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487화 (1,486/1,826)

§ 나는 될놈이다 1487화

김태현의 말에 케인은 할 말을 잃었다.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오랜만에 케인은 용기를 내서 소심한 반항을 시도해 봤다.

“김, 김태현. 이건 좀 그렇잖아. 길드 동맹 놈들이면 모를까 스미스는 착한데….”

길드 동맹이 들으면 울컥했을 소리였다.

-스미스하고 우리하고 다른 게 뭔데!

-이 차별주의자 자식이…!

그러나 태현은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말했다.

“아니. 스미스는 수상해.”

“?!”

“잘 생각해 봐라. 케인. 스미스는 꾸준히 이번 퀘스트를 독점하기 위해 애썼지. 그런데 우리는 내버려 둘 거 같나?”

“…!”

케인은 충격을 받았다.

물론 같이 퀘스트 깨다가 뒤통수를 때리는 일이 생각보다 잦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랭커들 중에서도 소문이 좀 나쁘게 난 놈들이나 하는 짓 아닌가.

스미스처럼 선량하고 믿음직한 얼굴을 가진 랭커가 그런 짓을 한다고는 상상도 가지 않았다.

“하, 하지만….”

“나도 김태현 말에 동의해.”

이세연도 드물게 태현의 편을 들었다. 스미스를 싫어하는 감정과 별개로, 스미스는 객관적으로 수상쩍은 게 맞았다.

퀘스트를 독점하고 싶어하는 입장에서 태현 일행과 계속 손을 잡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예의 바른 태도와 선량한 얼굴에 속으면 안 됐다. 최근 스미스의 행적을 보면 예전과는 달랐다. 충분히 배신하고도 남았다.

“잘 생각해 봐. 스미스가 화이트 나이트 이끌면서 누구를 롤모델로 삼았지?”

“김태현….”

“그래. 그러면 배신을 할 것 같아, 안 할 것 같아?”

“…할지도?”

케인은 자신도 모르게 설득됐다.

그러게?

다른 건 몰라도 김태현을 롤모델로 삼았다면 저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무조건 스미스를 공격하자는 게 아니라, 스미스가 공격할 때를 대비해서 집중하고 있으란 거야.”

최상윤이 태현의 편을 들어 케인을 설득했다.

괜히 마음에 부담감을 갖고 있으면 좋은 플레이가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응? 그냥 무조건 공격하자는 거 아니었어?”

이세연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냥 공격하면 안 되나?

‘아오 저 김태현 복제인간 같으니.’

최상윤은 속으로 이세연을 욕했다.

누가 라이벌 아니랄까 봐 못된 점만 닮았던 것이다.

“어쨌든 케인. 내가 이렇게 따로 말하는 이유는… 네가 가장 위험하기 때문이야.”

“?!”

케인은 깜짝 놀랐다.

어째서?

“왜?”

“그야 다른 사람들은 다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지만, 넌 스미스와 다른 랭커들하고 붙어서 싸우게 될 테니까.”

원거리 딜러나 근접 딜러들은 각자 위치 나눠서 거리를 두고 싸웠다.

이 정도 거리라면 스미스가 뭘 하려고 하더라도 먼저 눈치채고 대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케인을 포함한 1 공격대의 탱커들은 오르기돈 상대로 다닥다닥 붙어서 어그로를 끌어야 하는 상황.

필연적으로 가까이 붙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 바로 배신당하기 가장 좋은 순간!

“…….”

케인은 상황을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오르기돈 레이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금 그것보다 더 위험한 게 있을지도 몰랐던 것이다.

어떡하냐??

“폭탄 좀 차고 갈래요? 만약의 경우에 복수는 할 수 있게.”

유지수가 진지하게 제안했다.

안에 폭탄을 주렁주렁 차고 있으면 기습 받았을 때 같이 죽는 정도의 복수는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유지수라면 그걸 선택할 것 같았다.

“아니… 그건 좀….”

최상윤과 정수혁이 말리려고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건 좀 심했던 것이다.

케인이 자폭을 얼마나 싫어하는데….

-난 이제 진짜 자폭 안 할 거야! 탱커로서 활약할 거라고. 사람들이 놀리는 거 봤지?! 내가 탱커가 아니라 그냥 예비 폭탄이라고….

-그래그래. 네가 탱커 역할만 잘 하면 누가 널 자폭을 시키겠냐.

게시판만 보면 케인은 투덜투덜댔다.

워낙 케인의 자폭이 인상 깊어서 사람들이 많이 이야기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케인은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야. 차고 간다!”

“!”

“야, 괜찮겠어?”

“난 스미스를 믿어. 적어도 이번에는 배신 안 할 거라고.”

“…….”

“…….”

최상윤과 정수혁은 시선을 교환했다.

태현과 이세연의 보는 눈 vs 케인의 보는 눈.

이쯤이면 거의….

‘반신반의하고 있었는데 저 정도면 무조건 배신할 거 같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 네 의견을 존중한다.”

“…방금 둘이 눈빛 교환하지 않았냐?”

“아니야. 인마. 이상한 생각하지 마.”

* * *

대괴수 파멸의 화살:

무한한 생명력을 가진 괴수의 숨통을 끊을 수 있는 파멸의 화살이다.

하지만 주의하라. 이 화살을 맞는다 하더라도 괴수의 숨통은 단번에 끊어지지 않을 테니.

‘회복력에 제한 거는 화살이 분명해.’

맞는 순간 상대를 즉사시켜버리는 화살이라면 편하겠지만, 퀘스트가 그렇게 쉬울 리는 없었다.

“회복력에 제한 걸어주는 것만으로도 솔직히 충분해. 감지덕지지.”

“그렇긴 한데….”

태현은 화살을 잡고 조심스럽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협곡 안에는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모여 있었지만, 어느 플레이어들도 입을 열지 못하고 긴장한 표정으로 기다렸다.

레이드 시작 전 팽팽하게 당겨진 공기.

경험 많은 플레이어들도 손에 땀을 젖게 만드는 긴장감이었다.

그리고 이런 긴장감을 끊고 레이드 시작을 알리는 건 공격대 대장의 역할.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태현에게 꽂혔다.

[카르바노그가 상대의 상태가 수상쩍다고 말합니다.]

‘너무 조용하지?’

태현도 카르바노그가 왜 불안해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렇게 왕국을 파괴시키면서 날뛰고 있던 놈이 잠들기라도 한 것처럼 골짜기 구석에 얌전히 엎드려 있었던 것이다.

맹수가 엎드려 있을 때는 힘을 비축하고 있을 때.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됐다.

[고대 제국 관련 지식이 높습니다!]

[아키서스의 화신입니다.]

[교단 관련…]

[칭호…]

[……]

[……]

[고대 제국 황족의 무덤을 발견합니다.]

“…????!”

갑작스러운 메시지창에 태현은 당황했다.

뭐냐??

‘진짜 뭐지?’

고대 제국 황족의 무덤을 발견한 것 자체도 매우 놀라운 일이었지만, 그게 지금 왜 오르기돈 잡기 직전에 나오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주변을 보아하니 알아차린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였다.

거리가 멀기도 했지만, 태현만큼 고대 제국 관련된 칭호나 퀘스트를 깬 사람이 없어서이기도 했다.

‘내가 많이 깨긴 했지….’

<이름 모를 황족의 무덤-고대 제국 퀘스트>

불운의 연속으로 멸망한 고대 제국.

필사적으로 싸우다가 스러진 제국의 황족들은 그 무덤도 찾기 어려웠다.

지금 당신은 어마어마한 행운으로 이름 모를 고대 제국 황족의 무덤을 발견했다.

이 무덤을 파괴하려는 적들로부터 무덤을 지켜내고 안으로 들어가라!

보상: ?, ???, ????

‘아니….’

안 그래도 지금 퀘스트의 난이도가 높은데 거기에 추가가 되자 태현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이 퀘스트를 어떻게 해야 하지?

‘고대 제국 관련 퀘스트면 무시하긴 좀 그런데… 지금 이걸 깰 수 있나?’

보아하니 대괴수 오르기돈이 여기서 이러고 있는 이유는 무덤의 방어를 뚫고 안으로 들어가려는 것 같았다.

왕국의 파괴자인 만큼 제국 황족의 무덤을 좋게 볼 이유가 없는 것이다.

공격을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주의가 돌려질 테지만….

‘무덤이 버텨줄까?’

지금 여기서 벌어질 레이드를 생각해 보면 무덤을 지키는 건 실질적으로 불가능해 보였다.

얼마나 단단할지는 모르겠지만….

[카르바노그가 그래도 혹시 모르는데 아깝다고 말합니다.]

‘아니. 너무 욕심이야.’

태현은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태현의 장점 중 하나가 이런 상황에서 욕심을 포기할 수 있다는 거였다.

‘이 퀘스트는 실패하더라도 공격 제대로 넣어야 해. 안 그러면 레이드 자체가 꼬인다.’

태현은 퀘스트창을 무시하기로 했다.

척!

[<대괴수 파멸의 화살>을 사용합니다!]

오르기돈에 가까이 다가선 태현은 화살로 놈의 앞발을 정확히 찔렀다.

분노와 고통이 섞인 놈의 울부짖음과 함께, 레이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공격 개시!!!”

“공격 개시! 공격 개시!!!”

* * *

‘처음 시도보다 낫다!’

스미스는 이 사실을 깨닫고 전율했다.

처음 시도에 있었던 길드 동맹과 미다스의 랭커들이 빠진 상태라 레이드가 힘들어질지도 모른다고 걱정했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오히려 처음 시도보다 탱커들의 움직임이 훨씬 부드럽고 여유가 있었다.

오르기돈이 덤비면서 달려들면 피하고, 광역기를 쓰면 물러서고, 지쳐서 헐떡이면 붙어서 데미지를 넣고….

여기 일원들이 한 번 레이드를 경험해서가 아니었다.

김태현 일행이 그 부족함을 메꾸고도 남을 능력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균형 무너뜨려!”

태현은 안 어울리던 마법을 버렸는지 검을 들고 허공을 누비고 있었다.

<폭발 도약> 스킬로 거칠게 움직이며 접근하자 오르기돈이 사납게 소리를 내며 접근을 경계했다.

다른 플레이어들이 여럿 있는데도 누가 가장 따끔하고 날카로운 데미지를 넣는지 파악을 한 것이다.

콰아아아아앙!

“김태현을 보조해. 빠져나오도록 도와!”

-예!

태현이 딜을 넣자 이세연의 데스 나이트들이 재빨리 어그로를 대신 끌어줬다.

둘은 시선을 교환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스킬 아껴.’

‘물론이지.’

태현은 지금 갖고 있는 권능 스킬들 중 <고대 아키서스 성기사단장의 각성> 같은 스킬들을 최대한 아끼고 있었다.

쿨타임 짧은 검술 스킬들과 기계공학 스킬들로만 딜을 넣고 있는 상황.

기회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스미스 때문이었다.

위협적인 상대가 있을 때는 밑천을 숨겨둬야 하는 법.

그리고 그런 스킬들을 아꼈음에도 불구하고 태현 일행은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고 있었다.

화이트 나이트의 랭커들이 무심코 감탄의 눈길로 쳐다볼 정도로.

‘하지만 김태현 씨… 저는 많이 배웠습니다. 당신에게 말입니다.’

태현이 들었다면 ‘내가 언제 가르쳐줬어 미친놈아’라고 정색했을 소리!

하지만 스미스는 진지했다.

태현과 같이 레이드를 하고 싶었던 마음은 진짜였다.

다만 결과를 나눌 때 양보할 생각이 없을 뿐.

상대에 대한 친밀감과는 별개로 최선의 플레이를 하겠다!

…이게 바로 스미스가 배운 교훈이었다.

-작전 준비해.

-예.

오르기돈 레이드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드디어 놈의 HP가 50% 밑으로 꺾이자 스미스는 준비했던 걸 꺼냈다.

오르기돈 상대하면서 태현 일행까지 전부 다 PK하는 건 불가능이었고, 애초에 스미스는 그럴 생각도 없었다.

노리는 건 이 골짜기에서의 추방!

스미스는 마탑의 대마법사가 만든 강력한 추방 마법 주문서들을 잔뜩 쟁여 놓은 상태였다.

천문학적인 골드가 들었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김태현의 회피력이 아무리 높다고 하더라도 이건 통할 테니까.

“스미스! 조심해!”

케인이 달려들어서 스미스를 붙잡고 뒤로 뛰었다. 오르기돈이 날린 충격파가 방금까지 스미스가 있던 자리를 휩쓸었다.

“고맙습니다. 케인 씨.”

“아니야! 내가 고맙지.”

케인은 뜨거운 눈빛을 보냈다.

판온에서, 탱커들끼리만 공유할 수 있는 우정이 있었다.

뒤에서 비겁하게 요리조리 치고 빠지는 놈들은 느낄 수 없는 뜨거운 우정!

그건 집채만 한 몬스터가 덤벼들 때 자기 몸뚱이 하나로 버틸 수 있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었다.

‘그래. 이번에는 김태현이 의심 너무 심하게 한 거라니까.’

“역시 케인 씨는 세계 최고의 탱커라고 불릴 만합니다. 같이 해주셔서 든든합니다.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케인은 정말 대단하다고.”

스미스의 말에 동의하는 화이트 나이트 랭커들.

그러나 케인은 그 말들을 들으니까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정신이 확 들었다.

‘…이것 봐라??’

칭찬이 너무 과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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