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488화 (1,487/1,826)

§ 나는 될놈이다 1488화

‘이건 뭔가 있는 거야!’

케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 번 의심이 들기 시작하자 갑자기 모든 게 의심스러워진 것이다.

‘정말 대단하긴 해.’

‘볼 때마다 실력이 느는 거 같군.’

‘종족도 그렇고 보통 겉모습을 신경 쓸 텐데, 그런 걸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부분이 대단하단 말이지.’

하지만 의외로 방금 던진 말들은 진심이었다.

무슨 꿍꿍이가 있든 간에 그냥 순수하게 케인의 실력에 감탄한 것이다.

볼 때마다 실력이 늘어나는 것도 그렇고 이기기 위해서는 겉모습을 신경 쓰지 않는 것도 그렇고….

“스미스.”

“?”

“저기 저 두 명, 왜 위치를 바꾸는 거야? 아까는 안 그랬잖아.”

“좀 더 효율적으로 레이드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저기에 서 있으니 공격이 자꾸 겹치지 않습니까?”

“아니. 그래도 잘 굴러가고 있는데 위치 바꾸지 말자. 괜히 혼란스럽잖아. 다른 사람들도 그렇고 나도 괜히 헷갈려.”

“…….”

케인의 말에 스미스는 멈칫했다.

‘설마 눈치챈 건가?’

지금 탱커들이 위치를 조금씩 바꾸고 있는 건 스미스의 명령 때문이었다.

태현 일행을 골짜기 밖으로 쫓아내려는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서!

그런데 케인이 갑자기 이렇게 나오니, 스미스 입장에서는 찔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 아니겠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길마님. 케인이 실력 있는 탱커긴 하지만, 우리 계획을 눈치채진 못했을 겁니다.

-맞습니다. 길마님. 김태현도 눈치 못 챘는데 케인이 어떻게 눈치를 챘겠습니까?

-소문에 따르면 케인은 눈치가 없다고 합니다.

-모두 알겠습니다.

“그러면 다시 위치를 바로 잡도록 하겠습니다.”

“고마워.”

케인은 간절한 눈빛으로 스미스를 쳐다보았다.

‘스미스…! 제발 내가 널 믿었다는 걸 후회하지 않게 해줘라!’

이렇게 친절한 스미스까지 사실 뒤통수를 치려고 한 거라면 케인은 이제 판온에서 아무도 믿지 못할지도 몰랐다.

다시 탱커들이 원래 위치로 돌아왔다.

그 후로도 케인은 이들을 꾸준히 방해했다.

“몬스터 어그로 그쪽으로 끌어야 해 꼭?”

“왜 그쪽으로 가려고 하는 건데? 그냥 시간 좀 더 걸려도 되니까 여기서 계속 때리자!”

“흩어지지 마! 나 무서워! 흩어지지 마!”

“…….”

“…….”

이쯤 되자 탱커들은 슬슬 초조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빨리 작업에 들어가야 하는데 케인이 이상하게 귀찮게 구는 것이다.

-스미스 님. 그냥 케인을 제압한 다음 움직이겠습니다.

-맞습니다. 뒤에서 공격해서 스턴 걸면 바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5초면 위치 확보해서 주문서 쓰겠습니다.

스미스가 갖고 있는 최상급 추방 마법 주문서들은 강력한 무기였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쓸 수는 없었다.

어디까지나 기회를 잡아서 태현 일행을 한 번에 보내버리지 않으면 무슨 역습을 당할지 모르는 것이다.

그러려면 위치가 중요했는데 케인 때문에 잡을 수가 없었으니….

-알겠습니다. 신호 보내면 케인 제압하고 각자 위치로 움직이세요.

-예!

탱커들은 슬금슬금 케인의 등짝을 조준했다.

갖고 있는 스턴 스킬 먹인 다음 위치로 뛸 생각이었다.

‘셋. 둘. 하나.’

‘지금!’

“쳐!”

“개자식들아!!!”

“!??!”

뒤에서 달려들던 탱커들은 기겁했다.

그대로 당할 줄 알았던 케인이 홱 돌아서더니 사납게 울부짖었던 것이다.

-무시하고 공격해!

들켰어도 이젠 어쩔 수 없었다. 무조건 제압한 다음에 주문서 쓸 준비를 해야 했다.

“내가 너희들을 얼마나 믿었는데! 어! 같이 레이드하면서 뭔가 통한다고 생각했던 건 나만 그런 거였냐! 말해봐! 야! <노예의 필사적인 질주>!”

[<노예의 필사적인 질주>를 사용합니다!]

[신성한 힘이 당신을 보호합니다!]

탱커들이 생각한 것보다 케인의 직업, 아키서스의 노예는 훨씬 더 좋은 직업이었다.

특히 이런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무적에 가까운 상태가 된 다음 질주할 수 있는 스킬까지 있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케인의 움직임에 탱커들은 스턴 스킬을 먹이지 못하고 움찔했다.

“스미스!!! 너 이 새끼!!! 내가! 다른 놈들이 다 너 의심해도 내가 너 변호해 줬는데!! 같은 탱커끼리!! 진짜 넌 사람도 아니야 이 개자식아!”

“…….”

아무리 냉정하려고 해도 케인이 저렇게 울부짖으며 달려드는데 죄책감이 안 들 수가 없었다.

천하의 스미스도 미안했는지 동작이 한발 늦었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큭!”

“스미스 님! 조심하십시오!”

키메라 종족으로 갈아탄 다음부터 케인의 공격은 다른 플레이어들과 달리 예측하기 힘들어진 부분들이 있었다.

특히 여러 개의 팔로 우다다다 휘두르는 공격은 상당히 예측하기 힘들었다.

반사신경 좋고 경험 많은 랭커들도 대응이 늦기 마련!

쾅, 쾅, 쾅, 쾅!

“야! 말해봐! 말해보라고! 입 뚫려 있으면 말해보라고!! 아까 그 칭찬에 내가 속을 줄 알았냐!?”

“아까 한 칭찬은 진심으로….”

“진심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케인이 스미스를 몰아붙이자, 주변에 있던 다른 기사들이 분노해서 케인을 제압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이 자식이 보자 보자 하니까!”

“감히 길마님을!”

“와 봐! 어디 한번 와 보라고!”

탱커들이라 하더라도 여기 있는 랭커들의 공격력은 살벌했다.

아무리 케인이 HP 높고 방어력 높다고 하더라도 여럿한테 둘러싸서 맞으면 금세 쓰러질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러나 케인은 아주 작정한 상태였다.

탱커의 순정을 배신한 이 사악한 놈들한테 본때를 보여주리라!

파아앗!

“…?!?!”

“!!!”

케인한테 가까이 붙은 기사들은 경악했다.

케인이 벗어 던진 갑옷 안쪽에서 어디서 많이 본 폭탄들이 와르르 등장한 것이다.

“설, 설마….”

“이런 미친! 길마님 피하십시오!!!”

“오늘 같이 죽자, 개자식들아!!!”

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연쇄 산탄 폭탄>이…]

[<사디크의 지옥 화염 폭탄>이…]

[……]

[……]

[……]

누가 김태현하고 같이 다니는 놈 아니랄까 봐 폭탄을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는 사실에 모두가 경악했다.

이 레이드 시작 전부터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것 아닌가.

‘무서운 놈!’

-완전한 태양의 결계, 고대 제국의 영원불멸한 힘, 고대 제국 백기사의 영역!

강력한 공격에 스미스도 갖고 있는 직업 스킬들을 닥치는 대로 사용했다.

일정 시간 동안 데미지를 1%로 줄이는 사기적인 스킬들부터 시작해서 일시적인 무적 상태로 만들어주는 스킬들까지.

좀 과한 감이 없잖아 있긴 했지만, 지금 상황은 그 정도는 해줘야 했다.

폭발도 폭발이지만 대괴수가 아직 저기서 멀쩡히 버티고 있지 않은가.

괜히 스킬 아꼈다가 HP 관리 못하면 여럿 죽을 수 있었다.

폭발이 끝나고 연기가 사라졌다.

“크윽…!”

스미스와 기사들은 긴장을 풀고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당한 일격이라 더욱더 위협적이었다.

‘왜 들켰던 거지?’

“끝난 줄 알았냐?! 야!”

“!??!?”

* * *

-아키서스의 축복!

케인이 전투를 시작하자 태현은 바로 움직였다.

애초에 스미스를 의심하고 있었던 만큼 케인을 구출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저 미친놈 저거…!’

하지만 케인은 생각보다 열이 받아 있었는지 그대로 돌격해서 스미스한테 박아버린 다음 폭탄을 일제히 터뜨렸다.

어이가 없었지만 태현은 바로 대응했다. 아키서스의 축복을 걸어줘서 케인의 목숨을 살린 것이다.

“끝난 줄 알았냐?! 야!”

살아난 케인은 아직도 분노와 배신감에 눈이 뒤집혀서 싸우려고 하고 있었다.

“헛소리 그만하고 빠져나와!”

“하, 하지만….”

“나오라고.”

“크윽…! 두고 보자. 스미스! 넌 진짜…!”

케인은 이를 갈며 뒤로 빠져나왔다.

여기 여럿 모여 있는 스미스의 부하들까지 상대하면 승산이 없었던 것이다.

스미스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방금 일어난 소동으로 인해 포위망이 박살이 나 있었다.

“김태현 씨. 이렇게 된 이상 그냥 화해합시다.”

“그럴까?”

둘의 대화에 케인은 기겁했다.

“야!? 저걸 믿냐!?”

“케인 씨. 전 이제 갖고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믿어주십시오.”

“내가 널 믿느니 길드 동맹을 믿겠다!”

케인의 말에 스미스는 상처 받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잡긴 해야 하잖습니까? 김태현 씨도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미안하군. 스미스. 사실 나도 진심으로 한 말은 아니었다.”

“!”

스미스는 태현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면 지금 우리끼리 싸우자는 겁니까?”

“아니. 그건 아니고… 시간 끌려고 한 말이지.”

“?”

태현은 뒤를 가리켰다. 스미스는 무심코 뒤를 돌아봤다.

그 짧은 사이 움직일 힘을 회복한 오르기돈이 거친 숨을 내뿜으며 질주할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모두 피….”

-행운의 일격, 치명타 폭발!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그리고 태현은 스미스의 등짝에 폭딜을 그대로 쑤셔 넣었다. 스미스는 시야가 뒤흔들리는 충격에 그대로 밀려났다.

“크으으윽… 아무리 김태현 씨라도 저를 여기서 끝낼 순 없을 겁니다!”

스미스는 단호하게 외쳤다.

아까 스킬들부터 시작해서 지금 차고 있는 장비와 남은 스킬들까지.

태현이 폭딜로 유명한 사람이라지만 스미스는 버틸 자신이 있었다.

“끝낼 생각 없다.”

“무슨…?”

“케인! 뛰어라! 피하자!”

“?!?”

스미스는 등골이 오싹한 느낌에 뒤를 돌아보았다.

질주를 마친 오르기돈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대괴수 오르기돈의 질주가 시작됩니다!]

[지진이…]

* * *

“쫓아! 탈것 전부 켜서 달려라! 포병대는 놈의 뒤를 쫓아!”

스미스와 화이트 나이트 랭커들을 엉망진창으로 날려 버리고 질주하는 오르기돈.

태현은 신호를 보내고 그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여기 있는 플레이어들이 닥치는 대로 딜을 넣은 덕분에 오르기돈의 HP는 깎일 대로 깎인 상태.

놈이 탈출하기 전에 잡아야 했다.

-더 빨리! 더 빨리 달려야 한다!

[황자, 페르소텔턴이 이동 속도에 보너스를…]

우리 안에 갇혀 있는 페르소텔턴이 아키서스 포병대 NPC들을 격려했다.

생전에 질주 좀 해본 황자답게 포병대 거인들은 허겁지겁 대포를 끌고 그 뒤를 쫓으며 공격을 퍼부어댔다.

“이세연!”

“알고 있어!”

이세연은 언데드들을 전부 돌렸다.

…오르기돈이 아니라 스미스와 길드원들을 막기 위해!

빠르게 변해버린 상황에 스미스는 깨달았다.

지금 이 골짜기의 상황은 태현 일행이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고.

‘졌다…!’

“됐다. 딜 꽂아 넣어!”

태현은 오르기돈 위에 탔다. 미친듯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태현은 꿈적도 하지 않고 버텼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아키서스의 첫 번째 공격, 아키서스의 세 번째 공격! 치명타 폭발, 혼돈의 폭발!

크어어어어어어어!

‘됐다!’

오르기돈이 내뿜는 비명에, 아직 쓰러뜨리진 못했지만 태현은 속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 레이드는 성공했다는 직감이 든 것이다.

아직 버티고는 있었지만 시간문제일 뿐 놈은 곧 쓰러진다!

“태현 님! 앞에!!”

“?”

태현은 고개를 들었다.

골짜기 입구에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모여서 치고받고 있었다.

“…이건 내 잘못 아니다.”

[카르바노그도 동의합니다!]

그 말과 함께, 오르기돈이 입구에 모여 있던 수많은 플레이어들을 그대로 박아버렸다.

콰르르르르르르릉!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대괴수 오르기돈이 쓰러집니다!]

[대륙의 야수들이 가진 광기가 잠잠해집니다!]

[악명이 오릅니다!]

‘…아니. 오르기돈을 내가 조종한 것도 아닌데 악명은 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