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503화
“정정당당 같은 소리 하고 앉아 있네 이 자식이.”
앨콧은 어이없다는 듯이 센트맨을 쳐다보았다.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없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센트맨은 후자였다.
길드 동맹 길드원들 상대로 싸울 때는 비겁한 짓이란 짓은 다 해놓고 이제 와서 뭔 정정당당이란 말인가!
전혀 안 통한다는 걸 깨달은 센트맨은 얼굴을 붉히며 외쳤다.
“이미지 신경 안 쓰는 네놈들이야 원래 그렇다 쳐도 김태현도 그럴까! 김태현은 이미지 신경 써야 할 텐데!”
“그냥 들어주니까 개소리를 두 배로 하고 있네. 야. 김태현이 너희 같은 놈들 밟아버리면 사람들이 잘했다고 칭찬을 하지 정정당당하게 일대일로 안 밟았다고 칭찬을 하겠냐?”
앨콧은 어이가 없어서 그렇게 말했다.
옆에 있던 다른 길드 동맹 길드원들도 외쳤다.
“김태현이 오스턴 왕국에서 온갖 개짓거리란 개짓거리는 다했는데도 지금 이미지 봐라!”
“저놈은 뭔 짓을 해도 팬들이 좋아해 준다고!”
“…….”
듣고 있던 태현은 길드 동맹 길드원들을 빤히 쳐다보았다.
길드원들은 뒤늦게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울컥한 바람에 하면 안 되는 말까지 해버린 것이다.
“…큭.”
상황이 어쩔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센트맨은 파티원들에게 말했다.
-어쩔 수 없다. 싸우자.
-뭐 미쳤냐?
-정신 나갔냐!?
-돌아버렸냐??
-…내 말을 들어봐라. 죽을 때까지 싸우자는 게 아니야. 적당히 싸워서 포위망을 뚫자는 거다. 어차피 가만히 있어봤자 죽기만 더 하겠냐!
-으윽….
센트맨의 말에 다른 파티원들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입맛을 다셨다.
확실히 지금 포위망 라인업을 보니, 가만히 서 있으면 그냥 맞아 죽을 라인업이었다.
어떻게든 움직여서 뚫어야 한다!
-누가 정면을 맡아야 하지 않아? 저기 랭커들 내버려 두면 바로 우리 뒤를 잡을 텐데.
-내가 맡겠다.
-역시 센트맨이야.
-믿고 있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 뭘 그리 칭찬하고 그래? 파이팅. 센트맨.
‘개XX들이….’
센트맨은 파티원들을 욕했다.
원래 이런 놈들인 줄은 알고 있었다지만 새삼스럽게 느끼니 열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이게 문제였다.
잘 나갈 때는 별문제가 없었지만 문제 생기면 바로 자기들끼리 다투는 것이다.
“저것들 왜 잠잠하지?”
“귓속말로 어떻게 해야 할지 떠들고 있겠지.”
“…!”
태현의 말에 옆에 있던 랭커들은 감탄했다.
1초도 고민 안 하고 상대가 뭘 하고 있는지 바로 알아맞히는 저 노련함.
대체 저런 플레이어들을 몇 명이나 패왔기에 바로 맞히는 게 가능하단 말인가.
‘진짜 많이 팼나 보군.’
‘PK의 장인이지 솔직히.’
“움직여!”
그러는 사이 센트맨과 파티원들은 행동을 개시했다.
모여 있던 랭커들은 궁금해했다.
과연 저 약탈자 놈들은 대체 어떤 식으로 공격을 시작할까?
‘여기 모여 있는 랭커들 상대로는 어지간한 스킬 써봤자 흠집도 안 날 텐데.’
‘그렇다고 시간 오래 걸리는 거 쓰면 자살행위일 거고.’
“제발! 이번에는 멀쩡하게 터져다오!”
“…?!”
콰콰콰쾅!
센트맨과 파티원들이 꺼내서 던진 건 바로 폭탄이었다.
[<실험용 무쇠 폭탄>이 폭발합니다!]
[<실험용 무쇠 폭탄>이 폭발…]
[<짙은 연막을 뿌리는 연습용 폭탄>이…]
[<짙은…]
“됐다!! 안 터졌다!!”
센트맨과 파티원들은 기쁜 목소리로 외쳤다.
폭탄을 쓰면서 가장 위험한 건 바로 던져지기 전에 폭발하는 일이었다.
폭탄은 아무리 뛰어난 기계공학 대장장이가 만들어도, 본인의 기계공학 레벨이 높지 않으면 폭발할 확률이 대폭 높아지는 것이다.
하지만 폭탄은 안 쓸 수가 없었다.
너무….
쓸 만했으니까!
MP 소모 하나 없는 아이템이 주변에 광역 딜부터 시작해서 각종 상태 이상 효과까지.
연속으로 싸울 일 많은 약탈자 플레이어들에게 폭탄 아이템은 각오하고 쓸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는 그래도 ‘그딴 걸 쓸 바에는 그냥 비싸도 주문서 쓴다’였지만 요즘은 이제 ‘운도 실력이지 폭탄 쓴다!’로 바뀌었다.
그리고 오늘.
그사이 실패한 보상이라도 해주는 것처럼 행운이 센트맨을 도와주고 있었다.
“젠장. 폭탄 금지시켜야 해!”
“유엔은 뭐하는 거야! 판온에서 폭탄을 왜 금지시키지 않는 거지?!”
폭탄에 트라우마 있는 길드 동맹 길드원들은 부들부들 떨었다.
솔직히 준비만 잘하면 폭탄은 막아내기 어렵지 않았지만, 기분이 매우 나빴다.
저 폭탄으로 시작되는 현란한 스킬 콤보들만 떠올려도….
“그런데 저놈들은 폭탄을 어떻게 갖고 있는 거지?”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이 다른 길드들에 판매하는 거 훔치거나 뺏어오거나 뇌물 주고 빼돌리거나 하지.”
“…….”
앨콧의 설명에 태현은 감탄했다.
폭탄이 저 정도까지 인기가 좋아질 줄이야.
어느 누가 예상을 했겠는가?
“잡아! 저 미꾸라지 같은 놈들 놓치지 마!”
“도륙을 내버리겠다!”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예상한 대로 폭탄과 연막탄을 던지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포위망을 뚫고 도망치기 위해서!
그리고 파티장인 센트맨은….
가장 뒤로 도망치고 있었다.
“!??”
“야!! 네가 저 랭커들 상대해 줘야지!”
“…….”
센트맨은 무시했다.
원래부터 파티원들을 먹이로 주고 도망칠 생각이었던 것이다.
‘내가 미쳤냐? 랭커들하고 혼자서 싸우게?’
일대일도 아니고 그런 짓을 왜 한단 말인가.
뒤쪽은 비교적 포위망이 약했으니 바로 뚫고 도망칠 수 있….
“왔냐?”
“너 아까 누구 누구 욕했냐?”
“!??!”
그러나 뒤에도 랭커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센트맨은 당황해서 순간 멈칫했다. 대체 왜 여기에 랭커들이?
“야. 니가 하는 짓을 다른 사람들이 모르겠냐??”
“파티원들 앞으로 던지고 뒤로 도망치는 건 고전 중의 고전이야 이 자식아!”
랭커들은 태현의 명령을 받고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먹잇감을 찾은 이들은 사납게 덤벼들었다.
“아… 안 돼!”
* * *
태현의 명령을 받은 랭커들은 죽이진 않았다. 포로로 잡았을 뿐.
[포로 상태로 변합니다!]
[모든 능력치가…]
[……]
[……]
“야! 귀찮게 하지 말고 빨리 튀어나와라!”
“너희들 방송하는 거 다 봤어 이 새끼들아! 퀘스트 날로 먹으려고 왔으면 방송은 하지 말아야지. 양심 있냐? 방송 끄고 숨는다고 해서 못 찾을 거 같아? 나와!”
랭커들은 산맥을 돌아다니면서 남은 파티들을 불렀다.
센트맨 파티가 개박살이 난 걸 본 다른 파티들은 기겁해서 숨었지만, 숨는다고 숨어지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이들 중 몇몇은 습관적으로 개인 방송까지 하고 있었던 것이다.
파티원들 이름하고 구성 아는 순간 찾는 건 매우 쉬워졌다.
“동굴 안에 있는 거 안다! 불 지르기 전에 튀어나와!”
“아, 알겠다고! 우리도 김태현 파티에 참가하려고 했어! 고민하고 있었던 거야!”
“아까 메시지 보내서 엿먹으라고 한 놈이 말은 잘하네. 앞으로 와 이 자식아!”
“김태현이 이래도 돼!? 김태현이 이래도 되냐고!”
“웃기는 소리 하고 있네. 김태현은 원래 이랬어 멍청한 자식들아!”
길드 동맹 길드원들은 포로로 잡힌 플레이어들을 발로 찼다.
아주 헛소리를 대놓고 하고 있지 않은가.
김태현은 원래 이것보다 더 심했는데 무슨!
“대충 다 모은 것 같군.”
“근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
자리에 모여 있던 랭커들은 의아해했다.
솔직히 저렇게 파티 하나하나 다 모아야 싶었다.
이미 전력은 충분한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뭐, 불필요할 수도 있긴 하겠지. 근데 나중에 와서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잖아. 적이 생각보다 강할지도 모르니까.”
“그거야 그렇지만….”
“김태현도 생각이 있었겠지.”
랭커들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인원 많아서 경험치 나눠야 하는 건 좀 배가 아팠지만, 위험한 것보다는 든든한 게 나을 테니까.
“이동! 산맥 수색 들어간다!”
“야. 너 버프 안 거냐?”
“그거 쿨타임 길어서 아껴두려고. 이렇게 인원 많은데 뭔 일 있겠냐. 파이토스 사제들도 뒤에 있는데.”
대규모 파티로 움직이는 만큼, 랭커들은 조금 방심하고 있었다.
솔직히 무슨 문제가 생기더라도 이 정도 인원이 있는데 괜찮지 않을까?
…하지만 그 생각은 곧 틀렸다는 게 드러났다.
[사악한 마계의 기운이 휘몰아치기 시작합니다!]
[악마들이 숨어 있는 <백야숲 산맥 오솔길>을 발견했습니다!]
“적 발견!”
“각자 위치로!”
“우리 뒤인데 우리까지 움직여야 하나? 우리까진 공격 안 들어올 거 같은데.”
“야. 일단 움직여. 파티들이 몇 개인데 괜히 욕먹기 싫다.”
[얼음 전사들이 나타납니다.]
‘얼음 전사?’
‘이름이 좀 만만해 보이는데.’
메시지 창을 본 플레이어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기본적으로 이름이 짧고, 수식어가 적으면 약할 확률이 높았다.
보통 강한 놈들은 <마계에서 수석을 해먹고 공작의 부관 자리를 갖고 있는….> 같은 이름을 갖고 있는 것이다.
겉모습도 그리 강해 보이지 않았다.
청색 중갑옷으로 온몸을 감싸고, 몸에서 냉기를 뿜어내고 있긴 했지만 판온에서 이 정도면 무난한 편인 것이다.
가장 앞에 있던 파티원들도 비슷하게 생각했다.
“우리가 먼저 공격하자!”
“꼭 앞장설 이유가 있나?”
“야. 지금 보는 눈이 몇 개인데…. 김태현이 방송 안 해서 그렇지 지금 이거 보고 있는 인원들 합치면 어마어마할걸?”
김태현이야 방송을 안 켰다지만 여기서 개인 방송 진행 중인 플레이어들만 해도 수십 명이 넘을 것이다.
평소보다 몇십 배 많은 관심이 들어오는 건 덤이었고.
그런 퀘스트에서 주목을 받는 건 누구나 꿈꾸는 일 아닌가.
“확실히….”
“좋아. 들어간다!”
-단단한 결의, 두툼한 방패, 끓어오르는 갑옷!
탱커들은 버프 걸고 앞으로 달려들었다.
뒤의 파티원들이 공격을 하는 동안 얼음 전사들을 묶어주기 위해서였다.
꽝!
그리고 탱커들은 뒤로 날아갔다.
“!??!?”
“뭐야?!”
하늘 높이 떠서 날아가는 탱커들을 본 다른 파티원들은 경악했다.
무슨 스킬을 본 것 같지도 않은데 날아가다니?
-파이토스의 위대한 가호! 전쟁망치의 축복!!
파이토스 사제들은 깜짝 놀라서 닥치는 대로 신성 마법을 시전했다.
덕분에 탱커들은 죽진 않았지만….
[<위대한 적녹의 방패>가 내구도가 크게 떨어집니다!]
[냉기가 방패를 파고듭니다. 방패가 얼어붙습니다!]
[방패가 파괴됩니다!]
“미… 미친!”
“저거 위험하다! 야! 보스 몬스터 수준이야!!”
탱커들이 비명을 질렀지만 이미 얼음 전사들은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쿵쿵쿵!
기사단처럼 전열을 맞추고 돌진하는 얼음 전사들.
그 압박감에 앞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침을 삼켰다.
“당황하지 말고 대응한다! 마법사들, 디버프 위주로 걸어서 움직임 묶어! 정면 승부하지 마라! 힘 스탯이 무시무시한 놈이다.”
힘 스탯은 물론이고 평타 한 방 한 방에 마계의 냉기까지 사용하는 게 분명했다.
탁-
태현은 들고 다니던 폭탄들 중 화염 폭탄들을 꺼내 닥치는 대로 집어 던졌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사디크의 화염이 합쳐져서 증폭됩니다!]
[치명타가…]
[사디크의 화염이 냉기를 녹입니다!]
[……]
-사디크! 사디크 교단에서 보낸 놈들이었나!
아무 말 하지 않던 얼음 전사들이 처음으로 입을 열자 플레이어들은 놀랐다.
“파이토스 교단인데??”
“지금 그게 중요하냐!? 공격 퍼부어! 앞에 뚫리면 박살 난다!!”
뒤에 있던 마법사 랭커들은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공격을 퍼부었다.
탱커들이 한 대 맞고 저럴 정도면 마법사들은 그냥 한 방에 죽는다고 봐야 했다.
-사디크 교단 놈들…! 우리를 방해하다니. 용서하지 않겠다!
‘굉장히 쓸데없는 어그로를 끈 기분이 드는데….’
태현은 괜히 떨떠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