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497화 (1,496/1,826)

§ 나는 될놈이다 1497화

“김태현 어딨어?!”

“네가 김태현이지?”

“뭐… 뭐? 미친 소리 하지 마! 누굴 죽이려고!”

태현의 변장 스킬 뛰어나단 건 다들 알고 있는 만큼, 쓸데없는 소란이 벌어졌다.

옆에 있는 사람을 붙잡고 김태현 아니냐고 묻는 촌극이 시작된 것이다.

예전이었다면 태현을 사칭할 경우 길드 동맹을 비롯해 판온 1 때부터 있었던 랭커들이 죽이려고 달려들었을 테지만….

지금이라면 좀 다른 의미로 죽을 수 있었다.

-여러분 이 김대현이라는 사람이 김태현을 사칭했다고 합니다!

-저런 파렴치한 놈 같으니! 한국 정부는 대체 저런 놈을 감옥에 가두지 않고 무슨 짓을 하는 거지? 여러분! 백악관에 청원을 넣읍시다!

-미친 미국 놈들아 그걸 왜 백악관에 넣어!

-그, 그렇군.

-한국 정부 쪽에 청원을 넣자!

-아하!

…판온 유명 플레이어들에 대한 인기는 전 세계적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판온 리그와 월드컵 경기가 진행되면서 더 오를 수 없을 것 같았던 그 인기가 더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런 상황에서 김태현 같은 사람을 사칭했다가는 판온 안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저놈 덩치가 크고 멍청해 보이는데 케인 아니야?”

“헛소리. 팔이 두 개잖아.”

“저거 중갑 입고 있잖아! 중갑 안으로 네 개를 숨겼을 수도 있어! 어쩐지 두툼해 보이지 않아?”

“이런 정신 나간 자식들! 야! 봐라! 어디 팔이 네 개가 더 있냐!”

“미안하다.”

앞에서 일어나는 소란에, 아까 태현 앞에 있던 교단 고렙 플레이어가 입을 열었다.

“난리가 났어. 아주. 멍청하기는. 김태현이 여기 있을 리가 없지.”

“…….”

쪽팔려 하던 태현은 멈칫했다.

안 그래도 나가기 싫었는데 앞에 있는 플레이어가 기름을 붓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소동은 뭐지?”

“당연히 헛소동이지! 가끔 관심 끌고 싶은 멍청한 놈들이 난리 치는 거 한두 번 봐?”

플레이어는 거만함이 섞인 비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관심은 끌고 싶은데 레벨은 낮고, 할 수 있는 건 없으니 저런 거라도 하는 거지.”

“아. 예전에 길드 동맹 앞에 가서 ‘내가 김태현이다’라고 외치는 도전처럼?”

“…그런 미친 짓도 있어??”

상대 플레이어는 태현의 말에 당황했다.

예전에 골짜기에서 유행한 벌칙이었던 것이다.

“하여튼 저 헛짓거리 신경 쓰지 마. 보아하니 넌 레벨도 많이 낮아 보이는데. 레벨 올리는 거에나 집중하라고.”

“그러는 그쪽은 레벨이 몇이길래?”

상대는 대답을 기다렸다는 듯이 웃었다.

“레벨 311.”

“!”

태현은 놀랐다.

물론 요즘에야 상위권 랭커들도 레벨 300이란 벽을 많이들 뚫고, 최상위권들은 300 중후반을 달려 400을 노리고 있다고들 하지만….

300은 여전히 마의 벽 중 하나였다. 어중간한 랭커는 쉽게 넘기기 힘들었다.

“혹시 대형 길드 소속인가?”

“하. 날 그런 구닥다리라고 생각하지 말아줄래?”

흔히들 ‘신진 랭커’라고 말하는 후발주자들은 대형 길드로 뭉쳐서 머릿수로 밀어붙이는 랭커들을 경멸했다.

게임 자체를 망치는 놈들!

그들은 소수정예로 움직이며 대륙 곳곳의 질 좋고 덜 유명한 사냥터를 휩쓸며 경험치를 올렸다.

이제 여기서 더 극단적으로 가면 혼자서 돌아다니면서 전설 퀘스트만 노리는 태현이 되는 거였고….

“주디스. 이름 들어봤어?”

“어… 미안하군. 랭커들 잘 몰라서.”

“뭐. 괜찮아. 레벨 낮은데 그럴 수도 있지.”

영국 출신 랭커, 주디스는 붉은 머리칼을 옆으로 넘기며 고개를 치켜세웠다.

레벨 낮은 초보가 자기 모른다고 화를 낼 정도로 주디스는 시간이 널널하진 않았다.

주디스의 모습에 태현은 누군가가 떠올랐다.

‘이상하게 케인이 떠오르는데….’

분명히 상대방은 레벨도 높고 실력도 있어 보이는데 왜 케인이 떠오르는 걸까?

주디스의 직업은 영웅 직업 <성스러운 망치 계승자>. 전투사제 계열이었다.

사제 중에서도 전투력이 높은, 성기사에 가까운 하이브리드 직업.

주디스는 요즘 유명한 스미스니 케인이니 하는 발 느리고 둔하기만 한 중갑쟁이들을 쫓아내고 그 위에 올라서길 원했다.

그리고 태현이 저걸 모두 다 알 수 있었던 건 주디스가 3분 내내 저걸 자기 자랑하면서 떠들었기 때문이었다.

“근데 네 이름 안 물어봤잖아? 네 이름은 뭐야?”

“김태현.”

“와. 고생 많았겠어?”

주디스는 태현을 안쓰럽다는 듯이 쳐다봤다.

유명한 사람과 이름이 똑같으면 그건 그거대로 고생인 것이다.

초보자들 파티에만 들어가도 ‘김태현하고 이름 똑같으신데 왜 딜은 똑같지 못하죠?’ 같은 공격이 들어올 것 아닌가.

게다가 판온에서 한국인 플레이어들은 기본적으로 좀 요구되는 능력치가 높았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어? 한국인이시라고? 그러면 잘하겠네’ 같은 소리를 쉽게 하는 것이다.

한국 플레이어들 입장에서는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었다.

“고생이야 뭐 원래 당연히 하는 거고… 어쨌든 난 좀 가봐야겠다. 소란이 안 그치는군.”

“??”

“나 여기 있다! 파이토스 교단 성기사들. 소란 그만 피워라!!”

태현은 손을 들고 외쳤다.

대신전 정문 앞에 강력한 함정을 설치하고 축성을 걸고 있던 성기사들은 멈칫했다.

-정… 정말 교황 성하가 맞으십니까?

-실례지만 양손을 쫙 펴서 검을 들지 않고 있다는 걸 확인시켜주시면 정말 감사드립….

“…그냥 주교나 불러.”

* * *

-소란이 있어서 죄송하게 됐습니다. 교황 성하.

파이토스 교단의 주교는 매우 미안해했다.

“교단에 무슨 일이 있나 보군.”

-예. 부끄럽지만….

밖의 퀘스트도 그렇고 이렇게 신전 안이 어수선하면 교단에 무슨 일이 있다고 봐야 했다.

-그래서 교황 성하께서는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어… 파이토스 교단을 도와주려고?”

-…네???

주교는 당황해서 태현을 쳐다보았다.

이게 무슨 아키서스 밑에서 일하는 악마 공작 같은 말도 안 되는 농담이란 말인가.

그러나 태현의 표정이 진지하자, 주교는 태현이 진심이라는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러자 주교는 더더욱 경악했다.

-저희가 대체 무슨 짓을 했단 말입니까? 교황 성하. 저희는 지금 쓸데없는 싸움을 할 여유가 없습니다. 원하는 게 있다면 말해주십시오!!

“아니….”

태현은 오랜만에 억울해졌다.

정말 순수하게 도와주고 친해지려고 온 거였던 것이다.

[화술 스킬이 매우 높…]

[명성이…]

[……]

[……]

태현은 열심히 설득했다.

아무런 의도도 없고, 파이토스 교단 도우러 왔고, 다른 교단 애들한테 물어봐라 등등.

마침 대신전에는 다른 교단의 사제들도 와있었다.

“저기 마침 데메르 교단의 사제도 있군! 저들한테 물어보자!”

-예? 예?

데메르 교단의 사제들은 태현이 불러오자 당황했다.

파이토스 교단 도우러 왔다가 갑작스러운 부름에 당황한 것이다.

“자네들은 날 믿나?”

-예???

데메르 교단 사제들은 더더욱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뭐 이런 질문이 있단 말인가.

“날 믿나?!”

-아, 예. 교황 성하를 믿지 않으면 누구를 믿겠습니까? 당연히 믿습니다.

착한 데메르 교단 사제들은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태현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다른 교단에서도 날 믿는군. 저기… 헤넨 교단… 아니, 헤넨 교단은 됐다. 별로 도움 안 되겠군. 저기 베테라르바 교단에도 물어보자.”

-교황 성하. 죄송하지만 베레타르바 교단 아닙니까?

“조용히 하게.”

태현은 데메르 교단 사제들을 조용히 만든 다음 베레타르바 교단 사제들을 불렀다.

졸지에 불러온 베레타르바 교단 사제들은 당황했지만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교황 성하께서는 믿음직스러운 분이시지요.

-?!

파이토스 교단 대신전 주교는 깜짝 놀랐다.

데메르 교단이야 호구처럼 착하다지만 그렇다 쳐도 베레타르바 교단은 어째서?

“자. 주교님. 빨리 털어놓으십시오.”

-아, 알겠습니다.

결국 다른 교단들까지 동원되자, 주교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진실을 털어놓았다.

<실종된 대주교를 찾아라-파이토스 교단 퀘스트>

대륙에 점차 위기가 찾아오고 수많은 적들이 나타나니, 진정한 신앙의 방패들은 가장 많은 위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파이토스 교단을 이끄는 성스러운 대표 중 하나인 대주교가 사라진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다!

한시라도 빨리 대주교를 찾아내지 않으면 교단의 명성에 어떤 흠이 갈지 모른다.

보상: ?, ???, ?????

“…….”

생각보다 규모가 큰 퀘스트에 태현은 멈칫했다.

‘어….’

태현은 기껏해야 ‘저 악마 놈이 우리 성기사단 하나를 전멸시켰습니다’ 같은 퀘스트를 예상했던 것이다.

악마 사냥에는 도가 텄으니, 정예들을 이끌고 가서 악마 하나 붙잡아 오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기에 퀘스트 내용을 들은 건데….

‘이거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은데?’

이렇게까지 너무 길어지면 태현이 하기에는 계산이 맞지 않는 것이다.

태현이 파이토스 교단도 아니고 좀 친해지려고 이런 긴 연계 퀘스트를 굳이 다 깰 필요는….

[퀘스트를 거절할 경우 친밀도가 크게 하락할 수 있습니다!]

[파이토스 교단의 주교가 이 일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페널티가 커집니다.]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겠다.’

태현은 반성했다.

솔직히 다른 교단 사람들까지 동원해서 퀘스트 내용 뜯어낸 이상, 안 하겠다고 말하면 아무리 착한 주교라도 발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세한 정황이라도 듣고 싶은데. 대주교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교단 내에서도 호위가 붙지 않나? 그 호위들이 있었는데도 사라진 건가?”

-그게… 좀 복잡합니다.

“?”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교단 내에서 부정부패 사건이 터진 일이 있었습니다. 비밀리에 내려오던 부정한 일이 갑자기 드러난 탓에 여러 성기사들과 사제들이 교단을 떠나야 했지요.

“그렇군.”

-그러는 바람에 경호를 새로 뽑아야 했는데, 이 와중에 일어난 혼란을 틈타 대주교님께서 사라지신 겁니다.

“그런데 부정부패 사건이 용케 갑자기 터졌군?”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교단 내에서 뇌물 받던 NPC들이 갑자기 발각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태현은 이름 있는 랭커 파티들이 무슨 퀘스트라도 깼나 의아해했다.

‘…잠깐만.’

[카르바노그도 무언가 떠올립니다.]

‘설마 내가 과거로 가서 파이토스 교단 NPC들이 부정부패 저지른 거 발각시키고 증거 현대로 갖고 와서 저렇게 된 거 아니지?’

아니라고 부정하기에는 시기가 너무 비슷했다.

카르바노그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말이 없었다.

‘…뭐 그래도 부정부패 없애줬으니까 좋은 거 아닌가? 이걸 공적치 포인트로 쳐줬으면 좋겠는데.’

[그런 소리 했다가는 미친놈 취급받을 거라고 카르바노그가 냉정하게 말합니다.]

* * *

“혹시 저 사람 케인 아니야?”

“케인이랑 성별부터 다른데??”

“그런데 아까 김태현하고 같이 있는 걸 봤다니까. 꽤 친하게 이야기까지 나눴어.”

“…….”

주변에서 수군대는 소리를 들은 주디스는 어이가 없었다.

이런 미친놈들이….

“방금 나보고 케인이라고 한 놈은 앞으로 당장 튀어나와! 어떻게 다른지 똑똑히 보여줄 테니까!”

살벌하게 씩씩대는 주디스의 모습에 다른 플레이어들은 입을 다물었다.

딱 봐도 성격 더럽고 오만한 랭커 같은데 괜히 마주쳐서 좋을 게 없었던 것이다.

“속지 마라!”

하지만 근성 있는 플레이어들도 있었다.

“분명 김태현하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니까! 그건 어떻게 설명할 건데!”

“…….”

주디스는 자신이 나눴던 대화를 말하려다가 멈칫했다.

그냥 말하려고 하니 갑자기 쪽팔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크으으으읏…!”

“저 봐! 저 봐! 말 못하잖아!”

“케인이네! 케인이야!”

“다 죽여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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