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496화
‘지금 친한 교단이….’
태현은 하나씩 따져보기로 했다.
[카르바노그가 손을 번쩍 듭니다!]
‘그래. 부활한 카르바노그 교단이 있지.’
별 도움은 안 되지만!
현재 카르바노그 교단의 규모는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덕분에 카르바노그 교단과 친해봤자 외교력 스탯에 보너스 받는 일은 없었다.
[카르바노그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미안하다고 말합니다.]
‘아니야. 카르바노그. 네 잘못이 아니지.’
태현은 카르바노그를 달래고 다음 교단으로 넘어갔다.
그 다음은 역시….
‘데메르 교단이지.’
[현재 데메르 교단과의 친밀도가 높습니다.]
[현재 데메르 교단 내의 평가가 높습니다.]
[외교력에 보너스를 받습니다.]
[……]
땅과 치유의 여신 데메르를 섬기는 교단.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는 ‘가장 양심 있는 교단’ ‘판온에서 인성으로 치면 따라올 수 없는 교단’ 같은 식으로 불렸다.
그만큼 데메르 교단이 좀 선량하긴 했다.
보통 한 교단에 가입한 다음 탈퇴하면 페널티가 크게 붙기 마련인데 데메르 교단은 그런 것도 없었다.
이해와 자비!
그런 만큼 데메르 교단은 아키서스 교단에게도 친절하게 대해주는 놀라운 너그러움을 보여줬다.
‘그 다음은 아마 헤넨 교단인가?’
태현은 도적과 도적질의 신 헤넨을 모시는 헤넨 교단을 떠올렸다.
솔직히 말이 좋아 의적이지 선 하나만 넘으면 사악한 교단으로 몰려도 이상하지 않은 교단.
하지만 그런 따돌림 받는 특성 때문에 태현과 친해질 수 있었다.
아마 데메르 교단 다음으로 태현과 친한 교단은 헤넨 교단일 터.
[현재 베레타르바 교단과의 친밀도가 높습니다.]
[현재 베레타르바 교단 내의 평가가 높습니다.]
[외교력에 보너스를 받습니다.]
[……]
“…??”
태현은 예상과 다른 메시지창에 당황했다.
놀랍게도 헤넨 교단보다 베레타르바 교단이 더 높았던 것이다.
사랑의 신 베레타르바를 모시는 교단, 베레타르바 교단.
호전적이거나 거친 교단은 아니었지만 애초에 태현과 친할 이유가 없는 교단이었다.
아키서스 교단은 기본적으로 헤넨 교단보다 더 따돌림 받는 교단이었으니까.
[카르바노그가 저번에 베레타르바 사제들을 구해준 것 덕분 아니냐고 묻습니다.]
‘아. 그런 일도 있었지.’
고대 제국 전사의 후예들한테 붙잡혀서 괴롭힘 받고 있던 베레타르바 교단 사제들.
그 사제들을 구해준 게 태현이었다.
‘은혜를 잊지 않다니. 감동적인데?’
[카르바노그가 그게 기본 아니냐고 의아해합니다.]
‘파이토스 교단 놈들은 내가 대륙을 몇 번 구해줬는데도 날 꺼림칙하게 여기잖아.’
[…그건 화신이…]
어쨌든 베레타르바 교단이 태현을 좋아한다는 건 생각지도 못했던 좋은 소식이었다.
이런저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사이좋은 교단은 봤으니, 이제 사이 나쁜 교단을 확인할 차례.
태현은 아래로 상태창을 쭉 내렸다.
[현재 파이토스 교단과의 친밀도가 부족합니다.]
[당신이 세운 업적으로 인해 과거의 원한은 사라졌지만, 파이토스 교단은 여전히 당신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파이토스 교단은 여러 사건에 대해 당신을 의심하고 경계하고 있습니다.]
[현재 파이토스 교단 내의 평가가 높지만, 여러 주교들은 당신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외교력에 페널티를 받습니다.]
[……]
[……]
“…….”
[…….]
태현은 딱히 할 변명이 없었다.
솔직히 파이토스 교단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했던 것이다.
‘음. 굶주린 혼돈과 싸운 덕분에 쌓인 원한이 초기화 되었어도 이건 달라지지 않는군.’
[카르바노그가 고치면 된다고 말합니다.]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오히려 이건 쉬울 수 있었다.
원한만 없으면 두려움을 푸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일 수도 있는 것이다.
[현재 이데르고 교단과의 적대도가 높은 상황입니다.]
[이데르고 교단의 주교 후계자를 납치해서 데리고 있습니다. 후계자를 무사히 돌려보내줄 경우 이데르고 교단과 화해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데르고 교단은 대륙의 악마들과의 다툼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입니다. 당신이 손을 내밀 경우 보너스를 받습니다.]
[현재 이데르고 교단 내 평가가 높습니다. 적개심이 강하지만 주교들은 당신의 능력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
[……]
“…….”
‘아니….’
설마 이데르고 교단까지 뜰 줄은 몰랐던 태현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화해할 상대가 따로 있지 아무리 외교력이 급해도 이데르고 교단과 화해하는 건 좀 그렇지 않은가.
지금 이데르고 교단이 저지른 짓이 몇 개고 둘 사이에 쌓인 원한이 몇 개인데….
‘아닌가?’
따지다 보니 태현은 갑자기 화해도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교력 스탯 올릴 수 있다면 지금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닌 것이다.
이데르고 교단이 뭐 악신 교단이긴 한데, 사디크 교단도 지금 화해한 상태고(그걸 화해라고 할 수 있다면)….
[일단 파이토스 교단부터 찾아가지 않겠냐고 카르바노그가 화제를 돌립니다.]
‘그래. 그래야겠다.’
* * *
태현은 오랜만에 혼자 움직일 준비를 했다.
교단 관련 퀘스트는 굳이 여럿 데리고 갈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케인. 알겠지?”
“훗. 나만 믿어라.”
방금까지 잡일을 돕던 케인은 가능한 멋진 미소로 태현을 배웅하려고 애썼다.
조금만 수상쩍으면 태현이 눈치를 챌지도 몰랐으니까.
‘나는 바위요, 나는 나무이니, 나는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않고 있음이다. 관자재보살 행심반야….’
케인은 불경까지 외우면서 신나는 감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썼다.
들키는 순간 지옥이 벌어진다!
“그러면 감독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김태현 선수도 자기 퀘스트 집중해야죠.”
“에이. 뭘 이런 걸 가지고….”
태현과 감독, 사베트는 훈훈하게 인사를 나눴다.
케인은 그 모습에 절망했다.
‘진짜 나쁜 새끼들 같으니…!’
[에랑스 왕국에 진입합니다.]
[현재 에랑스 왕국 내…]
[……]
[……]
현재 다른 교단을 찾기 가장 좋은 나라는 역시 에랑스 왕국이었다.
가깝고, 교단들 많고….
아탈리 왕국의 다른 교단들은 아키서스 교단 때문에 사라진 지 오래 된 것이다.
용용이를 타고 빠르게 날아간 태현은 오뒤르망 시 앞에 멈췄다.
파이토스 교단 대신전이 있는 왕국의 대도시였다.
[오뒤르망 시에 입장합니다!]
[명성이 매우 높습니다. 보너스를…]
[현재 에랑스 왕국 국왕의 신뢰를 받고 있습니다.]
[……]
[현재 에랑스 왕국 귀족들이 당신들을 견제하고 있습니다. 주의하십시오.]
[……]
여러 메시지창들을 확인하고 태현은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왕국 대도시 아니랄까 봐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성문을 오고 가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골짜기도 나름 아탈리 왕국의 대도시였지만, 게임 초기부터 이어져 내려 온 진짜배기 대도시는 역시 분위기부터가 달랐다.
길가에 자리 잡고 있는 고풍스러운 건물들.
내성 쪽을 장식하고 있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흰 대리석 성벽.
광장을 비추고 있는 발광석 가로등.
‘…골짜기가 나쁜 도시는 아닌데, 좀 광기가 넘치는 곳이긴 해.’
도시 주인인 태현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길가에 자리 잡고 있는 건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아니라 오크, 뱀파이어, 고블린, 거인들이 세운 기괴하고 다양한 건물들.
내성 쪽을 장식하고 있는 건 우아하고 아름다운 흰 대리석 성벽이 아니라 살벌한 대포들과 폭탄이 내장된 함정 동상들.
광장을 비추고 있는 건 아키서스 교단에서 나온 사제들이 뿜고 있는 빛….
[마지막은 비슷하다고 카르바노그가 위로합니다.]
‘그것도 솔직히 안 믿는 놈들 홀리려고 빛 켜놓는 것에 가깝지.’
태현은 입맛을 다시며 길을 걸어간 다음 파이토스 교단 대신전 앞에 줄을 섰다.
사람 많은 도시답게 줄 서 있는 플레이어들이 여럿이었다.
“그쪽도 파이토스 교단 퀘스트 깨러 온 거지?”
“?”
태현은 앞에 서있는 플레이어의 질문에 의아해했다.
“파이토스 교단 퀘스트가 있나?”
“뭘 모르는 척을 하는 거야? 요즘 파이토스 교단에서 퀘스트 많이 나오잖아. 난 처음에 대괴수 잡으러 가나 했는데, 잡히고 나서도 퀘스트 나오는 거 보니까 아닌 거 같더라고.”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플레이어들도 비슷한 목적으로 온 모양이었다.
-이다비. 요즘 파이토스 교단 퀘스트 시작된 게 있나?
-네. 물어보니까 연계 퀘스트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네요. 지금 퀘스트들이 많이 나와서 교단 플레이어들이 추측 중인 것 같아요.
교단에서 의미심장한 퀘스트들이 여럿 나오면 그건 하나의 징조였다.
뭔가 커다란 퀘스트가 나온다!
그런 만큼 파이토스 교단 플레이어들이 허겁지겁 퀘스트를 받으려고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그쪽이 레벨 좀 낮은 거 같아서 조언 좀 해줄게.”
앞에 서 있는 플레이어는 태현의 겉모습만 보고 견적을 냈는지 자신만만하게 조언을 했다.
태현은 딱히 할 말이 없어서 대꾸하지 않고 들었다.
“들어가면 아마 퀘스트가 세 개 나올 거야. 첫 번째 퀘스트는 토벌이고, 두 번째 퀘스트는 제작이고, 세 번째 퀘스트는 물건 찾기거든? 어지간하면 토벌 받아. 토벌 쪽이 제일 진도 빨리 나간다더라.”
“제작은?”
“제작은 느려. 만들어 오라는 거 언제 다 만들겠어. 그리고 너 전투 직업 아냐? 전투 직업이 왜 제작을 물어?”
“물어볼 수도 있지. 그러면 물건 찾기는?”
“그건 더 느리다더라. 그거 하다가 때려치운 놈들이 여럿이야. 그냥 토벌만 해. 진도 빠르니까.”
“그렇군….”
“나는 일단 6단계까지만 깰 생각이야. 너도 6단계까지만 깨둬. 그것만 해도 경험치는 꽤 나오니까. 너 레벨 200은 넘지?”
“사람을 뭘로 보고. 당연히 넘지.”
태현은 즉답했다.
이래 봬도 레벨 250을 넘긴 어엿한 랭커였던 것이다.
“뭘 잘난 척을 하는 거야? 300은 안 넘을 거 아냐.”
“…….”
원래라면 바로 검을 휘둘렀겠지만 태현은 드물게 참았다.
레벨 공격이 좀 아프긴 했던 것이다.
“난 경험치 때문에 온 게 아닌데.”
“뭐야. 공적치 포인트? 공적치 포인트도 6단계까지가 나을걸.”
“7단계는 뭔데?”
“소문을 들어보니까 악마 공작 부관 찾아서 잡아오라더라. 미친놈들인가 봐.”
“…….”
악마 공작 한 번 잡은 적 있는 태현 입장에서는 솔직히 별로 어려워보이지 않은 게 사실이었다.
‘흠. 진행할까?’
태현의 원래 목적은 파이토스 교단 찾아가서 친한 척 좀 하고, 퀘스트를 받아서 깨준 다음 친밀도를 올리는 거였다.
그런데 파이토스 교단에서 이미 이런 퀘스트들을 진행 중이라면 이걸 깨는 게 더 좋은 방법일 수도 있었다.
-비상이다! 비상!!!
-성기사들 집합! 성기사들 집합! 안마당으로 달려라!
-대신전 문으로 모여라!!!!
“뭐, 뭐야??”
“무슨 일입니까??”
줄 서 있던 플레이어들은 안에서 들리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안에서 무슨 일이 났나 봐!”
“악마들이 침공한 건가???!”
“분위기가 수상하더니 진짜 악마가 나타났나 보다…!”
플레이어들은 악마 정도쯤 되는 존재가 나타났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소란이 일어날 리가 없는 것이다.
“다들 싸울 준비해!”
-아키서스 교단의 교황이 찾아왔다!! 모두 무장해라!!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된다. 얕보이지 말도록! 얕보이는 순간 당한다!
“…???”
“??????”
줄 서 있던 플레이어들은 귀를 의심했다.
악마가 아니라고??
“내 귀가 잘못된 게 아니라면, 방금 아키서스 교단의 교황이라고 하지 않았냐?”
“나도 그렇게 들었는데??”
“여기 김태현이 와 있다고?”
“…….”
태현은 정말 오랜만에 쪽팔림을 느꼈다.
‘아. 진짜 나가기 싫어지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