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526화
-하지만 교황 성하. 저놈을 길들일 수만 있다면 좋지 않겠습니까?
“…그 논리대로 따지면 드래곤 레어에 들어가서 알 하나씩 훔쳐 오는 것도 좋겠지. 왜 안 하겠나?”
위험하니까!
하지만 갈락파드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제가 들어가서 놈을 설득해 보겠습니다. 아키서스 님의 위험을 알려준다면 놈도 고분고분한 양이 되어서 나올 것입니다!
“위험이 아니라 위엄이지.”
-위험을 말한 겁니다.
“…….”
아…!
태현은 혀를 차더니 고개를 저었다.
“됐다. 내가 들어갔다 올 테니 가만히 있어라.”
펠마스와 달리 갈락파드는 교단에 많은 도움이 되는 인재였다.
갈락파드가 데리고 있는 마법사들도 상당히 강력한 전투원들이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갈락파드는 상당히 맛이 가 있는 NPC인지라 이대로 내버려 두면 정말로 동굴에 들어가서 불의 마수를 설득하려고 할 수 있었다.
불의 마수가 갈락파드를 죽이기라도 하면 대형참사!
“대신 내가 설득 실패하면 무조건 사냥하는 거다. 알겠지?”
-예. 알겠습니다. 저도 같이….
“아니. 넌 여기 있고.”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너도 여기 있어.”
태현은 돌아서서 앞으로 향했다.
아키서스 교단은 점점 커지고 강해지는데 왠지 모르게 도움 되는 놈 하나 없이 고독해지는 기분이었다.
이게 교황의 고독인가?
[카르바노그가 그냥 쓸 만한 사람들이 주변에 없는 것 같다고…]
* * *
“누가 혼자 들어간다!”
“어떤 새끼가 감히 혼자 들어가!? 이름 알려줘! 게시판에 올리겠다!”
“김태현인데?”
“…미담을 올리겠다는 뜻이었어!”
지켜보고 있던 골짜기 플레이어들은 태현이 혼자 동굴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에 감탄했다.
과연 영주님은 뭔가 달라도 다르구나!
“진짜 배짱 하나는 대단하다니까. 저기 어떻게 혼자 들어가지?”
“어, 방금 ‘저주 받은 골짜기 같으니’라고 하지 않았나?”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네가 잘못 본 거겠지.”
태현은 동굴 안으로 입장했다.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 산맥 동굴>에 입장했습니다.]
[뜨거운 열기가 동굴 안에서 뿜어져 나옵니다.]
[사디크의 권능을 갖고 있습니다. 저항에…]
“불의 마수, 나와라!”
-!
안에서 불꽃이 탁탁 튀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르렁대는 소리가 이어졌다.
-사디크 교단의 후계자가 아니면 오지 마라!
‘저번에 봤을 때와는 좀 다른데.’
예전에 만났을 때 불의 마수는 대화가 거의 통하지 않는 폭력적이고 난폭한 몬스터였다.
그에 비해 지금 불의 마수는 의외로 대화가 가능했다.
태현은 원래 좀 더 공격적인 대응을 예상했던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내가 폭주시켰었나…?’
[…….]
“불의 마수. 몇 번이고 밖에서 말했을 텐데. 사디크 교단은 사라졌고 아키서스 교단과 힘을 합쳤다.”
-거짓말하지 마라!
“왜 거짓말이라는 거냐?”
-그만한 교단이 백 년도 안 되어서 사라졌다는 게 말이 되나!
“…….”
[카르바노그가 논리적이라고 감탄합니다!]
‘아니. 순간 설득될 뻔했네.’
태현은 마음을 추슬렀다.
-나는 사디크와 직접 계약을 맺었다. 사디크 교단의 후계자가 나오기 전에는 나오지 않겠다!
“후계자들이 그러니까 지금….”
태현은 말하려다가 멈칫했다.
사디크 교단 대주교, 사디크 교단 성기사단장 등등 굵직한 네임드 NPC들은 모두 태현의 손에 쓰러진 것이다.
“…좀 사정이 있다.”
-사정은 무슨 사정! 날 속이려고 하지 마라!
화아악!
갑자기 열기가 더욱 강해졌다. 불의 마수가 협박이라도 하려는 듯이 고개를 내민 탓이었다.
‘지금 칠까?’
태현은 고개를 내민 불의 마수를 보고 살짝 고민했다.
지금 치명타 먹인 다음 끌어내서 밖에 있는 플레이어들의 도움을 받으면 때려잡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잠깐만….
“?”
태현은 검에 손을 가져다댔다.
불의 마수가 이상한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뭐지?
-사디크 교단의 후계자가 왔잖나! 왔으면서 왜 시치미를 떼고 그런 건가!
“…???”
태현은 오랜만에 당황했다.
누가 뭐의 후계자?
[카르바노그도 당황합니다.]
‘아니. 내가 사디크 교단 건물들이나 NPC들 데리고 있고, 사디크 교단 권능 스킬들도 갖고 있긴 하지만… 음… 그래. 후계자로 볼 수 있긴 하겠군.’
[불의 마수가 반가워합니다!]
“그, 그래. 반갑다.”
-사디크 교단은 다 어디로 간 거지?
“…….”
태현은 어디서부터 설득해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 * *
“불의 마수가 나왔다!”
“저걸 어떻게 길들인 거지??”
몬스터를 길들이는 테이머 계열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들은 경악했다.
태현 뒤를 온순하게 따라가는 불의 마수는 충격 그 자체였던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것에 주목했다.
“아… 못 잡아??”
“그냥 지금 잡으면 안 되나??”
“김태현한테 쳐맞고 싶냐? 옛날 성질 나오는 걸 보고 싶어서 헛소리를 하네.”
“저게 공적치 포인트가 얼만데!”
“장비도 구입했는데!!”
플레이어들은 통통하게 살이 오른 닭을 보는 눈빛으로 불의 마수를 안타깝게 쳐다보았다.
저놈 저거 잡으면 공적치 포인트하고 보상이 얼만데…!
태현은 그 시선을 무시하고 걸어갔다.
[왕국의 수입이 대폭 증가합니다!]
[왕국의 경제력 등급이 오릅니다!]
[왕국의 경제력이 A등급이 되었습니다.]
경제력: A등급.
-대대적인 공사와 지출, 영지 모험가들에게 베풀어주는 이벤트 때문에 지출이 많습니다.
-왕국의 수입이 많이 적은 편입니다. 세율을 올리는 것도 방법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마어마한 수입으로 인해 왕국 금고에 금화가 가득 찼습니다! 일시적으로 <황금의 열기>가….
[왕국에 <황금의 열기>가 시작됩니다!]
[모든 수입이 증가합니다!]
[모든 몬스터들이…]
“???”
“뭐야?”
불의 마수를 잡지 못해서 아쉬워하던 플레이어들은 깜짝 놀랐다.
이게 대체 무슨 이벤트?
“이거 왕국 금고에 골드 많이 들어가면 생기는 이벤트로 알고 있는데.”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김태현이 그런 골드를 어떻게 구해?”
“퀘스트 깼나?”
“퀘스트로는 절대 불가능할 텐데. 세금 올렸나?”
“세금 올렸으면 게시판에 말 나왔지. 길드 동맹을 턴 게 분명해.”
“…잠깐만….”
그 말에 불안해진 길드 동맹 길드원은 간부한테 연락했다.
-저희 금고 멀쩡하죠?
-멀쩡하다. 왜 묻냐?
-아무것도 아닙니다.
“길드 동맹을 턴 것도 아니라는데?”
“그래? 넌 근데 그걸 어떻게 아냐?”
“…그게 지금 중요한 게 아니잖아. 투자 받은 거 아닌가?”
“김태현 선수가 그럴 성격이 아닐 텐데….”
플레이어들은 궁금하다는 듯이 웅성거렸다.
하지만 그보다는 이 이벤트를 즐기려는 플레이어들이 훨씬 많았다.
“왕국에 이런 날이 언제 오겠냐! 지금 즐겨야 한다!”
“맞아! 솔직히 이런 기회가 더 오지는 않을 거 아니야!”
“아까 샀던 물약 포함해서 두 배로 산 다음 사냥부터 가자!”
“동남쪽에 있는 <작은 무덤의 비밀> 퀘스트 깨실 분 구합니다!”
이런 이벤트가 터지면 플레이어들도 활발해지기 마련.
제작 직업 플레이어들도 신이 나서 아이템을 들고 나왔다.
이 때 플레이어들의 지갑을 탈탈 털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중에서도 랭커들의 경쟁이 특히 치열했다.
“해머맨 저 자식이 또 또 골드로 수작질을?!”
“해머맨, 이 비겁한 놈! 정정당당하게 승부하자니까!!”
골짜기에 있던 다른 대장장이 플레이어들은 해머맨을 보며 분통을 터뜨렸다.
해머맨은 무려 골드를 내가면서까지 좋은 자리를 사고 다른 드워프 NPC들의 힘을 빌렸던 것이다.
골드를 안 내려고 했던 플레이어들이 보기에는 매우 사악하고 더러운 짓!
“아. 시끄러워. 이것들아. 불의 마수 때문에 손해 본 것까지 만들어야 하니까 다들 조용히 해!”
해머맨은 저번처럼 다들 닥치게 만들었다.
여전히 어이가 없는 놈들이었다.
‘이 자식들은 골짜기에서 얼마나 편하게 지내온 거야?’
다른 영지에서 시설 쓰려면 골드는 기본 중의 기본이고, 공적치 포인트나 평판까지 필요할 때가 있었다.
그런 거 없이 그냥 공짜로 썼으면 ‘아 내가 인생을 날로 먹었구나!’ 하고 깨달은 다음 적응을 해야지, 지금 사람들 많아졌는데도 예전처럼 날로 먹으려고 하다니.
아주 괘씸하기 짝이 없는 놈들이었다.
“너희들도 억울하면 이렇게 승부해라! 이것도 실력이라고!”
[광장에서 영주, 김태현이 기계공학 장비 제작을 시작합니다.]
[원하는 아이템이 있는 모험가들은 광장으로 모이십시오.]
“…….”
“…….”
“…….”
자리에 모여 있던 제작 직업 플레이어들은 동시에 굳었다.
아, 아니….
이건 너무… 심하지 않나??
군소기업들을 그냥 짓밟아버리는 대기업의 출현!
“그래도 기계공학 장비니까 플레이어들이 다 떠나진 않겠지.”
“맞아. 흥미로 보는 거지 진짜 장비 필요한 사람들은 여기 있….”
훵-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람들은 광장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심지어 대장장이 랭커 해머맨도 내달리고 있었다.
“야 이 자식아! 넌 자존심도 없냐!?”
* * *
고대 제국의 부활 퀘스트는 시작부터 빡센 조건을 걸었다.
그건 바로 왕국의 등급 세 개를 A급으로 만들라는 조건.
솔직히 이걸 어떻게 하나 싶었지만, 태현은 정말 꾸역꾸역 해냈다.
외교력 A 등급!
경제력 A 등급!
이제 남은 건 하나뿐.
태현이 노리는 건 당연히 기술력 등급이었다.
‘원래 기술력은 B등급이었던 만큼 가장 올리기 쉽지.’
D등급이었던 것도 A등급으로 만들었는데, B등급을 A등급으로 만드는 건 솔직히 만만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태현이 가장 친숙한 분야가 기술력 등급 아닌가!
지금 골짜기에 있는 기술 관련 건물들만 해도 <악마의 대장간>이나 <드워프 대장간>, 하늘성 위에 있는 <정령의 대장간>까지….
하지만 왕국 전체 등급을 올리려면 더 많이 필요했다.
“오랜만에 제작 좀 해야겠군. 문제는 재료인데….”
“파워 워리어 총동원해서 재료 모으긴 하겠지만, 워낙 어마어마하게 들어가서 부족한 재료들도 많을 거예요.”
지금 태현은 기본적으로 아키서스 교단 성기사 NPC들이나 왕국 병사 NPC들한테 장비를 새로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
어마어마한 걸작은 만들지 못하더라도, 기계공학 장비 하나씩 달아주면 조금씩 기술력 등급이 오를 것 아닌가.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막대한 재료가 필요했다. 강철과 화약은 기본이고 각종 소형 부품에 기름, 황동, 구리….
“플레이어들한테도 만들어줘야겠다.”
“플레이어들이요? 나쁘진 않지만 왕국 소속 아닌 사람들도 있어서 효율이 좀 떨어질 텐데요.”
“만들어주는 대신 재료 갖고 오라고 하려고.”
“…!”
이다비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소문이 퍼지면 플레이어들이 알아서 재료를 갖고 오지 않겠는가!
태현은 작업을 준비하며 다시 한번 계획을 점검했다.
‘NPC들 장비 다 바꿔주고, 왕국에 있는 성이나 도시들 성벽 개조하고, 대장간 만들고… 뭘 더 할 수 있지?’
[카르바노그가 폭탄 설치하자고 말합니다.]
‘…왜?’
[그것도 기술에 들어갈 거라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
맞는 말은 맞는 말이었다.
도시 주변에 설치해 놓는 폭탄은 일종의 방어 시설로 취급되었으니까.
당장 골짜기에 있는 동상들 속에 무슨 폭탄들이 숨어 있는지는 기계공학 대장장이들 본인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아니. 그래도 폭탄은 진짜 싫은데. 다른 방법 찾아보고 없으면 선택해야지.’
태현은 시선을 돌렸다.
이벤트를 광고한 덕분에 플레이어들이 광장에 구름처럼 몰려오고 있었다.
태현은 친절하게 말했다.
“뭘 원하지?”
“한 번 터뜨리면 주변에 있는 놈들을 모조리 죽여 버릴 수 있는 폭탄을 만들어주십시오!”
“…아니. 장비라고. 장비.”
태현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기계공학은 폭탄만 있는 게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