 갑옷 단단하게 갖춰 입고 포션 먹고 주문서 바르면서 버티면 충분히 쓸 수 있겠습니다. 그런 각오를 한다면 충분히 써먹을 수 있겠군요.”
“어…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
태현은 나디르의 말에 좀 당황했다.
너무 긍정적인 것 아닌가?
제작 때야 좀 실패 터져도 괜찮다지만 싸울 때 이러는 건 좀….
“아닙니다. 그 정도는 해야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그렇군. 뭐 존중하지.”
태현은 상대의 뜻을 존중했다.
뭐든 간에 자신의 길을 꿋꿋하게 가겠다면 태현은 말릴 생각이 없었다.
그저 응원할 뿐!
[제작을 시작합니다!]
[……]
[<기계공학 장비 제작> 스킬이 실패합니다!]
[폭발합니다!]
[제작을 시작합니다!]
[……]
[……]
쾅! 쾅! 쾅! 쾅!
뒤에 줄 서고 있던 플레이어들은 질색한 표정을 지었다.
저게 대체 뭐하는 짓이야?
“뭔진 몰라도 저건 절대 만들어달라고 하면 안 되겠다.”
“역시 ‘기계공학’ 들어간 아이템은 다 무서운 거 아니야? 그냥 나도 평범한 대장장이 기술 아이템 만들어 달라고 할까?”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 퍼지는 공포.
그만큼 태현과 나디르의 제작 과정은 격렬했다.
주변 바닥이 부서지고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를 정도의 격전.
처음에는 구경하러 온 사람들도 슬슬 미친놈 보듯이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제작을 시작합니다!]
[소형 폭탄을 총알로 사용합니다! 위험한 시도에 페널티가 크게 붙습니다!]
[재장전 속도가 느려집니다!]
[폭발 확률이 올라갑니다!]
[……]
[제작에 성공합니다!]
[<투박한 유탄 머스킷>이 완성됩니다!]
[<기계공학 장비 제작> 스킬에 새로운 제작법을 추가합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기계공학 스킬이 오릅니다!]
[어마어마한 업적으로 인해 <고대 제국 장난감 비전>의 제작법이 해금됩니다!]
‘…아니. 그 정도 업적이라고??’
태현은 황당해했다.
그냥 무기 아닌가?
물론 만들기 쉬운 무기는 아니었다.
<드워프 대장간>과 영지의 각종 버프를 받고, 드워프 NPC들과 랭커 나디르의 도움까지 받으면서 몇 십번이고 실패했으니까.
<전설을 향하여-기계공학 스킬 퀘스트>
전설의 경지에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 당신.
당신은 고대 제국 시절 실전된 무기 중 하나인 <투박한 유탄 머스킷>을 발굴해냈다.
전설의 경지를 향하는 기술자라면 당연히 해내야 하는 업적이지만….
“?”
[?]
태현과 카르바노그는 당황했다.
뭐가 뭐라고?
‘이게… 고대 제국 시절 무기였나?’
좀 황당하긴 했다.
고대 제국 시절 사람들은 이런 무식한 무기를 썼단 말인가?
장전도 오래 걸리고 실수로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폭발하고 잘 장전하고 방아쇠 당겨도 가끔은 폭발하는 이 불완전한 무기를?
‘컨셉에 잡아먹힌 사람이 아니면 안 쓸 줄 알았는데.’
[카르바노그가 고대 제국 시절 무기들이 좀 무시무시하긴 했다고 말합니다.]
카르바노그도 전부 다 본 건 아니었지만, 알음알음 전해들은 게 있긴 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거대한 비행도시.
비행선 위에서 낙하하는 최첨단 중무장 마법골렘.
평소에는 도시 지하에 잠들어 있다가 위기가 닥치면 지하에서 일어나서 나오는 거대한 토끼 동상.
제국 곳곳을 누빌 수 있는 마법기차 등등.
지금 기술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최첨단의 시대였던 것이다.
‘…잠깐만. 토끼 동상?’
태현은 듣다가 멈칫했다.
카르바노그는 신이긴 했지만, 그렇게 강한 신이 아니었다.
애초에 다른 신들이 다 대륙을 떠났는데도 카르바노그가 여기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존재감이 희박한, 약한 신이기 때문인 것이다.
다른 신들은 악마 공작과 치열하게 싸우고 대륙을 떠났지만 카르바노그는 숨어 있었던 만큼, 카르바노그의 지식은 조금 불완전한 부분이 있었다.
…어떨 때는 좀 많이 불완전했고.
‘토끼 동상이 들어가니까 좀 많이 수상해지는데….’
[카르바노그가 진짜라고 억울해합니다!]
‘아니. 믿어. 못 믿는 건 아니고.’
그러나 태현의 목소리에는 불신감이 가득했다.
저 무기들이 전부 사실은 아닐 수도 있겠구나!
[카르바노그가 방방 뛰며 화를 냅니다!]
그러는 사이에도 퀘스트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투박한 유탄 머스킷>을 보강하고 사라진 제작법들을 찾아내고 복원하라!
그리 한다면 당신의 기술은 한 단계 더 높아질 것이다.
보상: ?, ???
<투박한 유탄 머스킷-기계공학 스킬 퀘스트>
잘츠 왕국의 시조이자 건국왕, 잘츠의 무덤에는 온갖 다양한 무기들이 잠들어 있다.
그 무기 중 하나에는 고대 제국에서 사용하던 유탄 머스킷도 있다.
무덤으로 들어가 유탄 머스킷을 확인한 다음 장비를 보강하라!
보상: ?, ???
“!”
<투박한 유탄 머스킷>을 어떻게 보강하면 되는지 알려주는 퀘스트.
반가운 퀘스트였고, 좋은 퀘스트였다.
문제는….
‘어. 잘츠 그놈 무덤도 있었나?’
태현은 기억을 되살려보았다.
과거에 같이 골드 드래곤을 쓰러뜨리기 위해 투기장에서 힘을 합치기도 했었고, 저번에 전설 퀘스트 깰 때는 유령의 형태로 도움을 받기도 했었다.
그렇게 보면 막 나쁜 사이는 아니었다.
-이다비. 잘츠 건국왕 무덤이 있었나?
-제가 알기로 공개된 위치는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저번에 유지수가 안내해 준 곳들도 잘츠 왕국의 탑들이었고, 무덤은 따로 없었다.
‘…그러면 찾아야 하잖아?’
실질적으로 이제까지 발견 안 된 왕의 무덤을 찾는 건 매우 힘든 일이었다.
잘츠 왕국에서도 모르는 거 보면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높았고….
그러면 가장 쉬운 방법은?
‘본인한테 직접 묻는 건데.’
[카르바노그가 그게 과연 좋을 방법인가 의문을 갖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네 무덤에서 아이템을 꺼내고 싶은데 네 무덤 위치를 알려주겠니? 같은 질문은 좀 무례한 질문일 수 있었다.
태현은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하나 고민했다.
“태현 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게임 초반부터 꿈꾸던 컨셉질… 아니, 플레이를 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 컨셉질을 할 수 있게 되다니 기쁘군. 컨셉질하다가 이상한 직업으로 강제전직당하지 않게 조심하라고.”
태현은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나디르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설마 그런 일이 있겠습니까?”
“…방심하지는 말고.”
“길드원들한테도 이걸 같이 나눠 줄 생각입니다.”
“…….”
태현은 멈칫했다.
저 느리고 무겁고 실수하면 폭발하는 무기를 길드원들한테도?
“길드원들이… 싫어하지 않을까?”
태현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디르는 괜찮다는 듯이 대답했다.
“하하! 오히려 다들 기대하고 있습니다.”
“정말 기대하고 있는 거 맞나?”
태현은 의심쩍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가끔 길마한테 진실을 말하기 힘들 때가 있는 것이다.
김태산과 길드원들만 해도 그러했다.
김태산이 ‘세발낙지가 대머리가 되면 뭔지 아나? 한발낙지야! 으핫핫핫!’ 같은 개그를 해도 그 밑의 일반 길드원들은 입술을 씹으면서 ‘으… 으흑… 너무… 너무 재밌습니다…’ 하는 것처럼.
나디르의 저런 기행을 과연 길드원들도 좋아할까?
“아닙니다. 저희 길드원들은 애초에 저하고 같은 취미를 갖고 모인 사람들입니다.”
“…뭐? 그런 사람들이 여럿이라고!?”
“방금 그 말은 무슨 뜻이십니까?”
“아, 아니. 그냥 놀라서 한 말이지.”
태현은 슬쩍 말을 돌렸다.
어쨌든 나디르와 길드원들이 취미가 맞는 훈훈한 사이라면 문제될 게 없었다.
대장장이 랭커들이 하라는 망치질은 안 하고 우르르 사격이나 하고 있으면 좀 신기하긴 하겠지만….
* * *
“잠깐 휴식을 취하고 다시 진행하겠습니다!”
“여러분. 잠시 중지하겠습니다. 두 시간 후에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 이곳저곳 뛰면서 공지사항을 전달했다.
태현이 아무리 미친놈처럼 제작을 연속으로 하더라도 조금도 쉬지 않고 계속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드워프 NPC들은 태현처럼 체력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벌써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드워프들이 지쳐서 페널티가…]
“알겠어. 알겠어. 쉬면 되잖아.”
[드워프들의 친밀도가 조금 떨어집니다.]
“…….”
태현은 살짝 반성했다. 드워프 대장장이들의 눈빛에 약간 살기가 섞여 있었던 것이다.
“여기, 마실 거 갖고 왔어요. 작업은 어떠세요?”
“고마워. 작업은… 폭탄창이 이상할 정도로 많고.”
“…….”
“…나도 황당해.”
“그, 그렇군요.”
“그 다음은 탈것이야. 탈것은 원래 인기가 많을 거라고 생각했어. 나도 그게 좋고.”
기계공학이 가장 메이저하게 활약할 수 있는 게 바로 탈것이었다.
오토바이, 로켓, 소형 골렘, 부스터 달린 빗자루, 말에 장착할 기계 날개 등등.
판온 플레이어들은 누구나 탈것을 사랑했고, 자기가 생각한 최강의 탈것을 만들어달라고 찾아왔다.
왕국에 이런 탈것들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기술력도 상승하니 태현도 이득이었다.
“잠깐 캡슐 나가서 좀 쉬고 오실래요?”
“아니. 지금 쌓인 재료로 NPC들 장비 만들 건데?”
“…네?”
이다비는 귀를 의심했다.
이 사람은 ‘휴식 시간’의 뜻을 모르는 건가?
“태현 님. 그건 아닌 거 같은데요. 그냥 좀 쉬세요.”
“하지만 지금 장비 맞춰주는 게 시간 낭비 안 하는….”
“됐고, 쉬세요.”
“하지만….”
“네네. 쉬세요.”
태현은 이상하게 반박할 기회를 놓쳤다. 어, 어, 하는 사이에 망치를 뺏기고 대장간에서 밀려났다.
“알겠어. 케인 데리고 운동이나 갔다올게.”
“그것도 좋죠.”
“아니다. 너희 집 놀러가서 집안일이나 해야겠다.”
“…농담이시죠?? 그리고 저희 집 깨끗해요.”
“아냐. 동생들한테 물어보니까 선반에 먼지 좀 쌓였더라.”
그 말에 이다비의 얼굴이 창피함으로 달아올랐다.
“그걸 대체 왜…!? 어떻게…!? 얘네가 왜…!?”
“동생들한테 화내지 말고…”
“…네. 화 안 내요.”
대신 오늘 저녁은 반찬 몇 개가 사라질 것이다.
이다비는 그렇게 다짐했다.
* * *
-저희는….
“폭탄창을 갖고 싶나?”
-폐하께서 만드신 머스킷을 갖고 싶습니다만.
“…왜????”
<왕국 백인대장> NPC가 하는 말에 태현은 당황했다.
태현이 만들 수 있는 수많은 무기들을 내버려 두고 왜 그딴 무기를?!
-고대 제국 시절부터 내려오는 명예로운 무기라고 들었습니다!
“…아니. 오래된 무기라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니라고. 잘 생각해 봐. 왜 오래된 무기겠나?”
태현은 어떻게든 백인대장 NPC들을 설득하고 싶었다.
왕국 병사들이 창과 칼, 방패 대신 저딴 머스킷 들고 다니는 건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왕국 치안 내려가는 소리가 벌써 들리는 것 같았다.
[백인대장이 실망합니다.]
[백인대장의 사기가 하락합니다.]
-그렇군요… 저한테는 아직 어울리는 무기가 아닌 모양입니다.
“…만들어주면 되잖나.”
-정말이십니까!? 폐하께서는 정말 위대한 영웅이십니다!
“머스킷 만드는 걸로 그딴 소리 하지 마라.”
태현은 한숨을 쉬었다.
하필이면 고대 제국 시절 무기를 복원한 탓에 이 꼴이 날 줄이야.
“저, 태현 님. 저희도 혹시 저 무기를 살 수 있을까요?”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 주저하며 물었다.
지켜보니 의외로 쓸 만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내가 그냥 더 좋은 무기를 만들어주면 안 되나? 검으로 가면 폭탄 빼도 내가 훨씬 더 나은 무기를 만들 수 있는데.”
“하지만 저희는 붙어서 때릴 자신이 없는데요. 그냥 저걸로 한 방 쏘고 도망치던가 하는 게…”
“…마음대로 해라.”
태현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말했다.
이쯤 되면 이건 일종의 유행이었다.
유행은 힘으로 막을 필요 없이 조금만 기다리면 알아서 사그라지기 마련.
‘내가 말해봤자 쓸모없고, 자기가 직접 쓰다 보면 불편해서 안 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