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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514화 (1,513/1,826)

§ 나는 될놈이다 1514화

“무슨 문제라도 있어?”

“아니요?”

“그러면 다행이고.”

“…….”

태현은 매우 신경 쓰는 눈빛으로 이다비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다비가 그걸 못 알아챌 리 없었다.

평소라면 기뻤겠지만 지금은 좀 달랐다.

‘나한테 무슨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이다비가 갑자기 손잡고 골짜기에서 한턱낸다고 하는데 이상하지 않을 리 없었다.

지금 태현은 이다비한테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까 싶어서 걱정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신중하게 했어야 했는데! 신중하게 했어야 했는데…!’

이다비는 자책했다.

생각해 보니 평소 돈 안 쓰던 이다비가 갑자기 돈 쓴다고 ‘아, 이다비는 사실 구두쇠가 아니라 넉넉한 경제관념을 가진 사람이구나?’라고 반응이 바로 바뀌진 않았다.

보통은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안 하던 짓을 한다던데…?’나 ‘혹시 이다비가 나한테 보증 부탁하려고 저러는 걸까?’ 같은 의심을 하겠지!

이다비 동생들이었다면 ‘언니 병원에서 이상한 말 들었어? 언니 죽는 거야!?’ 같은 소리를 했을 것이다.

“이다비. 진짜 힘든 일 있으면 미리 말해줘. 저번처럼 말 안 하고 혼자 숨기고 있는 거면 정말 섭섭할 것 같으니까.”

“진짜 아니에요!”

“그래. 그러면 됐고.”

태현은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는 다시 힐끔 이다비를 쳐다보았다.

매우 걱정스러운 시선.

‘안 믿잖아…!!’

어쩌겠는가.

이다비 본인이 저지른 업보였다.

* * *

<고대 제국의 후계자-고대 제국 부활 퀘스트>.

고대 제국을 잇기 위해서는 막대한 황금이 필요하다.

잠들어 있는 고대 제국의 유산을 찾아라! 그 유산의 힘을 끌어낸다면 막대한 황금을….

[자유무역도시 아소탈 시에 입장합니다!]

이다비에게는 정말 낯익은 도시였다.

보통 어느 도시든 간에 기본적으로 세금이 있었다.

다른 왕국에 비해 최저로 세금을 잡고 있는 아탈리 왕국도 세금은 있는 것이다.

도시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 비용!

예를 들어 이다비가 도시에서 감자 백 상자를 사고 사과 열 상자를 판다고 쳤을 때, 이때마다 일정량의 세금을 도시에 바치게 되어 있었다.

그렇게 커다란 돈은 아니었지만 거래를 많이 하는 상인 직업들에게 이 세금은 은근히 신경 쓰이는 존재였다.

티끌 모아 태산인 만큼 저것들도 다 쌓이면 만만찮은 비용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유무역도시 같은 곳은 상인들의 오아시스였다.

물건 거래할 때 세금 안 내도 되는 곳!

“저도 여기서 많이 거래했어요. 세금이 거의 없는 수준이라서 참 편하거든요.”

“응. 그래서 얘네가 바치는 돈도 왕국에서 가장 적은 편이더라.”

“…….”

태현의 말에 이다비는 숙연해졌다.

플레이어들을 위해 세금을 안 받는 건 좋았지만, 왕 입장에서는 그만큼 세금이 적게 들어오는 것이다.

아차…!

“여기 있는 대상인 NPC들한테 단서를 찾으라고 하더군.”

[아소탈 시에 있는 대상인들은 고대 제국의 유산에 대한 단서를 갖고 있습니다.]

[이들을 설득해 단서를 얻어내십시오!]

“대상인 NPC들은 많이 까다롭죠.”

“음. 내가 아는 대상인은….”

태현은 맥크레니를 떠올렸다.

아키서스 교단 초기 때 든든한 돈줄이 되어 준 대상인 NPC!

그나마 이런 사람이라도 없었다면 아키서스 교단은 펠마스 같은 놈들만 있어서 진작 망했을지도 몰랐다.

아키서스 교단이 궤도에 오른 다음부터는 맥크레니도 만족하고 자기가 사는 도시에서 조용히 기도하며 지내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 정도면 대상인 중에서 상위 1%에 속하는 인성이네요.”

“…어? 진짜?”

“네!”

이다비가 단호하게 말하는 모습에 태현은 당황했다.

맥크레니도 사실 그렇게까지 인성 좋은 NPC는 아니었다.

이것저것 까다로운 퀘스트를 시키면서 귀찮게 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상인 NPC들은 진짜 미친놈들이 많아요.”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처럼?”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요….”

태현은 살짝 시무룩해졌다.

“보통 상인 퀘스트는 재료나 아이템 확보해서 갖고 오라는 게 많이 나오거든요.”

<딱딱하게 마른 드래곤의 새끼 발톱> 같은 아이템 갖고 오라고 하면 상인 플레이어 입에서는 욕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드래곤한테 직접 구하는 건 불가능했고, 무조건 NPC들한테 교환을 통해 구해야 하는 아이템.

그러면 이제 눈물 나는 물물교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 발톱 말인가? 좋아! <요정이 만든 푸른색 마법 실>을 주면 교환해 주겠네.

-이 실 말인가? 좋아! <드워프 대장장이가 만든 탄탄한 판금 갑옷> 열 벌을 주면 교환해 주겠네!

-이 갑옷 말인가? 좋….

-좋긴 뭐가 좋아!!!

-!??!

상인이면 골드 받고 팔아야지, 꼭 ‘절대 평범하게는 구할 수 없는 특정 아이템’을 갖고 와야 교환을 해주는 상인들 때문에 플레이어들은 피눈물을 흘렸다.

“그래도 좀 다행인 게, 태현 님이 국왕 작위를 갖고 있잖아요.”

“그렇지. 좀 쉽게 풀릴 수도 있겠네.”

태현은 이다비의 말에 살짝 기대했다.

아무래도 귀족 작위 같은 걸 갖고 있으면 NPC를 상대할 때 추가 버프를 받기 마련.

태현은 그런 걸로 따지면 최상위권의 버프를 받을 수 있었다.

[아탈리 왕국의 국왕…]

[명성이 매우 높…]

[최고급 화술 스킬…]

[업적들로 인해…]

파아아앗!

상단 건물에 들어가자마자 나오는 어마어마한 메시지창들.

그 모습에 태현은 자신감이 붙었다.

‘이 정도면 확실히….’

-폐하께서 오셨다!

-주인님을 불러!

상단 NPC들이 허겁지겁 뛰며 주인을 불러오는 모습.

[대상인 바이우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거대한 팬더 수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매우 비싸 보이는 비단옷을 입은 팬더 수인은 굼뜬 걸음으로 걸어오더니 꾸벅 고개를 숙였다.

-폐하를 뵙습니다!

“그래. 반갑다. 다름이 아니라 내가 고대 제국의 유산 때문에 왔는데 도움을….”

-예! 도와드리겠습니다.

‘오오.’

태현은 살짝 감동했다.

-폐하께서 주어진 임무를 해내신다면 말입니다.

“…….”

태현은 정색했다.

아니 이 새끼가…?

“…이 도시가 지금 이렇게 잘 돌아가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내 덕분 아닌가?”

-예! 맞습니다! 언제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근데 도움은….”

-폐하께서 주어진 임무를 해내신다면 바로 도와드리겠습니다!

“…….”

태현은 이다비에게 물었다.

-저 상인은 혹시 잡아도 되나?

-참아주세요.

대상인 바이우는 나름 인기 있는 NPC 중 하나였다.

약초 전문으로 취급하는 대상인으로, 도시에 찾아온 상인 플레이어들에게 이런저런 좋은 퀘스트들과 희귀한 약초를 보상으로 내주는 NPC!

게다가 팬더 수인이라 그런지 나름 귀여운 외모는 덤이었다.

-폐하. 저도 폐하 같은 영웅을 위해서 이 유산에 대한 기록을 그냥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면 그냥 내놔….”

-하지만 이 기록을 전해 받았을 때, 저는 맹세 또한 이어받았습니다. 정당한 임무를 통한 후계자에게만 이 기록을 드리겠다고 말입니다.

“…….”

태현은 한숨을 쉬었다.

어쩌겠는가.

아쉬운 놈이 해야지!

“…그래… 뭐 갖고 오면 되냐?”

<대상인 바이우의 기록-고대 제국의 유산 퀘스트>

대상인 바이우는 고대 제국의 유산에 관한 기록을 이어받은 NPC 중 하나이다.

정해진 맹세에 따라 바이우는 임무를 통과한 후계자에게만 기록을 물려주겠다고 선언했다.

바이우의 임무를 통과하기 위해, 굶주린 혼돈의 전사가 가진 징표를 찾아서 가져오라!

보상: ?, ???

“…어.”

[<굶주린 혼돈의 전사가 갖고 있던 징표>를 제출합니다.]

원래라면 굶주린 혼돈의 하수인을 찾아다니면서 시간 좀 보낸 다음에, 굶주린 혼돈에게 직접 힘을 내려받은 사악한 적을 쓰러뜨리고 챙겨야 하는 징표.

하지만 태현은 저번 퀘스트에서 하도 많이 쓰러뜨려서 챙긴 징표만 여럿이었다.

“이거면 되나?”

-훌륭하십니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갖고 오실 줄이야!

“지금 주머니에서 꺼냈잖아.”

바이우는 태현의 말을 무시했다. 그리고 분위기를 잡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수많은 영웅들이 고대 제국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지금, 폐하같이 자비롭고 너그러운….

“?”

[?]

-…영웅께서 이 기록을 이어받는 건 실로 행운입니다. 자. 이 기록을 이어받으십시오.

“고맙다.”

[지도의 일부분이 추가됩니다!]

[지도를 완성해서 유산의 위치를 발견하십시오!]

‘대상인들 몇 명을 찾아야 하는 거지?’

태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지도를 노려보았다.

조각조각 비어 있는 지도.

운만 좋으면 두세 명 정도만 더 찾아내도 필요한 위치를 얻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재수가 없으면….

[카르바노그가 괜찮을 거라고 응원합니다.]

‘그래. 그나마 행운 아니면 볼 것도 없는 신인데 이런 부분에서는 괜찮겠지?’

[…….]

* * *

“고대 제국 부활 퀘스트라….”

쑤닝은 매우 싫은 표정을 지었다.

길드 간부들이 의아하다는 듯이 쑤닝을 쳐다보았다.

쑤닝만큼 명함 좋아하고 직책 좋아하는 사람도 드물었다.

길드 동맹 완성되고 나서 현실에서 어디 모임 나갈 때마다 <길드 동맹 대표 쑤닝> 같은 명함 내고, 소문에 따르면 집에서 거울 볼 때마다 ‘내가 누구? 길드 동맹 대표 쑤닝’ 같은 낯부끄러운 대사도 하고 다녔….

“왜 그렇게 쳐다보지?”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고대 제국 부활 퀘스트면 좋은 거 아닙니까?”

고대 제국과 관련된 맵이나 던전, 아이템을 확인할 때면 꼭 ‘고대 제국 부활’ 키워드가 들어가곤 했다.

덕분에 게임 초반에는 몇몇 야심 가득한 랭커들이 ‘내가 고대 제국 부활 퀘스트 찾아서 시도해 본다!’ 하며 달려든 적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 고대 제국 부활 퀘스트를 진지하게 깨는 랭커는 정말 드물었다.

-이렇게 단서를 모았는데도 뭐 퀘스트도 안 뜨고 진행도 안 되고… 이거 대체 조건이 뭐지?

-아무리 해도 진행이 안 돼. 쓰레기 퀘스트인가 봐.

-이거 하다가 그냥 게임 끝나겠는데….

뭘 해도 퀘스트 진행이 안 되는 지옥 같은 난이도의 퀘스트.

달려들었던 랭커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나가떨어졌다.

그건 쑤닝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쑤닝에게는 싫어할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었다.

“그 미친놈들 기억나나?”

“아. 그 미친놈들 말입니까.”

자기들이 고대 제국 출신 죄수들이라고 주장하던 NPC들!

죄수들 주제에 고대 제국을 이을 수 있는 후계자로서의 자격을 시험하겠다고 덤벼드는 미친놈들이었다.

그 미친놈들 때문에 길드가 얼마나 피해를 입었던가.

-크하하! 성에 불을 질렀다. 이 시련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미쳤냐?!!? 미쳤냐!?!?!?

-극복해내라!

-마법사들 불러서 불 꺼!

-마력 방해 마법진을 걸었다. 마법을 쓰지 말고 극복해내라!

-…도저히 못 참겠다! 저 개자식들부터 죽여버려! 성이 타더라도 저것들부터 치워버려야겠어!

-감, 감히 우리를 공격해!? 이런 무도한 놈!

-성에 불 지른 놈이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퀘스트였다.

아직도 길드 동맹 간부들은 그 퀘스트가 무슨 퀘스트인지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옛 죄수들이 왕국 파괴하는 퀘스트였을까?

“물론 저도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다릅니다.”

“…?”

“제가 직접 얻은 단서입니다. 여기!”

길드 동맹 간부가 조심스럽게 상자를 꺼내더니 열었다.

[<고대 제국 지팡이>를 발견했습니다!]

[이는 어마어마한 유물로, 고대 제국을 상징하는…]

[……]

[……]

[굶주린 혼돈의 기운에 오염되었습니다. 건드릴 경우 저주받을 수 있습니다!]

“…야. 미친놈아. 뭘 갖고 온 거야.”

“정신 나갔냐??!”

순간 솔깃해하던 간부들은 마지막 메시지창에 정신을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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