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495화 (1,494/1,826)

§ 나는 될놈이다 1495화

길드 간부들이 가장 듣기 좋아하는 말은 무엇일까?

‘자네 승진일세’, ‘길드원 숫자가 대폭 늘었습니다!’, ‘월급 나왔다’ 같은 말들도 있었지만 역시 가장 좋은 건 ‘대박 던전 찾았다’였다.

던전만큼 길드의 좋은 수입원은 없었던 것이다.

도시나 성, 마을이나 요새 같은 곳은 세금을 높게 올리면 플레이어들이 안 가면 됐다.

길드원들이야 울며 겨자 먹기로 세금 내면서 써야 했지만 길드원 아닌 사람들은 판온에 널린 게 마을이고 도시인데 다른 곳 가면 그만인 것이다.

하지만 던전은 달랐다.

레벨 업을 하고, 퀘스트를 깨고 싶은 플레이어들한테 좋은 던전은 입장료를 얼마를 내던 꼭 들어가야 하는 필수 품목!

대형 길드들이 판온 1 때부터 좋은 던전 발굴에 혈안이 된 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괜찮은 던전이 발견되면 주인을 가리기 위한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그 던전이 정말 좋은 던전이라면 한두 번으로는 끝나지도 않았다. 심한 경우에는 판온 끝날 때까지도 계속 갖고 싸운 적도 있었다.

그런데 최상급 던전이라고?

“얼마나 대단한 던전이길래…?”

길드 간부 한 명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누군가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지만, 김태현이 케인 놈에게 하는 말을 봤을 때 보통 던전이 아니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걸 봐주십시오.”

-케인. 네가 놀던 사이에 많이 약해졌구나. 너는 아무래도 아키서스의 탑으로 가야겠다.

-뭐? 아키서스의 탑에? 와! 신난다! 그 대단한 아키서스의 탑에 들여보내 준다니! 나는 정말 행운아야!

-야 인마…….

대괴수 오르기돈을 잡기 위해 왔던 태현 일행의 대화.

그 대화에 길드 동맹 간부 하나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케인 반응이 좀 어색하지 않나?”

“케인 놈은 원래 이상했잖나.”

“하긴….”

“그놈을 믿으면 안 돼. 어리숙하고 멍청해 보이는 겉모습에 우리 랭커 몇 명이나 당했어? 그놈이 저렇게 보여도 믿을 수 없는 놈이라니까.”

길드 동맹 내부에서 케인은 의외로 고평가를 받았다.

아니, 사실 케인을 고평가하지 않는 곳이 드물었다.

게시판의 팬들이야 ‘케인 저놈 거품이네 진짜 아오 김태현이 케인 대신 스미스만 데리고 왔어도 킬을 2배로 했겠다’라고 욕했지만, 객관적으로 최상위권에서 꾸준한 성적을 내고 있는 탱커는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점령?”

“점령은 무리지. 지금 김태현과 전면전을 벌이는 건….”

사방이 적인데 뒤에 있는 김태현까지 찔러서 좋을 게 없었다.

길드 동맹의 간부들은 쓰라린 옛 기억들이 떠올라서 인상을 찌푸렸다.

“점령이 무리라면 던전을 건드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거 아닙니까?”

신임 간부 한 명이 손을 들었다.

확실히 맞는 말이었지만, 고참 간부는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원래라면 그렇지.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이야기가 다르다.”

“…?”

“점령할 필요 없다. 우리 길드 동맹 랭커들이 그냥 들어가서 공략하는 거다.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밀어버리는 거지. 다른 경쟁자들이 따라오지 못하도록.”

“그게 가능합니까??”

신임 간부는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김태현이 호구도 아니고, 자기 왕국에서 다른 길드 랭커들이 던전 싹쓸이 하고 있는 걸 지켜볼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놀랍게도 아탈리 왕국에서는 가능하다. 김태현 그놈은 던전 통제 안 해.”

“맞아. 그거 하나는 칭찬해 줘야지.”

“그 자식이 그걸로 이미지 세탁하고 있다는 건 왜 모르는데!”

“왜 화를 내고 그래. 어쩔 수 없는 거잖아.”

그랬다.

놀랍게도 태현은 다른 왕국 플레이어들이 아탈리 왕국 던전 오는 걸 통제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길드들과 비교해 봤을 때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

하지만 덕분에 길드 동맹은 이렇게 점령하지 않고도 다른 던전을 노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 문제가 있습니다.”

“뭔데?”

“화이트 나이트에 있는 첩자가 올린 보고에 따르면, 그쪽에서도 이 <아키서스의 탑>에 대한 정보를 얻은 모양입니다. 공략조를 짜서 대대적으로 공략할 모양이던데요.”

“아니…!”

“그뿐만이 아니라 미다스 길드도 준비 중이랍니다.”

“도둑놈의 새끼들!”

간부들은 책상을 치며 분개했다.

정말 상도덕도 없는 도둑놈의 새끼들이 분명했다.

그들이 먼저 침을 발라 놓은 던전에 들어가려고 하다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피할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맞는 말이다. 던전 안에서 싸움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김태현 놈이 그 자식들 편을 들진 않겠지.”

태현이 아무리 국왕이라지만 던전 안에서 일어나는 싸움 하나하나를 일일이 관리하진 않았다.

그러나 그 싸움이 커지고, 특정 파티가 던전을 통제하면서 독점하면 태현 밑의 왕국 NPC들이 나섰다.

왕국 기사단, 교단 성기사단, 폭탄 실험할 기회라고 신나서 달려오는 기계공학 대장장이들 등등.

이걸로도 관리가 안 되면?

그때는 태현이 직접 나서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악한 파티가 선량한 플레이어들을 괴롭힐 때고, 길드 동맹과 다른 초대형 길드들 싸움에는 김태현이 낄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한시라도 빨리 가는 게 유리합니다. 던전 지형을 파악하고 먼저 쓸어버리고 있으면, 놈들이 어쩌겠습니까?”

“맞는 말이다. 랭커들한테 연락을 돌리도록. 자원을 받아 파티를 꾸려서 갈 테니….”

“벌써 모였습니다.”

“…벌써??”

간부들은 인상을 찌푸렸다.

‘왕국 영지 순찰해서 치안도 좀 올려줄 랭커 있나?’나 ‘지금 변방에 일퀘 떴는데 가서 지원 좀 해줄 랭커 있나?’ 같은 질문에는 ‘할머니께서 병원에 입원하셔서…’ ‘당 인민대표대회가 있어서…’ 같은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던 놈들이, 꿀 같은 던전 이야기에는 순식간에 몰려드니 얄밉기 그지없는 것이다.

“됐다. 빨리 파티 짜서 보내기나 해.”

“예!”

“참. 김태현 놈은 뭐 하고 있냐? 대괴수 퀘스트로 대박을 냈을 텐데.”

쑤닝의 질문에 간부들은 부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번 대괴수 토벌 퀘스트에서 가장 많은 경험치를 얻은 건 비교할 것도 없이 태현 일행이었다.

레벨 업을 얼마나 했을지 생각하면 속이 쓰렸다.

그 기세를 타고 뭘 하고 있을까?

“그 자식, 설마 또 다른 전설 퀘스트 깨고 있진 않겠지.”

“전설 퀘스트가 애들 장난도 아니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놈 전설 퀘스트 물어오는 횟수 생각해보면 무리도 아니야.”

“어… 길마님. 김태현 지금 왕국에 있는데요.”

“왕국에서? 뭘 하는데? 재정비하나?”

랭커도 아이템 팔 때는 마을에 가야 했다.

김태현도 그런 거라면….

“…농사짓고 낚시하고 광산에서 채굴하고 있는데요??”

“??????”

* * *

태현과 케인의 활약은 그야말로 초인적이었다.

한 명은 압도적인 행운과 권능 스킬들로, 다른 한 명은 압도적인 체력과 우직함으로.

어느 생산 스킬이든 간에 닥치는 대로 활약하는 둘!

처음에는 그저 태현과 같이 파티 한 번 해보려는 마음으로, 별 기대하지 않고 신청한 사람들도 나중에는 눈이 뒤집히기 시작했다.

“공적치 포인트!! 공적치 포인트 내놔!!!”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남들이 몇 날 며칠을 캐도 나오지 않았던 아이템을 무슨 잡템인 양 퍽퍽 캐내는 둘의 소문은 점점 더 부풀려졌다.

-구리 광산에서 김태현이 스킬 한 번 쓰니까 아다만티움 광산이 됐다더라!!

-물가에서 김태현이 낚싯대 치우고 박수 한 번 치니까 물고기들이 전부 다 전설 등급으로 변해서 일렬로 올라오는 거 봤냐?

-…지금 게시판에 있는 놈들 단체로 짜고 구라치는 거지??

-거짓말도 있긴 하지만 여기 나온 이야기들 중 절반은 사실임.

-2/3은 사실인 듯?

-저 레벨 262 재봉사인데요, 진짜 소문이 사실인가요? 제가 지금 기르는 최상급 누에에서 <아름다운 천사의 실>을 뽑아내야 하는데, 이게 진짜 무슨 수를 써도 안 나오거든요. 골짜기 가면 뽑을 수 있나요?

-뽑을 수 있긴 한데 지금 줄 순서 엄청 밀려서 힘들듯.

-교단 이제 와서 가입해서 공적치 포인트 쌓으려면 힘들지. 돈으로 사면 모를까.

-돈으로 사면 된다고요? 사겠습니다!

[왕국의 수입이 증가합니다!]

[왕국의 경제력 등급이 오릅니다!]

[왕국의 경제력이 C+급이 되었습니다.]

경제력: C+등급.

-대대적인 공사와 지출, 영지 모험가들에게 베풀어주는 이벤트 때문에 지출이 많습니다.

-왕국의 수입이 많이 적은 편입니다. 세율을 올리는 것도 방법 중 하나일 것입니다.

-왕국에 폭발적으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향후 수입이 지속적으로 올라갑니다.

-신성한 기운으로 인해 왕국에 버프가….

‘으으음!’

지쳐 쓰러진 케인은 옆에 내버려 두고, 태현은 상태창을 켠 채 고민에 잠겼다.

혼자서 대형 길드들과 맞붙을 때에도 느낄 수 없었던 압박감.

영지 관리는 정말 어마어마한 적이었다.

어디부터 베어야 할지 알 수 없는 강력한 적.

‘지금 잘 하고 있는 거긴 하지.’

경제력은 원래 D-급이었다.

이걸 지금 태현과 케인이 미친 듯이 일퀘 뺑뺑이를 도는 것으로 C+까지 올린 거니, 오히려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확실히 한계가 있긴 했다.

A등급까지 올리려면 태현 혼자의 힘으로는 부족한 것이다.

‘지금 퀘스트가 A급 3개를 찍어야 하는데….’

그나마 올리기 쉽고 가능성 있는 등급이 바로 경제력, 기술력.

경제력은 상황에 따라 빠르게 달라지는 등급이니 A등급을 찍기 좋았고, 기술력은 태현 본인이 뛰어난 기술자인 만큼 A등급 찍기 좋았다.

게다가 왕국의 골짜기부터 시작해서 악마 대장장이나 천사 대장장이 등 여러 인재들이 있었으니까.

실제로 지금 기술력 등급은 B등급. 가장 높았다.

‘문제는 왕국 관리가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는 거지.’

골짜기 관리라면 차라리 나았다.

골짜기만 집중적으로 하면 됐으니까.

하지만 왕국은 왕국 내 영지들을 모두 포함해서 통계를 내는 형태.

아무리 골짜기가 발전을 해도 다른 영지들이 발목을 붙잡으면 올리기가 힘들었다.

‘수도나 다른 길드들이 갖고 있는 영지들은 잘 말해서 올린다 치면… 경제력과 기술력은 올린다 치더라도. 그나마 가능한 건….’

남은 건 하나밖에 없었다.

외교력!

외교력: D+등급.

-현재 동맹 사이인 왕국이 거의 없습니다.

-에랑스 왕국의 국왕과 친밀한 사이지만, 에랑스 왕국의 귀족들은 당신을 수상쩍게 생각하고 꺼려 합니다. 에랑스 왕국 국왕의 상태가 불안정해 페널티를 받습니다.

-왕국 내에 당신을 반대하는 귀족 영주들이 여럿 있습니다.

-동맹 사이인 교단이 거의 없습니다. 당신의 활약을 부정하는 교단은 없지만, 동맹을 맺기 위해서는 신뢰를 더 쌓아야 합니다.

-악신 교단들의 맹렬한 증오를 받고 있습니다. 페널티를 받습니다.

-악마를 숭배하는 흑마법사들의 맹렬한 증오를….

-굶주린 혼돈을 숭배하는….

-….

-….

“…….”

태현은 살짝 현기증이 났다.

‘아니… 내가 이렇게 적이 많았나?’

[카르바노그가 이런 시대에 적이 많다는 건 올바르게 살았다는 증거라고 말합니다!]

‘고맙긴 한데 어디부터 풀어야 할지 모르겠군.’

그나마 외교력이 쉬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걸 보니 그냥 다른 걸 올리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여기서 무엇부터 해야 할까?

태현이 상태창을 보며 고민하자, 이세연이 옆에 와서 조언을 했다.

“음… 이 중에서는 일단 널 반대하는 귀족 NPC들부터 싹 처리하는 건 어때? 도와줄 수 있어.”

“나쁘지 않군. 이번 기회에 판온 길드들 불러서 쓸어버릴까.”

[카르바노그가 저 흑마법사 말 듣지 말고 좀 평화로운 방법을 하자고 말합니다!]

‘이세연이 제안한 거 말고 다른 방법도 있나?’

[다른 교단과 화해하면 되지 않냐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군.’

태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 반응에 카르바노그는 어이가 없었다.

토벌전보다 그게 먼저 떠올라야 정상 아닌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