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501화 (1,500/1,826)

§ 나는 될놈이다 1501화

그러나 연결이 되어 있었다.

“…….”

[카르바노그가 뿌듯해합니다!]

토끼로 변신한 태현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구멍을 타고 안에 들어갔다.

‘대주교 놈은 왜 은신처에 이런 구멍을 만들어 놓은 거야?’

은신처면 좀 더 단단해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태현은 일단 꾹 참고 계속 구멍을 탔다.

구멍은 생각보다….

정말로 길었다.

‘…설마 함정은 아니겠지.’

[카르바노그가 시선을 피합니다.]

‘괜찮아. 카르바노그. 함정이라 하더라도 네 잘못은 아니니까.’

[카르바노그가 감동합니다!]

툭-

마침내 구멍의 끝이 보였다. 밝은 빛을 따라 태현은 빠르게 내달렸다.

“…?”

[<고대 파이토스 교단의 은신처>를 발견합니다!]

[어떤 대륙의 위기에도 버틸 수 있게 만들어진 교단의 은신처는, 하나의 거대한 기적입니다!]

[위대한 발견으로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위대한 발견으로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신성 스탯이 매우 높습니다.]

[아키서스 교단을 이끌고 있습니다.]

[아키서스 교단의 은신처를 만들 수 있습니다!]

[……]

‘생각보다 엄청난 건물이었잖아?!’

그냥 대주교 은신처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메시지창들이 우르르 뜨는 걸 보니 보통 건물이 아닌 것 같았다.

고대 제국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근본 넘치는 건물!

‘하긴 그 정도였으니 입구 자체가 나오지 않을 정도였겠지.’

대주교가 숨어 있기에 이렇게 좋은 건물도 없을 것이다.

태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치 드래곤의 레어나 대도시의 도서관처럼, 안락하고 호화로운 가구들이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황금색 벽돌로 만들어진 벽난로에서는 타닥거리는 모닥불이 소리를 내고 있었고, 바닥에 깔린 붉은 카펫은 푹신해서 소리도 나지 않을 정도였다.

솔직히 여기 정도면….

[카르바노그가 자기 신전보다 여기 은신처가 더 좋은 거 같다고 침울해합니다.]

‘쉿. 그런 생각 하지 마.’

어쨌든 이 은신처는 파이토스 교단이 얼마나 돈이 많고 부유한지 알 수 있었다.

사실 대륙의 교단들은 기본적으로 다 돈이 많았다. 망한 적 없었으니 재산은 계속 쌓이고 땅값은 올라가고 건물 가격도 올라가고 등등….

-이런 아키서스 같은 세상!

“??”

[??]

걸걸한 목소리가 앞에서 터져나오자, 태현은 토끼답게 쪼르르 달려나갔다.

놀랍게도 파이토스 교단의 대주교가 거기 있었다.

대주교 펠로마레스!

교단을 잘 모르는 사람들한테는 ‘인자한 대주교 NPC인가 봐’ 소리를 듣고, 교단을 잘 아는 사람들한테는 ‘착하긴 한데 돈 너무 밝히는 거 아님?’ 소리를 들었지만, 어찌 되었든 대주교가 거물이라는 걸 부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추정 레벨만 해도 800 이상.

대륙의 다른 거물들에 비하면 약간 낮은 감이 있었지만 대주교가 가진 사기적인 권능 스킬들을 보면 좀 낮은 레벨 정도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대주교로서 레벨 800을 넘겼다는 게 더 무시무시하게 느껴질 정도.

그리고 그런 대주교는 지금 술에 취한 채 소파에 누워 있었다.

“…….”

[…….]

잔뜩 취해서 주교복도 벗어던진 채 잠옷만 입고 있는 대주교는 엉엉 울면서 소리쳤다.

-내가 그렇게 뭘 잘못했다고! 교단 놈들아!

“…다른 건 몰라도 지금 아키서스를 욕으로 쓴 건가??”

태현은 토끼 변신을 풀고 원래 모습대로 돌아왔다.

펑!

갑자기 허공에서 태현이 나타나자 펠로마레스 대주교는 깜짝 놀라 소파에서 떨어졌다.

-허어억!? 넌… 넌…???

“아키서스 교단의 교황이다.”

-왜, 왜 당신이 여기 있는 거요! 여긴 파이토스 교단의 성소요!

“네가 사라졌으니까 그런 거 아니겠나? 파이토스 교단에서 나한테 수색을 맡겼다.”

-!!!

펠로마레스는 뒤통수를 망치로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파이토스 교단에서 아키서스 교단에 의뢰를???

정확히 말하자면 태현이 가서 뜯어낸 것에 가까웠지만, 정황을 모르는 펠로마레스는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교단 놈들이 정신이 나갔구나! 맡길 상대가 없어서!’

“지금 왜 나한테 맡겼나 생각하고 있겠지.”

-…….

“정신 차려라! 파이토스 교단의 선량한 사람들은 다 널 믿고 있었다. 널 믿고 있었던 만큼 네가 납치되었다고 생각한 거다! 얼마나 절박했으면 날 불렀겠나!”

-!!

펠로마레스 대주교의 표정이 변했다.

-설, 설마… 들키지 않았…? 아니. 아무것도 아니오.

“안 들켰다. 물론 난 알고 있다. 아니까 여기까지 찾아왔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네가 뇌물 받은 걸 뭐 굳이 구체적으로 듣고 싶다면 여기 장부까지 찾았….”

-아니 그걸 대체 어떻게!!

펠로마레스는 기겁해서 달려들었다. 태현은 슬쩍 피하며 물러섰다.

원래 레벨이라면 펠로마레스는 진지하게 태현에게 덤벼들어서 승부를 겨뤄도 됐다.

사제 직업이라고 하지만 저 정도 되면 공격 수단도 여럿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숨어 다닌 펠로마레스는 그럴 의욕이 없었다.

술에 취하기까지 한 펠로마레스는 고개를 푹 숙였다.

-내가 파이토스 님을 배신하려고 한 게 아니라….

“그래그래. 펠로마레스. 나는 자네의 마음을 이해하네.”

-…?

“우리 교단에서도 그런 놈들이 수두룩하거든. 돈 많이 내면 기도를 더 주는 놈들도 있지.”

-아니… 그건 너무 심한 거 아니오…?

“뭐?”

-아, 아닙니다.

“어쨌든 교단의 일이란 게 그런 거 아니겠나. 대소사를 맡다 보면 돈이 필요하고 그런 거겠지.”

-맞소! 그 말이 맞소!

“그래. 난 자네를 이해하네. 이제 문제가 없다는 걸 알았으니 교단에 돌아가도 괜찮겠지?”

-…….

대주교가 바로 OK를 할 줄 알았는데 침묵하자 태현은 당황했다.

“교단에서 모른다니까? 설마 내가 고발할 거 같나? 내가 그런 거 고발 안 하는 사람이라는 거 알 텐데. 아키서스 교단은 원래 그런 거에 관대한 편이야.”

-아니… 그건 믿소.

‘이 자식이.’

관대하다는 말을 순순히 믿으니 그건 그거대로 좀 불쾌했다.

아키서스 교단을 대체 뭘로 보고?

-그런데… 이게… 좀 상황이 복잡하오.

“…??”

-나는 도망칠 때 내가 교단에서 정치 생명이 끝난 줄 알았소. 그래서… 음….

“빨리 말해라. 시간 작작 끌고.”

-…다른 협력자를 구했소.

“…….”

태현의 표정이 굳었다.

생각해 보니 대주교의 일기에 다른 협력자가 찾아왔다는 말이 있었던 것이다.

‘으음. 아키서스 교단에서 이런 일이 없어서 정말 다행이군.’

그래도 이런 미친 대주교가 없다는 게 어디인가!

“그래서 지금 산맥이 난리가 난 거군. 악마와 손을 잡으려고 했나?”

마계의 악마들 입장에서, 교단 대주교는 군침 도는 상대였다.

그런 대주교가 타락해서 악마의 편을 든다?

악마 공작도 기뻐서 방긋 웃을 일인 것이다.

-음….

“아닌가 보군. 그러면 굶주린 혼돈의 손을 잡으려고 했나?”

굶주린 혼돈도 나쁘지 않은 선택지였다. 일단 영혼이 먹힌다는 치명적인 페널티가 있긴 했지만 굶주린 혼돈은 자기와 계약한 상대에게 힘은 제대로 줬다.

교단 대주교면 교단들을 싫어하는 굶주린 혼돈 입장에서도 당연히 양손 들고 환영할 일이었고….

-으으음….

“이것도 아니야? 그럼 혹시 그 사디크 교단 놈들인가? 사디크 교단 잔당?”

-그건 아니오. 그런 놈들이 있었소? 사디크 교단이 망한 지가 언젠데?

“사디크 교단의 장비를 입은 자가 산맥에 있던데.”

-아… 그거. 다른 악신 교단이 변장한 거요. 이데르고 교단이오.

“…….”

태현은 황당해했다.

아니 이 새끼들….

-아무래도 이데르고 교단은 주목을 많이 받은 탓에 행동하기가 어려워지지 않았소. 그래서 다른 교단으로 변장한 거요.

“많고 많은 교단 중에 왜 사디크지 근데?”

-망했으니까 봐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잖소.

“…….”

[카르바노그가 정말 사디크가 불쌍하다고 훌쩍입니다.]

천하의 사디크 교단이 어쩌다 이렇게까지 떨어졌을까!

태현은 오랜만에 동정심을 느꼈다.

“어쨌든 그러면 이데르고 교단 놈들하고 손을 잡은 건가?”

악신 교단도 대주교를 좋아할 것이다. 적대 세력의 수뇌부 아닌가.

-으음…!

“아. 왜 대답을 못 해! 아키서스당하고 싶나??”

계속 대답을 피하자 슬슬 짜증이 났다. 태현은 설득에서 협박으로 화술 스킬을 돌렸다.

-…내가 진실을 말한다 하더라도 날 비난하지 않겠다고 아키서스의 이름에 맹세해 준다면….

“…그래. 그래. 맹세한다.”

태현은 아키서스의 이름을 걸고서도 사기를 칠 수 있었지만, 상대는 그걸 알지 못했다.

-실은 셋 다요.

“…내 귀가 잠깐 막혔나 보군. 방금 뭐라고??”

* * *

대주교는 정말 못된 짓에 뛰어난 능력치를 갖고 있었다.

교단에 안 들키게 뇌물을 받아 챙긴 것부터 시작해서, 배신할 때도 착실하게 준비를 한 것이다.

펠로마레스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냥 넘어가는 게 아니라 경쟁을 붙인다면 내 몸값이 올라가지 않을까?

같은 배신을 하더라도 좀 더 높게 쳐주는 상대한테 가야 더 좋은 법.

그래서 펠로마레스는 세 세력 모두에게 접촉했다.

“…와우.”

-비난하지 않기로 맹세했잖소!

“그래. 비난 안 한다. 아키서스 교단의 기준으로 보면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는 일이지.”

-아키서스 교단 너무 심한 거 아니요…?

‘아니 이 새끼가 진짜.’

태현은 참다 못해 울컥했다.

지금 위로해 주려고 이러고 있는데 교단을 뭘로 보고!

“그래서 지금 산맥에 세 세력이 모두 있는 건가?”

-그렇소. 세 세력이 다투기 시작해서 힘으로 날 잡으려고 하더군. 그래서… 은신처에 숨었소. 은신처는 들어오지 못하니까.

‘아. 이런.’

태현은 지금 상황을 깨달았다.

왜 공격을 안 받았나 했는데, 파이토스 교단 NPC들을 보고 적들이 기다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도저히 은신처를 뚫지 못했으니, 파이토스 교단 NPC들이 은신처를 뚫고 대주교를 데리고 나온다면 그때 손에 넣겠다고!

“그럼 네가 나오는 순간 바로?”

-바로… 공격할 가능성이 높소.

“…….”

태현은 매우 짜증 섞인 눈빛으로 대주교를 노려보았다. 대주교는 기가 죽어서 시선을 피했다.

“지금 너 한 사람 때문에 이게 무슨 개고생이야!”

-미, 미안하오. 정말 미안하오. 하지만 도와주시오! 같이 대륙을 지키는 동지 아니오!

“아까 아키서스를 욕으로 쓴 놈 아니었나?”

-그건 취해서 실수한 거요! 아키서스 교단은 대륙의 방패이자 수호자요!

펠로마레스는 어지간히 절박했는지 태현의 옷자락을 붙잡고 늘어졌다.

확실히 지금 상황은 태현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었다.

구출대를 끌고 온 것도 태현이고, 무엇보다 아키서스 교단인 만큼 전투력이 강력한 데다가, 대주교 본인의 부정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아… 짜증 나는군. 그쪽 데리러 온 놈들이면 수준도 장난 아니게 높을 텐데.”

-그렇소.

“그냥 나가면 바로 들키겠지?”

-내가 변신하고서 나가봤는데 바로 알아차렸소….

“변신?”

-나는 햄스터로 변신할 수 있는 권능이 있소. 그 권능이 없다면 이 은신처에 들어올 수 없지.

“…….”

태현은 황당하다는 듯이 대주교를 쳐다보았다.

은신처 출입 방법이 정말 저런 변신이었다니.

너무 황당해서 오히려 허를 찌르는 부분이 있었다.

‘저걸 뭐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냐?’

마음 같아서는 그냥 버리거나 시체로 만들어서 경험치를 얻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친밀도 퀘스트!

대주교를 살려서 갖다 주면 파이토스 교단에서 또 얼마나 고마워하겠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 돌려만 놓으면 날 많이 도와주겠지.’

태현은 약점 잡힌 사람이 얼마나 친절해지는지 잘 알고 있었다.

* * *

“앨콧. 왜 그래?”

“아니. 이상하게 귀가 간지럽네.”

길드 동맹의 랭커, 앨콧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게 기분이 불길했다.

‘김태현 있는 곳에 와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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