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525화
“…!”
스미스는 경악했다.
굶주린 혼돈이라니.
고대 제국의 방패인 줄 알았는데 굶주린 혼돈의 아이템이었단 말인가?
“저는 당신과 손잡을 생각이 없습니다.”
[굶주린 혼돈이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합니다. 계약할 필요도 없다고 말합니다.]
“이 방패는….”
[고대 제국부터 내려온 유서 깊은 방패라고 굶주린 혼돈이 말합니다. 원하지 않으면 써도 된다고 말합니다.]
“…….”
[굶주린 혼돈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그 방패에 어떤 수작도 부리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스미스는 고민했다.
‘이 정도라면 써도 되는 것 아닌가?’
굶주린 혼돈이 계속 옆에서 속삭이는 건 신경이 거슬렸지만….
아무런 상관이 없다면 솔직히 안 쓸 이유가 없었다.
버리기에 저 방패는 정말 사기적인 아이템이었던 것이다.
“…알겠습니다.”
* * *
[이름 없는 환영의 정령이 당신을 배웅합니다.]
“고맙다. …그러고 보니 여기 고대 제국의 방패 있다고 하지 않았나?”
태현은 나가기 전에 다른 보물도 챙기려고 했다.
태현이야 방패를 잘 안 쓴다지만 케인한테 주면 쏠쏠하게 쓰지 않겠는가.
[그런 거 없다고 이름 없는 환영의 정령이 의아해합니다.]
“…??”
태현은 멈칫했다.
그러면 스미스가 말한 건 뭐지?
“방패가 있다고 들었는데?”
[사악한 꿍꿍이를 가진 적들이 많은데, 그 적들이 만든 헛소문에 속은 거 아니냐고 이름 없는 환영의 정령이 말합니다.]
“그래? 그런 거였나?”
하긴 고대 제국 관해서 꼭 모든 사람들이 부활을 원하는 건 아니었다.
당장 고대 제국의 부활을 막으려는 이들도 여럿일 터.
그런 자들이 이런 던전에 몰래 함정을 파놨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고래가 당신들을 토해내기 시작합니다.]
푸우우우우우우-
저 앞에서 거대한 물살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태현은 저항하지 않고 몸을 맡겼다.
파아아앗!
“태현 님!”
“이다비!”
“?”
이다비는 태현의 반응이 평소랑 다르자 좀 당황했다.
왜 저러시지?
“진짜 맞지?”
“저도 가짜가 있나요?”
이다비의 말에 뒤에 있던 미다스 길드원들이 대답했다.
“이다비 선수도 인기 있으니까 사칭이 있을 수 있죠.”
“맞아. 맞아.”
태현은 그들의 말을 무시하고 이다비를 확인하려고 했다.
[카르바노그가 갑자기 연결이 끊겨서 당황했다고 말합니다.]
‘나도 당황했어. 카르바노그.’
태현은 카르바노그에게 있었던 일들을 말해주었다. 카르바노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런 환상들을 만났다니 아주 많이 두려웠을 거라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어… 두렵진 않고 황당했는데.’
[???]
말한 것과 달리 직접 겪어보면 그렇게까지 공포스러운 환상은 아니었다.
좀 많이 황당했을 뿐.
‘그나저나… 확인하려고 했는데 어떻게 확인해야 하지?’
막상 이다비를 잡긴 했는데 환상이 아닌지 어떻게 확인할지 알 방법이 없었다.
[카르바노그가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말합니다.]
‘오오.’
[일단 눈꺼풀을 아래로 당겨보라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이다비. 잠깐만.”
“네? 네??? 네?????”
태현의 손이 평소보다 너무 가깝게 다가오자 이다비는 깜짝 놀랐다.
이다비는 눈을 질끈 감고 가만히 기다렸다. 태현은 눈꺼풀 아래를 조심스럽게 당겼다.
[창백하거나 붉은 기운이 없다면 건강한 거라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카르바노그. 그게 환상 구분하는 방법은 아닌 거 같은데.’
[그거 묻는 거 아니었냐고 카르바노그가 의아해합니다.]
“이다비. 미안.”
태현은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카르바노그 때문에 괜한 헛짓거리를 한 것이다.
“사실 아까 안에서 환상을 만나는 바람에….”
“네? 환상이요?”
“응. 온갖 놈들이 다 나왔지. 너도 나와서 혹시 몰라서 확인해 본 거야.”
“아아….”
이다비는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왜 갑자기 저러나 했는데….
“그럴 때는 일단 공격하고 보세요.”
“응. 덕분에 안 속을 수 있었어.”
둘의 대화에 옆에 있던 미다스 길드원들은 귀를 의심했다.
“???”
이윽고 차례대로 고래의 안에서 플레이어들이 튀어나왔다.
미다스 길드의 다른 랭커인 오한구와 길드원들도 차례로 나타났다.
“못 봤는데 어디서 뭐 하고 있었지?”
“몰라. 마을 들어갔는데 들어오지 말라고 해서 다른 길 찾다가 쫓겨났네.”
오한구는 투덜거렸다.
기껏 따로 떨어진 것도 모자라서, 마을에는 입장을 거부당하고 살점 골렘들만 계속 상대해야 했던 것이다.
이대로 갇혀서 게임 끝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너희들은 어땠냐?”
“우리는 엄청 돌파했지!”
김연지는 자랑하듯이 말했다. 그 말에 오한구는 깜짝 놀랐다.
“정말로? 어디까지 돌파했는데? 마을 안에 들어가면 뭐가 나오는데?”
“우린 창자 마을에서 시작했는데, 거기 들어가면….”
“들어가면?? 희귀 스킬이 있나? 희귀 아이템?”
“어? 응? 그러니까 일단 시험을 통과해야 해.”
“무슨 시험이지? 얼마나 어려운 시험이지?”
“…그런 건 아니구… 그냥 질문 정도인데….”
“???”
김연지는 설명하면 설명할수록 뭔가 좀 민망해졌다.
이게 직접 겪을 때는 정말 신기했는데, 밖에 나와서 말해보니까 이상하게 들렸던 것이다.
-그러니까 고대 제국 악마가 심리 테스트를 했는데 이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니라니까?
“…뭔 개소리야? 약먹었냐? 김태현 선수가 협박이라도 했어?”
“아냐! 김태현 선수가 내 팬이라고 했다고!”
“…….”
오한구는 경멸 섞인 눈빛으로 김연지를 쳐다보았다.
요즘 인기 좀 좋다고 자신감이 넘치더니 아주 맛이 갔구나!
“도우라고 했더니 이상한 소리만 하고 있고….”
“진짜 도왔다니까? 너 나중에 영상 보라고!”
“야. 다음부터는 다른 랭커하고 같이 오자.”
길드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사이 스미스도 마지막으로 친위대들과 함께 나왔다.
누가 봐도 엉망진창인 꼴!
장비는 반쯤 부서져 있고 얼굴에는 피로가 가득해 보였다.
“쟤네도 많이 꼬였나 보군.”
“고소한데?”
미다스 길드원들은 싱글벙글 웃으며 스미스와 친위대를 쳐다보았다.
친위대 랭커들은 피곤해서 화를 낼 기운도 없었다.
“스미스. 안에서 찾으려던 건 찾았나?”
“못 찾았습니다.”
스미스는 최대한 시무룩하고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 모습에서 태현은 위화감을 느꼈다.
‘뭐지?’
저 낯익은 표정.
저건….
케인이 하라는 훈련을 안 하고 변명할 때 짓는 표정과 비슷한 표정이었다.
‘이 자식 뭘 찾았나?’
그러나 이상했다. 유산은 이미 태현이 손에 넣지 않았던가.
그러면 스미스가 넣을 수 있는 게 없을 텐데?
‘게다가 방패는 없다고 했는데… 아니. 잠깐만.’
태현은 정령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사악한 적들이 꿍꿍이를 꾸미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혹시 그런 가짜를 손에 넣고 저러는 것 아닌가?
스미스 성격이라면 뭘 얻었어도 숨길 수 있었다. 태현이라도 그랬을 것이다.
‘내가 뭐라고 할 말은 아니긴 하군.’
“태현 님. 태현 님.”
이다비가 다급히 속삭였다.
“?”
“골짜기에 불의 마수가 나타났대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태현은 믿기 힘들다는 듯이 말했다.
사디크 교단이 망한 지가 언제고, 그나마 남은 잔당들도 사라진 상태인데….
“여기요.”
“…….”
태현은 경악했다.
진짜 불의 마수가 광장에서 날뛰고 있었던 것이다.
* * *
“이 비겁한 놈! 정정당당하게 나와서 싸우자!”
“야. 우리가 숫자가 몇인데 정정당당은 좀….”
-아닙니다! 아키서스의 편은 정의의 편! 숫자가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정의입니다!
“그, 그런가?”
플레이어는 아키서스 사제 NPC의 뜨거운 말에 민망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플레이어들은 골짜기 북쪽 산맥에 숨어 있는 불의 마수를 포위하고 있었다.
호되게 얻어맞은 불의 마수는 산맥으로 올라가 수많은 동굴 안으로 들어가서 숨은 것이다.
플레이어들은 마음 같아서는 바로 들어가서 공격하고 싶었지만, 저런 보스 몬스터 상대로 좁은 곳에서 싸우는 건 위험했다.
“나와라! 나와라!”
“계속 얼음을 쏘고 물을 뿌립시다!”
“여러분! 저희가 여러분들을 위해 물폭탄, 물대포 등등을 만들어오겠습니다!”
“와아아아!!! …잠깐만 저거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이다!”
“으아아악! 꺼져!”
“칫. 눈치 빠른 놈들 같으니.”
포위망을 구성한 플레이어들은 불의 마수가 나오도록 소리를 질러댔다.
개심한 아키서스 교단의 외교관, 펠마스는 상심한 표정으로 외쳤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교단의 선량한 모험가들이 이런 일로 고통받는다니!
“저, 지금 모험가들은 다 즐겁게 사냥하고 있는데….”
-모험가들은 이럴 시간에 기도를 하고 신앙을 바쳐야 하는데!
“…펠마스 님. 그냥 예전으로 돌아오시면 안 됩니까?”
예전 펠마스라면 ‘불의 마수 공격하는 놈 선착순으로 복권 5장 뿌린다!’하며 플레이어들을 재촉했을 것이다.
그러나 새로 바뀐 펠마스는 너무 느끼했다.
입만 열면 신앙, 신앙, 신앙하니까 너무 괴롭다!
-우리의 형제들인 사디크 성기사들과 사제들을 불러오게. 그들이 가면 말을 들어줄지도 모르니.
“아하! 그자들을 시켜서 꼬셔내는 거군요! 꼬셔내기만 하면 바로 잡을 수 있으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가! 오오! 아키서스 님. 이 탐욕스러운 자들을 용서해주십시오!
펠마스는 플레이어들을 호되게 혼냈다.
사디크 성기사들과 사제들은 미끼가 아니었다.
펠마스는 불의 마수를 설득해서 교단에 집어넣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플레이어들 입장에서는 개소리였다.
“아 진짜….”
“뒤통수 한 대 세게 때리면 원래로 돌아오지 않을까??”
잡기도 힘든 놈을 설득한다는 게 말이 될 리가 있나!
사디크 성기사들이나 사제들이 아키서스 교단에서 일하고 있다 하더라도 괴수까지 그러란 법은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짜증이 나도 펠마스는 책임자였다.
펠마스의 명령을 받고 교단에 있던 사디크 성기사와 사제들이 불의 마수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펠마스 그놈은 예전이 나았던 거 같아….
-저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군요! 그렇죠!?
그리고 대화 끝에 돌아왔다.
<외로운 불의 마수-아키서스 교단 퀘스트>
다시 돌아온 불의 마수는 너무나 변해버린 골짜기의 모습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사디크의 신도들이 설득을 했지만 불의 마수는 자신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을지 불안해하고 있다.
불의 마수에게 다가가 용기를 불어넣고 따뜻하게 보듬어라!
그렇게 한다면 불의 마수를 교단으로 끌어들일 수 있으리라.
보상:?, ???
“…….”
“아니. 뭔 미친 퀘스트를 받아왔어?!”
플레이어들은 격분했다.
불의 마수를 어떻게 격려한단 말인가.
저놈이 용기 좀 생기면 골짜기를 다 태워먹을 텐데!
* * *
“그냥 사냥하면 안 되나?”
도착하자마자 상황을 들은 태현은 바로 말했다.
지금 갖고 온 골드로 고대 제국 관련 퀘스트 깨고 영지 업그레이드하려고 했는데 불의 마수가 뒤통수 따갑게 저러고 있으면 많이 귀찮아지는 것이다.
-아이고! 안 됩니다! 교황 성하! 교단의 이름으로 저 짐승을 따뜻하게 품어줘야 합니다!
“…갈락파드 데리고 와라.”
태현은 펠마스를 질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한두 달이면 그냥 원래대로 돌아올 줄 알았는데, 계속 저대로라니.
정말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지만….
원래 펠마스의 모습이 아주 가끔 그리울 때가 조금 있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로군.’
[카르바노그도 동의합니다.]
과거를 바꾸는 게 이렇게 위험한 일이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