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507화
‘아니… 정말?’
[카르바노그도 의아해합니다.]
태현과 카르바노그는 좀 당황스러워했다.
이제까지 정말로 사디크를 인정한 적이 없었나?
‘카르바노그. 내가 말은 이렇게 해도 내심 사디크의 권능을 많이 쓰지 않았나? 그게 인정 아닌가?’
[카르바노그가 동의합니다. 화신이 말이 좀 험해서 그렇지 사디크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하지만 둘이 아무리 그렇게 떠든다고 하더라도 사실이 달라지진 않았다.
둘은 이제까지 사디크를 진심으로 인정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덕분에 사디크의 권능도 더욱 강해질 기회를 갖지 못했던 거고!
‘…앞으로 사디크한테 좀 상냥해져야겠군.’
태현은 검을 똑바로 들어 올렸다.
이글거리는 화염이 주변을 마치 용광로처럼 만들고 있었다.
<사디크 영겁의 화염> 스킬로 인해 강력해진 검의 힘.
솔직히 말해서 인정할 수밖에 없는 힘이었다.
‘방금 들어간 공격이 생각보다….’
상대 방어를 그냥 녹여 버리고 묵직한 스킬들을 연타로 꽂아버리는 폭발적인 힘.
사디크 성기사단장의 힘이 이 정도였을 줄이야.
-크… 크으… 크으악….
[강한 데미지로 인해 굶주린 혼돈의 전사가 가진 회복력이 느려집니다!]
[사디크의 화염이 굶주린 혼돈의 전사를 불태웁니다!]
[……]
충격이 어찌나 컸는지 굶주린 혼돈의 전사는 바로 일어나질 못했다.
육체적인 타격도 타격이었지만 정신적인 타격도 심각했다.
얕보고 있던 모험가에게 힘으로 밀리다니.
“김… 김태현!”
센트맨은 자신도 모르게 촉촉해진 목소리로 태현의 이름을 외쳤다.
“?”
“고맙다…!”
“??”
태현은 뭔 소리를 하나 싶었다.
뒤에 있던 랭커들은 정말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소곤거렸다.
“김태현 저놈 대체 센트맨을 왜 구해준 거지?”
“그래도 인력이잖아. 없는 것보단 낫겠지.”
“케인 챙겨주는 것도 그렇고 김태현이 은근히 호구 같을 때가 있어.”
그랬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 눈에는 태현이 센트맨을 구해주기 위해 돌격한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빈틈이 있어서 때린 것뿐인데.’
정작 당사자인 태현이 들으면 어이없는 소리였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
<제국 은신 광선 장난감>까지 사용해서 옆으로 은밀히 접근했으니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
“너희들은 다 쓰레기들이야! 니들이 그러니까 김태현한테 밀리지!”
“아니 저 새끼가 기껏 목숨 건졌더니 죽으려고 환장을 했나.”
“야. 참아.”
랭커들은 살짝 빡쳤지만 참았다.
지금 센트맨과 싸울 시간이 아니었으니까.
-날… 감히… 내려다보다니… 용서할 수 없다!
[굶주린 혼돈의 전사가 분노합니다!]
전사가 다시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전사가 움직이기 전에, 태현이 먼저 검을 찔러가고 있었다.
전사가 회복하는 동안 태현도 스킬 쿨타임이 돌아오는 걸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사디크 영겁의 화염!
[사디크 영겁의 화염을 시전합니다!]
[영겁의 화염이 중첩됩니다!]
[점점 더 뜨거워집니다!]
[주변으로 열기가 치솟습니다. 발화 확률이 늘어납니다!]
[검술 스킬의 데미지가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화염의 기운이 강해질수록 검술 스킬의 데미지가 올라갑니다!]
몇 번 쓴 것만으로 태현은 사디크 성기사단장을 어떤 식으로 굴려야 할지 감이 왔다.
‘주변을 최대한 뜨겁게 만들어야 한다.’
온몸에서 화염의 기운을 뿜어내고, 또 그 기운으로 주변이 뜨거워지면 거기서 다시 버프를 얻는 사이클을 돌리는 직업!
즉 사디크 성기사단장은 싸우면 싸울수록 주변을 불바다로 만드는 직업이었다.
참 사디크 교단스러운 전투방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위대한 화염의 검술!
[위대한 화염의 검술을 시전합니다!]
[……]
[위대한 화염의 검술에 기록된 비전 검술 스킬들을 사용 가능합니다!]
-첫 번째 공격 멸염! 두 번째 공격 창염! 세 번째 공격 맹염!
꽝, 꽝, 꽝, 꽈르르르릉!
“…어?”
“김, 김태현! 이거 괜찮은 거 맞냐!?”
뒤에서 흥미진진하게 쳐다보고 있던 랭커들은 기겁했다.
태현의 얼굴과 몸이 화염으로 온통 휩싸여서 보이지 않을 정도였던 것이다.
그만큼 미친 듯이 늘어난 화염의 기운!
통로도 꽤 넓은 편이었지만 이글거리는 열기가 코앞까지 닥쳐왔다.
[열기가 증폭됩니다!]
[체력이 빠르게 감소…]
[허기가 빠르게…]
[오랫동안 열기에 노출될 경우 데미지를 입을 수 있습…]
“!?”
랭커들은 다시 한번 기겁했다.
여기 있는 랭커들은 장비에 화염 내성 옵션 정도는 달고 다니는 것이다.
강력한 화염 마법을 직격으로 맞는 게 아니라면 이 정도 열기는 견딜 수 있어야 하는데??
“김태현! 열기 줄여! 열기 줄여줘!”
“뭐?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알아서 버텨! 니들이 초보자냐?”
태현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맞는 말이었다.
초보자도 아니고 랭커쯤 됐으면 자기 목숨 자기가 챙겨야 하는 것이다.
하물며 지금 상대와 미친 듯이 치고받고 있는데 그걸 어떻게 한단 말인가!
랭커들은 뒤늦게 그걸 깨닫고 얼굴을 붉혔다.
그렇긴 한데…!
“주문서 꺼내!”
“사제 데리고 왔어야 했다니까.”
“사제를 어떻게 데리고 와? 싸우다가 죽을 텐데.”
-사디크 성기사들, 내가 도와주겠다.
이데르고 교단의 사제 NPC가 나섰다.
랭커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기분이야 좀 찜찜하지만 일단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게 다행….
[이데르고의 역병 방어막이 열기에 녹아버립니다!]
[이데르고의 청색 역병이 열기에 죽어버립니다!]
[……]
[……]
-…….
-…….
이데르고 사제들은 당황한 표정으로 서로 쳐다봤다. 예상 밖의 상황이었던 것이다.
“뭐하는 거냐?!”
-아… 아니. 이봐! 열기 좀 줄여줘!
이데르고 사제들도 이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다.
교단이 망해버린 사디크 성기사 주제에 이렇게 강력한 화력을 뽑아낼 줄이야?
뒤에서 외쳤지만 태현은 무시했다. 사실 듣고 있을 여유도 없었다.
궁지에 몰린 굶주린 혼돈의 전사가 발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혼돈의 칼날이 작렬합니다!]
[회피할 수 없습니다!]
[데미지가 들어옵니다.]
[사디크의 화염이 상처를 회복시킵니다!]
[화염의 기운을 소모해 재생합니다!]
‘사기 스킬 아니야 저거?’
혼돈의 전사가 쓰는 스킬은 어이가 없는 수준이었다.
그냥 거리 있는 상태에서 허공을 향해 검을 휘두르면, 스킬이 시전되고 태현에게 그대로 작렬했다.
아무리 반사신경이 좋고 컨트롤이 좋아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수준!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더욱더 공격한다!’
극에 다다른 공격은 가끔 방어가 되는 법.
태현은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부었다.
[세 번째 공격 맹염을 시전합니다! 사디크의 힘이 담긴 권능 검술입니다! 화염의 힘이 사납게 적을 물어뜯습니다!]
[연속으로 비전 검술 스킬을 성공했습니다! 더욱더 데미지가 올라갑니다!]
-감히… 감히!
-치명타 폭발!
[치명타 스택을 전부 소모합니다!]
콰아아아아앙!
-사디크의 맹격!
태현의 신형이 사라지더니 화염으로 이글거리는 잔상과 함께 그대로 혼돈의 전사에게 들이박았다.
사방이 찢어지는 굉음과 함께 혼돈의 전사가 통로 벽을 부수고 그대로 파묻혀버렸다.
-크악! 크아아악!
[상대의 힘 스탯이 매우 높습니다!]
[붙잡힐 경우…]
-이글거리는 영혼! 화염 혈관!!
[화염의 힘이 강력하게 당신을 보호합니다!]
태현을 붙잡고 부수려던 혼돈의 전사가 그대로 손을 놓아버렸다.
지금 수십 개의 스킬들을 성공적으로 적중시킨 태현은 그야말로 살아 있는 화염의 정령왕 같은 존재였다.
아무리 굶주린 혼돈의 전사가 교단 NPC들 상대로 카운터 같은 존재라고 하더라도, 이 상황에서 압도할 수는 없었다.
[상대의 HP가 10% 밑으로 떨어집니다!]
[약한 적을 발견한 사디크의 힘이 더욱더 강해집니다!]
-내 꼭두각시! 저놈을 막아라!
혼돈의 전사는 굴욕을 참고 센트맨을 불렀다.
시간을 벌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해야 했던 것이다.
“으아악! 김태현! 미안하다!”
“비켜!”
태현은 검을 휘둘러 센트맨을 후려갈겼다. 지금 봐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이다.
꽝!!!
[HP가 0으로 되어 사망…]
[<두 개의 목숨 주문서>가 발동됩니다!]
[5%의 HP로 부활합니다!]
[굶주린 혼돈의 지배가 끝납니다!]
“!?!?!?”
센트맨은 자기가 무슨 일을 당한 건지도 몰랐다.
뭔가 번쩍하더니 옆으로 쾅! 하고 날아갔는데…?!
‘내, 내 주문서!’
목숨처럼 소중한, 죽었을 경우 부활시켜주는 사기적인 주문서.
그 주문서가 그냥 써지다니!?
센트맨은 이 상황을 기뻐해야 할지 화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 눈만 깜박였다.
“김태현 놈 저기서 힘조절을 했다고??”
“대단한데?”
“아, 아니야! 미친놈들아! 내가 그냥 잘 맞은 거야!”
“센트맨 저놈 드디어 미친 거냐?”
“뭘 잘 맞아? 잘 맞는 기술도 있냐?”
“…….”
일단 이건 화내도 될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 태현은 굶주린 혼돈의 전사를 완전히 몰아붙이고 있었다.
-이럴 수가! 이럴 수가!! 내가! 내가 아키서스도 아니고, 그렇게 얕보던 사디크의 성기사한테!!!
“…….”
듣고 있던 태현은 복잡한 기분으로 외쳤다.
“사디크의 힘이다!”
꽈르르르릉!
지독할 정도로 퍼진 화염의 기운이 검 끝에 그대로 맺혔다.
단순히 시뻘겋게 달아오른 수준을 넘어, 거의 새하얗게 백열(白熱)된 검의 힘.
[화염의 힘이 작렬합니다!]
[굶주린 혼돈의 전사가 쓰러집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사디크의 권능들이 성장합니다!]
[아이템을…]
-널… 인정한다…!
굶주린 혼돈의 전사는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흩어졌다.
태현은 숨을 내쉬었다.
‘힘든 상대였다.’
굶주린 혼돈의 전사들은 각자 레벨이 제각각이었다.
생전에 어떤 영웅이었든 간에 혼돈과 계약하는 순간 이름을 잃어버리고 놈의 꼭두각시가 되는 것이다.
지금 상대한 게 어떤 영웅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계속 움직이자! 이런 전사 놈이 몇 놈이나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위험하다!”
“그, 그래!”
-…그, 그런데 사디크 성기사.
“?”
이데르고 교단의 NPC가 말을 걸자 태현은 고개를 돌렸다.
-어… 지금 화염을 좀 줄여야 하지 않나?
이데르고 교단의 NPC가 저렇게 말하는 것도 이유가 있었다.
지금 주변은 완전히 개박살이 나 있었던 것이다.
나름 넓었던 통로는 부숴지고 불이 붙어서 활활 타고 있었고, 벌써 뒤까지 불이 번지고 있었다.
이쯤 되면 굶주린 혼돈이 입힌 피해가 큰 건지 태현이 사디크 스킬 쓰면서 주변에 입힌 피해가 큰 건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였다.
“안 된다! 사디크 님의 힘을 지금 없애면 적들과 어떻게 싸우라고!”
-그, 그건 그런데 이게 지금 우리 교단의 보물로 만든 은신처인데, 여기가 파괴되면 나중에 회복을….
“지금 굶주린 혼돈을 잡는데 그런 소리를 하는 건가? 너! 굶주린 혼돈의 첩자인가?!”
[최고급 화술 스킬을…]
[……]
[……]
-!!
-설마…!?
다른 이데르고 교단 NPC들도 깜짝 놀라서 시선을 돌렸다.
굶주린 혼돈이 첩자를 잘 심는 건 유명한 일 아닌가!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러면 내가 하는 일을 방해하지 마라!”
-예….
어느 순간 이데르고 사제들은 자기들이 명령하는 대신 태현의 명령을 듣고 있었다.
실로 무시무시한 카리스마였다.
* * *
“…하라는 대로 해서 왔는데 저거 불 난 거 아닌가??”
“그… 그냥 들어가도 되나?”
모여 있는 플레이어들은 웅성거렸다.
태현이 안내한 이데르고 교단의 은신처가 뭔가 이상했던 것이다.
아무리 봐도 불이 난 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