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519화
“가자!”
친위대 랭커들은 우르르 달려나가며 행동을 개시했다.
시장에서 물건 사려고 나온 플레이어들은 갑작스러운 덩치들의 등장에 기겁했다.
“뭐야? 뭐야??”
“공격인가??!”
시장에 물건 사러 나오는 플레이어들은 보통 초보자나 제작 직업들.
저렇게 중무장한 기사들이 등장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당근하고 양파!”
“예? 예??”
“당근하고 양파 어디 있나!”
“…???”
아탈리 왕국 플레이어들은 미친놈 보듯이 랭커들을 쳐다보았다.
돌았나?
“당근하고 양파 어디 있냐니까!”
“저기… 저기 있는데요.”
“찾았다!”
“빨리 달려가서 줄 서!”
“예!”
당근과 양파를 파는 좌판을 발견한 랭커들은 우르르 달려가서 줄을 섰다.
이런 시장에서 중요한 건 스피드였다.
경험 많은 제작 직업들이 아침 되서 시장 열리는 순간 와다다다 달려들어가서 질 좋은 아이템들부터 닥치는 대로 구매하는 것이다.
인기 있는 시장의 경우 늦게 들어가면 아이템 구경도 못 하는 수가 있었다.
랭커들도 그 정도는 알았기에 바로 줄을 섰다.
물론 먼저 줄을 서 있던 플레이어들은 무서워서 뒤를 돌아보지 못했다.
“저… 저희가 양보할까요?”
“당근과 양파가 필요하신 모양인데….”
“왜! 너희들도 사야지! 어째서 포기하려는 거냐!”
“죄, 죄송합니다!”
말 꺼냈던 플레이어들은 사과했다.
왜 사과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무서웠으니까!
“차례가 왔군. 전부 사버려!”
“예! 여기 있는 당근과 양파 모두 주시오!”
상단에서 취급하는 아이템을 사면 그 상단의 이득이 되기 마련.
스미스와 친위대의 전략은 단순무식하지만 확실했다.
-우리가 맥크레니 상단에서 취급하는 아이템들을 전부 다 사버려서 매출을 만들자!
자기 돈을 강제로 상단 금고에 집어넣지는 못해도, 이거라면 비슷한 방법.
…하지만 이 방법에는 한 가지 함정이 있었다.
[아이템을 전부 구매하셨습니다!]
[……]
[……]
“확인해 봐! 얼마나 올랐지?”
[현재 상단 매출이 오르지 않았습니다.]
“…???”
“뭐지!?”
친위대 랭커들은 당황했다.
왜 다 구매했는데도 오르지 않은 거지?
“저….”
뒤에 줄 서 있던 플레이어가 말을 걸었다.
“여기 맥크레니 상단이 파는 아이템 인기 좋아서 다 사봤자 매출 안 오를걸요? 어차피 평소에도 다 팔리는데….”
“…!!”
그제야 친위대 랭커들은 실수를 깨달았다.
안 팔리는 재고 아이템이 팔리면 평소보다 매출이 오르겠지만, 평소부터 다 팔리는 수준이라면 오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봐! 상인! 재고를 더 갖고 와!”
-내일 보충될 때까지는 없습니다.
“…그러면 여기 있는 이 감자를 2배, 아니 10배의 가격으로 사겠다!”
“?!?”
뒤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기겁했다.
진짜 미친놈들 아냐?
-지금 우리의 명예를 뭘로 보고… 물건에는 적절한 가격이 있는 법! 그런 걸 어기고 사기를 칠 순 없소! 상대가 아무리 멍청한 호구새끼라고 하더라도!
“크윽… 잠깐. 우리 욕한 거 아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일이 꼬이게 생겼어.”
믿고 있던 계획이 실패하자 친위대 랭커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더 비싸게 사서 매출을 올리려는 것도 실패했으니….
“이대로 밀고 갑시다.”
“하지만 스미스 님….”
“물론 평소에 잘 팔리는 만큼 쉽게 매출을 올리기 힘들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 한계는 있을 겁니다. 길드원들을 동원해서 상단 상인들과 가게들 앞에 대기하고 있다가 재고가 나오는 족족 아이템을 구입하십시오. 그러면 평소 판매량보다 오를 수밖에 없을 겁니다.”
“역시…!”
“스미스 님이십니다!!”
‘미친놈들인가 진짜.’
옆에서 지나가는 상인 플레이어들은 경악했다.
세상에 저런 무식한 방법을 쓰는 놈이 있다니.
스미스 밑에 상인 플레이어가 있었다면 옆에서 ‘길마님! 아무리 제가 길마님을 존경한다지만 지금 그 전략은 개소리 같습니다!’라고 말렸을 것이다.
하지만 친위대는 스미스를 존경하는 플레이어들밖에 없었다.
이 무식한 방법을 그대로 들고 돌격!
-지금 시간 되는 길드원들 아탈리 왕국으로 집합!
-뭡니까!? 드디어 공격하는 겁니까?
-아니. 시장으로 가서 재료템들을 모조리 구입한다!
-…???
* * *
스미스와 친위대들이 미친 짓거리를 하고 있는 동안, 오한구나 김연지 같은 미다스 길드 랭커들도 행동에 나서고 있었다.
“생각보다 운이 좋았어.”
“맞아. 아무래도 그쪽 길드가 이런 퀘스트에는 불리할 수밖에 없지.”
“…그런데 우리도 딱히 유리하진 않은듯.”
미다스 길드도 마찬가지로 당황스러웠다.
상단 월수입 2배로 만드는 퀘스트는 정말 처음 겪는 유형의 퀘스트였던 것이다.
그 까다로운 마탑 퀘스트도 이런 게 나오지는 않았는데….
“상단 아이템 구입하는 건 어때?”
“근데 찾아보니까 맥크레니 상단은 아이템 인기 좋아서 거의 다 팔리는 수준이래. 우리가 다 산다고 해도 안 될걸.”
“더 비싸게는 못 사나?”
“명성 있는 상인 NPC들은 그런 거 안 좋아해. 자기들 명예를 뭘로 보냐고 화낼걸.”
“좋은 생각이 있다.”
오한구는 손뼉을 치며 말했다. 그 말에 다들 기대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내가 받은 퀘스트 중에 그리폰의 둥지 찾는 퀘스트가 있었어. 너무 멀어서 안 깨고 있었는데, 여기 가서 알 찾은 다음 상단한테 알려주자.”
“오…!”
제법 그럴듯한 전략이었다.
상단에 새로운 제품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그리핀의 알은 잘 키우기만 하면 새끼 그리핀이 될 것이고, 새끼 그리핀은 인기 있는 탈것 중 하나였다.
“근데 얼마나 먼데요?”
“자이언 산맥.”
“…….”
“…….”
랭커들의 표정이 흐려졌다.
중앙 대륙 동쪽에 위치한, 오크들의 땅인 우르크 지역도 대다수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는 ‘거기 완전 불모지 아님?’ ‘거기도 사람이 사나요?’ 같은 소리를 들었다.
김태산 같은 플레이어들은 ‘사람 살거든!? 엄청 좋아졌거든!?’이라고 우겼지만 땅이 워낙 넓어서 아무리 건물을 세워도 크게 티가 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자이언 산맥은 거기서도 더 동쪽으로 가야 나오는 황량한 산맥이었다.
게다가 거인족 전사들도 우글우글 나오는 곳.
“그리폰 둥지가 흔한 게 아니잖아.”
“그렇긴 하지… 끙. 출발하자.”
미다스 길드의 전략도 좋았지만, 그들은 지금 경쟁하고 있다는 걸 잊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월수입 2배를 찍어야 하는데 저 먼 곳까지 가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실수였던 것이다.
* * *
“태현 님. 카지노는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에요.”
이다비는 누구보다도 저런 도박의 폐해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 중 도박으로 재산 늘리려고 하는 플레이어들이 제법 있었던 것이다.
카지노에 들어가면 카드놀이부터 시작해서 주사위, 윷놀이 등 온갖 종류에 도박이 있었지만….
보통은 카지노 쪽이 유리했다.
하지만 카지노 쪽도 이게 확률 차이고, 얼마든지 위험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서로 제한을 걸어 놓는 경우가 많았다.
하루에 100골드 이상 못 건다거나, 몇 번만 이용할 수 있다거나….
이러면 아무리 크게 따도 제한이 걸렸다.
그런 만큼 카지노에서 돈 벌려고 하는 건 바보짓이었다.
“이건 내가 카지노 쪽이잖아.”
“…그렇죠…!”
무심코 반대하긴 했지만 생각해 보니 그것도 그랬다.
그리고 태현의 행운 스탯은 정확히 알지는 못해도 매우 높을 게 분명했다.
“최대한 빠르고 많이, 닥치는 대로 전부 다 긁어 버리는 거지.”
“좋아요. 저도 도와드릴게요!”
태현과 이다비는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의지를 불태웠다.
[카르바노그가 혀를 쯧쯧 찹니다.]
* * *
[<화려한 놀이의 집>에 입장하셨습니다!]
[이벤트가 벌어집니다!]
[경기의 골드 제한이 풀립니다!]
[경기의 횟수 제한이 풀립니다!]
“????”
“어??”
주사위 던지고 있던 플레이어들은 메시지창에 깜짝 놀랐다.
뭐지?
무슨 뜻이지??
“진짜 제한 풀렸나요?”
-예. 오늘 한정 이벤트입니다.
“정말 100골드보다 더 걸 수 있다고요?”
“다섯 번 넘어도 되나??”
-물론입니다.
“…!”
그 순간, 플레이어들의 눈빛이 변했다.
애초에 판온에 있는 카지노에서 도박하고 있을 정도면 자기 능력에 자신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왔군. 기회가.”
“큭큭큭….”
“멍청한 놈들. 골드를 내주려고 작정을 했나?”
곳곳에서 소식을 듣고 나타난 승부사들.
판온에서 나름 도박 잘 한다고 소문 난 플레이어들이었다.
“저, 저기 봐! 파워 워리어의 김태헌이야!!”
“뭐? 김태현이 파워 워리어 소속이었어?”
“아니. 김태현 말고 김태헌.”
“…아, 그, 그렇군. 그 김태헌은 뭐가 대단한데?”
“하루도 빼놓지 않고 도박장에 나타난다는 소문이 있어.”
‘그냥 중독자 아니야?’
물론 이상한 놈들만 온 건 아니었다.
길드 동맹 소속 랭커, 쉬하잉!
직업은 검사였지만 갖고 있는 스킬들과 아이템으로 인해 도박에 강하다고 소문이 나 있었다.
대장장이 랭커, 로다문다!
유명 대장장이 랭커들 이야기가 나오면 꼭 나오는 인물이었지만 마찬가지로 도박을 매우 매우 좋아했다.
소문에 따르면 직접 장비에 행운 옵션을 박아 넣은 다음 자기가 착용해 도박에서 이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
가면으로 얼굴 바꾸고 앉아 있던 태현은 황당해했다.
‘뭐냐?’
여기 와서 도박하는 플레이어면 파워 워리어 같은 이상한 놈들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멀쩡히 레벨 높은 놈들이 많았던 것이다.
판온에 이렇게 도박 좋아하는 놈들이 많았나?
“정말 횟수 제한, 골드 제한 없는 거 맞겠지요???”
-예.
“비켜라! 내가 먼저 하겠다!”
“지금 새치기를….”
“로다문다. 네가 인기 좋은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상황을 잘 보고 까불어야지.”
쉬하잉은 칼집을 툭툭 치며 말했다.
쉬하잉은 길드 동맹 랭커들 중에서도 성질 더러운 축에 속했다. 같은 랭커라도 제작 직업이 전투 직업을 이기기는 힘든 법.
하물며 길드 동맹 소속이라면….
“…개자식이.”
“마음대로 지껄여라. 나는 먼저 할 테니까.”
털썩!
쉬하잉은 앉았다. 그러고는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이 주사위 게임에서 내 최고 기록이 13연승이었다. 오늘, 그 기록을 깨고 말겠다!!”
“와아아아아아아!”
“쉬하잉! 쉬하잉!!”
쉬하잉이 재수가 없다지만 일단 플레이어들은 환호했다.
남이 돈 걸고 도박하는 건 언제나 재미있던 것!
로다문다도 솔직히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쉬하잉 저 자식이 다 털어버리면 안 되는데….’
무한 이벤트라지만 골드가 다 떨어지면 종료될 것 아닌가.
쉬하잉이 꿀 다 빨고 갈까 봐 걱정이었다.
그걸 알고 있었기에 쉬하잉 저놈도 먼저 하려고 한 걸 거고….
카지노의 NPC들도 실력이 괜찮았지만, 여기 올 정도의 랭커들은 도박에 이기려고 별의별 짓을 다 하는 이들이었다.
도박 관련 장비부터 시작해서 스킬들까지 덕지덕지 바르고 온 인간들!
실제로 이제까지 NPC들과 승률을 비교해 보면 랭커들이 더 높았다.
“가자! 주사위를 던져라!”
* * *
30분 후.
“제발 한 번만 다시 굴리게 해주십시오. 제발 한 번만 다시 굴리게 해주십시오!”
속옷 차림이 된 쉬하잉이 이마를 바닥에 박아대며 엉엉 울었다.
그 모습을 본 플레이어들은 충격에 빠져서 웅성거렸다.
이게 말이 되나??
-야. 너도 해보고 싶다면서.
-나, 나는 좀… 무서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