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492화 (1,491/1,826)

§ 나는 될놈이다 1492화

세상 끝날 때까지 싸울 거 같은 두 길드가 그렇게 화해를 하자, 양쪽에 끼어 있던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깜짝 놀랐다.

-진짜 화해를 하네요??

-신기한 놈들이네.

-어떻게 할까요? 공격해서 부추겨볼까요?

-아냐. 위험하니까 빨리 아이템만 줍고 빠지자.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 사이에 있으니 슬쩍 다시 싸움을 유도하려면 할 수 있었지만….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그러지 않았다.

그들에게도 나름의 도덕과 윤리가 있는 것이다.

‘이 정도 챙겼으면 만족할 줄 알아야지. 암.’

‘맞는 말씀이십니다.’

참가한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 중 2/3은 로그아웃당한 것 같았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로그아웃 페널티는 기본적으로 감수하고 온 것이다.

비싼 장비는 다 두고 왔고, 악명도 줄이고 왔고….

얻은 것만 계산해도 충분히 이득이었다.

‘너무 욕심을 적게 냈나?’

‘아닙니다. 이제 우리 길드도 대형 길드인데 품위가 있어야지요.’

‘하하. 맞는 말이야.’

물론 로그아웃 당한 길드 동맹 길드원이나 화이트 나이트 길드원이 들었다면 뒷목을 잡았을 소리였다.

이 새끼들이…!

* * *

태현 일행은 곧바로 잘츠 왕국을 뚫고 오스턴 왕국의 땅도 질주해서 벗어났다.

괜히 오래 머물렀다가 포위망이라도 만들어지면 골치 아파지는 것이다.

오스턴 왕국 남부에서 한창 건설 중이던 길드 동맹 길드원들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김태현 아냐 저거?”

“이봐! 김태현! 오르기돈은 다 잡았… 야! 대답도 안 하냐!”

태현 일행은 대답도 하지 않고 내달렸다.

간신히 국경을 넘어오고 나서야 일행은 정지하고 휴식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헉… 헉헉….”

“와. 진짜 힘들었다.”

“이렇게 미친 듯이 달리기만 한 것도 처음인 것 같습니다.”

서로 탈것을 전부 꺼내놓고 체력이 깎일 정도로 미친 듯이 질주만 한 것이다.

고생한 일행들은 서로를 칭찬해 줬다.

“케인. 대단했다. 네가 여섯 개의 팔로 도망치는 말들을 붙잡지 않았으면 도중에 한 번 멈췄을 거야.”

“후후. 무슨 말을. 너야말로 앞에 바위가 나왔을 때 달려나가서 치워줬잖냐.”

케인과 최상윤은 코밑을 쓱 훔치며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 모습에 우리 안에 갇혀 있던 악마들은 속으로 쌍욕을 퍼부었다.

‘천사 같은 놈들!’

‘네놈들이 무슨 고생을 했다고…!’

이번 질주에서 제일 고생을 한 건 악마들이었다.

아키서스 포병대의 그 무거운 대포들과 우리들을 끌고 달려야 하는 만큼, 마력을 미친듯이 뽑아내야 했던 것이다.

게다가 제국의 미친 황자 페르소텔턴이 조금이라도 쉬면 죽일 듯이 닦달을 해댔다.

-그 정도는 안 된다! 더! 더 올려라! 어허! 더 할 수 있다! 악마 주제에 왜 이렇게 근성이 없나? 힘을 내라! 내가 기르던 애마가 한 마리 있었는데 그 녀석은 화살을 수십 방 맞고도 멈추지 않았다!

-…….

-제발! 저 황자를 닥치게 해주면 더 힘을 내겠소, 드워프들!

오죽하면 악마들이 이런 타협까지 했을까.

태현도 미안했는지 드워프들에게 말했다.

“오늘은 악마들을 좀 쉬게 해줘라.”

-에이… 너무 풀어주면 악마들이 약해집니다. 원래 쇠는 뜨거울 때 두드려야 한다고….

누가 드워프 아니랄까 봐 미친 소리를 하는 포병대 NPC들에게, 악마들은 기겁을 했다.

‘제발 살려줘!’

살면서 아키서스의 화신이 믿는 구석이 될 줄이야….

“자. 퀘스트 완료했으니 아이템부터 확인하자.”

“너 아까 몇 번이고 떨어질 뻔하더니 괜찮은 거냐?”

케인은 갑자기 생각이 나서 물었다.

아까 탈출을 하면서 태현이 몇 번이고 떨어질 뻔한 것이다.

처음에는 적들의 공격을 받아서 균형이 꺾였나 싶었는데 그런 것 같지도 않았고….

“아. 그거. 떨어질 뻔한 게 아니라 몸을 옆으로 굽힌 거야.”

“왜? 공격 피하려고?”

“아니. 땅에 떨어진 아이템 주으려고.”

“…….”

케인은 할 말을 잃었다.

‘미친놈 아냐!?’

그 와중에 땅에 떨어진 아이템 줍고 내달렸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자기는 그저 탈것 위에서 안 떨어지기 위해 버티고만 있었는데 그걸 또 줍고 있었다고?

“이다비는 몇 개 챙겼어?”

“저는 8개 정도 챙겼어요.”

“잘했네.”

“태현 님 정도는 아니죠.”

“뭘 몇 개나 차이 난다고.”

“…??!?”

케인은 다시 경악했다.

‘어, 어라? 나 빼고 다 챙겼나?’

케인은 당황해서 시선을 돌렸다. 최상윤이 진정하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난 안 주웠어.”

“휴…!”

* * *

고대 제국 황실의 녹슨 검:

내구력 ∞/∞. 공격력 ?

고대 제국의 후계자 퀘스트 진행 중인 모험가만이 착용 가능, 파괴되지 않음, 공격력은 고대 제국의 부활도에 영향을 받음.

고대 제국 황실에서 내려오던 검이다. 오랫동안 무덤에 묻혀 있어 녹이 슬고 알아볼 수 없게 변했지만 그 가치는 변하지 않으리라.

‘아니… 뭐지?’

태현은 좀 놀랐다.

무덤에서 뽑은 검이 생각보다 너무 평범했던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평범하진 않았다. 저런 식으로 내구도 무한에 공격력 영향받는 아이템이 흔하진 않았으니까.

게다가 저걸 뽑는 순간 퀘스트가 시작되었고 고대 제국 관련 NPC들한테 일종의 증표기도 했으니 평범한 아이템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옵션이 없어도 너무 없지 않나?’

보통 전설 퀘스트 관련 아이템은 옵션을 덕지덕지 달고 있기 마련이었다.

공격 속도, HP 흡수, MP 회복, 스킬 쿨타임, 추가 스킬 등등.

그에 비해 이 녹슨 검은 그런 옵션이 하나도 없어서 이상할 정도였다.

[카르바노그가 아직 검이 완전한 힘을 되찾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고 말합니다.]

‘하긴 그런가. 퀘스트가 지금 시작했을 뿐이니….’

태현은 실망하지 않고 다음 확인으로 넘어갔다.

오르기돈의 시체는 뺏겼지만, 오르기돈에게서 얻은 아이템들과 싸움터에서 주워 나온 아이템들이 있었다.

태현은 일단 길드원들이 흘린 아이템들부터 확인하기로 했다.

<최상급 왕국 흑요석 허리띠>

<홍은으로 만든 최상급 금속 셔츠>

<엘프 장인이 만든 나무뿌리정령의 팔찌>

<순금으로 된 최상급 발목 장식>

…….

…….

“…?”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이템 목록을 다시 확인했다. 옆에서 이미 확인을 끝낸 이다비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뭐 이상한 거라도 있으세요?”

“이상한 게 있긴 해.”

“?”

“내가 주운 것보다 아이템이 더 많은 거 같은데…?”

“착각한 거 아니야?”

옆에서 케인이 말했다. 태현은 고개를 저었다.

“난 이런 거 주울 때 착각 안 해.”

‘이 자식 대체 PK를 얼마나 많이 하면 저런 소리를 자신감 넘치게 하는 거야?’

태현의 목소리에서는 수많은 플레이어들을 골로 보낸 거장의 품격이 풍겨났다.

말을 꺼낸 케인이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진짜 이상하군. 거의 2배 차이인데.’

태현이 주운 것보다 2배는 많은 것 같은 아이템들.

그리고 이상한 점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아이템이 전부 다, 너무 좋았던 것이다.

‘레벨 제한이 300 이상에 옵션들도 상당히 좋은 희귀한 장비들인데??’

물론 두 길드 랭커들이라면 이런 장비를 차고 있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하지만 이건 잘 생각해 보면 명백히 이상한 일이었다.

길드전이 벌어지면 가장 먼저 죽는 건 레벨 낮고 장비 부족한 플레이어들.

랭커들은 최우선적으로 케어를 받고 있어서 정말 어지간해서는 죽지 않았다.

즉 바닥에 떨어져 있던 아이템들도 레벨 낮은 아이템들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그 혼란 중에 랭커들이 떨어뜨린 아이템들만 챙긴다는 게 말이 된단 말인가?

[카르바노그가 <위대한 황금의 축복> 효과 아니냐고 묻습니다.]

‘그게 뭐지?’

[…<아키서스 축복의 룰렛>을 벌써 까먹었냐고 말합니다.]

“!”

태현은 그제야 깨달았다.

이번 전설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받은 <아키서스 축복의 룰렛>의 새 버프.

위대한 황금의 축복!

‘이런 효과였나?’

설명이 부족해서 어떤 버프인지 바로 감이 오지 않았지만, 태현은 어떤 효과인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자리에 널려 있는 아이템들 중 비싼 거 줍기.

자리에 널려 있는 아이템들 하나 집어도 하나 더 주기.

‘…음. 이렇게 정리하니까 좀 구질구질한 버프 같은데.’

하지만 위대한 황금의 축복은 결코 약한 버프가 아니었다.

게다가 태현이 지금 해야 하는 <고대 제국의 후계자> 퀘스트 중 하나는 왕국을 부유하게 만드는 퀘스트.

즉….

골드가 엄청나게 필요했던 것이다.

‘아… 세금은 올리기 싫단 말이지. 자존심이 있지.’

길드 동맹 놈들처럼 세금 빡세게 올린 다음 ‘다 너희들을 위해서다!’라고 외치는 짓은 정말로 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자존심 문제였다.

어쨌든 자존심을 챙기려면 이제 다른 곳에서 골드 나올 곳을 만들어야 하는데, 오스턴 왕국 가서 약탈해 올 수도 없으니 방법도 적었다.

그런 와중에 <위대한 황금의 축복> 버프는 확실히 도움이 되리라.

“으음.”

태현은 고민했다.

이 버프를 어떻게 써야 가장 잘 쓸 수 있을까?

‘농사 쪽으로 보면… 작물 수확할 때 가서 도와줄 수 있겠지. 품질 올라가고 개수도 늘어날 테니. 낚시도 나쁘지 않아. 물고기 등급부터 양이 확 늘어날 테니. 광산도 괜찮지. 무엇보다 비싼 아이템들이 많이 나오는 곳이니….’

이것저것 고민하던 태현에게 이세연이 농담 삼아서 말했다.

“그냥 다 하지 그래?”

“오. 천재적인 생각인데? 고마워.”

“…….”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태현의 모습에 이세연은 할 말을 잃었다.

정말 저걸 다 하겠다니.

몸이 몇 개라도 부족할 텐데?

* * *

“골짜기에서 파격적인 이벤트를 진행합니다!”

“교황님이 미쳤어요! 파격 이벤트!”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 떠들고 다니는 모습에, 고참 골짜기 플레이어는 고개를 저었다.

“또 시작이군.”

“어, 이벤트 한다는데 안 가도 돼요?”

“새로 온 모양인데 한 가지 알려주지. 골짜기에서 저놈들은… 호들갑을 잘 떨어!”

“!”

“무작정 파격 이벤트, 대박 이벤트라고 한다고 속지 말란 말이야. 이 골짜기에서는 어수룩해서는 살아갈 수 없는 곳이니까. 질이 나쁜 놈은 저런 식으로 사칭해서 외친 다음 줄을 새치기하기도 한다고.”

“감, 감사합니다.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고마워하라고. 신참. 월요일은 좋은 이벤트가 열리는 날이 아니야.”

그러나 그런 말과 달리, 주변의 사람들은 점점 더 모이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죽기라도 하는 것처럼 전력을 향해 광장으로 달려가는 사람들!

그 모습에 가만히 있던 사람들도 초조해질 정도였다.

“…이건 그냥 휩쓸리는 사람들일 뿐. 이런 거에 속아서는 안 된….”

“야!! 김태현 파티가 왕국 일퀘 직접 지원해 준단다!!”

“김태현 파티가 신입 모집한다!!”

“비켜!! 비켜!!!!”

“!!!!”

생각지도 못한 이벤트에, 방금까지 거만을 떨던 플레이어도 태도를 돌변하고 달려가기 시작했다.

* * *

“여기 내 공적치 포인트를 가져가 주십시오!!”

“오늘 같은 날을 위해 공적치 포인트를 모아왔다!!”

“골드 등급 이하로는 꺼져! 난 교단 플래티넘 등급이다!”

“플래티넘?? 난 다이아다. 너야말로 저리 꺼지지 못해??!?”

“어… 혹시 <보스턴 타이거즈>의 헨리 선수 아니십니까?”

“…사,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광장은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였다.

미친 듯이 몰린 사람들을 보고 태현은 반성했다.

‘이렇게 많이 모일 줄은 몰랐는데….’

“앞으로는 좀 덜 모이게 불러야겠어요.”

“확실히 맞는 말이야. <퀘스트 도중 사망해도 책임지지 않음> 같은 문구를 넣을까?”

“그러면 난이도 높은 퀘스트라고 오히려 더 몰릴 거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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