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491화
“안 들어간대.”
“아쉽다.”
태현과 이세연의 대화에 케인은 질색하는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저 둘을 붙여 놓는 건 법적으로 금지해야 하지 않나?’
둘이 붙어 있으니 광기가 몇 배로 늘어나는 느낌!
“그래서… 말릴 방법 있는 사람?”
태현은 살짝 기대하는 눈빛으로 물었다.
태현이야 기본적으로 전투, 전투, 전투로 퀘스트를 깨는 호전적인 사람이었지만 여기 모인 사람들의 생각은 다를 수도 있는 것이다.
저 밖의 길드들을 화해시킬 좋은 방법을 떠올렸을지도?
“으으음….”
“으음….”
“크으음….”
“…….”
그러나 태현 일행의 누구도 뚜렷한 의견을 내놓지는 못했다.
솔직히 문제가 너무 어려웠던 것이다.
‘저놈들을 어떻게 화해시키지?’
‘중국 정부에 요청해서 쑤닝한테 압박 넣으면 쑤닝이 알아서 스미스한테 대가리 박지 않을까?’
‘그게 가능하면 그냥 길드 동맹을 해체시키는 게 나을 것 같….’
“방법 없나?”
“도저히 답이 없어 보이는데요.”
“음… 그래. 그럼 포기하지 뭐.”
“?!”
생각보다 순순히 포기하는 태현의 모습에 다들 깜짝 놀랐다.
바로 포기에는 아까운 퀘스트였던 것이다.
보상이 뭐가 나올 줄 어떻게 알고….
하지만 태현은 미련을 갖지 않았다.
‘점점 난이도 높은 퀘스트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걸 전부 다 깰 수는 없지.’
답이 안 나오는 건 깔끔하게 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저 화해 퀘스트를 제외하더라도 지금 고대 제국 부활 관련해서 다른 퀘스트들이 두 개나 더 있었다.
유산 찾고 영지 번영시키는 것만 해도 충분한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그게 더 탐이 났다. 뭐가 아쉬워서 저 못난 놈들을 화해시켜야 한단 말인가. 그럴 시간에 유산 찾고 영지 번영을 시키면 시켰지….
“입구나 뚫자. 여기서 계속 있어봤자 좋을 게 없으니.”
“어떻게 뚫으시게요?”
“그냥 공격하려고.”
원래 태현은 좀 더 온건한 방법으로 길을 열려고 했다.
두 길드가 힘을 합치지 못하도록 이간질을 한 다음, 진이 빠질 정도로 싸우게 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태현 일행이 길을 뚫으려고 시도해도 막지 못할 테니까.
[카르바노그가 어디가 온건하냐고 의아해합니다.]
하지만 그럴 필요도 없이 두 길드가 치열하게 싸우고 있으니, 태현은 그냥 공격해서 길을 뚫을 생각이었다.
“포병대가 공격 시작하고, 길 열리면 빠르게 돌파하자. 누가 공격해도 그냥 맞아줘. 괜히 발 묶이면 둘 사이 싸움에 끼게 될 테니까.”
“당연히 알고 있지. 걱정하지 마.”
케인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아마추어도 아니고, 이런 상황에서 대처법을 모르는 사람이 여기 어디 있단 말인가.
포위망을 뚫을 때 누가 때린다고 멈춰서 반격하는 멍청이는 없었다.
“…….”
“…….”
‘아무리 생각해도 케인 때문에 따로 말한 거 같은데.’
최상윤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여기서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여기서 제일 도발 잘 당할 것 같은 사람을 뽑는다면 아마 만장일치로 한 명이 나올 것!
* * *
“헉… 헉헉.”
“이제 슬슬… 포기하고 물러서는 게 어떠냐?”
“이쪽이… 할 소리다.”
길드 동맹과 화이트 나이트 길드원들은 스스로한테 감탄하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오래 싸울 수 있었다니.
평소에는 HP 60~70% 밑으로만 떨어져도 바로 포션 꺼내거나 휴식에 들어갔는데, 이번 싸움을 통해 그런 한계를 한 꺼풀 벗어 던진 기분이었다.
‘이게 한계를 극복하고 성장하는 기분인가??’
“길드 동맹과 화이트 나이트!”
“???”
“????”
그렇게 한창을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데, 저 멀리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술 스킬로 지하 협곡 전체에 쩌렁쩌렁하게 울릴 정도로 크게 외치고 있는 태현의 목소리였다.
“우리가 여기서 나가려고 하는데 싸움을 잠시 멈춰주고 입구에서 비켜주길 바란다.”
“…미친놈인가?”
길드 동맹 랭커 중 한 명이 중얼거렸다.
너무 황당해서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세상 어떤 미친 플레이어가 길드들끼리 길드전 벌이는데 지나가겠다고 싸움 멈추란 소리를 한단 말인가?
자기들이 갑질만 해봤지, 갑질을 당하는 입장이 되자 길드 동맹은 매우 불쾌해했다.
“헛소리 하지 마라, 김태현! 지금 설마 스미스의 편을 드는 건 아니겠지??”
“역시! 김태현 씨! 이쪽 편을 들어주실 줄 알았습니다!”
“…김태현! 설마 아니겠지!? 방금 우리 길드원이 한 말은 잊어버려라! 얘가 감정이 좀 격해져서 그런 거니까! 스미스 놈이 방금 너희를 뒤통수치려고 한 걸 생각해 봐! 우린 전혀 그러지 않았어!”
“그만 징징대고 조용히 하십시오!”
“이 미친놈이 진짜!”
말로 다투던 두 길드는 다시 싸움을 시작했다. 태현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비켜설 거라고 생각 안 했다. 공격 개시!”
-예!
대괴수 오르기돈을 잡기 위해 단단히 준비를 했던 아키서스 포병대 NPC들이 남은 화력을 협곡 입구에 조준하기 시작했다.
태현은 다시 한번 경고했다.
“10초 후에 포격 들어간다! 뒤지기 싫은 놈들은 알아서 피해라!”
와아아아아아!
밟아! 쓰러뜨려!
“…잠깐. 뭐에 뭐가 온다고?”
“김태현 미친놈이 지금 여기 공격한다고 했….”
한창 싸우던 와중에도 태현의 목소리는 정신을 퍼뜩 들게 만드는 오싹함이 있었다.
“후퇴해야 하는 거 아닌가?”
“에이, 설마 진짜 쏠까요? 여기 있는 랭커들이 몇 명인데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후퇴!!! 후퇴!!!”
“뒤로 빠져!”
말하던 길드 동맹 간부들은 뭔가 느꼈는지 바로 후퇴 신호를 보냈다.
앞에서 공격 퍼붓는데 그냥 후퇴했다가는 진형이 무너지고 크게 다칠 수 있었지만,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일단 피하고 보자!
그리고 놀랍게도 화이트 나이트 길드원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허겁지겁 후퇴를 시작한 것이다.
“진짜 공격을 할까?”
“간덩어리 부은 미친놈도 여기 있는 인원들 상대로 시비를 걸진 못할 텐….”
꽈과과과과과과과광!
“…….”
“…….”
정말 바로 날아오는 포격에, 두 길드의 길드원들은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최근에 협조하는 바람에 잊고 있었지만….
김태현은 진짜 미친놈이 맞았던 것이다.
‘저런 새끼가 대체 어떻게 인성 세탁을 했길래 세계 최고 선수 이야기가 나오는 거냐??’
* * *
“달려!”
태현은 힘 있게 외쳤다.
아까처럼, 아키서스 포병대가 악마들의 마력을 최대한으로 뽑아내며 속도를 높였다.
지금 두 길드의 전력이 입구 쪽에서 물러난 상황이 기회였다.
‘정신 차리기 전에 뚫고 나간다!’
“김태현…! 선을 넘었구나!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나?”
“그렇게 여길 지나가진 못할 거다!”
랭커쯤 되면 포격에 벌벌 떨며 도망치지 않았다.
일단 피한 다음 바로 상황 파악하고 대응할 방법을 궁리하는 것이다.
한창 싸우던 도중에 이런 기습을 받은 만큼, 두 길드는 그냥 호락호락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좋든 싫든 일단 막아야 한다!
‘생각보다 회복이 빠르군.’
태현은 인상을 찌푸렸다.
둘이 사이가 안 좋아서 좀 더 다툴 줄 알았는데, 그런 와중에도 일단 길부터 막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어느 정도 충돌은 각오해야 하는 상황.
“케인. 탱킹 준비해라! 뚫고 나간다!”
“오케이!”
그러나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지원이 들어왔다.
슈우우우웅-
“!??!”
[<최상급 화염 기둥 분출>이 시전됩니다!]
[<벨카르마의 연쇄 번개>가 시전됩니다!]
[……]
[……]
[강력한 마법들이 중첩되며 추가 효과를…]
정수혁은 깜짝 놀랐다.
같은 마법사인 만큼 지금 시전되고 있는 마법들이 얼마나 강한 마법인지 바로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대체 누가?
“김태현! 우리는 네 편이다!!”
“…미다스 길드 미쳤냐???!”
“미다스 길드! 이러고도 무사할 거 같습니까!”
길드 동맹과 화이트 나이트 길드원들은 분노해서 외쳤다.
협곡 입구 바깥쪽에, 어느새 미다스 길드원들이 버티고 서 있었던 것이다.
마법진까지 그려놓고 마력 충전해서 마법 갈기는 폼이 아주 작정을 한 모양새!
“지들끼리 오르기돈 날먹하려고 한 주제에 어디서 협박질이야? 우리가 호구로 보였나?”
“…그건 정당한 경ㅈ….”
“이번 기회에 저 두 길드 놈들을 다 쓸어버려라! 오스턴 왕국은 우리가 먹는다!”
뒤늦게 도착한 탓에 제대로 참가하지 못한 미다스 길드는 다른 곳에서 이득을 보려고 했다.
두 길드가 치열하게 싸웠겠다, 아예 이번 기회에 싹 쓸어버리면….
“김태현! 우리가 지원해 줄 테니까 쓸어버려!”
“쟤네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것 같지 않냐?”
태현은 의아해했다.
태현의 목적은 두 길드의 정예를 여기서 쓸어버리고 무덤을 만들어버리는 게 아니라 그냥 빠져나가는 거였다.
미다스 길드가 좀 오해하는 거 같은데?
“뭐가 중요해. 이용하면 그만이지.”
“맞는 말이야.”
이세연의 말에 태현은 빠르게 긍정했다.
미다스 길드가 착각해서 도와주는 게 태현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멈추지 마! 앞으로!”
콰콰콰콰쾅!
미다스 길드가 마법을 연타로 날린 덕분에 막히려던 길이 다시 열렸다.
태현 일행은 전속력으로 질주했다.
[아키서스 포병대의 지구력이…]
[악마들이 마력 고갈 상태에서 마력을 만들어냅니다! 최대 MP가 증가합니다!]
[<고대 제국의 후계자> 퀘스트를 클리어했습니다!]
[명예가 크게 오릅니다!]
[고대 제국 관련 NPC 사이에서 평판이…]
[고대 제국의 힘이 당신에게 깃듭니다. 검의 힘이 더욱 더 강해집니다.]
[……]
[……]
“?!?”
입구를 빠져나가던 태현은 갑자기 뜨는 퀘스트 완료 메시지창에 깜짝 놀랐다.
지금 깨질 이유가 없는 것이다.
대체 뭐지?
그 답은 뒤를 보자 바로 알 수 있었다.
“이러다 전멸하겠다!! 일단 싸움을 멈추고 방어부터 하자!”
“좋습니다! 그쪽이 앞에….”
“개수작 부리지 말고 구역 똑바로 나눠! 이쪽으로 오면 죽여 버린다!”
“우리가 할 소리다!”
“…….”
태현에 미다스 길드까지 나타나자, 방금까지 그렇게 싸우던 두 길드가 울며 겨자 먹기로 일단 화해한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성공에 태현은 깨달음을 얻었다.
‘이런 방법도 있었군…!’
생각해 보니 둘을 달래려고 한 것부터가 문제였다.
한 대 때려도 모자란 놈들을 뭐하러 달랜단 말인가.
역시 공격했어야 했다!
[싸움을 멈추고 화해한 모험가들에게 고대 제국의 축복이 내립니다!]
[모든 HP가 회복됩니다!]
[모든 MP가 회복됩니다!]
[……]
[……]
“????”
“뭐야??”
구역 나누면서 공격 대비하고 있던 두 길드원들은 당황했다.
갑자기 화해했다고 메시지창이 뜨더니 축복이 날아온 것이다.
애초에 화해한 것도 아니었다. 일시적인 휴전이었는데….
“김태현! 어디 가는 거냐??”
미다스 길드원들이 당황해서 태현을 불렀다.
같이 싸워줄 줄 알았는데 그냥 휙 달려가버리는 것이다.
“김태현!! 야! 대답해 이 자식아!”
그런다고 없는 대답이 돌아오진 않았다. 미다스 길드원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김태현 저거 완전 겁쟁이 다 됐네! 예전에 혼자서 백 명 상대하던 김태현은 어디 간 거냐??”
“우리도 후퇴합시다!”
미다스 길드원들은 불평하며 후퇴할 준비를 했다. 탱킹할 사람이 없으면 이쪽도 위험한 것이다.
파아아앗!
태현 일행도, 미다스 길드도 사라지자 남은 길드 동맹과 화이트 나이트 길드원들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아까까지 그렇게 치열하게 싸웠다는 게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분위기가 팍 식어 있었다.
“…혹시 다시 싸우시겠습니까?”
“…됐다. 그냥 꺼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