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474화 (1,473/1,826)

§ 나는 될놈이다 1474화

“어허. 스미스.”

태현은 스미스를 말렸다.

지금 상황에서 서로 치고 받아봤자 진짜 좋을 게 없었던 것이다.

길드 동맹도 바보가 아닌 이상 기습을 당했을 때를 준비했을 테니 싸움이 벌어지는 순간 빠르게 끝나지 않고 난장판만 이어질 터.

“빠르게 끝내면 됩니다. 30분 안에 다 끝내버리고 점령한 다음 오르기돈을 상대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점령하면 셋으로 나눕시다.”

스미스의 말에 미다스 소속 랭커도 솔깃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사이가 안 좋아도 남의 땅 뺏어서 나눠 가지자는 제안은 언제나 솔깃하기 마련이었다.

“30분 안에 못 끝내니까 문제지. 길드 동맹도 대비는 했을 거다.”

“길드 동맹을 너무 과대평가하시는 거 아닙니까? 이런 상황까지 대비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지금 병력이 다 빠져 있는데.”

“과대평가가 아니라… 내가 몇 번이고 그런 짓을 했는데 도시 안에 그런 방비를 안 했을 리가 없잖아.”

“…….”

스미스는 침묵했다.

듣고 보니 그럴듯했던 것이다.

확실히 그건 그래!

“무슨 이야기 하고 있나?”

길드 동맹 간부가 멈춰서더니 돌아서서 물었다.

따라오라는데 안 따라오고 수군거리는 게 이상했던 것이다.

태현은 바로 대답했다.

“이런 상황에도 길드 동맹이 잘 싸우는 걸 보니 대단하다고 이야기하고 있었지.”

“누구 때문이겠냐? 다 너 때문이야 이 자식아.”

간부는 가시 돋친 목소리로 말했다.

예전부터 길드 동맹 밖에서 농담 삼아서 도는 말이 있었다.

-길드 동맹을 강하게 만들어 준 건 김태현이다.

-김태현 덕분에 길드 동맹이 그래도 강해지지 않음?

태현과 싸우기 전, 길드 동맹은 아직 덜 여문 길드들간의 느슨한 연합체였다.

하지만 태현과 싸우고 망하기 직전까지 가고 몇몇 길드들은 이탈하고 그러면서 길드 동맹은 지금의 형태로 변하게 된 것이다.

끈질기게 버티면서 길마로 자리 잡은 쑤닝이 철권을 휘두르며 강력하게 통제하는 형태로!

그 과정에서 생긴 노하우는 덤이었다.

실제로 길드 동맹과 분쟁이 생겨서 싸운 적이 있는 다른 대형 길드들은 깜짝 놀라곤 했다.

-야, 저 자식들 왜 저렇게 조직적으로 잘 싸우냐?? 밥 먹고 연습만 했나?

-우리 쪽 랭커 한 명이 포위당해서 그대로 잡혔어요!

-요새는?? 지금쯤 우회해서 잠입했을 텐데?

-실패했답니다! 요새가 생각보다 단단한가 봐요!

길드 동맹만큼 판온에서 거칠고 사나운 시련을 많이 겪은 길드는 없었다.

보통 길드는 그쯤 겪으면 무너지는 것이다.

그러나 길드 동맹은 버텼고, 그 결과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는 교훈과 경험을 직접 얻게 되었다.

…물론 이딴 말을 간부나 쑤닝 앞에서 했다가는 게임 접을 각오를 해야 했다.

이게 지금 잘 나가고 있으니까 저런 거지 망했으면 캡슐 밖에서 ‘김태현 XXX야!! 꼭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냐!!’ 하고 있었을 테니까!

“아니. 이 자식들은 칭찬해 줘도 난리네.”

태현이 어이없어하자 옆의 다른 간부가 급히 말했다.

“이봐! 김태현 심기 거스르면 안 된다고 했잖아!”

“미, 미안. 저 자식을 보니까 이제까지 저 자식 때문에 했던 고생과 추가 대비 훈련들이 떠올라서….”

“…….”

태현은 처음으로 미안해졌다.

* * *

건물들이 여럿 부서지고 로그아웃된 사람들도 제법 많이 나왔지만, 도시 안의 랭커들은 상황을 진압하는 데 성공했다.

[파사하의 야수 군단들이 쓰러집니다!]

[도시의…]

[……]

“야수 놈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진짜 심하네.”

“이거 폭발로 부서진 거 아냐?”

“야수들 중에 폭발 속성이 있었나?”

“닭이나 양, 말이나 쥐… 없지 않아?”

길드원들의 수군거림에, 아키서스 포병대 NPC들은 움찔했다.

그걸 본 페르소텔턴이 조언했다.

-모르는 척하면 된다. 당당하면 누가 눈치를 채겠나? 만약 누군가 따진다면 폭발하는 닭이 있었다고 해라! 내가 도와주겠다.

-왕자님…!

-쉿. 나는 이미 죽은 사람이라니까!

“다들 고생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저 밖에 있다.”

중앙 광장.

중무장한 쑤닝은 멀찍이 거리를 두고 입을 열었다.

옆에는 길드 동맹의 최정예 호위들과 랭커들이 둘러싸고 있었고….

‘아무리 그래도 너무한 거 아니냐?’

그냥 옆에다가 표지판으로 <김태현하고 스미스 같은 놈들은 10m 이내로 접근 금지>를 써놓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오르기돈 놈이 이쪽을 노리고 있다.”

“잘 안 들리는데 혹시 가까이 와주시면 안 됩니까?”

스미스의 말에 쑤닝은 무시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저 밖에! 오르기돈이 있다! 야수 군단을 소환해서 들여보낸 다음에 움직임이 없는데, 그게 더 수상하다. 여기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싶다!”

쑤닝의 말에 미다스 길드 랭커 중 한 명이 손을 들었다.

“뭐지?”

“뛰어난 도적과 암살자들을 보유한 길드 동맹이 정찰을 보내보는 게 어때?”

“…….”

“…….”

노골적인 질문에 길드 동맹 간부들과 랭커들은 분노했다.

하지만 스미스는 그 질문에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좋은 생각 같습니다?”

“아니… 위험하지.”

보고 있던 태현이 말했다.

살면서 태현이 길드 동맹 편을 들어줄 줄은 몰랐던 간부들은 깜짝 놀랐다.

지금 이게 환각인가?

“어떤 점이 위험하시단 겁니까?”

“당장 오르기돈 상대로 제대로 따돌리지도 못해서 도시 앞까지 끌고 왔는데, 암살자나 도적 플레이어 몇 명 보낸다고 좋은 결과를 얻을 거 같지는 않아. 멀리서 깔짝대봤자 괜한 어그로만 끌 수 있고, 그렇다고 가까이 들어가면 로그아웃될 확률이 높겠지.”

“그러면 희생을 감수하고 가까이 들어가야 한다는 소리군요. 역시 김태현 씨 답습니다.”

“…아니 미친놈아….”

태현은 스미스의 광기에 살짝 뒷걸음질 쳤다.

길드 동맹 랭커, 특히 도적이나 암살자 플레이어는 스미스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저 저 새끼…!

김태현! 네가 따끔하게 혼내줘!

“하지만 지금 대책이 필요한 건 사실이야. 이대로 내버려 둬도 위험한 건 마찬가지잖아?”

이세연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정도 되는 보스 몬스터를 도시 근처에 두는 것 자체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저러다가 [오르기돈이 힘을 다 모았습니다! 도시파괴지진을 일으킵니다!] 하면 이제 길드 동맹 눈에서는 피눈물이 나는 것이다.

“사실 내가 생각이 있긴 해.”

“?”

태현은 이세연에게 작게 말했다. 이세연은 의아하다는 듯이 태현을 쳐다보았다.

“저 오르기돈을 봉인시키고 있던 NPC가 있거든. 물어본다면 오르기돈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몰라.”

“…그걸 왜 지금, 이렇게 조용히 말하는데?”

“두 가지 문제가 있거든.”

하나는 오르기돈을 봉인하고 있던 잘츠 왕국의 건국왕이었다.

도와달라고 그냥 도와줄 NPC는 아니었고, 솔직히 꽤 귀찮아질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그런 도움 없이 여기 있는 전력으로 잡을 수 있다면 그냥 깔끔하게 잡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니 오르기돈은 생각보다 더 사납고 위험한 놈이었고….

“다른 하나는?”

“내가 그런 강력한 정보를 알고 있다는 걸, 저놈들이 알면 어떨 거 같아?”

“…상상이 안 가네. 응.”

이세연은 벌써부터 질린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태현이 입을 열기 전에도 벌써 서로 견제를 열 번은 넘게 하고 배신 시도를 세 번은 넘게 한 이들.

만약 그런 NPC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연합할 필요가 있나? 그냥… 우리가 무조건 그 NPC 찾아서 정보 얻고 우리끼리 잡으면 독식 아닌가?

-NPC 먼저 찾아야 해! 아니, 저놈들부터 먼저 견제해!

최악의 경우 저 세 세력이 연합해 태현을 공격할 수도 있었다.

-지금 김태현이 가장 유리해! 저놈을 잡아야 한다!

-맞는 말이야!

“그렇게까지는 안 가지 않을까?”

“응. 나도 사실 그 걱정이 제일 컸는데, 지금 상황 보니까 셋이 연합해서 날 때리진 않겠더라.”

걱정을 많이 하긴 했었지만, 이 셋은 생각보다 사이가 훨씬 나빴다.

이 정도라면 셋이 손잡고 태현을 일사불란하게 공격할 일은 없다고 봐야 했다.

“물론 그걸 감안해도 좀 너무 사이가 안 좋긴 해. 대체 왜 저렇게 싸우는 건지 모르겠군.”

“…….”

이세연은 ‘널 보고 배운 거 아닐까?’라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지금 태현을 탓해봤자 달라지는 게 없었으니까.

“그러면 어떻게 하려고?”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지. 내가 여기서 시간을 끄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가서 NPC를 만나고 오는 게 낫겠어. 일단 얼마나 도와줄 수 있는지 알아봐야지.”

“좋아. 바로 데리고 출발할게.”

“아니. 넌 내 곁에 있어줘야지.”

“…….”

태현의 말에 이세연은 멈칫했다.

“왜?”

“네가 제일 강하잖아.”

“…그래. 고오맙네.”

“왜 화를 내고 그래?”

* * *

“그냥 김태현도 분신 만들고 오면 안 됐나?”

케인은 불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평소의 일행이었지만, 태현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불안정하게 느껴졌다.

-아키서스의 노예여. 불안해할 것 없다. 여기 모험가들은 전부 다 뛰어난….

“아 그런 거 모른다고!”

-…….

징징대는 케인의 모습에 용용이는 경악했다.

아키서스의 노예라는 자가 어떻게 이렇게 한심할 수가!?

“나는 내가 판단 내리기 싫다고! 그냥 지시를 해달라고!”

“야. 쟤 그냥 영지로 다시 보내면 안 되냐?”

최상윤은 뒤에서 소곤거렸다.

그걸 들은 이다비와 유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노드란체 섬이 생각보다 별로 안 위험하자, 케인은 태현을 돕겠다고 다른 선수들과 함께 찾아왔다.

문제는 케인이 예상치 못한 명령을 태현이 내린 것이다.

-나는 얘네들이랑 같이 싸우고 있을 테니까, 너희들은 유지수하고 같이 가서 탑의 유령 만나고 와라.

평소 지시를 내리던 태현이 없어진 이상 플레이어들은 각자 자기 두뇌로 판단하고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리고 한동안 판단을 남한테 맡겨 온 케인은 이런 게 매우 어색하고 불편했다.

그냥….

명령을 내려줘!

-저게 아키서스의 노예인가? 정말 어울리는 것 같은데….

흑흑이는 감탄했다.

저렇게 노예 적성을 가질 수 있다니.

수많은 노예들을 부려 온 블랙 드래곤 종족이 보기에도 저렇게 노예 적성이 뛰어난 노예는 보기 드물었다.

“다들 시끄럽고. 따라오기나 해요. 별로 어렵지도 않으니까.”

길을 아는 유지수가 일행들을 이끌었다.

퀘스트 이후 돌아다닌 수많은 잘츠 왕국의 탑들.

다 그게 그거 같아 보였지만 유지수는 용케도 그 탑들을 빠르게 구분해서 움직였다.

“이거 왜 다 똑같이 생겼지?”

“다 다르게 생겼거든요. 입구 보세요.”

“똑같잖아?”

“저 왼쪽이 아주 조금 더 밝은 흰색이잖아요.”

“…….”

잘츠 왕국이 보여주는 광기의 편린을 본 일행은 전율했다.

대체 뭐하는 왕국이 저런 걸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단 말인가?

아무리 사냥꾼이나 레인저 같은 궁수 직업이 눈이 좋아야 한다지만….

-모험가들이여. 따라오는 자들이 있다.

“!”

용용이의 말에 일행은 깜짝 놀랐다.

여기 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속이고 따라올 수 있을 정도라면….

“다들 침착해. 뛰어드는 건 나하고 케인이 맡을 테니까.”

최상윤의 말에 케인은 고개를 끄덕인 다음에 멈칫했다.

“…너하고??”

“…그러면 여기 근접 딜러가 또 있냐 이 자식아?”

“아, 아니. 내가 꼭 불만이란 건 아니고….”

‘이 자식 지금 김태현하고 날 비교했나 본데.’

최상윤은 속으로 울컥했다.

그렇게 따지면 인마 나도 너랑 스미스랑 비교할 수 있어…!

“유지수, 정수혁. 광역기 준비.”

“준비 끝.”

“공격하는 대로 움직인다.”

“시작!”

-지원하겠다!

유지수와 정수혁이 폭풍 같은 광역 스킬을 시전하자, 용용이와 흑흑이도 몸을 부풀리며 하늘로 날아올라 마법을 난사했다.

[은신이 풀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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