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502화 (1,501/1,826)

§ 나는 될놈이다 1502화

“아마 길드 동맹의 다른 랭커들이 앨콧 님을 질투하고 있어서 그런 걸지도 모릅니다!”

앨콧의 부하들은 존경 가득한 눈빛으로 그렇게 말했다.

같은 길드 동맹 소속이었지만, 길드원들끼리 경쟁심이 없을 리가 없었다.

간부들이나 랭커들 중심으로 파벌이 여럿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룹들 중에서 앨콧을 따르는 플레이어들의 존경심은 좀 특별한 편이었다.

-길드 동맹 내 랭커 영주 중 한 명!

-에랑스 왕국 귀족 작위 보유!

-길드 내에서도 대형 퀘스트 클리어 순위 최상위권!

…그런 화려한 타이틀들을 갖고 있는 만큼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어어….”

물론 앨콧은 그런 존경이 좀 부담되었다.

옛날에 거만하던 시절이었다면 ‘훗 당연하지’ 하면서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앨콧은 많이 구르고 깨지면서 겸손해진 편이었다.

아무래도 김태현과 같이 퀘스트를 깨다 보면 사람이 겸손을 배우게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앨콧은 사실상 반쯤 첩자나 마찬가지였고….

‘아. 길드 동맹에서 너무 믿어주니까 오히려 좀 부담되네.’

아무리 앨콧이 피도 눈물도 없는 암살자 랭커라지만 양심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길드 동맹 내부에서 ‘우리 앨콧 최고다!’, ‘앨콧은 랭커들의 모범이다!’, ‘앨콧을 명예 중국인으로 해주자!’ 같은 소리 나올 때마다 조금 미안했던 것이다.

‘아니. 마지막은 생각해 보니까 별로 안 미안하군.’

“앨콧 님! 제안이 왔습니다!”

“???”

“김태현 쪽 파티원들이 보낸 제안인데, 지금 백야숲 산맥에 들어온 파티들 연합하자고….”

갑작스러운 연락에 길드원들은 수군거렸다.

생각지도 못했던 연락인 것이다.

“뭐야. 무슨 꿍꿍이지?”

“김태현 놈의 함정이다! 앨콧 님을 견제하려고 함정을 판 게 분명해!”

“아니야. 저번에 보니까 김태현은 오히려 낫던데. 스미스 놈이 진짜 믿지 못할 놈이지.”

“그래도 김태현은 여전히 수상쩍은 놈이지! 앨콧 님을 견제하려고 한 거면 어쩌려고!”

‘…….’

앨콧은 매우 복잡한 표정으로 길드원들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그런 거 아닐 텐데.’

아마 길드원들이 생각하는 것과 상황이 좀 많이 다르긴 했다.

김태현이 앨콧 상대로 함정을 팔 이유도 없었고!

그냥 약점 잡고 있으니 부른 것에 가까웠다.

“어이, 앨콧. 너도 연락받았냐?”

화염술사 랭커, 크로포드가 자기 파티를 이끌고 나타나서 말을 걸었다.

앨콧은 고개를 끄덕였다.

“갈 거냐?”

“…음. 가서 이야기 정도는 들어봐도 되겠지.”

앨콧의 말에, 뒤에 있던 길드원들은 차례대로 리액션을 했다.

“과연!”

“관대하십니다!”

“역시 앨콧 님!”

“…….”

그걸 보고 있던 크로포드는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너 저런 거 시키고 노냐?”

“아… 아니야!”

* * *

“지금 다 연락 보내고 있긴 한데, 과연 잘될까요?”

태현은 지금 다시 지상으로 올라와 있었다.

대주교는 일단 은신처에 내버려 둔 상태로 빠져나온 것이다.

대주교를 꺼내는 순간 여기 백야숲 산맥에 숨어 있는 적들 전원을 다 상대해야 할지도 몰랐으니, 꺼내는 건 신중해야 했다.

‘일단 최대한 적의 전력을 줄인 다음에 꺼내야지.’

그러기 위해서는 이쪽도 최대한 준비를 한 다음 적의 전력을 각개격파해야 했다.

그 준비에는 당연히 산맥의 파티를 총동원하는 것도 들어갔다.

적들을 상대하는데 파티들이 각자 따로 놀면서 서로 훼방을 놓으면 되려던 퀘스트도 망하게 마련.

이번 퀘스트는 그런 식으로 해서는 절대 깰 수 없었다.

“잘 이야기하면 이해해 주겠지.”

‘과연 그럴까?’

태현의 말에 다른 파티원들은 의아해했다.

기본적으로 여기 산맥에 들어온 파티들은 하이에나 같은 놈들 아닌가.

김태현이 확실한 퀘스트 정보를 갖고 있다는 소문에 뭐라도 주워 먹으려고 달려온 놈들!

그런 놈들한테 ‘지금 우리 협력해야 한다! 같이 퀘스트를 깨지 않으면 위험하다!’라고 말해봤자 정말로 들을까?

잘 믿기지가 않았다.

“여기 맞나? 맞는 것 같은데….”

“앨콧이다! 길드 동맹의 앨콧!”

“크로포드도 있어!”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파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 거만한 길드 동맹 쪽 랭커가 파티를 끌고 나타난 것에 파티원들은 경악했다.

‘진짜 부른다고 오네??’

‘와. 장난이 아니구나…!’

같은 제안이라도 태현이 하는 제안은 그 무게감이 달랐던 게 분명했다.

저렇게 길드 동맹 랭커가 올 정도면 말이다.

주디스는 믿기 힘들다는 듯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길드 동맹 랭커가 저렇게 순순히 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무슨 꿍꿍이 있는 거 아니야 저것들??”

“확실히….”

“믿기 힘든 놈들이긴 해.”

다른 랭커들은 의심의 시선을 던졌지만, 앨콧은 꿋꿋하게 걸어와 태현 앞에 섰다.

“김태현. 퀘스트를 깨려면 협력이 필요하다는 네 의견에 공감했다. 좀 더 원대한 목표를 위해서라면 가끔 서로 협조가 필요한 법이지.”

“어… 고맙다? 그런데 너 왜 그렇게 목소리를 깔고 있냐?”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뒤에서 보고 있는 길드원들 때문에, 앨콧은 최대한 엄격하고 진지하고 근엄한 태도를 유지했다.

옆에서 보고 있던 크로포드는 웃겨 죽으려고 했다.

‘김태현만 만나면 약점 잡혀서 죽으려던 놈이 뭔 개폼을….’

어찌 되었든 간에 파티들이 이렇게 모이는 건 좋았다.

다른 파티들도 그 소식을 듣고 하나둘씩 찾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뭐야. 다들 모이고 있다고? 뭔가 있나 본데? 일단 가기나 해볼까.

-그렇게나 뭉쳤다고? 야. 이거 따로 움직였다가는 아무것도 못 건지겠다. 차라리 그쪽에 참가해서 뭐라도 건지자.

이렇게 모이고 모인 파티들!

플레이어들은 새삼 신기하다는 듯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평소라면 절대 연합할 일 없는 사람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서 웅성웅성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길드도 다르고 나라도 다르고 각자 생각도 다를 텐데….

“저, 태현 님.”

“?”

“제안 무시한 놈들이 있는데요….”

물론 모든 파티들이 제안에 응한 건 아니었다.

욕심 가득한 몇몇 파티들은 ‘김태현이 나한테 뭐 보태준 거 있냐? 안 간다’, ‘나한테 퀘스트 보상 우선적으로 넘겨주면 고민해 볼지도 모른다고 전해라’ 같은 대답을 돌려주었다.

혈기 넘치는 파티장들의 화끈한 대답!

…그 대답을 옆에서 들은 크로포드나 앨콧 같은 경험 많은 랭커들은 질색했다.

‘미친놈들이 누굴 자극하는 거야?’

‘저 자식들 김태현 상대해 본 적 없다고 아주 막 나가네.’

요즘 새로 우르르 나타난 신진 랭커들이 태현에게 당한 적이 없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저렇게 겁이 없을 줄은 몰랐다.

미친놈들 아니야 진짜??

‘당해봐야 알지….’

거절 소식에 분위기가 어색해졌지만, 자리에 있던 다른 파티장들은 태현을 위로했다.

“이 정도 모인 거면 솔직히 많이 모인 겁니다. 모일 사람은 다 모인 거 아닙니까?”

“맞아요. 이 정도가 어디예요.”

“너 아니었으면 이렇게 모이지도 않았어. 실망할 거 없어.”

“난 실망 안 했는데?”

태현은 의아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아. 다행….”

“잡으러 가자.”

“누굴? 악마? 굶주린 혼돈?”

“무슨 소리야? 당연히 제안 거절한 놈들이지.”

“…….”

“…….”

태현의 대답에, 앨콧은 백야숲 산맥에 피바람이 한바탕 불어올 것을 직감했다.

* * *

신진 랭커, 센트맨은 굳이 따지자면 악 성향의 플레이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명성보다 악명이 높은 전형적인 약탈자 플레이어!

이런 직업들은 남들을 PK 하기에 성장은 빨랐지만 점점 악명이 쌓이고 왕국들한테서 현상금이 걸리기 시작하면 슬슬 성장이 더뎌지기 시작했다.

그런 점에서 센트맨은 영리했다. 악명이 많이 높긴 했지만 직업 스킬들과 뇌물로 그걸 어떻게든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도적과 상인이 합쳐진 하이브리드 직업인 <왕국의 밀수꾼> 덕분이었다.

“센트맨. 그냥 같이 끼는 게 낫지 않았냐? 남들 다 끼는데 우리 혼자 놀다가 아무것도 못 먹으면….”

“그럼 먹은 놈들 쫓아가서 잡으면 되지.”

“야. 여기 랭커들이 몇 명인데 너무 위험한 거 아냐?”

센트맨의 파티원들도 당연히 센트맨과 비슷한 성향이었다.

명성보다 악명이 훨씬 높은 약탈자 플레이어들!

레벨은 좀 낮더라도 사납고 탐욕스러운 건 절대 뒤지지 않는 이들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들도 지금 산맥에 레벨 높은 랭커들이 얼마나 많은지는 느끼고 있었다.

재수 없게 걸리면 아무것도 못 하고 두들겨 맞다가 로그아웃이었다.

“이 장사 한두 번 하냐? 무서워서 피하면 나중에는 뭐 어쩔 건데? 안 부딪히게 잘해야지.”

“그, 그렇지.”

“맞아.”

“…너희 설마 겁먹었냐?”

센트맨의 말에 파티원들은 발끈했다.

물론 살짝 겁먹은 건 사실이었지만 그걸 면전에서 지적당하면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

“누가!”

“센트맨. 너 입조심해라!”

“벌벌 떠니까 그렇지. 그리고 랭커들이라고 겁먹을 필요 없다니까. 레벨만 올린 물랭커들 많아. PK는 제대로 하지도 못한다고.”

“하긴 그것도 그래.”

센트맨의 파티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랭커라고 해서 꼭 PK를 잘하진 않았다. 사냥만 하고 퀘스트만 깬 랭커들은 PK 실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점에서 센트맨이나 파티원들은 밥 먹고 PK만 하고 다녔으니 당연히 능숙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래도 김태현은 진짜 무섭더라. 괜히 자극하지 말자고.”

“맞아. 김태현 스킬 콤보 쓰는 거 봤는데 랭커들이 쭉쭉 피 닳는 게 무슨….”

“야. 그거 다 편집해서 하이라이트만 모아놔서 그래! 제일 잘 터진 것만 모아 놓으면 누군들 안 그러겠냐?”

센트맨은 짜증을 냈다.

어딜 가나 김태현거리니 신진 랭커로서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여간 게임 좀 먼저 시작한 걸로 인기 얻은 놈들은 짜증 나 죽겠어.’

새로 치고 올라오는 신진 랭커들에게, 먼저 길드를 세우고 판온을 주름잡고 있는 기존 랭커들은 뛰어넘어야 할 벽이었다.

특히 김태현 같은 경우에는 여러모로 매우 높고 두꺼운 벽이라고 할 수 있었다.

“좋아! 내가 하나 보여준다. 퀘스트 끝나기 전에, 여기 랭커 한 놈 잡는다. 그것도 이름 있는 놈으로. 여기 길드 동맹 랭커 놈도 있다고 하지 않았냐? 그놈 잡는다!”

“야…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길드 동맹 건드리면 일 귀찮아진다고.”

“이미 몇 번을 건드렸는데 뭘?”

“그건 일반 길드원이었고, 랭커 건드리면 일 커지잖아.”

“해보라고 그래!”

파티원들이 입을 다물자, 센트맨은 만족했다.

드디어 파티원들이 교훈을 좀 얻은 모양이었다.

랭커들에게 겁먹을 필요 없다는 교훈을!

“…….”

“…….”

그러나 아니었다.

파티원들이 입을 다문 건, 앞에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길을 막고 있어서였다.

“…?!?!”

센트맨도 뒤늦게 깨닫고 경악했다.

‘뭐 이런 미친!?’

파티 하나가 찾아와서 시비 거는 상황은 예상했어도, 열몇 개가 넘는 파티들이 연합해서 이 주변을 빙 둘러싸고 있는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다.

이건 너무….

상상을 초월하지 않는가!

“이, 이게 뭔…?”

“너 이 새끼 다시 지껄여 봐!”

길드 동맹 길드원들이 분노한 표정으로 외쳤다.

기다리고 있는 도중 센트맨이 지껄인 소리를 들은 것이다.

대놓고 개무시를 하는데 화가 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상황이었다.

“저놈 그놈 아니야? 우리 창고 턴 놈?”

“잘 만났다! 이번 기회에 밟아버려!”

센트맨은 당황해서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소리를 했다.

“비… 비겁하게 지금 숫자로 압박하는 거냐?”

“…쟤가 지금 뭐라는 거냐?”

“양심이 없나?”

다른 플레이어들은 수군거리면서 황당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센트맨도 좀 쪽팔리긴 했는지 부들거렸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밀어붙일 수밖에 없었다.

“정정당당하게 승부하자!”

“아무래도 미친놈인가 봅니다. 그냥 공격하죠.”

“…정정당당하게 승부하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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