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520화
“제발 한 번만!! 제발 한 번만!!”
뒤에서 웅성거리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외치는 쉬하잉.
그럴 법도 했다.
갖고 있는 전 재산은 물론이고 장비까지 모두 걸었다가 날려 버린 것이다.
초보자라도 눈이 돌아갈 만했는데 심지어 쉬하잉은 랭커였다.
그 충격은 수십 배!
* * *
-후후. 주사위를 굴려라! 오늘 내가 이 카지노 거덜낸다!
-…주사위 운이 좀 안 좋은가? 이상하다? 포션 먹고, 스킬 쓰고, 장비 착용했는데… 다시 굴려봐라! 2배로 간다!
-…잠깐만. 잠깐만. 진짜 이상한데. 뭔가 진짜 이상한데. 이건 아니지. 이건 아니지.
-야. 기다려봐. 주문서 좀 갖고 올 테니까. 길드원 시켜서 주문서….
-…아키서스 교단 가서 축복 받은 아이템 다 갖고 와!!
한 번 지면 질수록 쉬하잉은 점점 더 크게 걸었다.
-…혹시 여기 장비도 받아주나?
그러다가 장비까지.
-안 됩니다! 쉬하잉 님!
-닥쳐! 시끄러! 뭘 안다고! 본전은 되찾아야 해!
-장, 장비까지 잃으시면 진짜 어쩌시려고요!
-잃을 걱정을 왜 해! 그러니까 네가 지는 거야! 딸 생각을 해야지! 에잇, 네놈이 옆에 있어서 졌던 거야! 그것밖에 답이 없어! 밖에 나가 있어라!
말리는 길드원들도 뿌리치고 쉬하잉은 주사위를 굴렸다.
반드시 본전은 되찾고 말겠다는 다짐으로.
물론 그런다고 이길 수 있진 않았다.
* * *
“손님 치워라.”
-예. 손님. 이쪽으로 오시지요.
NPC들은 정중하게 쉬하잉의 팔을 잡고 끌어냈다. 쉬하잉은 엉엉 울면서 외쳤다.
“이건 사기야! 사기라고! 확률 공개해 이 자식들아!”
듣고 있던 플레이어들은 황당하다는 듯이 말했다.
“애초에 서로 누가 더 사기 잘 치나 싸움이잖아…?”
“확률 공개해서 뭐 어쩌라고?”
판온의 도박은 공평한 승부가 아니었다.
누가 더 사기 잘 치나의 승부!
쉬하잉도 그런 식으로 수많은 초보자들의 푼돈을 뺏어온 만큼, 이제 와서 저런다고 들어줄 리가 없었다.
꿀꺽-
로다문다는 자신도 모르게 긴장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까 쉬하잉이 순서를 뺏을 때만 해도 분노했지만, 지금 이렇게 되니 매우 긴장이 됐다.
“로다문다! 로다문다! 로다문다!”
“너밖에 없어! 로다문다! 저 냉혹한 NPC들을 상대로 이겨줘!!”
“로다문다! 내가 널 위해서 먼저 잃었다. 나한테 위로금을 줘야 하지 않겠냐!”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쉬하잉도 끼어서 외쳤다. 그러고는 끌려갔다.
‘끄응….’
로다문다는 정말 하고 싶지 않았다. 느낌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장비부터 시작해서 스킬까지 판온의 어느 누구랑 도박해서 진 적이 없긴 하지만….
오늘은 왠지 불안하다!
하지만 도망칠 수는 없었다.
뒤에서 보고 있는 사람들의 눈 때문이었다.
‘도망치면 소문 생긴다.’
로다문다나 쉬하잉은 나름 이 업계에서 소문이 자자한 고수였다.
그런 랭커들이 NPC 무서워서 발을 뺀다면….
앞으로는 도박 좀 한다고 게시판에서 자랑하지도 못하리라.
“간다!!!”
“와아아아아!!”
* * *
“제발 한 번만 다시 굴리게 해주십시오. 제발 한 번만 다시 굴리게 해주십시오!”
속옷 차림이 된 로다문다가 이마를 바닥에 박아대며 엉엉 울었다.
태현은 어이없다는 듯이 랭커들을 쳐다보았다.
‘이 자식들 랭커 맞나?’
사람이 아무리 도박에 빠지면 판단력이 흐려진다지만 좀 심하지 않은가.
지금 쉬하잉과 로다문다는 전 재산+장비를 다 잃은 것도 모자라서 그 다음에는 역으로 제안을 해왔다.
-퀘스트 깨겠습니다! 퀘스트를 깨겠습니다!
-퀘스트를 깰 테니 한 번만 더 굴리게…!
물론 그런다고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살벌할 정도의 패배.
“야. 우리는 가자….”
“저 둘이 저렇게 개박살 나면 우리는 아무것도 못 하겠다….”
남은 플레이어들은 잔뜩 기가 죽어서 뒤로 물러섰다.
아무리 도박이 좋아도 그렇지 저 둘이 저렇게 개처럼 깨지는 걸 보면 있던 의욕도 사라진 것이다.
[상단의 월수입이 두 배에 도달했습니다.]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명성이…]
[……]
“!”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클리어된 퀘스트.
솔직히 태현은 이것보다 더 오래 걸릴 줄 알았다.
애초에 카지노에서 너무 이기면 소문이 퍼지고 플레이어들이 발걸음을 끊을 테니, 이곳저곳 돌면서 변장을 바꿔야 할 줄 알았는데….
‘저 두 랭커가 큰 역할을 해주긴 했어.’
두 랭커가 앞뒤 가리지 않고 꼬라박아준 덕분에 깰 수 있었던 퀘스트.
[맥크레니 상단을 이어받습니다.]
[상단의 이름을 바꾸겠습니까?]
“이다비 상단으로.”
“…네?? 왜요!?”
가만히 있다가 자기 이름이 나오자 이다비는 당황했다.
상단도 태현 건데 왜?
“그냥 별생각 없이 말한 건데. 이름 바꿀까?”
“아뇨. 괜찮긴 한데요….”
“그래. 잘 부탁할게. 알다시피 내가 상단 관리는 잘 못할 테니까.”
상단 만들어서 굴리는 것도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매번 게시판 켜고 아이템 시세 확인하고, 어디 후추가 비싸게 팔린다고 하면 그쪽으로 상인 보내서 후추 팔고, 그러다가 상인 NPC들 공격 받아서 죽었다는 메시지창 뜨면 쌍욕 나오고….
하지만 이다비는 매우 기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
이다비는 이런 기회를 찾고 있었다.
아직 태현 앞에서 돈 팍팍 쓸 기회는 잡지 못하고 있었지만….
[지도의 정보를 얻습니다!]
[퀘스트가 갱신됩니다.]
<고대 제국의 유산-고대 제국 부활 퀘스트>
고대 제국의 막대한 황금은 깊은 심해에 묻혀 있었다.
당신이 얻은 완벽한 지도는 이 황금이 어디 숨겨져 있는지를 정확히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조심하라!
보물은 절대 침입자를 반기지 않을 테니….
자격이 있는 자만이 얻을 수 있으리라.
보상: ?, ???
‘만만치 않겠군.’
먼 바다 한복판에 위치한 해저 던전.
경고하는 퀘스트 창에 태현은 고전을 예감했다.
고대 제국 퀘스트인 만큼 당연한 시련.
…하지만 꼭 혼자 가란 법은 없었다.
“미다스 길드도 꼭 데리고 가야겠다.”
“괜히 오해하는 거 아니에요? 그쪽에서 태현 님한테 이상하게 호감이 있어 보이던데.”
“이런 걸로 오해하면 파티 초대는 프로포즈게?”
태현은 양쪽에 연락했다.
퀘스트 다 깼으니 뻘짓 그만하고 모이라는 연락이었다.
* * *
퀘스트를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미다스 길드 쪽 랭커들은 매우 표정이 밝았다.
그에 비해 스미스의 친위대 랭커들은 표정이 어두웠다.
“김태현이 마법사 편애하는 거 아닙니까?”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판온 1 때도 김태현은 기사나 성기사들을 싫어했어요.”
“김태현이 유난히 탱커들을 싫어하긴 하지. 케인 봐라.”
원래는 낄 필요 없었던 미다스 랭커들까지 낀 상황.
친위대 입장에서는 손톱 밑에 가시가 박힌 것처럼 거슬렸다.
“이세연 보라고. 마법사니까 김태현하고 친하게 지내잖아.”
“기본적으로 마법사를 우대하는….”
“뭐지? 패배자들이 짖고 있나? 안 들리는데?”
“꼬우면 마법사를 했어야지.”
양 옆에서 싸우는 이들은 무시하고, 태현은 배 위에서 명령을 내렸다.
“앞으로 전진!”
[왕국 4 함대가 전진합니다!]
아탈리 왕국은 사실 육군보다 해군이 더 나은 편이었다.
원래부터 있던 왕국 함대들은 물론이고, 태현이 이곳저곳에서 데리고 온 해적 NPC들로 구성된 4 함대도 있었다.
조용하고 은밀하게 유산 찾아와야 하는데 거대 함선 이끌고 우르르 달려갈 순 없었다.
작지만 날렵한 배들을 끌고 움직여야 했다.
“태현 님. 쟤네 계속 싸워요.”
“무시해. 저러다가 알아서 죽던가 하겠지.”
태현도 괜히 데리고 왔다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지만, 저들도 랭커였다.
문제가 일어나면 알아서 대처하리라.
‘점점 파도가 높아지는 거 같은데.’
판온의 바다는 아직도 미지의 영역이 많았다.
아예 저 서쪽의 먼 망망대해로 가지 않더라도, 중앙 대륙이나 남쪽 대륙 사이의 바다에도 위험한 구역들이 여럿인 것이다.
항해사 플레이어들도 굳이 안전한 해로로 달려가지 이런 구역에 굳이 머리를 들이밀진 않았다.
바다 위에서의 싸움은 육지에서의 싸움과 달랐다.
몬스터를 잡더라도 배가 파손되거나 침몰하면 그냥 같이 죽는다!
그리고 지금 태현 일행이 향하고 있는 곳도 그런 위험 구역들 중 하나였다.
[<사나운 폭풍의 바다>에 진입했습니다!]
“그만 싸우고 일하자.”
“그러자고.”
미다스 길드 랭커들은 주섬주섬 지팡이를 꺼내더니 마법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평온한 움직임!
-파도로부터의 보호!
-괴수 퇴치의 주문!
번쩍이는 마법과 함께 배들이 보호막에 감싸이기 시작했다.
<사나운 폭풍의 바다>가 위험한 구역이긴 했지만 나름 정보는 쌓여 있는 곳.
랭커들인 만큼 이미 준비를 해서 온 상태였다.
…물론 친위대 랭커들은 그걸 안다고 해서 뭐 딱히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김태현 선수. 마법 걸어드리겠습니다.”
“고맙군.”
“너희들은 니들이 알아서 해.”
“…….”
“해달라고 하지도 않았다!”
친위대 랭커들은 씩씩대며 대꾸했다. 태현은 혀를 차며 말했다.
“저쪽에도 걸어주도록. 괜한 싸움 만들지 말고.”
“예. 그러도록 하죠.”
마법사 랭커들은 비웃으면서 마법을 걸어줬다.
그 모습이 왠지 더 얄미웠기에 친위대 랭커들은 이를 갈았다.
‘던전 입구가 슬슬 드러나야 하는데 왜 안 보이지?’
태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촤아아악-
거대한 암초나 솟구치는 파도, 그리고 그 사이로 모습을 살짝살짝 드러내는 대형 몬스터들.
던전의 입구가 슬슬 보여야 하는데 드러나질 않았다.
<신의 예지> 스킬을 켰는데도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
‘그렇다면 이미 위치는 맞게 찾아왔다는 건데.’
위치는 더 바꿀 필요 없지만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건가?
[카르바노그가 경악합니다.]
“?”
태현은 카르바노그가 왜 저러나 싶었다.
그러나 태현도 곧 이유가 알 수 있었다.
일행이 타고 있는 배 밑으로 거대한 그림자가 일렁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조용히 왔다고!?’
콰아아아아아!
[<고대 제국의 문지기 고래>가 당신들을 집어삼킵니다!]
[<고래의 뱃속>으로 입장합니다!]
[유산을 찾아내십시오!]
* * *
“…젠장. 실수했군.”
태현은 혀를 찼다. 옆에는 이다비와 해적 NPC들 몇몇만이 있었다.
일행과 나눠진 것이다.
‘평범한 퀘스트가 아닌 만큼 입장할 때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해뒀어야 했는데….’
미다스 길드나 스미스 친위대들도 있었기에, 굳이 태현의 부하들을 데리고 오진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오니 살짝 후회가 됐다. 해적 전사들도 레벨이 낮진 않았지만 솔직히 좀 부족했던 것이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폐하! 저희는 바다 위에서 태어나고 바다 위에서 죽는 전사들!
-폐하를 위해서 목숨도 바칠 겁니다!
해적 전사들은 가슴을 탕탕 치며 외쳤다.
명성과 함께 높은 충성도가 있기에 가능한 모습!
해적 전사들은 자신들의 가치를 보여주고 싶어서 안달이 난 듯했다.
“…태현 님. 여기 그런데 마을 아닌가요?”
이다비가 한쪽을 가리켰다.
놀랍게도 거대한 통로 끝에 마을이 있었던 것이다.
-…함정 아닙니까?
-함정일듯?
해적 전사들은 적이 아니라는 사실이 매우 아쉬웠는지 어떻게든 부정해 보려고 했다.
하지만 앞에 있는 건 정말로 마을이 맞았다.
[<창자 마을>을 발견했습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
[……]
[대가를 치르기 전에는 입장할 수 없습니다.]
“…?”
“잘 됐네요.”
이다비는 살짝 신이 난 목소리로 돈주머니를 꺼냈다.
“얼마면….”
[골드는 받지 않습니다.]
“…보석으로?”
[보석도 받지 않습니다.]
“이다비. 무리할 거 없다니까.”
“무리하는 거 아니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