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481화 (1,480/1,826)

§ 나는 될놈이다 1481화

“위치를 바꾸는 게… 낫지 않나 싶은데.”

“중국 쪽도 바꾸고 싶지 않을까요?”

중국 팬들 입장에서는 판온 월드컵 4강 행사가 벌어지면 ‘와! 월드컵 4강 행사가 여기서?!’ 하며 감동하기보다는 ‘와! 미친놈들이 예선 탈락해놓고 이런 행사를?!’으로 열 받을 가능성이 높았다.

중국 쪽도 그걸 모르지는 않을 텐데…?

“이런 일정은 한 번 정해지면 아무리 중국 쪽이라고 해도 못 바꾸지. 멋대로 바꿨다가는 후폭풍 장난 아닐걸.”

예선 탈락했다고 자기네 나라에서 열릴 행사를 멋대로 취소하면 다른 나라는 물론이고 판온 쪽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중국 쪽 게임 경기장 찾아가서 예선 탈락에 분노한 중국 팬들 몇만 명과 같이 행사를 해야 하는 건가?”

태현의 질문에 이세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현은 다시 물었다.

“…판온에서 길드 동맹 랭커들이 쫓아올 때보다 난이도가 높은 거 같은데…?”

“…그, 그 정도는 아닐 거야 아마.”

이세연은 그렇게 말하고 자신이 신경 쓰였는지 배치된 경비 숫자를 확인하려고 했다.

…괜찮겠지?

* * *

중국 상하이.

마천루 빌딩들이 가득한, 중국에서도 가장 발달한 도시 중 하나였다.

판온 관련으로도 의미 깊은 도시였다.

중국 게임단 중 하나인 <상하이 팬더즈>가 이 도시를 기반으로 삼고 있었던 것이다.

“상하이 팬더즈는 좋은 팀이지.”

태현의 말에 류태수가 놀라서 물었다.

“그 정도였습니까?”

판온 리그에서 <상하이 팬더즈>를 몇 번 본 적 있었지만, 류태수 기억에 그렇게까지 인상 깊지는 않았던 것이다.

“오빠 눈에는 어떤 팀이든 만족스럽지 않겠지.”

“아니. 그 정도는 아닌데… 어쨌든, 상하이 팬더즈의 어떤 점이 강력합니까?”

“마스코트 팬더가 귀엽잖아.”

“…….”

둘은 순간 태현이 농담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태현은 진지했다.

‘진지하시잖아…?!’

비행기 안에서, 태현은 이다비에게 물었다.

“그래도 베이징이 아니라서 다행이군. <베이징 파이터즈>는 좀 꺼림칙한데.”

“뭘 그렇게까지… 괜찮을 거예요.”

“아니. 베이징 파이터즈는 정말 좀 그렇다고.”

객관적으로 봤을 때 베이징 파이터즈는 못 나갈 이유가 없는 게임단이었다.

투자 많이 받고, 지원 많이 받고, 선수들 전 세계에서 데리고 오고.

그런데 무슨 저주라도 받았는지 이상하게 게임단의 행보가 매우 꼬였다.

사장 바뀌고 단장 바뀌고 감독 바뀌고 선수들 바뀌고….

당연히 그 도중에 성적이 밑바닥을 찍는 건 덤.

그리고 이런 혼란스러운 시기에 매번 베이징 파이터즈를 절벽 밑으로 차줬던 게 태현의 팀이었다.

“아. 확실히 팀 KL하고 싸우고 난 다음에 베이장 파이터즈가….”

“굳이 다시 말해줄 필요 없거든. 이세연.”

“한국 선수 중에 베이징 파이터즈 쪽에 입단 테스트 받으려고 간 선수가 있었거든. 거기는 아침에 산책 코스 달릴 때 ‘타도 김태현’이라고 구호를 외친다고 하더라. 약간 소문 같은 거라 확실하진 않지만….”

“…….”

이세연의 말에 태현은 할 말을 잃었다.

너무하지 않나??

물론 자기네들끼리 무슨 구호를 쓰든 자기네들 자유긴 한데….

케인은 설레는 표정으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후보지만 그래도 같이 올 자격은 충분했기에 일행에 합류한 케인.

‘어디부터 가볼까? 상하이 타워? 상하이 박물관?’

“케인. 넌 혼자 돌아다니지 말고 나하고 같이 다녀라.”

“…….”

태현의 말에 케인은 시무룩해졌다.

문제 생길 여지를 원천봉쇄해버린 그 모습에 다른 사람들은 감탄했다.

“어… 어디 갈 생각인데?”

“흠 글쎄. 상하이 타워….”

“!”

“…는 사람이 너무 많겠지.”

“…….”

“상하이 박물관….”

“!!”

“…은 너무 멀어서 번거로울 거 같고. 게다가 중국 팬들이 우리를 만나면 죽이려고 할 수도 있고.”

“아, 아니. 그 정도는….”

“훙커우 공원 가서 기념관이나 들릴까?”

“…의, 의미 깊긴 한데 그래도 관광지 한 곳만 좀 가자….”

* * *

“아니….”

태현은 깜짝 놀랐다.

기다리고 있던 관계자들 중에 예상치 못한 얼굴들이 있었던 것이다.

베이징 파이터즈는 물론이고 다른 중국 게임단 선수들 여럿이 바로 보였다.

“왜…?”

“같은 게임단 선수들끼리 이렇게 만나니 참으로 보기 좋군요.”

이번 환영을 맡은 중국 쪽 공무원, E스포츠 협회장은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혼자 흐뭇한 표정이었다.

뒤에 있는 중국 선수들은 뭐 씹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으니까.

“상하이 팬더즈 말고 다른 게임단 선수들도 온 겁니까?”

“농담도 참. 김태현 선수! 월드컵 아닙니까! 월드컵! 행사에 상하이 팬더즈 선수들만 있으면 다른 지역 선수들, 팬들이 얼마나 실망하겠습니까!”

“어….”

“음….”

‘없는 게 나을 거 같은데.’

중국 팬들 입장에서 예선탈락 한 선수들이 행사 나와서 4강전 하는 대표팀 선수들과 같이 어깨 맞대고 있으면 ‘저 새끼들은 염치가 없나 아니면 양심이 없나 왜 장강에 안 빠져죽고 아직도 저러고 있냐?’가 절로 튀어나올 것이다.

그러나 태현이 아무리 대단한 선수라 하더라도 한국 사람.

중국 쪽 협회장이 흐뭇하게 저러고 있는데 그걸 말해줄 수는 없었다.

“저도 뭐… 음… 선의의 경쟁을 한 중국 선수들을 이렇게 만나게 되니 기쁩니다.”

“역시! 경기장 안에서는 치열하게, 전력을 다해서 다투지만 경기장 밖에서는 형제처럼 친해지는… 그게 바로 스포츠십이지요!”

‘이 사람 판온을 모르나?’

‘공무원이 뭐 그렇지….’

태현과 이세연은 눈빛으로 대화를 나눴다.

중국 쪽 E스포츠 협회장은 딱히 판온이 어떻게 굴러가는지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냥 판온이 잘나가고 판온 월드컵이 대박났다고 하니까 위에서 낙하산 타고 내려온 고위공무원!

그런 만큼 지금 중국 선수들의 미묘한 위치나 라이벌 관계에 대해 알 리가 없었다.

“김태현 선수. 사인 좀 해주시겠습니까?”

협회장이 사인지를 내밀자 태현은 의아해했다.

어라?

경기 잘 안 보는 거 같은데 사인은 받는 건가?

“혹시 팀 KL 팬이셨습니까?”

“하하. 그건 아니고… 제 딸이 팬이죠. 저는 바둑 말고 안 봅니다.”

뒤에서 중국 선수들이 속으로 욕하는 소리가 태현에게 들리는 기분이었다.

‘판온 좀 보라고…!’

‘보면 이런 개짓거리를 못 하지!’

‘우리한테 너무한 거 아닌가?’

지금 막 내린 한국 선수들은 아직 체감을 하지 못하고 있겠지만, 공항 밖에는 수많은 팬들이 몇 시간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나라 대표팀도 인기가 있었지만 그들이 기다리는 건 한국대표팀이었다.

아무리 자국 내 대표팀을 꺾고 올라갔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팬을 하지 않기에 한국대표팀은 너무 매력적인 팀이었던 것이다.

거기까지는 좋은데 그 팬들 모인 곳을 중국 쪽 선수들이 환영하려고 지나가다 보니 욕을 푸짐하게 얻어먹어야 했다.

-니들이 지금 다른 나라 선수들 환영하러 올 때냐?!

-가서 레벨이나 올려 쓰레기 새끼들아!!

‘우리도 오고 싶어서 온 거 아니야…!’

협회장이 까라고 하면 까는 거지 선수들이 뭐 어떻게 한단 말인가.

사인을 끝낸 태현의 모습에, 협회장은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예전에 한국 기사들의 사인을 모아 놓았었는데, 이제는 다른 종목의 한국 선수들 사인을 모아 놓게 되었군요. 이거 참… 그런데 김태현 선수. 왜 우리 선수들은 본선에 못 나간 거죠?”

“…….”

“…….”

잘 모르고 던진 협회장의 질문이 한국 쪽과 중국 쪽 모두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었다.

* * *

“행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건 이틀 후니, 그동안 푹 쉬시면 됩니다. 가보고 싶은 곳이 있으면 얼마든지 말만 하시면 안내해 드릴 겁니다.”

“예. 그런데 지금 밖이 좀 시끄러운 거 같은데….”

태현은 걱정스러운 시선을 던졌다.

물론 여기 한국 선수들만 있는 게 아니고 판온 쪽 담당자와 다른 나라 대표팀 선수들도 있는데, 무슨 소란이 크게 벌어지진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세상 일이란 게 알 수 없는 법 아닌가.

공항 밖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소리들은 좀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혹시 지금 들리는 중국어가 ‘김태현 죽어라!’ 같은 건 아니겠지?

태현의 말에 협회장은 부하 직원을 불렀다.

“이봐. 밖에서 왜 떠드는지 확인하고 오도록.”

“예.”

잠시 후 부하가 돌아와서 협회장에게 귓속말을 했다. 협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환해진 얼굴로 말했다.

“괜찮습니다. 김태현 선수. 죽으라고 하고는 있는데. 김태현 선수한테 하는 말이 아니랍니다.”

“…그럼 누구한테?”

“저희 쪽 선수들이죠. 참. 왜 그렇게 못해서 팬들을 화나게 만들었는지.”

속 편한 협회장의 말을 밖의 사람들이 듣지 못해서 다행이었다.

태현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우리 쪽 협회장도 좀 많이 이상한 사람이었는데 저쪽 협회장도 좀….’

어쨌든 이 자리에 모인 몇만 명의 사람들이 태현이 아니라 중국 선수들을 욕하는 거라면 차라리 다행이었다.

공항 밖에서 난투극을 벌이는 건 사양이었으니까.

“!?”

일행이 밖으로 나서자, 그렇게 시끄럽고 자기들끼리 떠들던 관중들이 갑자기 뚝 조용해졌다.

그 모습에 태현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당황했다.

뭐지?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천지가 뒤흔들리는 것 같은 함성과 함께, 중국 팬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김태현! 김태현! 김태현!”

“어, 저기 베이징 파이터즈의 펭귄팬더 아니야?”

“꺼지라고 해! 사인 받을 수가 없잖아!”

욕설과 썩은 달걀이 날아오진 않았지만, 예상 외의 인파도 당황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다.

태현은 중국 쪽 협회장에게 물었다.

“이거 괜찮은 거 맞습니까?”

“걱정할 거 하나도 없습니다, 김태현 선수. 저희는 이런 것에 다 대비가 되어 있지요.”

“오….”

태현은 자신만만한 협회장의 말에 감탄했다.

판온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저 자리에 앉은 걸 보니 경험과 능력이 제법 되는 모양이었다.

과연 어떻게 이 수많은 팬들을 진정시킬….

-저리 꺼지지 못해!?

-이 새끼들!

퍽퍽퍽퍽!

곤봉을 든 경찰들이 달려 나와 팬들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길을 채운 팬들은 비명을 지르며 쫓겨났다.

“…….”

“…….”

태현은 그 모습에 경악했다.

아니 이런 미친 새….

“뭐하는 거야? 멈춰!”

태현은 기겁해서 달려갔다.

곤봉을 휘두르던 경찰들은 태현이 끼어들자 멈칫했다.

해외에서 초대 받은 VIP한테 손을 댈 수는 없었던 것이다.

“뭐하시는 겁니까?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지금 달걀도 안 던지고 욕설은… 좀 하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팰 건 없지 않습니까!”

“이렇게 안 하면 비키지 않는 놈들입니다.”

“…그냥 내가 말할 테니까 저리 비켜!”

태현은 경찰 한 명을 밀치고는 확성기를 뺏었다.

“여러분! 길을 막지 말고 물러서주십시오! 질서를 지켜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다시 공항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웅성웅성-

태현의 소리가 닿은 곳은 그 말을 듣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워낙 사람이 많아 목소리가 닿지 않은 곳도 있었다.

“김태현 맞아?”

“잘 모르겠는데. 케인 있나? 봐봐.”

“가짜 아냐? 케인이 아니잖아. 팔이 두 개야.”

“…케인이 아닌 거 같긴 한데, 그래도 진짜 케인도 팔 두 개 아닌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태현은 케인이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태현은 케인을 내려 보내고 이세연을 불렀다.

“앗! 진짜다!”

“진짜가 맞아!”

경찰들이 곤봉 휘두르는 걸 막고, 대신 나서서 끈질기게 외치는 태현의 모습은 길을 채우고 있던 팬들을 감화시켰다.

그렇게 밀치고 다투던 사람들이 뭘 잘못 먹은 것처럼 차례대로 얌전해지기 시작했다.

뒤에서 보고 있던 케인은 신기해서 중얼거렸다.

“저 자식 현실에서도 화술 스킬 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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