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524화
“아니… 어떤 동료인지가 중요하지 않나? 손가락도 깨물면 다 고통이 다를 텐데.”
예를 들어 ‘힘을 위해서라면 케인을 버릴 수 있나?’라고 한다면 그건 OK였다.
케인도 이해해 줄 것이다. 그런 마음 넓음이 케인의 장점이었으니까.
하지만 ‘힘을 위해서 이다비를 버릴 수 있나?’라고 한다면 그건 좀….
[카르바노그가 왜 그러냐고 묻습니다.]
‘미안하잖아.’
[하긴 그렇다고 카르바노그도 동의합니다.]
그건 그래!
-어쨌든 안 돼!
[이름 없는 빛의 정령이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질문이 너무 옛날에 만들어서 그런지 요즘이랑 안 맞는 게 있는 것 같은데….”
-불평 그만해! 내가 만든 거 아니야. 빨리 대답이나 해줘. 대답하고 나면 확인할 거니까.
“이것도 아까처럼 확인을 하나?”
-그래. 그러니 거짓말은 필요 없어.
“거짓말할 생각도 없다. 음… 아니. 버리진 않겠다.”
태현은 이다비를 힐끗 쳐다보고 대답했다.
일단 어느 동료인지 알 수 없었으니, 같이 온 기준으로 생각해야 했다.
만약 케인과 같이 왔다면 버릴 수 있다고 대답했겠지만 이다비와 같이 왔으니 버릴 수 없다가 맞는 것 같았다.
[이름 없는 빛의 정령이 당신의 마음속에서 문장을 읽어냅니다!]
-힘을 위해서 버릴 수 없다니. 대단해!!
“…아니. 잘못 골랐나? 혹시 저기 사람들도 동료로 쳐주나?”
태현은 갑자기 불안해져서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미다스 길드원들도 동료로 취급해 주면 그냥 저놈들 바치고 힘을 얻어도 될 것 같은데….
-아니야. 이미 끝났어.
“쯧.”
-이제 앞으로 가면 돼! 네게 어울리는 길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 마음. 절대 잊지 마!
* * *
“아… 실수한 건가?”
마을을 떠나고 앞으로 걸어가면서, 태현은 고민했다. 이다비가 옆에서 위로했다.
“아직 퀘스트 진행 중인 거 보니까 괜찮을 거예요.”
“어차피 거짓말 못 하는 퀘스트긴 했지만 거짓말이라도 했어야 했나? 화술 스킬 높아서 통했을 수도 있는데. 동료 버리는 게 답이었나? 고대 제국이 그런 걸 원하는 거 같기도 하고….”
고대 제국의 후계자 퀘스트는 보통의 상식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걸, 태현은 톡톡히 느끼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고대 제국의 후계자는… 약간 아키서스식 인재를 원하는 것 같았다.
‘잘 싸우고, 교활하고, 사기 잘 치고, 적 확실하게 짓밟고….’
보통 ‘제국의 후계자가 가져야 할 자격’하면 인자하고, 마음 넓고, 포용력 넓은 그런 이미지가 먼저 떠올랐지만 고대 제국은 정반대였던 것이다.
전투형 인재를 원하는 것!
그런 거라면 동료를 버리는 게 답이었을 수도 있는 것 같은데….
“내 생각에도 동료를 버리는 게 답이었다고 생각하는데.”
김연지도 옆에서 말했다. 그걸 들은 태현은 김연지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이다.”
저걸 바쳤어야 했는데!
“…?”
뭔가 기분이 나빠졌기에 김연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이 불길함은?
“여러분. 이야기하는 것도 좋지만 앞에 좀 신경 써주십시오.”
미다스 길드원들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말했다.
태현이 너무 집중 안 하는 것 같아서 불안했던 것이다.
다른 직업이면 모를까, 대부분이 마법사인 그들은 한 번 앞이 뚫리면 박살 날 가능성이 높았다.
그나마 태현이 막아줘야지….
“아. 신경 쓰고 있다. 걱정 안 해도 돼.”
[<끝의 마을>을 발견했습니다.]
“다행히 바로 마을이 나오잖…?”
그렇게 말하며 태현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
아무리 태현이라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바로 방금까지 같이 있던 일행이 모두 사라져 있다니.
그것도 아무 메시지창 하나 없이!
‘카르바노그?’
카르바노그도 대답이 없었다.
태현은 이게 시험과 관련이 있다고 직감했다.
팟!
[고대 제국 황실의 검술책이 나타납니다!]
“?!”
갑자기 나타나는 뜬금없는 보물에 태현은 당황했다.
그것도 그냥 보물이 아니라 절대 구할 수 없는 보물!
‘저거 가치가 대체 어떻게 되는 거지?’
고대 제국 황실 검술이면 비전 검술 스킬은 물론이고 그냥 기본 스킬들만 해도…!?
그리고 동시에 케인이 나타났다.
몬스터에게 습격당하고 있는 케인!
“으악! 김태현! 구해줘!”
“…너무 성의가 없어서 화가 날 정도인데?”
태현은 어이가 없었다.
아니, 시험을 낼 거면 좀 그럴듯하게 내놓던가 저건 너무 성의가 없지 않은가.
한쪽에는 검술책에 한쪽에는 케인이면….
‘고민이군.’
마음 같아서는 검술책을 손에 넣고 싶었지만, 기껏 잡았는데 가짜면 좀 화가 날 것 같았다.
“야. 케인. 넌 대체 레벨이 몇인데 아직도 저런 몬스터 하나 상대 못 하고 그렇게 두들겨 맞고 있냐?”
고민하던 태현은 문득 생각이 나서 환상을 구박했다.
레벨이 몇인데 아직도 저러고 있어!
[환상을 간파합니다.]
[환상이 사라집니다!]
“…!”
사라지는 환상들.
태현은 순간 아쉬워했다.
‘검술책 잡고 볼 거 그랬나?’
환상 간파하기 전에 얻었으면 뭐라도 좀 나왔을지도…
한 번 사라졌다고 끝이 아니었다. 환상은 계속해서 나타났다.
아키서스 교단의 NPC들이 나타나서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고, 신전이 나타나서 불타기도 했다.
태현은 속지 않고 간파했다.
환상 도중에는 미다스 길드원들도 나타났다.
“구해주십시오! 김태현 선수!”
이건 태현도 좀 헷갈렸다.
케인이야 여기 있을 리가 없었지만 미다스 길드원들은 여기 있었으니까.
태현이 선택한 건 하나였다.
“음. 너희들이 알아서 극복해라.”
만약 진짜 플레이어들이면 살점 골렘 하나 제압 못 하는 게 잘못인 것이다.
알아서 극복해라!
[환상을 간파합니다.]
[환상이 사라집니다!]
‘후. 환상 맞았군.’
펑!
슬슬 환상들이 지겨워질 때쯤, 다시 한번 익숙한 얼굴들이 나타났다.
쑤닝이나 스미스 같은 각종 대형 길드들의 길마들.
태현은 피식 웃었다.
“설마 저딴 걸로….”
…그리고 그 환상들을 뒤에서 나타난 이세연이 전부 다 제압해 버렸다.
“아하하하하하!”
“…이건 정말 참신한데.”
도저히 전개를 예측할 수 없는 환상!
태현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목적의 환상이지?
…그 목적은 바로 나타났다.
“김태현. 무기를 버려!”
나타난 환상 이세연은 놀랍게도 이다비를 인질로 붙잡고 있었다.
태현은 황당해서 할 말을 잃었다.
“아니… 왜 이다비한테 그래?”
“조용히 해! 빨리 무기를 버려!”
“게다가 스미스나 쑤닝이면 모를까 왜 네가….”
태현은 말하다가 멈칫했다.
생각해 보니 결국 자기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일 텐데, 더 말해봤자 허무하기만 한 것이다.
태현은 무기를 붙잡았다.
‘속지 말고 처리하자.’
“김태현. 내가 눈빛만으로도 널 죽일 수 있다는 걸 잊지 마.”
“헛소리하지 마. 너 그런 능력 없잖아.”
“흥. 과연 그럴까?”
이세연은 살짝 턱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브레스를 내뿜었다.
“!?!??!”
태현은 경악했다.
아무리 환상이라지만 이건 너무 개사기 아닌가???
[회피에 성공….]
[회피에 성공….]
[회피에….]
행운의 힘을 믿고 내달려서 간신히 범위에서 벗어났지만 어이가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세연이 브레스를 쓰는 사이 빈틈이 생겼다. 이다비는 입을 열고 외쳤다.
“태현 님! 도와주세요!”
“그래. 걱정하지….”
태현은 멈칫했다.
“…아니. 넌 이다비가 아니군.”
“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 이다비 맞거든요!? 빨리 이 이상한 환상한테서 구해주세요!”
“이다비는 구해달라고 안 할 거야. 그건… 내가 원하는 거지.”
태현은 검을 내리고 말했다.
이다비가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달라고 말해주길 원하는 건 태현 본인의 욕심이었다.
아마 눈앞의 가짜 이다비는 그게 반영된 환상이리라.
진짜 이다비는 그렇지 않았다.
“이다비는 아마 무시하고 같이 공격하라고 했겠지….”
그런 말들이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태현은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게 이다비였으니까.
[환상을 간파합니다.]
[환상이 사라집니다!]
이다비의 환상이 사라졌다. 이세연의 환상만이 남아서 태현을 노려보고 있었다.
“내 지옥의 힘으로 너를 박살 낼….”
“야. 넌 환상인 거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양심 있으면 사라져라.”
[환상을 간파합니다.]
[환상이 사라집니다!]
이세연의 환상도 사라졌다.
태현은 어이가 없었다.
뻔뻔함도 정도가 있지, 자기가 안 들켰다고 생각한 것인가?
[이름 없는 환영의 정령이 나타납니다.]
[이리로 오라고 정중하게 안내합니다.]
“…!”
눈부신 빛.
태현이 길을 따라가자 빛이 쏟아져 내렸다. 너무 많은 황금이 쌓여 있어서 나오는 빛이었다.
“…!”
이게 대체 몇 골드지?
‘백만은 무조건 넘기는 거 같은데….’
[고대 제국의 유산을 발견합니다!]
[이 유산은 고대 제국의 부활을 이용해서만 사용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저주가 걸릴 수 있습니다.]
‘…기준이 뭐지?’
태현은 멈칫했다.
물론 고대 제국의 부활을 위해 쓰려고 했는데 저렇게 경고하니까 괜히 찜찜한 것이다.
‘으음. 뭐 안 쓸 수는 없고 잘 쓰면 되겠지….’
태현의 영지 운영은 거의 본전 위주로 돌아가고 있었다.
세금도 낮고 던전이나 그런 쪽에서 다른 왕국 플레이어들 막는 짓 같은 걸 안 하니 수입이 적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나마 태현이 각종 퀘스트들을 깨고 온갖 NPC들이 추가로 돈을 벌어와서 유지가 되는 거지, 아니었다면 진작 파산이었다.
오죽하면 공사 하나 할 때도 플레이어들한테 부탁해서 같이 진행을 해야 하겠는가.
태현 본인이 골드가 부족한 건 아니었지만, 개인 단위의 골드와 왕국 운영에 필요한 골드 단위는 차원이 달랐다.
[<제국 보물의 항아리>를 발견합니다!]
제국 보물의 항아리:
고대 제국의 무한한 보물들을 하나로 뭉쳐서 만든 무한한 항아리다. 하루에 한 번 안에 든 보물이 나온다.
퉁-
항아리에서 맑은 소리와 함께 금화가 툭 떨어졌다.
그걸 본 태현은 이 수많은 골드들이 어디서 나온 건지 깨달았다.
‘저게 진짜 유산이었구나!’
* * *
“헉, 허억, 허어억, 허으어억.”
“크헉, 헉, 케엑, 헉.”
스미스와 친위대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전원의 장비 내구도가 절반 이하로 내려가고 주요 스킬들 쿨타임이 전부 빠져버릴 정도로 격전!
고래 살점으로 만들어진 몬스터들이 정말 미친 듯이 몰려든 것이다.
처음에는 미다스 길드를 찾아서 조질 생각이었지만 여기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다른 파티들은 전부 전멸한 거 아닙니까?”
“그럴 수도….”
스미스는 진지하게 후퇴를 고민했다.
그냥 포기하고 나가야 하나?
바로 그때, 앞에서 방패가 나타났다.
“?!”
스미스는 깜짝 놀랐다. 아무런 징조도 없이 방패가 나타나다니.
“여러분! 보셨습니까?”
그러나 태현이 겪었던 것처럼 스미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냥 방패만 있을 뿐.
-당신은… 이 방패를 가질 자격이 있습니다…
“어. 누구십니까?”
-그게 뭐가 중요합니까… 방패를 가지십시오…
“…….”
허공에 떠 있는 고대 제국의 방패.
그 명성에 걸맞게 보는 것만으로 홀릴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러나 뭔가 이상했다.
본능적으로 불길한 기운이 풀풀 풍겨나고 있었다.
만약 태현이라면 정말 아쉬웠겠지만 한 걸음 물러섰을 것이다.
아무리 수단 방법 안 가린다지만 정도를 넘으면 오히려 스스로 손해였으니까.
그러나 이런 유혹은 쉽게 떨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스미스는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가서 방패를 붙잡았다.
[굶주린 혼돈이 미소 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