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479화
“…근데 공주 전하한테 이런 장비를 달아준 거니까 오히려 좋은 거 아닌가?”
태현 같은 사람도 너무 갑작스러운 일을 당하면 말실수를 할 때가 있었다.
-…….
귀족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다른 일행도 ‘그건 아닌 거 같은데’ 하는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 물러서면 더 귀찮아진다.’
“잘 생각해 봐라. 낭티오네는 바실리스크가 되는 저주를 받았다. 그렇지?”
-그러니까 그 저주를 푸는 방법을 찾아도 모자랄 시간에 대체 왜 저런 흉측한 무장을….
“멍청하기는! 바실리스크가 된 이상 수많은 자들이 공주를 노릴 것 아닌가. 공주를 지키기 위해서는 공주를 강하게 만들어야 했다.”
-……!
태현의 강한 태도에 귀족은 한 걸음 물러섰다.
[최고급 화술 스킬을…….]
[명성이 매우 높습니다!]
[상대보다 작위가 더…….]
[…….]
스탯으로만 놓고 보면 태현은 왕국을 다스리고 있는 대륙의 영웅.
귀족이라 하더라도 태현이 강하게 나오면 쉽게 따지기 힘들었다.
-그, 그런가…? 하, 하지만 저건 너무 흉측한데….
“잘츠 왕국의 귀족이라는 자가 겉모습에 얽매이다니. 한심하군!”
-……!!
귀족 NPC는 말 한 마디가 오갈 때마다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
숙련된 검객들의 싸움이 한 수 한 수 진행될 때마다 그 결과가 눈에 보이는 것처럼, 화술 대결도 의외로 팽팽했던 것이다.
“알겠나? 낭티오네가 이 모습이 된 건 다 낭티오네를 위해서다. 낭티오네 본인도 좋다고 했다!”
-키잇. 키잇.
낭티오네도 동의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옆에서 보고 있던 이세연은 속으로 생각했다.
‘분명 틀린 부분은 없는데 이상하게 쓰레기처럼 들리는 대사야….’
-그… 그러면 뤼지유카 공주 전하는? 뤼지유카 공주 전하는 대체 왜 저런 곳에 들어가 있으신 겁니까?
-멍청하기는!
“……??”
태현이 설명하기도 전에, 고대 제국의 왕자 페르소텔턴이 벌컥 화를 냈다.
잘츠 왕국의 귀족은 왠지 고귀해 보이는 왕자의 호통에 당황스러워했다.
-당신은 누구….
-내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멸망한 제국의 옛 사람일 뿐. 왜 이 영웅이 눈물을 흘리면서 공주 전하를 감옥 안에 가둬야 했겠나? 다 깊은 뜻이 있어서 아니겠나!
-대체 뭔 깊은 뜻이 있…?
-이 감옥 안이 가장 안전하다는 걸 아직도 모르겠나!
-아니….
페르소텔턴은 이 감옥이 얼마나 안전한 곳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마계의 악마들도 탈출하지 못하도록 견고하게 만들어진 이 우리들은, 아키서스 포병대 소속 전사들이 24시간 내내 감시를 서고 있었다.
어떤 적들도 이 우리를 쉽게 건드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잘츠 왕국 귀족은 점점 상식이 파괴되기 시작했다.
그… 그런가?
[설득에 성공합니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 * *
태현에게 말을 건 잘츠 왕국의 귀족은 그로스너 백작이었다.
낭티오네와 뤼지유카의 먼 친척 되는 귀족.
그런 만큼 둘의 처참한 모습에 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좀 이해하겠나?”
-당황스럽긴 하지만 어떻게든 좀… 으음.
힘겹긴 했지만, 백작은 일단 저 일들이 두 공주를 위한 일이란 건 납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아. 그게….”
-알겠습니다! 공주 전하에게 걸린 저주를 해결하기 위해 여기까지 찾아오신 거군요.
“…뭐 그런 목적도 없다고는 할 수 없지.”
[카르바노그가 저주 걸린 거 잊고 있었다고 놀라워합니다.]
태현도 카르바노그도 낭티오네가 저주 걸린 상태라는 걸 자꾸 까먹게 됐다.
그냥 바실리스크처럼 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국왕을 좀 뵙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별 문제 없겠지?”
일반 모험가가 그냥 만나겠다고 하면 [만날 수 없습니다]가 뜨겠지만, 태현이 고생고생하면서 얻은 국왕 자리는 그 정도는 무시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옆에서 지원해 줄 귀족이 있으면 더더욱 도움이 될 것은 당연한 일.
태현은 이왕 만난 김에 백작의 도움을 얻으려고 했다.
-예. 저주를 푸시려고 왔는데 당연히 도와드려야겠지요. 그런데 어떻게 푸실 생각이신지….
“그건 비밀일세. 지금 국왕이 누구였더라? 턱수염 멋지게 기르고 활 잘 쏘는 그….”
태현은 예전 잘츠 왕국에서 플레이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 분명히 왕이….
-아. 그분은 예전 왕이십니다. 바뀐 지 좀 됐습니다.
“그래? 왕자가 자리를 이은 건가? 왕자는 분명….”
-아뇨.
“???”
-아. 모르시는 모양이군요. 왕국에서 <왕관 도전>의 전통이 부활한 지 좀 됐습니다.
<왕관 도전>.
그 유래를 따지면 고대 제국 시절까지 올라가는, 어마어마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전통이었다.
이 전통은 수많은 전사들이 도전했을 정도로 의미 있는….
…같은 건 다 때려 치고,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왕국 부족장들 중에서 능력 되고 자신 있으면 국왕한테 1:1로 도전해서 승리하면 국왕 자리 획득!
“…….”
[…….]
태현은 충격적인 소식에 할 말을 잃었다.
이게 왕국이야 골짜기 거인들 우두머리 선거야?
‘아니. 뭐 저런 미친 짓거리를 하지?’
[아마 대륙이 혼란스러워져서 그런 것 같다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대륙이 혼란스러워지고 강한 적들이 어둠 속에서 나타난다면, 그에 맞서는 전사들도 더 강해질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잘츠 왕국도 결정을 한 것이다.
더욱 더 강해지기 위해 <왕관 도전>의 전통을 부활시키자고.
…물론 태현이 보기에는 아무리 봐도 미친 짓이었다.
‘그냥 왕국까지 혼란스러워질 것 같은데?’
“혹시 그로스너 백작은 도전 안 하나?”
-저는 저번에 도전했다가 패배해서 지금 순서가 17번으로 밀려 있습니다.
‘괜히 물어봤군.’
혼란스러웠지만, 태현은 곧 정신을 차렸다.
국왕이 일주일마다 바뀐다 하더라도 일단 지금 국왕 만나서 왕관 빌리면 되는 것 아닌가.
게다가 오히려 좋을 수도 있었다.
국왕이 자주 바뀌면 왕관에 문제가 생긴 걸 눈치 채기도 힘들 테니까.
“그래서 지금 왕이 누구지?”
-팔론 백작께서 왕위를 갖고 계시지요.
“팔론 백작… 팔론 백작? 이름이 익숙한데…?”
툭툭-
유지수가 태현을 건드렸다. 유지수는 겁에 질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타이럼 시 영주요……!”
“…….”
그놈의 타이럼 시가 여기서 이렇게 엮이게 될 줄은 태현도 예상하지 못했다.
* * *
“아니 그 인간은 왜 왕을 하고 있지? 알고 있었어?”
“타이럼 시 떠나서 돌아다닌지가 언젠데, 당연히 몰랐죠! 아니. 어쩌다가 왕을 하고 있는 건데요?”
“예전 왕이랑 1:1로 붙어서 이겼대.”
“…….”
생각보다 훨씬 더 단순무식한 방법에 유지수는 할 말을 잃었다.
“아는 사이면 괜찮지 않아?”
듣고 있던 이세연이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들어보니 둘의 시작 도시 영주인 모양인데, 퀘스트도 많이 깨고 그랬으면 오히려 더 유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태현과 유지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절대 아니죠.”
“…그 정도야?”
“잘츠 왕국 NPC들은 기본적으로 좀 다 광기가 있는 편인데… 나 떠난 다음에 팔론 백작이 어땠어?”
“뭐… 잘츠 왕국스러웠죠.”
“음.”
‘잘츠 왕국스럽다’로 충분히 설명이 됐다.
전투에 미쳐 있고 고집 세고….
“하지만 그렇다고 왕궁에 안 들어갈 수는 없잖아.”
“…맞는 말이야. 빨리 가서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지.”
다른 길드들이 들어오기 전에 대화를 끝내고 뒤통수를 칠 준비를 해놔야 했다.
배신도 원래 성실하게 해야 잘할 수 있는 법.
“좋아. 왕궁에 지금 들어가….”
-절벽에 침입자! 절벽에 침입자!
-근위대원들은 집합하라!
“?????”
태현은 깜짝 놀랐다.
“길드 동맹 놈들, 설마 걸린 건가?”
“절벽 쪽으로 올라올 사람들은 길드 동맹 밖에 없을 걸요?”
“이 자식들이… 왜 벌써부터 걸려서 민폐야!”
태현은 분노했다.
국왕한테 미리 말한 다음 잡혀줘야 태현에게 공적치가 들어가지 않겠는가.
왜 갑작스럽게 일정을 앞당겨서….
“조금 이상한데.”
이세연은 의아해했다.
“여기 잘츠 왕국 수도가 아예 정보 없는 다른 던전도 아니고, 정보가 적긴 해도 나름 정리된 게 있잖아.”
“그렇지?”
“길드 동맹도 그걸 구해서 철저하게 준비했을 텐데 벌써부터 걸린 게 좀 이상해.”
“…….”
이세연의 말에 태현은 깨달았다.
“…다른 놈들이 견제했군.”
“설마….”
“설마가 아니라 그것밖에 없어.”
태현의 예측은 사실로 맞아떨어졌다.
세 길드의 불꽃 튀기는 개짓거리 대결이 시작된 것이다.
* * *
“큭큭큭….”
미다스 길드의 마법사들은 흐뭇해하며 입구로 걸어갔다.
길드 동맹이 절벽을 통해 올라가려고 한다는 건 이미 첩보를 통해 얻은 뒤였다.
절벽 밑에서 은신 걸고 대기하고 있던 길드 동맹 랭커들.
미다스 길드는 풋내기를 몇 명 고용해서 그쪽으로 보냈다.
아무리 길드 동맹이 철저하게 은신을 하더라도 다른 놈들이 들켜서 어그로를 끌어버리면 별 소용이 없는 것이다.
-이… 이런 미친 놈! 여기가 어디라고 오는 거야!
-죄, 죄송합니다. 여기 가라고 돈 받아서….
-…미다스 길드 이 개자식들이 이런 비겁한 수작을?!
길드 동맹이 당했다고 생각해서 분노해봤자 별 소용없었다.
이미 선수를 친 뒤였으니까.
-코프트 남작이십니까?
“맞소.”
변신을 끝낸 미다스 길드 랭커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잘츠 왕국 귀족 신분을 구해서 변신을 끝내 놓은 것이다.
-그렇군요. 통과하셔도 좋….
-<회전하는 창의 일격>!
쾅!
미다스 길드 랭커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스킬이 작렬했다.
“뭐야?!?”
“이 자식들… 감히 우리 발목을 잡아놓고 올라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하. 알게 해주마. 쳐라! 저 자식들 변신 마법 풀리게 해!”
[<알라카 검술>이 주변을 뒤흔듭니다!]
[……]
[……]
길드 동맹의 눈치는 보통이 아니었다.
태현한테 그렇게 당한 만큼, 이런 부분에서는 매우 눈치가 빨라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방해를 해온 놈들이 있다면 미다스 놈들이 분명하다!
콰콰콰쾅!
잘츠 왕국의 수도 아래에서 서로 예상치 못한 개싸움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아주 대놓고 시비를 걸다니……! 싸워보자는 거냐?”
“싸움은 사람 고용해서 방해한 네놈들이 걸었지!”
“흥! 증거라도 있나?”
“증거? 알 게 뭐냐. 그렇게 따지면 우리도 그냥 NPC인 줄 알고 공격했는데?”
유치하게 싸우는 이들을 보며, 태현은 할 말을 잃었다.
“…올라오는 놈들 없나?”
좀 올라와야 붙잡아서 고발을 할 텐데, 올라오기도 전에 자기들끼리 붙어서 싸우고 있으니 좀 당황스러웠다.
“저기 올라오는 사람들 있어요!”
“다행이다!”
태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 밑에서 길드 동맹 길드원들이 빠르게 절벽을 기어오르는 게 보였던 것이다.
기습을 당해 정체가 들켰지만, 멈추지 않고 강행돌파할 생각이 분명했다.
“안심할 때가 아니야. 잘츠 왕국 근위대가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어.”
그러나 상황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매우 불리했다.
까마득한 절벽 위에서, 잘츠 왕국 근위대 궁수들이 조준을 하고 있었으니까.
아무리 랭커들이라 하도 뚫을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올라오도록 도와줘야겠군.”
태현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든 길드 동맹 길드원들을 위로 데리고 올 생각이었다.
산 채로 붙잡기 위해서!
[카르바노그가 가끔 화신이 좀 무서울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