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518화
“네가 경솔했어. 이런 퀘스트를 만만하게 보다니.”
“맞아. 아무리 김태현이라도 그렇지 그냥 말 한마디에 문을 열 수 있겠냐.”
다른 친위대 랭커들도 동료를 타박했다.
물론 그들도 솔직히 조금 기대하긴 했다.
워낙 명성에 업적에 작위까지 있으니 좀 문을 열어주지 않을까?
…하지만 잘 생각해 보니 그건 너무 욕심 같긴 했다.
그들도 이제까지 퀘스트 깨오면서 상단 문 열고 들어갈 때도 온갖 잡퀘를 다 해야 했는데, 김태현이라고 한 번에 문을 열 수는 없는 것이다.
“….”
“….”
태현과 이다비는 입을 다물었다.
‘여기까지 오기 전에는 그냥 문 열고 들어갔는데.’
‘아마도 외부인들은 잡퀘 다 시키나 봐요.’
둘은 굳이 말해주지 않았다.
괜히 스미스 친위대 플레이어들이 진실을 알아서 좋을 게 없을 테니까.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악질 퀘스트에 걸리면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군. 뭐지?’
태현은 의아해했다.
맥크레니 상단은 여기 도시에 있는 대상인들 중 태현과 가장 친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들어오지 못하게 하다니.
‘스미스 놈 때문 아닌가?’
[카르바노그가 그럴 수 있다고 동의합니다.]
‘재수가 없긴 하지.’
[…그런 의미가 아니라 악명이 높아서 거절할 수 있다고….]
백기사 계열 직업에, 언제나 반짝반짝 눈부신 미소를 뿜어내는 이미지 때문에 놓치기 쉬웠지만 스미스도 만만찮게 악명 스탯이 높은 상태였다.
길드 동맹을 기습적으로 공격하고 오스턴 왕국에서 공성전을 벌이면서 온갖 파괴는 다 벌인 것이다.
PK를 하면 필연적으로 악명 스탯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
-이제 들어오셔도 됩니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왜 바로 들여보내주지 않고….”
-맥크레니 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
* * *
<상단의 주인-맥크레니 상단 퀘스트>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교단이 부활하고 성장한 걸 본 맥크레니는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었다.
아키서스 교단이 사라졌을 때에도 맥크레니 상단은 신앙심을 지켜왔었다.
그 상단의 주인인 맥크레니는 자신의 소원을 이뤄준 당신에게 상단을 바쳐 마지막 신앙심을 보여주려고 한다.
“!”
[!]
태현은 깜짝 놀랐다.
맥크레니가 죽은 것도 놀라웠지만 맥크레니가 상단을 태현에게 주려고 한다는 건 더 놀라웠다.
아키서스 교단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놀라운 희생정신과 신앙심!
‘정말 아키서스 교단에는 아까운 NPC군.’
물론 맥크레니도 아무 조건 없이 그냥 상단을 주진 않았다.
퀘스트 창은 다음 설명을 이어갔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 당신이 해내야 할 일들이 있다.
먼저 펠마스를 교단에서 추방해야 한다.
“….”
[….]
태현은 오랜만에 당황했다.
‘아니.’
펠마스를 추방할 순 없었다.
요즘 기분 나쁠 정도로 선량해진 것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더라도 펠마스는 교단의 핵심 NPC 중 하나였다.
탐욕스럽긴 하지만 능력은 있는 것이다.
‘이거 뭐 방법 없나?’
상단을 물려받는 것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 지금 맥크레니가 갖고 있는 지도 정보를 받아야 했다.
그러려면 저 상단을 받아서 같이 챙겨야 하는데….
다행히 퀘스트에는 다른 방법도 있었다.
…만약 펠마스를 교단에서 추방시키지 않는다면, 상단을 운영해서 한 달 수입을 두 배로 만들어야 한다.
둘 중 하나를 해낸다면 맥크레니도 안심하고 상단을 당신에게 넘길 수 있으리라.
-펠마스를 교단에서 추방 (0/1)
-맥크레니 한 달 수입 100% 상승 (0/1)
보상:?, ??
‘다행이긴 한데, 이건 다른 의미로 어려운 퀘스트군.’
태현은 눈썹을 찌푸렸다.
차라리 몬스터를 잡아 오거나 재료를 찾는 퀘스트가 더 나을 편했다.
상단 운영 퀘스트라니.
‘2배는 실질적으로 힘들어 보이는데….’
판온에서 용병 NPC들을 고용하고 데리고 다닐 수 있는 것처럼, 상인 NPC들도 고용할 수 있었다.
이들을 대규모로 고용하고 부리면 상단이 됐다.
자기들이 알아서 물건 팔고 사오고 가끔은 플레이어가 퀘스트 하는 곳까지 찾아와서 아이템 공급해 주고….
상단은 있으면 여러모로 좋았다. 잘 키운 상인 NPC는 쏠쏠하게 골드를 벌어다 줬다.
맥크레니 상단 정도면 경험 많은 상인들이 여럿 있고 가게들도 곳곳에 있는 탄탄한 상단.
이걸 그냥 가진다는 건 어마어마한 대박이었지만, 문제는 그만큼 수익을 새로 올리기 힘들다는 거였다.
돈 되는 장사는 이미 다 알아서 하고 있을 테니….
“아니, 뭐 이런 퀘스트가 있습니까?”
“이건 좀 너무한데.”
스미스의 부하들도 비슷하게 생각했는지 불만을 터뜨렸다.
아무리 봐도 만만한 퀘스트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냥 지금까지 나온 지도만 갖고 샅샅이 뒤져볼까요?”
“아냐. 없는 구역이 너무….”
“상단 수입을 어떻게 두 배로 만들지?”
“꼭 두 배로 만들 필요 없어. 그 펠마스란 놈을….”
“김태현 선수. 우리 타협합시다. 펠마스란 놈을 쫓아내려면 저희가 뭘 해줘야 합니까?”
랭커들은 현실적으로 판단했다.
상단 월수입 2배 만들기보다는 그냥 펠마스란 놈을 쫓아내자!
“펠마스가 김태현 선수 교단에서 어느 정도 위치지?”
“내가 들어보기로는 좀 사기꾼 같은 놈이라던데.”
“그렇게 능력 있어 보이진 않다더군.”
“그러면 더 잘됐네! 저런 퀘스트가 나온 이유가 있다.”
“그러게. 퀘스트에는 다 의미가 있다니까.”
랭커들은 어떻게든 펠마스를 쫓아내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태현을 설득해서 펠마스만 쫓아내고 나면 이 퀘스트를 단칼에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든 쫓아낸다!
“무례한 놈들 같으니. 펠마스가 아키서스 교단에서 차지하고 있는 의미와 비중도 모르고 그런 말을 해?”
“…?!”
갑자기 나타난 새 플레이어들.
스미스의 부하들은 당황스러워했다.
누구지?
“미다스 길드잖아?”
“저 자식들은 여기 왜 온 거야?”
“네놈들의 위치 정도는 다 파악하고 있다.”
사진에서 위치 파악할 정보 같은 건 다 없앴는데도 찾아내서 쫓아오다니.
보통 집념이 아니었다.
‘하긴 저놈들도 원래는 길드 동맹 소속이었지.’
쓸데없이 끈질긴 놈들!
태현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도 모르는 채, 미다스 길드에서 나온 랭커들은 입을 열었다.
“김태현 선수! 도와드리러 왔습니다!”
“…어. 왜?”
태현은 혹시 미다스 길드는 뭔 황실의 지팡이 관련 정보라도 얻었나 싶었다.
그게 아니라면 여기 와서 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냥요!”
“…???”
“그냥 김태현 선수가 좋아서 도와드리고 싶은 겁니다!”
“내가 살면서 들은 말 중 가장 믿기 힘든 말인데….”
태현은 매우 의심쩍은 눈빛으로 미다스 길드원들을 쳐다보았다.
기본적으로 미다스 길드와 태현의 사이는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길드 동맹처럼 최악의 원수까지는 아니더라도 몇 번 충돌한 적 있었고, 서로 불편하게 여기는 그런 사이인 것이다.
애초에 미다스 길드의 랭커들 중 꽤 많은 이들이 길드 동맹 소속이거나 판온 1 때 랭커들이었던 만큼, 태현에게 원한이 없으면 이상한 것!
“김태현 선수. 여기 같은 한국인입니다. 같은 나라 플레이어도 믿지 못하시는 겁니까?”
미다스 길드원 중 한 명이 오한구를 가리키며 말하자 태현은 뭔 미친 개소리를 하고 있냐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같은 나라라고 믿으라니 미쳤냐? 예전에 대회에서 내 등 찌른 게 같은 나라 플레이어였거든?”
횟수만 따져보면 태현을 공격한 플레이어들 중 한국인이 순위 안에 들 것이다.
뭔 미친 소리를 하고 있어!
“김태현 선수! 기회를 주십시오! 행동으로 증명할 기회를!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
-이다비. 쟤네 대체 왜 저러는 건지 짐작 가는 게 있니?
-저도 잘….
-지팡이 같은 걸 찾나? 그래서 이 퀘스트에 끼려고?
-솔직히 말해서 그랬을 거 같지는 않아요. 그 퀘스트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퀘스트가 아니잖아요.
‘하긴 그것도 맞는 말이지.’
스미스는 우연찮게 접근했다지만, 태현과 비교하면 퀘스트 정보량이 압도적으로 적었다.
고대 제국 퀘스트를 처음부터 진행하고 있는 태현과 비교하면 다들 앞뒤가 잘려 있는 애매모호한 퀘스트만 갖고 있는 것이다.
-그보다 미다스 길드의 마법사들이라면 도움은 될 거 같아요.
-그렇긴 해.
길드는 리더의 모습을 따라가기 마련.
스미스의 친위대는 탱커 위주 기사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태현이 볼 때마다 불쾌해하는 이유가 있었다.
싸울 때야 잘 싸운다지만, 이런 이들은 전투 외에는 영 약한 모습을 보였다. 이들이 상단 월수입 2배 만들기 같은 걸 잘해낼 리 없었다.
그에 비해 마법사들은 여러모로 좀 다재다능한 이들.
장비에 마법진 새기고 마법 부여로 대장장이 기술 쪽에 협력하거나, 마력이 담긴 보석을 천 옷에 다는 것으로 재봉 쪽에 협력하거나….
여러모로 유연한 플레이가 가능한 것이다.
괜히 마법사들이 성기사들 보면서 ‘으, 무식한 판금 덩어리들’하고 비웃는 게 아닌 것!
“그러면 이렇게 하자. 지금 최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건 퀘스트니까, 각자 퀘스트에 도전해라. 미다스 길드에도 기회를 주지.”
“문제없습니다. 무슨 퀘스트입니까?”
“상단 월수입 2배로 만들기.”
“….”
“….”
뭔 상인 퀘스트 같은 퀘스트에 미다스 랭커들은 황당해했다.
아니, 그걸 왜 김태현이 깨야 해?
“김태현 선수. 미다스 길드 놈들이 좋은 뜻으로 왔겠습니까? 방해하려는 게 분명합니다.”
스미스 부하들은 당연히 미다스 길드원들을 쫓아내려고 했다.
“그래. 나도 안다. 하지만 지금은 도움이 필요하잖아. 스미스도 있고 너희들도 있는데 설마 허튼짓을 하지는 못하겠지.”
“하지만….”
“너희들이 저 퀘스트를 깨버리면 저놈들이 여기 있을 이유가 없어질 테니, 먼저 깨면 되잖아.”
“….”
태현의 말에 랭커들은 말문이 막혔다.
그건 그래!
미다스 길드원들은 불만이 있을 리 없었다. 일단 끼어들었다는 것만으로도 대성공이었으니까.
“맞아. 혹시 겁먹었냐?”
“하긴 이런 섬세한 퀘스트 같은 건 깰 자신이 없긴 하겠지.”
“저래서 기사 놈들은….”
유치한 도발이었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스미스 휘하의 랭커들은 분노해서 말했다.
“어디서 무슨 꿍꿍이로 온지도 모르는 놈들이 잘도 지껄이는군.”
“뒤통수 조심해라.”
“너희나 조심하라고. 우리가 먼저 해결하면 SNS에 올릴 거거든.”
“….”
“….”
‘스케일 크게 유치하군.’
목소리는 되게 진지했지만 하는 이야기는 별로 쓸모가 없었다.
하지만 이야기하는 놈들은 매우 진지했다.
반드시 먼저 깨서 상대의 명예를 짓밟아버리겠다!
“저놈들만 믿고 있어서는 안 되겠다. 이다비. 우리도 움직이자고.”
“네. 안 그래도 준비하고 있었어요.”
“나도 한 가지 떠오른 게 있긴 해.”
“!”
이다비는 놀란 눈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벌써 떠오른 게 있다니.
“뭔데요? 벌써 떠올리실 줄은 몰랐는데.”
“상단 수입 중 하나가 카지노잖아.”
“…잠깐만요. 잠깐만요.”
이다비는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해졌다.
* * *
“그냥 우리 돈을 써서 채워 넣으면 안 됩니까?”
“그건 당연히 해결이 안 되지. 그런 무식한 소리 하지 마.”
랭커 중 한 명의 말에, 다른 사람들이 구박을 했다.
퀘스트 해결이 그런 식으로 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면 어떻게 하려고요?”
“우리 돈을 써서 상단의 상품을 닥치는 대로 구입해 버리자고. 그러면 수입이 늘어날 테니까.”
“….”
똑같잖아, 이 새끼야…!
하지만 확실히 다르긴 했다. 무식한 방법이지만 효과는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