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476화 (1,475/1,826)

§ 나는 될놈이다 1476화

지능이 높아지는 것과 성격이 개성 강해지는 건 의외로 다른 것이었다.

이세연의 언데드들은 그 레벨에 따라 지능이 높아졌지만 태현의 언데드들처럼 개성 넘치진 않았다.

기본적으로 충성심 넘치고 이세연 말 잘 듣고 너무 심한 명령 시키면 저항하고….

“네크로맨서마다 특색이 있나 보군.”

“…아니. 너만 그런 건데.”

이세연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태현을 쳐다보았다.

수많은 네크로맨서들을 만나봤지만 태현만큼 개성 넘치는 언데드들은 없었던 것이다.

태현은 그 말에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네가 만나본 네크로맨서들이 그렇게 안 많을 수도….”

“나 천 명 넘게 확인했어.”

“…대체 어떻게 확인한 거지?”

“네크로맨서들 모임이나 게시판 같은 곳에서 나 계속 부르니까.”

이세연같이 최상위권 네크로맨서는 그 밑의 네크로맨서들의 롤모델이었다.

가만히만 있어도 매번 ‘네크로맨서 스킬 뭐 찍어야 할까요?’ ‘장비 뭐가 좋을까요?’ ‘퀘스트가 뭐가 좋을까요?’ ‘제 친구랑 제가 싸웠는데 둘 중 누가 잘한 거 같으신가요?’ 같은 질문들이 전 세계에서 쏟아지는 것이다.

이세연이 거기에 전부 대답하지는 못하더라도 흥미로운 질문이 있거나 이름 좀 들어본 네크로맨서가 있을 경우 상담에 응해주곤 했다.

‘나는 그런 거 받은 기억이 없는데?’

태현은 의아해했다.

“왜 그래?”

“난 받은 기억이 없어서.”

“…넌 아예 창구를 안 열어놨잖아….”

“아. 그랬지.”

생각해 보니 판온 초기에는 원수들이 많아서 정체를 밝히지 않을 정도였고, 정체를 밝힌 뒤에는 워낙 적들이 많아서 창구 자체를 안 열어놨었다.

어차피 열어 놔봤자 ‘김태현 씨 ^^ 우리 한 번 만나지 않을래요? <매복의 평원>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주변에 사람들이 좀 많아도 걱정하지 마세요 ^^ 김태현 씨 팬이에요 ^^’ 같은 함정 연락만 날아왔을 테니까.

“이제 와서 굳이 열 필요는 없어. 팀 KL 창구도 있을 거 아니야.”

“그거 내가 관리 안 하는데.”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대외 활동 좀 하는 게 좋아.”

이세연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사실 유성 게임단도 게임단 중에서는 선수들에게 일정이나 행사 참여를 강요하지 않는 편이었다.

유 회장의 강력한 지지가 뒤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회장님. 유성기획에서 유성 게임단 선수들을 이번 행사에 홍보대사로 참가시키고 싶다고 기획서를….

-저번 주에도 행사 하나 열지 않았나?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선수들이 피곤해지면 경기력이 떨어지고, 경기력이 떨어지면 실수가 나오고, 실수가 나오면 패배의 확률이 높아지고, 패배가 잦아지면 암흑기 찍고 비밀번호를 찍고 게임단이 해체될 수도 있는데 그걸 모르고 이딴 제안을 해?? 지금 제정신인가??

-죄, 죄송합니다. 이 정도는 될 줄 알았습니다.

회장이 강력하게 보호를 하는데 그걸 무시하고 제안을 올릴 간 큰 실무자들은 없었다.

덕분에 다른 게임단들은 모기업 홍보를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피곤하게 돌아다니는 동안 유성 게임단은 판온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런데 팀 KL은 한술 더 떴다.

선수가 사장이자 대표라서 그냥 안 나간다!

가끔 팀원들 전원 출연하는 정말 좋은 광고 하나 있으면 나와주고, 방송국 쪽에서 눈물의 하소연이 있으면 한 번 나와주고….

유성 게임단도 정말 선수들의 천국이긴 했지만, 이세연이 보기에 팀 KL은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게임단에 가까웠다.

“그러면 같이 하나 할래?”

“정말이야?”

이세연은 깜짝 놀랐다.

물론 다른 게임단이었다면 이런 제안을 하는 게 놀랍지 않았다.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유성 게임단과 같이 행사 하나 하는 건 무조건 이득이었으니까.

하지만 저건 김태현 아닌가.

억만금을 줘도 ‘아 우리가 싫으면 안 해’라고 배짱을 부리는….

“저번에 이다비 집들이도 와줬고, 여러모로 고마웠어. 보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뭐라도 좀 해주고 싶네.”

“…….”

이세연은 정말로 놀랐다.

김태현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줄이야.

스미스가 ‘당신 변했어!’라고 말하는 게 헛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많이 변하긴 했다.

판온 1 끝났을 때 이세연한테 ‘이세연, 너는 나중에 판온 2에서 김태현하고 같이 파티 맺고 돌아다니면서 판온 월드컵도 준비해’라고 말했다면 이세연은 ‘미쳤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이세연은 옅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래. 뭐든지 같이 하나 하면 좋….”

“야! 그만 좀 떠들고 앞에 좀 보라고! 저래도 되는 거냐고!”

길드 간부가 초조한 목소리로 외쳤다.

태현이 보낸 언데드들이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 * *

-다가가서 놈을 공격해라. 놈의 약점을 알아내는 거다.

-끄르르륵… 끄륵끄륵.

-…어지간하면 안 물어보려고 했는데 물어볼 수밖에 없군. 대체 너는 어떤 언데드지?

-끄륵끄륵.

-고대 제국에 하수구에 살던 역병 괴물이었다고? 그렇군. 그래서 그런… 어쨌든 그렇다면 맷집이 좋겠는데.

-끄륵끄륵끄륵.

그렇게 한 차례 이야기를 끝낸 골골이는 옆에 시무룩한 표정으로 서있는 언데드를 보며 물었다.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너무 침울해 보였던 것이다.

-너는… 왜 그러고 있지?

-저는 고대 제국의 투기장에서 일하던 사육사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부리던 괴물이 사라져서….

-저 옆의 괴물은 안 되나?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저는 제가 직접 키우고 기른 괴물만 부린단 말입니다!

-…그, 그렇군.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런 걸 따질 수 없으니 참도록… 아니, 넌 또 뭐하는 놈이냐!

-나… 나는 고대 제국의 군인이오.

-오오! 이제야 좀 쓸 만한…! 그래! 직위가 어느 정도였지?

-천인장이었소.

-오오오! 대단하군!

-은퇴한 지 삼십 년이 넘은 때로 불러내다니. 너무한 거 아니오? 내가 젊었을 적으로 불러내야 싸우지. 이 몸으로 무엇을 하라고….

-…….

슬슬 골골이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골골이가 부리고 있는 고대 제국 언데드(랜덤)들은 오합지졸이라는 것을.

하지만 골골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반드시 공을 세워서 돋보이고 말겠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골짜기에서 언데드들의 지위를 올릴 수 있는 기회!

-덤벼라, 괴수 놈! 이 <죽음의 용 송곳니 검>으로 상대해 주겠다!

[대괴수 오르기돈이 몸을 진동시키기 시작합니다.]

[지진이 일어납니다!]

언데드들이 접근하기 시작하자 오르기돈은 몸을 부풀리더니 주변을 날려 버리기 시작했다.

그 충격파가 워낙 거대해 언데드들은 물론이고 뒤에 있던 도시까지 뒤흔들릴 정도!

골골이는 간신히 몇 개의 마법을 겹쳐 써서 막아낼 수 있었지만, 힘의 격차를 느끼고는 망연자실했다.

-이럴 수가…! 대체 어떻게…!

-놈은 힘을 모으고 있었던 겁니다. 야수 군단들을 닥치는 대로 불러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야수들을 광폭화시키는 데에는 놈의 힘이 들어갔던 것이지요.

-…??

골골이는 황망해하다가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의 주인은 고대 제국의 투기장에서 일하던 사육사였다.

-놀… 놀랍군. 그럴 줄은 몰랐다.

-놈이 가만히 있다고 해서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맹수가 웅크리고 있는 건 더 커다란 사냥을 위해서니까요.

-놈의 약점을 알아내야 한다. 혹시 방법이 있나?

-저는 투기장에서 온갖 괴물들을 돌봤습니다. 가까이만 접근한다면….

-크윽. 하지만 지금 놈의 힘은 너무 강력한데.

-걱정 마시오.

이번에는 늙어서 은퇴한 제국 천인장 언데드가 나섰다.

-다 늙은 몸이지만 짐승 놈 시선 하나 정도는 끌 수 있으니까. 내 스킬을 믿어주시오.

-노인장…!

-끄륵끄륵끄륵.

오합지졸이라고 생각했던 구성들이 의외의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자, 골골이는 감동했다.

-제국 천인장의 도발!

[<제국 천인장의 도발>을 사용합니다!]

[오르기돈이 분노합니다!]

* * *

가만히 있던 오르기돈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길드 동맹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잡긴 해야 했지만 아직 준비가 덜 됐던 것이다.

“김태현! 다 생각이 있는 거겠지??”

길드 동맹 간부는 초조한 표정으로 말했다.

골골이가 생각 외로 결과를 만들어내자 태현은 신기해했다.

“오….”

“뭘 ‘오’야 미친 자식아! 야! 자기 도시 아니라고 이러는 거면 진짜…! 진짜…!”

옆에서 듣고 있던 스미스가 흥미진진하다는 듯이 물었다.

“진짜 다음에 뭐지? 전쟁? 선전포고? 싸우나?”

“…섭섭하다!”

“…그, 그렇군.”

섭섭하다는 말에 태현은 당황했다.

뭐 어쩌라고?

하지만 지금 골골이가 고착된 상황을 뒤흔들었다는 걸 부정할 순 없었다.

무슨 꿍꿍이인지 버티고 있던 오르기돈이 대분노해서 언데드들을 쫓고 있었던 것이다.

스미스가 옆에서 말했다.

“길드 동맹의 다른 도시들을 불태워버리는 건 어떻습니까?”

미다스 길드의 랭커들도 옆에서 말했다.

“길드 동맹의….”

“아. 그만해. 미친놈들아.”

태현은 낭티오네를 불렀다. 거대한 기계 장갑으로 무장한 바실리스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잡을 방법이 없다면, 잡을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을 끌어야겠지. 이세연. 도와주겠어?”

“너 지금 마법 스킬 올리려고 그러는 거지.”

“응.”

“그럴 줄 알았어. 가자.”

오르기돈 상대로 시간을 끄는 건 미친 황소 상대로 투우를 하는 것처럼 위험한 일이었지만….

둘은 그럴 자신이 있었다.

둘이 나서자 스미스가 황급히 말했다.

“저도 같이 가고 싶습니다만.”

“…너 네크로맨서였나?”

“네크로맨서는 아니지만 그래도….”

“네크로맨서로 싸울 거라서 안 돼.”

“…….”

스미스는 시무룩해졌다.

* * *

두 마법사가 지원에 나서주자 골골이는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돌아온 골골이를 보며 태현은 칭찬해 줬다.

“잘했다. 골골아. 이 정도로 잘해줄 줄은 몰랐는데.”

-영광입니다! 주인님. 언데드 중 하나가 저놈의 목적을 알아냈습니다.

“오…! 그게 뭐지??”

태현은 반색했다.

꼭 잡지 않더라도, 오르기돈을 설득해서 퇴치시킬 수 있다면 그것도 생각해 볼 수 있는 방법이었다.

-왕국들을 전부 불태우고 왕족들을 삼켜버리는 게 목적이라고 합니다.

“…그렇군.”

“그냥 마법 스킬이나 올릴래?”

“응.”

태현은 무시하고 다시 마법에 집중했다.

[최고급 마법 스킬이 오릅니다!]

[최고급 마법 스킬 1이 최고급 마법 스킬 2로 오릅니다.]

[스킬 <아키서스의 금제>가 풀립니다!]

[검술 스킬이 돌아옵니다!]

‘후.’

태현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검술 스킬의 소중함을 이렇게 뼈저리게 느낀 적도 드물었던 것이다.

‘그런데 돌아오고 나니 약간 섭섭하긴 하군.’

검술 스킬이 봉인당한 대신, 다른 스킬들 성장 속도에 크게 버프를 받았던 것이다.

쏠쏠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 되겠지.

워낙 싸울 일이 많아서 최대한 빨리 검술 스킬을 되찾았다지만….

[<아키서스의 금제>를 견뎌냈습니다.]

[<화신의 길> 퀘스트가 추가됩니다.]

[<아키서스 축복의 룰렛>을 얻습니다!]

‘…?’

룰렛 이미 있잖아?

[카르바노그가 이번 룰렛 스킬은 둘 중 한 사람이 아니라 둘 다 죽는 스킬 아니냐고 경악합니다.]

다행히 그런 건 아니었다.

<아키서스 축복의 룰렛>

직업 퀘스트를 깰 때마다 강력한 버프를 부여합니다.

<화신의 길> 퀘스트를 돕는, 매우 멀쩡한 스킬이었던 것이다.

‘휴.’

[카르바노그가 아키서스를 믿고 있었다고 안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