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482화
사실 공항 앞에서 일어난 소동은 전체적으로 놓고 보면 그렇게까지 대단한 소동은 아니었다.
해외에서 인기 있는 스타가 도착했을 때 사람들이 몰려서 주변이 혼잡해지는 것도 흔한 일이었고, 중국 경찰들이 사람을 두들겨 패서 해산시키는 것도 흔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해외에서 인기 있는 스타가 직접 경찰들 사이에 껴서 막는 일은 흔치 않았다.
“뭐하는 겁니까?! 데리고 와요!”
“당신들 정신 나갔어??”
공항에는 중국 쪽 협회 직원들만 있는 게 아닌, 해외에서 온 판온 관계자들과 먼저 온 다른 게임단 직원들도 여럿 있었다.
그들은 김태현이 나서는 걸 보고 기겁해서 움직였다.
김태현이 인파에 휩쓸려서 다치기라도 하면 수습할 수 없는 사고가 터지는 것이다.
“지금 가만히 있을 때입니까? 당장 움직이세요!”
“아… 아니.”
판온 쪽 관계자가 정색을 하고 성질을 내자 중국 협회장은 당황했다.
사람 좋던 양반이 죽일 듯이 화를 내자 많이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선수가 알아서 나선 건데 내가 어떻게….”
“무슨 수를 써서든 말리란 말입니다! 선수 털끝 하나라도 다치면 당신들 나라에서는 백 년간 경기고 뭐고 없을 줄 알아!”
“아, 알겠소. 진정하시오.”
판온 쪽 관계자들의 분위기는 보통이 아니었다.
제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정식으로 대응할 기세가 엿보였다.
협회장은 급히 연락했다.
“어, 그래! 지금 김태현 선수를 보호해서 데리고… 거절하면 어떡하냐고? 당연히 힘으로….”
말하려던 협회장은 뒤에서 쏟아지는 칼날 같은 시선에 말을 멈췄다.
“…데리고 오면 안 되고 최대한 설득을 해야지! 자네 대체 뭐하는 사람이란 말인가! 그렇게 오래 일했는데 눈치가 없어!”
도와주러 왔다가 졸지에 욕 먹게 된 경찰 간부는 어이가 없었지만, 협회장은 뒤에 전 세계가 쳐다보고 있다는 압박감으로 말을 다다다 쏟아냈다.
“알겠나? 설득해서 데리고 오게! 안전하게!”
협회장은 전화를 끊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말했다.
“이게 이 친구들이 좀 난폭한… 게 있어서, 하하하….”
“…….”
“난 최선을 다하고 있소. 보이지?”
“…….”
분위기를 풀려고 해도 뒤의 반응은 싸늘했다.
경찰이 팬한테 곤봉 휘두르는 걸 봤는데 분위기가 화기애애할 리가 없는 것이다.
협회장은 빨리 김태현이 돌아오길 기도했다.
‘이놈들 뭐하고 있는 거야…!’
초조하게 다시 연락을 하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말하신 대로 같이 팬들 교통정리하고 있습니다.
“뭔 개소리를 하는 건가?? 선수 데리고 오라고 했잖나!”
-아, 아니. 설득하라고 하셨잖습니까….
상대 간부는 더 억울해졌다.
김태현 본인이 자리에 모인 팬들을 두고는 그냥은 못 가겠다고 말한 것이다.
아무리 안 팬다고 해도 믿지 않으니, 직접 교통 정리하는 걸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분위기를 봤을 때 지금 김태현을 뒤로 빼서 좋을 게 없었다.
간신히 진정한 팬들이 흉폭해지면 여기 경찰들도 위험해지는 것이다.
“빨리 데리고 오라니까…!”
* * *
-상하이에서의 난동,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다.
-중국, 상하이 팬들 강경진압 논란….
-판온 측에서 공식발표… ‘사건 책임자는 반성해야….’
예선 탈락한 나라 팬들이 농담 삼아서 ‘운석 떨어져서 경기 취소되면 좋겠다’라고 떠들곤 했지만, 어느 팬들도 이런 난동이 벌어질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어마어마하게 많이 몰린 팬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걸 곤봉 휘두르면서 진압하는 경찰들과, 그냥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중국 쪽 협회와 선수들.
다 같이 가만히 있으면 모를까 해외에서 온 선수가 나서서 말린 이상 유독 비교가 심하게 되었다.
-저거 혹시 판온 안임? 곤봉 스킬 올리는 게 아니라면 어떻게 저런 짓을 하지?
-해외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보고 있는 상황인데 저런 짓을 저지르다니. 중국 정부는 염치도 없나?
4강전이 곧 시작되는 상황.
원래라면 대회 공식 행사들이 여럿 준비되어 있어서 사람들의 관심이 모두 여기에 쏠려야 했는데….
사람들의 관심은 경기가 아니라 그 전날에 일어난 난동에 쏠려 있었다.
해외에서 온 팬들은 전날 있었던 난동을 경악의 시선으로 쳐다보고, 용감하게 나선 태현의 행동을 찬양했지만….
중국 쪽 팬들은 좀 달랐다.
-혹시 <베이징 파이터즈> 한국 게임단인가? 한국 게임단이지? 저기 대표팀이 사실 우리나라 대표팀이고? 안 그러면 설명이 안 되는데?
-저 새끼들 세금으로 지원 받는 놈들 아니야? 그런데 저기 가만히 있는 게 말이 돼??
김태현은 사건 터지자마자 앞으로 달려 나가서 팬들 막았는데 중국 선수들은 멀뚱멀뚱 서서 지켜보는 게 생생하게 방송이 된 것이다.
안 그래도 예선 탈락해서 빡치는데 저딴 모습을 보니 뒷목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저건 김태현 잘못이지. 협회 쪽 지시에 따라서 이동했다면 팬들이 저렇게 행동했겠어?
-맞아. 김태현의 섣부른 행동 때문에 시민들이 다친 거라고 할 수 있지.
-…너 뭐하는 미친놈이냐? 게임단 직원이냐, 협회 쪽 직원이냐?
-주둥이가 달려 있다고 무작정 나불대도 되는 게 아니거든?
-여론 바꾸고 싶으면 성의를 보여! 어디서 무슨 같지 않은 수작질이야!
원래라면 이럴 때 꼭 나타나는, 책임을 중국이 아닌 밖으로 돌리는 선동꾼들도 이번에는 통하지 않을 정도였다.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쉽게 변명할 수가 없는 것이다.
* * *
“앞으로 절대 그러지 마.”
“알겠어.”
“절대! 절대로 그러지 마.”
태현은 책상 밑으로 손가락을 접었다. 대충 이세연이 100번쯤 말한 것 같았다.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케인은 그 모습에 살짝 기분이 좋아지는 걸 느꼈다.
평생 볼 일 없을 것 같았던, 태현이 구박 받는 장면!
이런 장면을 또 언제 보겠는가. 케인은 이것만으로도 여기 온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했다.
‘파이팅, 이세연…! 김태현도 내가 구박 받는 슬픔을 느끼게 해줘!’
“왜 웃고 계십니까?”
류다영이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실실대던 케인은 헛기침을 했다.
“다들 김태현 칭찬하는 게 기뻐서.”
“아….”
류다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케인의 말이 맞았다.
이세연 빼고 전 세계가 태현의 행동을 칭찬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수가 보여줄 수 있는 커다란 용기, 이타심 그 자체, 가장 뛰어난 스포츠맨십 등등.
원래라면 4강전에 참가하는 나라들 전력 분석하고 어떻게 굴러갈지 이야기해야 할 시간에, 전부 다 어제 그 소동만 올라오고 있었으니….
“미안해.”
태현은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이세연이 얼마나 걱정했는지 느껴졌던 것이다.
“앞으로는 그런 무모한 행동 같은 건 안 할 테니까.”
“…….”
그런 진심이 이세연한테도 느껴졌는지, 이세연은 더 이상 뭐라고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 보면 위험천만한 일에 자기 목숨을 건 것은 태현이었는데 잘했다는 말 대신 타박부터 한 것이다.
“왜 갑자기 그만하는 거지?”
“제 생각에는, 잘했다고 하거나 고생했다는 말 먼저 안 하고 화부터 낸 게 미안해지신 것 같은데요….”
이다비는 이세연의 속마음을 정확하게 맞췄다. 케인은 그 말을 듣고 감탄했다.
그런 배려심이…!
사과할까 말까 고민하는 이세연을 보며, 태현은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내가 잘못했어. 더 말 안 해도 돼.”
“…그래.”
이세연은 괜히 겸연쩍은 기분이 들어 태현의 시선을 피했다.
사과하기 전에, 태현이 먼저 나서서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해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배려심이 고맙고, 새삼스럽게 미안해졌다.
‘으… 화를 내면 안 됐는데. 걱정부터 해줬어야 했는데.’
이세연은 갑자기 자괴감이 들었다. 만약 유성 게임단의 다른 선수들이었다면 일단 걱정부터 해줬을 텐데, 이상하게 태현을 상대할 때면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게 됐다.
“오늘 점심에 인터뷰 있는데, 다들 준비는 잘 했지?”
“네.”
“물론이죠.”
태현의 질문에 다른 선수들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이런 행사 처음 뛰는 아마추어도 아니고,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긴장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덜덜덜덜덜-
“…….”
물론 처음 뛰는 것에 가까운 사람도 있었다.
후보 중 하나인 <큰도끼전사> 최도희는 긴장해서 손에 들고 있던 잔을 달달 떨고 있었다.
과감한 게임 플레이와는 정반대의 모습!
“너무 걱정할 거 없어요.”
이다비는 같은 길드원을 챙겨줬다.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건 같은 길드 사람.
든든한 길마의 말에 최도희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 나 같은 사람을 왜 뽑았냐고 길드 특혜 아니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그러는 당신은 기자 어떻게 됐냐고 물으세요.”
“…농담하는 거 아니거든요 길마님?!”
“…저도 농담하는 거 아닌데요??”
이다비는 진심이라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최도희를 쳐다보았다.
최도희는 경악했다.
아니 진짜 그렇게 말해도 돼?!
“파워 워리어 길드 방송도 아니고 그렇게 말해도 돼요?!”
“…파워 워리어는 왜 나오죠?”
“죄, 죄송….”
“농담이에요. 어… 괜찮던데요.”
팀 KL부터 시작해서 한국 쪽 탑 선수들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는 수준이었다.
그런 만큼 인터뷰에서 온갖 진상에 가까운 기자들을 만나는 건 당연했다.
평범한 선수들이라면 무례한 질문을 받아도 참고 넘겼겠지만….
태현은 총대를 메고서 곧바로 맞받아치거나 대놓고 반격했다.
게임단 사장이자 대표니까 할 수 있는 일!
다른 게임단은 게임단 이미지 나빠지고 구설수 생길 수 있으니까 선수들 관리 시켰지만, 태현은 그런 관리를 할 사람이 없었다.
그냥 자기가 하고 싶으면 말한다!
“그, 그래도 된다니….”
“아. 그리고 케인 선수 관련된 질문은 무조건 잘 모른다고 대답하세요.”
“…….”
최도희는 이다비의 배려심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저렇게 상냥하시다니…!
* * *
“예. 질문하시면 됩니다.”
판온 쪽 직원이 신호를 보내자, 기다리고 있던 기자가 손을 들었다.
지목 받은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어보시죠.”
내일 경기 전략부터 시작해서 무엇을 물어보든 간에 태현은 다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먼저, 김태현 선수가 보여주신 용기에 감탄했습니다. 다른 나라에 와서 그렇게 나서는 게 두렵지는 않으셨습니까?”
“일단 상대의 위협적인 딜러를… 아니.”
태현은 멈칫했다.
당연히 가장 먼저 날아와야 할 질문이 안 날아오고 이상한 질문이 날아온 것이다.
태현은 진행자를 보며 작게 물었다.
“저런 질문 해도 됩니까?”
“해도 되지 않나요? 혹시 문제가 될 게 있습니까?”
“아니… 사람들은 경기 궁금해 할 텐데….”
태현은 떨떠름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해 줬다.
“저희를 좋아해서 와주신 팬들인 만큼 무언가 행동해야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에는 다른 기자가 손을 들었다. 태현은 이번에야말로 경기 전략을 물을 거라고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공항에는 다른 나라에서 온 여러 선수들이 있었지만 나선 건 김태현 선수를 비롯한 몇 명뿐이었습니다. 원망하진 않으셨습니까?”
“뒤에 있어서 나설 기회가 없었던 거겠죠. 저는 앞에 있었고.”
태현의 말에 다른 선수들은 고마움과 감사의 눈길을 보냈다.
저렇게 말해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고맙습니다…!’
“다음 기자분?”
“이번에 중국 선수들에 대한 비난이 좀 있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아니. 경기 안 물어봐요?”
슬슬 태현은 인내심을 잃고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물론 기자들은 못 들은 척했다.
이쯤 되자 상대 팀이 불쌍하게 느껴질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