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473화 (1,472/1,826)

§ 나는 될놈이다 1473화

[카르바노그가 왠지 많이 불길하다고 말합니다.]

‘그래. 카르바노그.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지금 이들이 있는 곳은 오스턴 왕국의 대도시이자 길드 동맹의 대도시인 파사하였다.

이번 퀘스트가 대륙 퀘스트인 만큼, 여러 길드들이 각자 자기네들 영역에서 준비를 하고 싶어 했고….

결국 서로 다투기 직전까지 가자 추첨으로 정했다.

그 결과가 바로 파사하.

파사하는 나쁜 선택이 아니었다. 대도시인 만큼 각종 물자나 소모 아이템들을 쉽게 구할 수 있었고, 지원을 받기도 좋았으니까.

거기에 길드 동맹은 막대한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으니 서로 윈-윈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문제는….

[대괴수 오르기돈이 나타났습니다!]

[야수 군단이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야수 군단이 거대화되기 시작합니다!]

[야수 군단이 흉폭화하기 시작합니다!]

[도시 안의 짐승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합니다!]

[….]

[….]

[….]

따돌린 줄 알았던 오르기돈이 도시까지 찾아온 것이다.

“따돌렸다면서?”

“너희들 때문이다! 이 자식들! 네놈들이 쓴 마법이 수상쩍었어! 그거 정말 제대로 된 마법은 맞나? 스크롤 아끼려고 개수작 부린 거 아니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우린 최선을 다해서 마법을 썼다. 네놈들이 보낸 도적들이 잘못한 거겠지. 보아하니 실력도 별로 없어 보이던데. 우리 탓으로 돌리려고 해봤자 소용없다!”

“스미스! 네 화이트 나이트의 탱커들이 어그로를 제대로 끌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거 아니야!”

“우리 길드 탱커들은 일을 제대로 했습니다. 그쪽 잘못이겠죠.”

1초도 되지 않아서 서로 헐뜯고 책임을 돌리려는 정겨운 모습에 태현은 감탄이 나왔다.

이런 정겨운 자식들!

“야. 싸움은 나중에 하고, 싸울 준비부터 하자.”

“하지만 김태현….”

“여기 너네 길드 도시거든? 이렇게 시간 끌면 누가 더 손해일지 따져볼까? 난 여기 그냥 있어도 되는데.”

“!”

태현의 말에 길드 동맹 간부는 기겁했다.

그랬다.

지금 오르기돈에게 공격 받고 있는 도시는 길드 동맹의 도시인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놈들의 도시에서 진행을 할걸!’

후회해 봤자 늦었다. 지금은 당장 도시를 막을 준비를 해야 했다.

“다들 움직이자!”

“으음. 아까 먹은 포션이 소화가 덜 됐나?”

“제 판금 부츠 끈이 풀려서….”

미다스 길드와 스미스까지 시간을 끄는 모습에, 길드 동맹 간부들은 분노했다.

김태현이 얌전해지니까 이제 다른 새끼들이…!

* * *

-메에에에에에!!

-메에에에에에에에!!!

[<새하얀 고급 양>이 폭주합니다.]

“야, 야! 왜 이래!”

양 목장을 관리하던 플레이어들은 기겁해서 도망쳤다.

방금까지만 해도 털과 젖을 순순히 제공해 주던 양들의 눈빛이 뒤집히더니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양뿐만이 아니었다.

[<올파렉 전투마>가 폭주합니다!]

양이 저 정도인데 다른 야수들은 더욱 심했다.

전투마가 흥분해서 달려 나가자 마구간 벽이 박살 나고 주변이 아수라장이 됐다.

도로 아래 하수구에서 지내던 쥐 떼들이 갑자기 도로 바닥을 뚫고 나오기 시작하고….

“전투부대 집합! 길드 전투부대 집합!”

“랭커들 파사하 시로 모여라! 비상이다!”

-파사하 시로! 파사하 시로!

길드 동맹은 기겁해서 비상 명령을 때렸다. 그만큼 도시가 빠르게 개판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곳에 있었던 길드원들은 허겁지겁 달려오면서 물었다.

-뭐냐? 도대체 무슨 상황이냐?

-뻔하지! 김태현 내가 도시에 부르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냐! 길드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김태현을 부른 거야! 위험하다니까!

-김태현이 일으킨 사태 아니라는데?

-아니야? 이런.

-대괴수 오르기돈이 파사하 시까지 나타났다!

태현은 일행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도시 곳곳에서 미쳐 날뛰는 야수들이 플레이어들을 쫓아다니고 있었다.

-사디크의 화염 파도!

태현은 주변을 불태우며 야수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미다스 길드의 마법사 랭커들은 그 모습에 정말로 놀랐다.

진짜 마법으로 싸우네??

“정말 마법으로 싸울 생각인가?”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곧 검을 들지 않을까?”

하지만 놀랍게도 태현은 꿋꿋하게 마법으로 버텼다.

그리고 그 특유의 실력은 어디 가질 않는지, 마법으로도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디크의 화염 파도, 이데르고의 역병 고리, 드워프의 금속 비!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

[….]

마법 스킬의 개수는 적어도 하나하나의 위력이 높은 데다가 압도적인 행운으로 인한 추가 보너스까지.

계속 검술 쓰던 플레이어가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대단한 거였다.

“숫자가 너무 많아! 지원 불러야 해!”

“데리고 온 용병들 앞으로 보내!”

미다스 길드의 주축은 마법사 랭커들.

그리고 마법사 랭커들의 약점은 근접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돈 좀 있는 마법사 랭커들은 용병이나 기사 같은 NPC들을 고용해서 데리고 다니곤 했다.

[<두 머리 사자 용병단>이 돌격합니다!]

[<오스턴 왕국 몰락 기사단>이 돌격합니다!]

랭커들의 저력은 랭커들 본인의 능력뿐만이 아닌 다른 것들도 동원할 수 있다는 점.

미다스 길드들이 동원한 전사들은 생각보다 상당히 강했다.

‘길드 동맹과 싸울 때 대비해서 키워 놓은 게 분명하군.’

레벨 500부터 시작하는 전사 단단한 전사 NPC들이 대로를 막고 방벽을 치자 야수 군단들도 쉽게 뚫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클리어!”

“이쪽도 클리어!”

한숨 돌린 미다스 길드는 태현 일행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과연 김태현 일행은 어떤 식으로 싸우고 있을까?

-어허, 이놈들아! 아직 아니야! 진정해!

-크르륵 크륵!

-아니야! 아직 아니야!

아키서스 포병대 드워프들은 전투악마들의 목줄을 꽉 붙잡고 버티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포병대 거인들은 서둘러 박격포를 주변에 설치하고 어깨 위에 간이 대포를 올렸다.

이런 도시에서 거대 대포를 꽝꽝 쏴댔다가는 야수 군단이 쓰러지기 전에 쑤닝의 눈가에서 눈물이 쏟아져 나올 터.

화력을 줄이고 적들만 노릴 수 있어야 했다.

“준비 다 됐나?”

-예!

“준비 끝난 놈들부터 발사해!”

꽈과과과과광!

박격포들이 불을 뿜고 그 안에 장전된 폭탄들이 날아갔다.

장인이 만든 폭탄은 화려하게 폭발하며 주변 야수들에게 닥치는 데로 추가 대미지를 입혔다.

“계속 발사해!”

-악마들 마력 준비해라! 박격포 식혀야 한다!

[아키서스의 박격포가 과열되었습니다! 계속 발사할 경우….]

[악마들의 마력을 추출하기 시작합니다. 마력으로 박격포를 식히는 데 성공합니다!]

원래 이런 공성 장비들은 한 번 사용할 때마다 쿨타임과 페널티들이 있었지만 드워프들은 악마의 마력을 쭉쭉 뽑아서 보충했다.

갇혀 있던 페르소텔턴이 드워프들을 지시했다.

-그쪽이 아니다, 드워프들! 여기 악마들이 더 쌩쌩하다!

-그렇군. 고맙습니다, 왕자 전하!

-별말씀을! 다음은 저쪽 악마다! 저놈이 아직 힘이 남아 있다!

그 살벌하고 혼란스러운 모습에 미다스 랭커들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교단이라고 하지만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저기 악마 가둬 놓은 거 맞지? 소문으로만 들었는데 직접 보니까 진짜 광기 그 자체다.”

“대체 몇 마리를 가둬 놓은 거야?”

[야수 군단이 와해됩니다!]

그래도 랭커들이 전력을 다해 나서자 도시 안의 야수 군단들은 빠르게 쓰러지기 시작했다.

각종 버프를 받았다고 해도 여기 모인 이들이 워낙 대단했던 것이다.

스미스도 친위대들과 함께 구역 소탕을 끝냈는지, 저쪽에서 달려오는 게 보였다.

“그쪽 사냥은 끝났나?”

“당연히 끝났습니다.”

상쾌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스미스의 모습에 태현은 안심했다.

“그러면 이제 남은 구역 처리하고 밖에 있는 대괴수 놈 상대하러 가면….”

“아니죠. 아니죠.”

“?”

“당연히 이런 기회에 길드 동맹의 도시를 불태워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

예상치 못한 스미스의 말에 태현은 할 말을 잃었다.

아니…!

* * *

“이건 나 때문이 아니지?”

“네 원인이 조금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원래 약간 좀 미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태현과 이세연은 누구의 책임인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눴다.

그 모습을 보고 앞으로의 일을 상의하는 줄 알았던 스미스가 말했다.

“김태현 씨. 잘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기회가 언제 오겠습니까? 밖에는 대괴수가 있고 안에는 아직 남은 몬스터들이 날뛰고 있는 상황 아닙니까?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도시를 불태워버릴 수 있죠.”

“어… 스미스. 남들 앞에서 다 같이 약속해 놓고 뒤통수치면 뒷감당은 어떻게 할 생각이지? 네가 길드 동맹 취급당할 텐데?”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안 씁니다.”

“…….”

태현은 확신할 수 있었다.

‘저 자식 확실히 맛이 가긴 했어.’

지금 초대형 길드들이 다 같이 협력하기로 해놓고 이렇게 뒤통수를 치면 게시판이 불타는 건 물론이고 그 길드는 앞으로 믿음을 절대 받지 못한다.

그런데 그걸 그냥 감안하고 쿨하게 가겠다니.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대단하긴 했다.

“난 거절한다.”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김태현 씨는 저쪽을 맡아주실… 아니!? 왜 거절하신 겁니까??”

스미스는 진심으로 놀랐다는 듯이 물었다.

“아니… 지금 밖의 놈이 왕국 돌면서 일반 플레이어들한테도 민폐 끼치고 있는데 그걸 방해하고 아군을 찌르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아군이 아니라 곧 적이 될 놈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습니까?”

스미스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는 태현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김태현 씨. 제가 감히 한마디 하겠습니다만… 김태현 씨는 예전의 그 김태현 씨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건 김태현 씨 주변 사람들 때문입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이세연은 어이가 없어서 싸늘한 눈빛으로 스미스를 쳐다보았다.

저게 뚫린 입이라고 아주 나오는 대로 지껄이고 있었던 것이다.

“김태현 씨 주변 사람들이 김태현 씨를 약하게 만들고 있는 겁니다.”

“흠.”

“…제 말 들으신 거 맞습니까?”

“어. 들었고… 너무 뜬금없는 소리라서 뭐라고 대답할지 생각 좀 했다. 스미스. 사람은 계속해서 변하게 되어 있는 거다. 처음 만났을 때 케인은 구질구질한 놈이었지만 지금은 제법 괜찮은 놈이 됐지. 이세연은 말 한마디 나누기 힘들 정도로 차갑고 냉정한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꽤 많이 친해졌고.”

“…야.”

이세연은 울컥했다.

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내가 변했을 수도 있겠지. 그건 당연한 거다. 네가 지금 좀 미친놈처럼 변한 것처럼….”

“저 미친놈 아니라니까요?”

“그래. 그래. 너 안 미쳤다.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변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거다.”

“그게 약해지면 문제가 되지 않습니까?”

“난 내가 약해졌다고 생각 안 해.”

“케인 씨 같은 사람 때문에 집안일을 하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데도 말입니까?”

“…….”

기습을 얻어맞은 태현은 순간 머뭇거렸다.

“…그 시간 또한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시간이지.”

“어떤 의미와 가치입니까?”

“시끄럽다. 그만 물어봐 임마.”

슬슬 짜증 난 태현은 스미스의 말을 잘랐다.

이 자식이 아픈 곳을 자꾸 찌르고 있어!

그렇게 떠드는 사이, 길드 동맹의 간부들이 달려왔다.

“다 정리했으면 이동하자! 아직 남은 놈들이 많아! 대괴수 놈이 밖에서 접근하고 있다고!”

“…….”

스미스가 손을 꿈틀거리며 묘한 눈빛으로 길드 동맹의 간부를 쳐다보았다.

태현은 자리의 분위기가 바뀌는 걸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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