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513화 (1,512/1,826)

§ 나는 될놈이다 1513화

“정말 괜찮은 거 맞니?”

“…네!”

힘찬 대답.

이다비는 속마음을 숨기고 즉시 대답했다.

“제가 안내할게요. 태현 님 요즘 퀘스트 깨느라 골짜기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모르시죠?”

“그렇긴 해. 골짜기가 너무 빨리 달라지기도 하고.”

골짜기의 유명한 랜드마크들.

아키서스 대신전이나 화염학파 마탑, 악마의 대장간과 예술관, 투기장 등등 같은 건물들은 골짜기에 와본 적 없는 사람들도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했다.

하지만 그런 건물들을 제외하면 골짜기는 하루마다 바뀌어가고 있었다.

중앙 광장에서는 온갖 곳에서 몰려든 플레이어들이 장사부터 시작해서 각종 이벤트를 진행 중이었다.

어제는 아키서스를 믿는 <무작위 미술> 전문 화가 플레이어들이 와서 ‘미래를 점쳐드립니다! 그림으로 미래를 점쳐드려요!’ 같은 이벤트를 벌였고, 오늘은 꽤 유명한 음유시인 길드 하나가 교단에 골드 두둑히 바치고 광장에서 콘서트를 연다고 들었다.

가장 사람이 많이 몰리는 중앙 광장에서만 이벤트가 벌어지는 게 아니었다.

광장에서 조금만 나와서 대로나 골목길로 빠져도 플레이어들이 득시글거렸다.

-손님. 행운을 시험해 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아키서스의 축복을 받은 행운의 구리 상자가 단돈 1실버!

-아니. 됐거든요.

-그러면 여기서 주사위 굴려서 돈 놓고 돈 가져가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다 이렇게 수상하진 않았다.

골짜기에 행운에 눈이 먼 미친놈들만 몰려 있던 시절은 아주 예전.

지금은 멀쩡한 플레이어들이 더 많았다.

-드워프 대장간으로 모일 대장장이 구합니다! 지금 옆에 건물 새로 나왔는데 여기에 대장간 올려서 같이 쓸 겁니다!

-뭐!? 대장간!??!

-악마의 대장간이 아니라 드워프 대장간!! 기계공학이 아니라 대장장이 기술입니다! 드워프 NPC들이 하는 그거요!

-아아… 다행이다! 깜짝 놀랐네.

-저도 가겠습니다!

-황제의 재봉소 근처에 자리 잡을 재봉사 파티 구합니다!

-아키서스의 전투악마 훈련소에서 악마 훈련시키실 분 구합….

골짜기 안은 물론이고, 골짜기를 지키는 삼중성벽 밖으로도 빠르게 확장해 나가고 있는 상황.

-먹을 것. 많이 줘야 한다.

-알겠으니까 여기 돌 좀 치워주세요.

-야. 거인 NPC랑 같이 건설하는 게 잘하는 짓일까? 난 아직도 무서운데….

-빨리 하려면 어쩔 수 없어! 여기에 바로 건물 지은 다음 퀘스트 깰 거라고.

골짜기는 힘차게 발전하는 열기로 뜨거울 정도였다.

그런 만큼 태현이라고 골짜기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모두 파악하고 있진 않았다.

오히려 퀘스트 깨고 골짜기 돌아올 때마다 ‘아니 뭐 이런 게 새로 생겼어?!’ ‘아니 뭐 이런 걸로 장사를 하고 있어!?’ 하며 놀랄 때가 더 많았던 것이다.

“걱정 마세요. 제가 안내해드릴 테니까.”

“다 좋은데 이다비… 나 진짜 괜찮은데. 나 골드 있어. 왕국 운영에 골드 많이 들어가긴 해도 내가 갖고 다니는 골드가 없진 않….”

“제가 산다니까요!”

“진짜 괜찮은데….”

* * *

이다비는 태현을 붙잡고 골짜기를 돌기 시작했다.

[<아키서스의 예술관>에 입장했습니다!]

[대륙 곳곳에서 가져 온 아름다운 예술 작품들로 인해 강력한 버프가…]

[……]

[<아키서스의 성스러운 동물원>에 입장했습니다!]

[……]

[……]

골짜기 플레이어들은 다 알고 있는 최적의 버프 루트.

골짜기를 빠르게 돌면서 받을 수 있는 버프 다 받은 다음 퀘스트 깨러 나가는 길!

이다비도 물론 그걸 꿰고 있었다.

‘잘하네.’

이다비의 뒤를 쫓으면서 태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태현 님. 여기 이 포장마차가 광장에서 제일 인기 있는 곳 중 하나에요.”

“낯이 익은데?”

강철로 만든 이동형 포장마차.

아무리 봐도 태현이 예전에 만들어서 파워 워리어 길드한테 줬던 것과 비슷하게 생겼다.

“그야 태현 님이 예전에 만들어주셨던 걸 모델로 추가 생산한 거니까요. 길드 보물 중 하나에요.”

파워 워리어의 파벌 중 하나인 (방랑)요리단.

처음에는 팝콘 하나로 시작했던 이들이었지만, 점점 성장해서 어디서든 간에 자기 실력 하나로 돈을 벌어오는 고수들이 되었다.

이들이 강철포장마차 하나 끌고 퀘스트 지역에 나타나면 주변 요리사들이 긴장할 정도!

“길마님 오셨는데요??? 줄 치워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야. 오바하지 마. 줄 치웠다가 길마님한테 쌍욕 먹어.”

포장마차 안에서 프라이팬을 놀리고 있던 요리사 간부, 다시다는 부하에게 경고했다.

예전에 이다비 왔다고 과잉충성으로 줄 선 사람들 치웠다가 쌍욕 먹은 놈이 있었던 것이다.

-평판 안 좋아지면 한순간에 망하는 장사인데 뭐하는 짓이야!

-죄, 죄송합니다!

“그런데 이다비. 이렇게 줄이 긴데 괜찮아?”

태현은 평소 이다비가 하던 말들을 떠올렸다.

-시간이 곧 돈인데 줄 긴 곳에 뭐하러 서있어요? 빨리 움직여요.

-하, 하지만…! 저기 맛집이라고 소문났다고! SNS에서도 다 저기 가봤다고 하는데! 에랑스 왕국 온 김에 들러도 되잖아! 나도 마카롱을 먹어보고 싶어!

-현실에서 시켜서 드세요.

-현실에서는 부끄럽다고…!

퀘스트 때문에 들린 에랑스 왕국 도시에서 케인이 줄 서려고 하자 이다비가 바로 구박을 했던 것이다.

“…맛있는 걸 먹기 위해서면 줄을 설 수도 있지 않나요?”

“네가 서고 싶다면 상관없긴 해.”

케인이 들었다면 뒷목 잡았을 소리였다.

줄이 점점 사라지고, 마침 둘의 차례가 왔다.

이다비의 모습을 본 길드원들은 눈빛을 교환했다.

-길마님 오셨다.

-실수하는 새끼는 그냥 저기 골짜기 위로 올라가서 뛰어내려라.

-…아니 김태현 선수도 있는데요???

-???

-실수하는 새끼는 그냥 캡슐 버리고 게임 접어라.

-…!

“…내가 잘 아는 건 아니지만, 포장마차치고 분위기가 너무 엄숙한 것 아니야?”

태현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분명 방금까지는 시끄럽게 떠들며 흥겹던 분위기가, 갑자기 무슨 초일류 음식점에 온 것처럼 조용하고 엄숙하게 바뀌었던 것이다.

앞에 있던 요리사 플레이어가 강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큼 요리에 진지하게 목숨을 걸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 주십시오!”

“…라면이잖아?”

“라면도 목숨을 걸고 끓이고 있습니다!”

“그, 그렇군.”

이다비는 쪽팔려서 얼굴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 있는 곳으로 데리고 온 내가 바보였어….’

“어떤 라면이 좋으십니까? 해물부터 시작해서 괴수 고기 튀김까지 다양하게 가능합니다.”

“난 기본으로.”

“저도요.”

물이 끓고 얼큰한 냄새가 감돌았다.

요리사들 요리 스킬이 높은 만큼 요리는 순식간에 완성되었다.

꼬들꼬들하게 익힌 면발을 따로 빼서 그릇에 담은 다음 국물 붓고 위에 고명을 얹는 솜씨.

태현은 감탄했다.

‘파워 워리어가 이 정도였나?’

태현 안에서 파워 워리어 이미지는 아직 수상쩍은 사기 치고 다니는 길드원들이었던 것이다.

길드원들이 들으면 매우 억울해할 오해!

“얼마지?”

“돈은 괜찮습니다. 길마님. 길마님한테 돈을 받을 수는 없지요.”

“…….”

이다비는 매우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 이런 길드원들의 호의는 감동적으로 받아야 했지만….

‘내가 사려고 데리고 온 건데…!’

“역시. 이다비. 네가 산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이런 곳에 오면 그럴 필요가 없지. 훌륭해.”

“아니거든요!?!”

태현이 이상한 오해를 하자 이다비는 울고 싶어졌다.

“여기 돈 받아!”

“예!? 길마님 왜 그러십니까!! 저희에게 무슨 문제라도!?”

“그냥 좀 받으라고!”

* * *

그 후로도 이다비는 태현을 끌고 다니면서 지금 인기 있는 골짜기의 명소들로 향했다.

하지만 별로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여기! 여기 좋아요. 최고급 마법 스킬 갖고 있는 랭커가 하는 가게인데, 보석 소모해서 꽤 오래 가는 버프 걸어주는 곳이에요.”

“뭐? 진짜? 그런 랭커가 왜 골짜기에 있는 거지?”

“…골짜기가 좋아서요?”

“그럴 수도 있었군. 생각도 못 해봤어.”

[<강소림의 보석가게>에 입장하셨습니다!]

“어서 오… 끼아악!”

“???”

“죄, 죄송합니다. 너무 의외의 손님이라서.”

강소림은 헛기침을 하며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설마 골짜기 주인이 직접 방문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세금 내고 자기가 땅 사서 가게 운영하고 있었지만, 영주를 대면하는 건 언제나 긴장되는 게 사실.

다른 길드들처럼 김태현이 갑질을 하진 않았지만….

‘최대한 공손하게. 조심해야지.’

영주의 기분을 거슬러서 좋을 게 없었다.

“보석 내면 그거 사용해서 버프 걸어준다는데….”

“네. 맞습니다. 다만 보석은 직접 내셔야 하고, 좋은 보석일수록 가격이 올라갑니다.”

“그렇군.”

“제가 낼게요.”

이다비는 주먹을 꼭 쥐며 말했다. 태현은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아이템을 꺼냈다.

“나는 여기 하급 구리 주괴로 부탁하지.”

“…….”

“…….”

강소림과 이다비 모두 황당하다는 듯이 태현을 쳐다보았다.

‘뭔…?’

‘아니…?!’

이다비는 다급하게 속삭였다.

“왜 구리를 꺼내세요!? 효과도 별로 안 좋을 텐데?!”

“좋은 보석일수록 가격 올라간다잖아.”

“저 그 정도는 낼 수 있거든요!!”

“에이. 괜찮아. 난 이 정도로도 충분해. 안 그래도 다른 스킬들 많다고.”

“진짜 괜찮다니까요!? 아. 진짜. 이건 무시하세요! 여기 다이아몬드 꺼낼 테니까 버프 걸어줘요!”

“이다비. 그건 좀 너무 비싼….”

“저 아다만티움도 있거든요?!”

“…….”

둘의 대화에 강소림은 속으로 생각했다.

‘둘이 밖으로 꺼졌으면 좋겠다.’

둘의 대화를 보니 유난히 옆구리가 쓸쓸하게 느껴졌다.

* * *

그 이후로도 이다비는 계속 과소비를 하려고 했지만 태현 때문에 실패했다.

-아냐. 괜찮아. 난 이 제일 싼 거면 괜찮아. 이거 사줘.

-이다비. 그거까진 필요 없을 거 같아. 그냥 사지 말자.

-진짜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니까?

“으으읏….”

이다비는 앓는 소리를 냈다.

골짜기에서 이다비가 괴로워하고 있다는 소식이 귀에 들어왔는지, 길드 간부들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길마님.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다른 길드들이 시비라도 걸어왔습니까?

-문제가 있다면 알려주십시오. 이제 저희 길드도 절대 만만치 않습니다. 누가 시비라도 걸었다면 강하게 본때를 보여줍시다!

-…나하고 친한 사람이 있는데, 내가 돈 쓰려고 하면 돈을 못 쓰게 막아.

-…….

-…….

-…….

길드 간부들은 서로 쳐다보았다.

‘자랑 아니냐? 욕해도 되나?’

‘참아. 길마잖아.’

‘길마님하고 친한 사람이 누가 있지? 없지 않나?’

‘김태현 선수 있잖아.’

‘아. 김태현 선수. 김태현 선수면 길마님보다 골드 많을 텐데.’

‘이건 양심의 문제지. 솔직히 김태현 선수한테 우리가 받아먹은 게 얼마냐. 그거 때문에 미안해서라도 저러시는 거겠지.’

파워 워리어 길드 성장의 일등공신은 솔직히 태현이었다.

그건 간부들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었던 것이다.

‘근데 우린 딱히 미안해한 적이 없잖아?’

‘…그렇게 말하니까 우리가 되게 쓰레기 같잖아….’

‘우, 우린 쓰레기가 아니야. 단지 조금 양심이 없고 염치가 없었을 뿐이지.’

간부들은 반성했다.

그리고 동의했다.

‘길마님을 돕자. 길마님을 도와서 뭐라도 좀 해드리자고.’

‘그래. 그러면 죄책감이 좀 덜할 거 같아.’

-길마님! 저희가 돈 팍팍 쓸 기회를 만들어 드릴 테니까 바로 오십….

-아. 나 퀘스트 해야 해서 골짜기 밖으로 나왔는데.

-…상관없습니다. 위치만 불러주십시오!

-??

이다비는 간부들의 반응에 당황했다.

왜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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