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516화
수많은 길드 동맹 플레이어들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스미스의 친위대들.
그들도 사람이었다.
“미… 미안합니다.”
“우리가 혹시… 괜히 인사를 한 건가??”
친위대 랭커들은 일단 사과했다.
“…아니에요. 됐어요.”
이다비는 상대가 사과하는데 그걸 받아주지 않고 화를 낼 정도로 매몰차지 못했다.
그런 게 가능한 건 태현 정도인 것이다.
“아닙니다. …혹시 이거 받으시겠습니까? <하늘 사파이어>인데 저번에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 찾으려고 하더라고요.”
“여기… 이 <멜파란의 지하 지도>도 받으시죠. 이것도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 찾던데….”
“아니. 됐거든요.”
갑작스러운 선물 공세에 이다비는 황당해했다.
아무리 미안해도 그렇지 이게 뭔….
“맞는 말입니다. 여러분. 파워 워리어의 길드 마스터는 마음에 없는 말을 하지 않으십니다. 또, 여러분들이 내미는 선물 같은 건 별로 성에 차지도 않을 겁니다.”
“…….”
“…….”
태현과 이다비는 스미스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 분위기에 전혀 휘둘리지 않고 저렇게 입을 열 수 있는 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었다.
일종의 케인 같은 재능이 극한에 이르렀다고 해야 하나?
‘눈치가 없는 것도 일정 수준을 넘으면 능력이 되는군.’
스미스는 자기가 무슨 분위기를 깼는지 전혀 모르는 채 입을 열었다.
“이렇게 만나게 되니 참 기쁩니다. 김태현 선수. 저번 퀘스트 이후로 만나지 못했는데.”
“그래. 근데 친한 척은 그만해라. 저번에 네가 우리 파티 순간이동시키고 보스 몬스터 독점하려고 했던 기억이 아직 생생한데.”
“그건 선의의 경쟁이었잖습니까!”
“선의의 경쟁이든 악의의 경쟁이든 친한 척하지 말고 저리 가라고. 쉿쉿.”
태현은 진저리를 내며 스미스에게 말했다.
어떻게 맛이 간 건지는 몰라도 만날 때마다 점점 더 상대하기 까다로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태현 님. 그런데 스미스 파티가 여기 온 거면 신경 좀 써야 하지 않나요?
-…와. 진짜 신경 쓰기 싫군.
이다비의 말은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더 싫었다.
정말 엮이기 싫다!
‘뭔 생각으로 아탈리 왕국에 온 거지?’
지금 스미스도 태현 못지않게 바쁠 것이다.
직업 퀘스트+왕국 퀘스트+거기에 전쟁 준비까지.
그런데 여기에 오다니.
무슨 속셈이지?
“…스미스. 그런데 무슨 일로 왔냐? 네가 무슨 퀘스트를 하는지 궁금한데.”
“!”
태현의 관심에 다른 랭커들도 깜짝 놀랐다.
김태현이 저런 질문을 던지는 건 처음 봤던 것이다.
“야. 봤냐? 김태현이 궁금해하는데?”
“역시 스미스 님이라니까. 다른 플레이어들하고는 비교도 안 돼. 김태현도 의식할 수밖에 없다니까.”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겠지. 라이벌이기도 하고, 또 결승전에서 만날 수밖에 없는 상대잖아.”
‘공격하면 안 된다. 공격하면 안 된다.’
떠드는 친위대 랭커들을 보며 태현은 참았다.
원래 태현은 상대가 먼저 시비를 걸거나 억지를 부리지 않으면 PK를 하지 않는 타입이었다.
살벌한 명성과는 달리, 기분 나쁘다고 아무나 공격하는 약탈자 플레이어는 아닌 것이다.
…하지만 스미스와 친위대 랭커들은 이상하게 기분이 나빴다.
그냥 보면 한 대 치고 싶어지는 놈들!
“아. 제가 하고 있는 퀘스트가 궁금하셨습니까? 진작 물어보시지 그러셨습니까.”
“…….”
“태현 님. 제 얼굴을 봐서라도 참아주세요.”
“응….”
스미스는 둘의 대화는 못 들었는지 자기 이야기를 시작했다.
“원래는 <아키서스의 탑>을 공략하려고 했었습니다.”
“…?!?”
“!!”
태현과 이다비는 깜짝 놀랐다.
아키서스의 탑을 왜?
‘아… 내가 광고했지.’
생각해 보니 태현이 여러 길드 모여서 보스 몬스터 레이드 하는 장소에서 아키서스의 탑 이야기를 몇 번이나 했으니, 저렇게 반응하는 것도 당연했다.
어떻게 보면 자업자득!
* * *
아키서스의 탑.
생긴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들어간 사람들이 그리 많지도 않았지만 이 탑은 벌써 무수한 소문을 낳고 있었다.
-지금 도전 가능한 던전들 중에서는 최고 난이도라고 하더라.
-김태현이 여기서 팀 KL을 훈련시킨다면서?
-케인이 여기서 두 번이나 죽었대.
-…어? 두 번이나 죽었다고? 최상위권 랭커가?? 그래도 돼?
-몰라. 내가 죽은 것도 아닌데.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나는 소문들.
그 소문들 때문에 관심 없던 랭커들도 한 번씩 진지하게 고민을 하게 될 정도였다.
쿠르르릉!
“탑이… 왜 저 모양이지?”
“여기 마계야?”
아키서스의 탑 근처에 온 스미스 친위대 랭커들은 황당해했다.
탑 주변은 1층만 간신히 볼 수 있을 정도로 안개가 자욱이 뒤덮고 있었고….
그 위로는 폭풍이 치고 번개가 내려치는 중이었다.
“잠깐. 방금 안개 사이로 용암 있지 않았나요??”
“설, 설마 용암은 없겠지.”
탑 주변만 아예 다른 공간처럼 사악한 기운을 풀풀 뿌리는 게, 랭커들도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스미스는 단호하게 말했다.
“여러분. 저를 믿고 따라와 주십시오.”
“예!”
원래 탱커들은 듬직하고 든든한 성격이 많은 편이었다.
남들 보호해 주면서 몬스터 공격을 막아내는 게 역할인 만큼, 그런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고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스미스는 능력적으로도 성격적으로도 완벽한 탱커였다.
…물론 성격에 문제가 좀 있긴 했지만 친위대한테는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들어갑시다!”
[아키서스의 탑에 입장하셨습니다!]
[스킬들이 랜덤으로 봉인됩니다!]
“…….”
“…….”
시작부터 나오는 화끈한 페널티에, 랭커들은 할 말을 잃었다.
잘못 들어왔나?
[대륙의 위험한 구역들이 랜덤으로 나타납니다!]
“아… 아니. 잠깐만.”
1층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었어?
이것도 랜덤이라고??
[탑의 힘이 당신들을 위압합니다. 저주들이 랜덤으로 시전됩니다!]
“아 그만해!!”
“미친 거 아냐!?”
[적들이 나타납니다!]
갑자기 앞의 풍경이 바뀌었다.
한 치 앞도 보기 힘든 컴컴한 지하의 어둠이 닥쳐오더니, 그 어둠을 뚫고 다가오는 지하 괴물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전방 주의!!”
꽝!
[지옥지하거미가 <거미줄 채찍>을 사용합니다!]
[지옥지하거미가 <어둠의 눈동자>를 사용합니다!]
스미스가 이끄는 랭커 파티는 거대한 거미의 습격을 받고 뒤로 나뒹굴었다.
[상대의 힘이 매우 높습니다!]
[장비의 내구도가…]
“위험합니다! 뒤로 물러서면서 싸우겠습니다. 공간을 확보합시다!”
스미스는 닥치는 대로 스킬을 써서 시간을 번 다음, 빛이 있는 아이템을 꺼내 옆으로 집어 던졌다.
어두운 공간에서 시야 확보하기 위한 테크닉!
“이쪽을 봐라! 태양의 표식!”
번쩍이는 소리와 함께 어그로가 스미스에게 집중됐다. 덕분에 랭커들은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스미스 님을 지켜!”
파파파파파팍!
탱커가 제대로 버티고 있으면 그 다음부터는 남은 사람들의 차례.
손발 맞는 랭커들인 만큼 연계되어서 들어가는 스킬들의 위력은 상당했다.
-케에에에에에엑!
[지옥지하거미가 도주합니다!]
“쫓을까요?”
“아니. 그럴 필요 없습니다. 진형 유지합시다. 유인일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잠깐. 저 사람들 누굽니까?”
시끄러운 소리.
스미스는 앞에 다른 파티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길드 동맹 소속이다! 저거 길드 동맹 소속입니다!”
“공격해 버립시다! 잘됐네!”
“아니. 여기서 공격했다가는 같이 죽을 수도 있어. 아까 몬스터 봤잖아.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
랭커들은 스미스를 쳐다보았다.
이럴 때 결정을 내리는 게 파티장의 역할.
“길드 동맹은 죽여야지요.”
“역시!”
“믿고 있었습니다!”
“공격!”
“뭐, 뭐야? 야 이 미친… 너희 화이트 나이트 소속이지!? 이 개자식들아! 이러고도 무사할 거 같아!?!?”
“그러게 우리보다 던전 먼저 들어오랬냐?”
“우리 허락받고 던전을 들어왔어야지!”
길드 동맹 파티는 허무하게 당했다.
먼저 몬스터를 상대하고 있던 탓에 반격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
그리고 그 길드 동맹 파티를 잡고 스미스는 특이한 아이템을 얻었다.
* * *
“그게 뭔데?”
“그것까지 알려드릴 수는 없습니다.”
스미스는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무리 태현과 친해지고 싶더라도 공은 공, 사는 사.
이것까지 공유해 줄 수는 없었다.
‘정말 짜증 나는 자식이군.’
태현은 속으로 스미스를 욕했다.
마치 머리 잘 쓰는 케인을 보는 것 같은 불쾌함!
‘…하지만 어느 정도 추측할 수는 있다.’
태현은 역으로 추적해 올라갔다.
지금 태현이 고대 제국 관련 퀘스트 때문에 이 도시에 와있는 만큼, 스미스도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말 안 해줘도 어차피 안다.”
“?!”
“고대 제국 관련 퀘스트겠지.”
“…!”
스미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걸 어떻게??
“말, 말도….”
“아키서스의 탑이 누구 영지에 있는 탑이냐? 당연히 나도 안에서 아이템을 얻었지.”
물론 태현은 아키서스의 탑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아키서스의 투기장도 그렇고, ‘아키서스’ 들어가는 건물에 들어가서 좋을 거 없어.
하지만 그 말에 스미스는 완전히 넘어간 것 같았다.
“다 아시면서 물어본 거였습니까… 예. <고대 제국 황실의 방패>를 찾으러 온 거 맞습니다.”
“…!!”
“!”
태현과 이다비는 표정 관리를 하기 위해 애써야 했다.
뭘 찾으러 왔다고?
-태현 님. 지금….
-그래. 퀘스트가 심상치 않다.
스미스가 길드 동맹 파티를 잡고 얻은 아이템은 수상쩍은 옛날 책.
정작 길드원은 갖고 있을 때 업적부터 스탯이 부족해서 눈치를 못 챘지만, 스미스는 바로 조건을 만족시켜서 퀘스트가 떴다.
<고대 제국 황실의 방패-고대 제국 퀘스트>
고대 제국 황실의 방패는 제국 보물들 중에서 손꼽히는 보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방패를 가진 기사는 기사 중의 기사라 할 수 있을 터.
고대 제국의 기록을 이어받은 상인들에게 찾아가 방패의 위치를 찾아내라!
그 방패를 손에 넣는다면 당신은 무적이나 마찬가지리라!
보상: ?, ???
‘퀘스트가 다르군.’
스미스의 퀘스트를 읽은 태현은 상황을 대충 파악했다.
고대 제국 부활 퀘스트가 떠서 진행 중인 태현과 달리, 스미스는 그냥 좋은 방패 찾는 퀘스트였다.
그리고 그 퀘스트는….
‘내가 찾는 고대 제국 유산하고 겹쳐져 있는 게 분명해.’
퀘스트 깨는 방법이 똑같은 걸 보니, 고대 제국 유산에 방패가 있는 게 분명했다.
그걸 깨닫는 순간부터 태현의 머리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스미스를 조져야겠는데.’
[그냥 저놈 싫어서 아니냐고 카르바노그가 묻습니다.]
‘이건 객관적으로 필요한 일이야.’
태현은 쓸데없는 싸움을 좋아하지 않았다.
스미스가 한 대 때려주고 싶긴 했어도 때리지 않았던 이유는, 굳이 스미스와 싸워서 문제를 만들 이유가 없어서였던 것이다.
알아서 길드 동맹과 목숨 걸고 싸워주는데 괜히 태현과 시비가 붙으면 쑤닝만 싱글벙글할 것 아닌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계속 넘어갈 수는 없었다.
필요할 때는 싸워야 하는 법.
‘저 자식 단단한 데다가 스킬들도 사기적이라 진짜 골치 아프단 말이지….’
게다가 스미스의 말 한 마디면 목숨도 거는 저 친위대도 위협적이었다.
길드 동맹 랭커들과는 차원이 다른 충성심!
-태현 님. 조지시더라도 저쪽이 갖고 있는 지도부터 일단 얻어내야 하지 않을까요?
-아. 그렇지. 고마워. 이다비.
-별말씀을요. 조지실 때 신호 주세요.
-그래. 아직은 아니고. 일단 방심시킨 다음에….
-네. 방심부터 시키죠.
[…….]
카르바노그는 둘의 대화를 질색하며 쳐다보았다.
무시무시한 인간들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