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472화
‘길드 동맹 분위기가 좀 달라지긴 했군.’
만약에 예전에 태현이 오스턴 왕국에서 요새 터뜨리고 몬스터 몰고 다니고 대산적시대 열어서 오스턴 왕국 치안 대폭락시켰을 때 길드원이 ‘김태현! 사진 한 번만!’이랬다가는 쑤닝이 직접 저 길드원을 붙잡고 절벽 밖으로 집어 던졌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태현이 길드 동맹이 진행하는 대회에 심사위원으로 나가기도 하고, 스미스 같이 더 미운 놈들이 깝죽대기 시작하자 ‘김태현 정도면 뭐….’로 분위기가 달라진 것이다.
태현은 그 모습을 보고 신기해했다.
“꽤 교훈적이군.”
“뭐가요?”
“아무리 깽판을 쳐도 그보다 더 미운 놈이 나오면 대충 퉁치고 넘어갈 수 있다?”
“…대체 왜 그런 교훈을… 설마 아키서스 교단을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맞는데.”
아키서스 교단도 이 상황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었다.
원래는 다른 교단들이 ‘저 저 깡패 같은 놈들’하며 질색을 했지만, 악신 교단들이 여럿 준동하고 굶주린 혼돈까지 대륙을 위협하자 ‘아키서스 교단 정도면 괜찮지 않나?’하고 평판이 바뀐 것처럼.
“내가 다른 교단들과 화해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었던 거지. 상황을 좀 더 개같이 만들어주면 자연스레 화해가 되는데.”
“…….”
태현을 거의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이다비였지만, 태현이 다른 교단들과 화해하려고 했는지 따진다면 좀….
화해하려고 하긴 했나?
“앗. 저기 <상급 금화 제작소> 있네요. 저거 만드는 거 되게 비싸서 망설이고 있었는데, 부럽네요. 길드 동맹이니까 가능한 거겠죠?”
“그러네. 신기하긴 한데… 왜 말을 돌리는 기분이 들지?”
이러니 저리니 해도 길드 동맹은 압도적인 자금력을 자랑하는 초대형 길드였다.
게임 내에서는 수많은 플레이어들에게서 삥… 아니, 돈을 뜯고, 외부로부터는 여럿 대기업으로부터 투자와 후원을 받는 형태.
물론 태현이 보기에는 ‘게임을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흠. 시설들 좋긴 해.’
[<위대한 전사의 황금 조각상>을 발견했습니다!]
[영구적으로….]
[….]
[….]
[….]
도시 광장에 세워 놓은 각종 예술품들.
누가 돈 많은 놈들 아니랄까 봐 예술가들을 고용해서 비싼 작품 만들어서 배치해 둔 상태였다.
“근데 되게 새것 같다?”
“그야 저희는 새로 만들지 않고 가져왔으니까요….”
골짜기에 있는 <아키서스의 예술관>은 태현이 퀘스트 깨고 돌아다니면서 얻은 각 왕국들의 예술품들을 모아 놓은 곳이었다.
예술 쪽 직업 갖고 있는 플레이어들뿐만 아니라 일반 플레이어들도 사냥하기 전에 한두 번씩 들려서 버프 받고 갈 정도로 효과가 좋은 곳.
물론 길드 동맹은 저렇게 광기 넘치는 방식으로 예술관을 만들지 않고, 그냥 플레이어들을 불러서 새로 만들었다.
정상적인 길드라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어느 세월에 한 땀 한 땀 모아서 그걸 만들겠는가.
“오랜만입니다. 김태현 씨.”
스미스가 반갑게 인사했다. 물론 인사만 반가웠지 겉모습은 흉악 그 자체였다.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낮아서 완전히 알아볼 수 없….]
[….]
태현이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낮다고 뜰 정도로 수준 높은 중갑옷.
뉴욕 라이온즈라는 대형 게임단의 전폭적인 지원과, 화이트 나이트라는 초대형 길드를 이끄는 스미스다운 장비였다.
“어. 반갑다. 근데 가까이 다가오지는 말아줄래?”
“왜 그러십니까? 저는 다시 만나서 매우 반가운데.”
“어. 그래. 나도 반가운데, 내가 사람을 대하는데 좀 서툴러서. 가까이 안 와줬으면 좋겠다.”
스미스는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어린아이여도 지금 태현이 노골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건 눈치챌 수 있는 것이다.
이세연은 고소하다는 듯이 작게 웃었다.
“김태현이 너 오지 말라는데?”
“어째서 이세연 선수하고는 친하게 지내면서 저한테는 그러시는 겁니까?”
스미스는 진심으로 분한 눈빛이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명문 게임단에 입단하고, 초대형 길드를 이끄는 입장이었지만, 스미스가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스미스는 본인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최상위권 랭커들과의 우정을 원했다.
태현처럼 다른 랭커들과 아예 연락 안 하고 지내는 사람은 드물었고, 스미스도 랭커들과 어느 정도 친분은 있었지만….
이야기하면서 정말로 판온에 대해 잘 통한다고 느끼는 상대는 없었다.
이런 이야기가 잘 통하려면 성격과 실력, 둘 모두를 겸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세연도 이야기는 통하는 편이긴 했지만 스미스는 이세연을 좋아하지 않았다.
몇 번이고 퀘스트에서 물을 먹은 만큼 당연한 일이었다.
이세연은 필요하면 얼마든지 교묘한 계략을 부릴 줄 아는 플레이어였고, 스미스는 거기에 감쪽같이 당한 적이 많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세연은 김태현하고 그렇게 싸웠는데 또 친하게 지내는 걸 보니 스미스 입장에서는 질투가 날 수밖에 없었다.
“제가 한국인이 아니라서입니까?”
“아니,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한국인이라고 내가 무조건 OK 해주면 지금 이 파티에 도동수도 있게?”
“그러면 왜 저한테는?”
“그야 네가 미친놈 같으니까….”
“…….”
태현의 돌직구에 스미스는 진심으로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다.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말이었던 것이다.
“제가 어떤 점이 미친놈 같다는 겁니까?”
“그만 좀 질척거릴래?”
슬슬 귀찮아진 이세연이 냉정하게 말했지만 스미스는 무시했다.
“그쪽은 끼어들지 마십시오. 제가 어떤 점이 미친놈 같다는 건지 자세하게 정리해서 설명해 주십시오.”
“지금 이러고 있는 점이 충분히 그런 것 같은데….”
“…그거 말고는?”
“네가 화이트 나이트 이끌고 미친 듯이 전쟁 거는 것도 좀 무섭긴 했지.”
“하지만 그건 김태현 씨의 플레이를 보고 배운 겁니다만?”
“…….”
이번에는 태현이 스미스의 돌직구에 얻어맞은 표정을 지었다.
이세연도 솔직히 이건 반박하기 힘들었다.
스미스가 원래 레벨이나 스킬, 직업으로 유명한 사람이었지, 플레이 자체는 순박하기 그지없었다.
정석 중의 정석이라서 수작을 부릴지도 몰랐는데, 화이트 나이트가 만들어지고 나서는 뭘 잘못 먹었는지 배신, 기습, 이간질 등등 온갖 일들을 거침없이 해내고 있었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누군가를 보고 배웠을 가능성이 높았다.
“…내가 저랬나?”
태현의 말에 일행은 시선을 피했다. 유지수가 괜찮다는 듯이 태현을 보며 말했다.
“뭘 그런 걸 신경 써요?”
“그렇지? 난 안 저랬지?”
“아뇨. 저렇긴 했는데 훨씬 더 세련되고 멋있었죠. 스미스는 비교도 안 되니까 저런 말에 흔들리지 마요.”
“…아니.”
태현은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 * *
미다스 길드의 마법사 랭커들.
길드 동맹의 간부들.
스미스와 화이트 나이트의 친위대들.
그리고 태현의 일행까지.
라인업만 봐도 판온에서 유명한 이들이란 이들은 전부 모아 놓은 것 같은 라인업이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플레이어들이 괜히 설렐 정도로!
‘내가 지금 역사적인 현장에 있는 게 아닐까?’
‘나중에 손자가 생기면 손자야, 나는 이런 자리에 있었단다 하고 말해줘야지.’
“그 조각상들을 만든 건 <오논>이란 예술가 길드입니다. 길드 동맹이 돈과 힘으로 강하게 압박해서 작품들을 계속 짜내고 있지요. 그걸 이용해서 말을 걸면 <오논> 길드한테 의뢰를 넣을 수 있을 겁니다. <오논> 길드는 요즘 뜨는 예술가 길드인 만큼 의뢰 넣어서 나쁠 것 없습니다.”
“오….”
“…….”
미다스 길드의 랭커와 태현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길드 동맹의 간부들은 정색했다.
이 새끼들이 지금 무슨 대화를 나누는 거야?
“다들 조용히 해라. 떠들려고 온 것도 아니잖아.”
“꼬우면 그쪽도 떠들 것이지 왜 대화를 방해하고 그러지?”
“둘이 그렇게 싸우실 거면 자리 비워드릴 테니까 서로 깃발 꽂고 1:1로 붙으시는 건?”
‘시작부터 살벌하군.’
서로 사이가 좋은 세력이 하나도 없는 만큼 말에는 다들 날이 서 있었다.
레이드에 직접 참가하지 못했던 태현은 손을 들고 물었다.
“그래서… 그 대괴수 오르기돈이 그렇게 재생력이 대단하다고?”
“그래. 김태현. 게다가 갖고 있는 스킬들이 사기적이라서, 스킬들이 진짜 자주 씹혀. 네 직업 스킬들도 막힐 각오하고 써야 할 거다.”
‘귀찮은 상대긴 하군.’
여기 모인 랭커들이 저렇게 말할 정도면, 오르기돈이 갖고 있는 스킬이 사기적인 건 확실했다.
<아키서스의 저주> 같은 권능이 막히기라도 하면….
‘많이 아쉬우니까.’
“결국 더 많이, 더 강한 공격으로 계속 퍼부을 수밖에 없어. 확률적으로 때리다 보면 대미지가 쌓이고 뻗을 테니까.”
“그래서 날 부른 거군.”
“그래. 네 능력이라면 충분히 의미 있는 대미지를 넣을 수 있을 테니까.”
각자 나름 랭커들을 모아 놓고 있는 상황.
그런데도 대미지가 부족하다는 건 오르기돈이 얼마나 강한지를 드러냈다.
거기에 태현 일행의 화력은 무시무시했으니….
“그런데 김태현.”
미다스 소속, 암흑 마법 전문 마법사 오한구가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이 말을 걸었다.
“…너 왜 지팡이를 들고 마법사처럼 입고 있는 거냐?”
“!”
길드 동맹 간부들은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태현이 검과 폭탄 대신 지팡이와 마법서를 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김태현도 생각이 있는 거겠지.”
괜히 김태현 심기 거슬렀다가 상황 꼬이게 되는 걸 두려워한 길드 동맹 간부가 편을 들었다.
“김태현이 성격은 더럽고 적으로 만나면 뭐 이런 새끼가 있나 싶을 정도로 지긋지긋한 자식이긴 하지만 근거 없는 행동을 하는 놈은 아니야.”
“이 자식이 시비 거나?”
태현은 어이없어했다. 그러자 길드 동맹 간부가 진심으로 당황했다.
“아, 아니… 나름대로 네 편을 들어준 건데.”
“그게 내 편을 들어준 거면 네놈의 머리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
길드 동맹 간부들 입장에서는 정말로 진심으로 편을 들어준 게 저 정도였던 것이다.
이제까지 쌓인 원한이 아예 사라지지는 않는 법!
그래도 간부들의 말이 설득력이 있었는지, 자리에 있던 다른 랭커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김태현이 아무 생각 없이 하진 않았겠지.”
“아마 대괴수 오르기돈에 맞춘 커스텀일 듯?”
“우리가 공략 시도한 지 그리 지나지도 않았는데 저렇게 과감한 시도를 할 줄은… 과연 대단하군.”
“…….”
태현은 순간 말할 타이밍을 놓쳤다. 이세연을 쳐다보자, 이세연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냥 빨리 마법 스킬 레벨 하나 올려서 그 퀘스트 끝내고 원래 스킬 되찾자.’
‘그래.’
눈빛으로 대화를 끝낸 태현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내가 가장 궁금한 게 있다.”
“뭐지?”
“후퇴할 때 어떻게 후퇴했지?”
“…….”
몇몇 랭커들은 김태현답지 않은 질문에 실망한 표정을 지었지만, 스미스나 이세연 같은 랭커들은 놀라지 않았다.
사실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던 것이다.
무조건 한 번에 잡을 생각을 하는 것만큼 어리석고 건방진 짓도 없었다.
랭커라면 당연히 대비해야 하는 법.
“후퇴할 때를 대비해서 파티를 따로 편성해 놨었다. 이 파티들이 시선을 끌었지.”
“어떤 스킬들로? 그 정도 되는 보스 몬스터는 따돌리는 것도 쉽지 않았을 텐데 용케 따돌렸군. 보통 도시까지는 쫓아올 텐데.”
태현의 말에 랭커들은 쑥스러워했다.
김태현 정도 되는 플레이어한테 칭찬을 받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건 우리가 준비해 놓은 스킬들 덕분이지. 아무리 강한 보스 몬스터라고 해도 우리가….”
꽈르르르르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