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471화 (1,470/1,826)

§ 나는 될놈이다 1471화

“이다비.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아키서스 교단 부활시키고 나서 기대를 아예 안 하는 법을 배웠어.”

“…….”

그건 또 그것대로 슬픈 말이었다.

얼마나 실망을 많이 했으면…!

“그런데 뭐 어떻길래? 탑이 기대 이하일 수가 있나?”

놀랍게도 기대 이하일 수가 있었다.

“탑이… 왜 저러지?”

탑 자체는 의외로 똑바로, 균형 있게 잘 지어진 편이었다.

애초에 탑 건설에 뛰어든 골짜기 플레이어나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이제 다 나름대로 건축에 잔뼈가 굵은 이들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탑 주변을 흐르는 공기였다.

3층 이후부터는 탑의 겉모습을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짙은 안개가 끼어 있었던 것이다.

그 안개 사이로 얼핏 모습이 보일 때가 있었지만 별로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8층 주변에는 무슨 용암지대처럼 시커먼 화산재와 함께 뜨거운 공기가 흐르고 있었고….

13층 주변에는 비바람과 함께 번개가 연속적으로 내리치는 상태였다.

“저러는데 건설은 대체 어떻게 하고 있는 거지?”

“건설은 탑 안에 들어가서 위로 올라간 다음 하고 있죠. 그런데 이거 건설 다 해도 괜찮을지 걱정인데요.”

“음. 나도 걱정된다.”

대체 뭐가 문제길래 탑 주변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그냥 평범한 탑 하나 완성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태현이 어디서부터 직업을 잘못 고른 걸까 후회하고 있는 동안, 카르바노그가 옆에서 말했다.

[아마 시련의 탑일 것 같다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시련의 탑?’

[예전에 화신이 파이토스 교단의 훈련용 탑을 빌려서 뺏었던 걸 생각해 보라고 말합니다.]

‘아… 이게 그런 건가?’

시련의 탑, 훈련용 탑, 몬스터 탑 등등 어떻게 부르든 간에 결국 이건 일종의 던전이었다.

플레이어들이 만들 수 있는 인공 던전!

영지에 쓸 만한 던전 하나 있으면 그 영지 가격이 몇십 배로 뛰는 만큼, 없다면 새로 쓸 만한 던전을 짓는 것도 좋은 수단이었다.

문제는 그게 현실적으로 매우 매우 힘들어서 그렇지.

일단 인공 던전 짓는 것 자체가 초대형 길드들도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힘든 일이었던 것이다.

제작법 구해야 하지, 제작법 운 좋게 구해도 재료 구해야 하지, 그거 또 건설해야 하지….

그럴 바에는 그냥 이미 던전 있는 영지 얻는 게 속 편했다.

하지만 이런 것들에도 예외가 있었다.

교단 같은 게 그런 축에 속했다.

교단 퀘스트로 특별히 인공 던전 같은 걸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저게 던전이라고 생각하니까 갑자기 설레기 시작하는데.’

“태현 님. 던전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이다비는 예리하게 태현의 속마음을 읽어냈다.

“아니. 어떻게 알았어?”

“보면 알 수 있지 않아요? 어쨌든 던전이면 좋긴 하겠지만 그때 세계수처럼 온갖 적들이 찾아올까 봐 걱정되는데요.”

예전에 세계수가 다시 자리를 잡고 쭉 피어나자, 차원의 틈을 뚫고 악마들이 신나게 달려온 적이 있었다.

저렇게 수상쩍은 탑이라면 적이 어디서 샘솟듯이 나와도 이상할 거 없었다.

“대비는 해놔야겠다. 주변에 배치 좀 해놓고… 음. 가장 좋은 건 역시 플레이어들을 계속 보내는 건데.”

여러 방법이 있었지만 가장 좋은 건 플레이어들이 계속해서 이 던전을 공략하려고 하는 거였다.

실제로 세계수 주변도 악마 사냥하려고 찾아오는 플레이어들이 많아지면서 길드 동맹이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지 않았던가.

“이 던전이 좋다는 걸 광고해야 하나?”

“<♚♚아키서스☆탑♚♚도전시$$전원 공적치 포인트☜☜성수100%증정※♜> 같은 건 어떨까요?”

“고전적이고 클래식한 방법이긴 한데, 지금 상황에는 안 맞을 것 같아. 레벨이 높아야 하잖아.”

아키서스의 탑은 딱 봐도 난이도가 높아 보였다.

여기 도전할 정도면 저런 자질구레한 보상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던전에 나오는 몬스터와 보상에만 관심이 있는 랭커들!

“흠. 헛소문을 퍼뜨려볼까.”

“어떤 식으로요?”

“이렇게.”

태현은 초안을 작성했다.

-아탈리 왕국에 새 던전이 생겼다더라.

-김태현이 던전 통제하고 다른 사람들 아무도 입장 못 하게 하고 있다더라. 얼마나 좋은 던전인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도 못 들어간다더라.

“이런 식으로?”

“오오… 벌써부터 궁금해요!”

“그렇지? 원래 남이 못 들어가게 하면 이상하게 궁금해지는 법이지.”

태현은 던전 통제 같은 걸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태현에게 ‘자리요’ 했다가 ‘네 묫자리를 말하는 것인가??’란 대답을 들은 일화는 매우 유명할 정도로.

그런 태현이 남들에게 공개 안 하고 혼자 먹을 정도의 던전이라면 대체 어떤 던전일까??

“완성되는 순간 이런 식으로 한 번 시선을 끌어보자고. 참. 곧 길드 동맹 놈들도 만날 텐데 걔네들한테도 말해야겠다.”

“정말 좋은 생각이에요!”

[아키서스의 탑이 완성되었습니다!]

[수많은 시련을 겪고 새로이 부활한 아키서스 교단의 저력을 상징하는 이 탑은, 교단 전체에 강력한 축복을 부여합니다.]

[<아키서스의 탑> 버프가 교단 소속 플레이어들에게 영구적으로 적용됩니다!]

[<탑의 권능>이 한 달 동안…]

[……]

[……]

[……]

[이제부터 아키서스의 탑에 입장할 수 있습니다!]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아키서스의 황금 주교>로 전직합니다!]

눈부신 황금빛이 이다비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파아아아앗!

금화를 겹쳐서 쌓아 놓은 것 같은 오오라.

이다비는 새로 전직한 직업의 스킬들을 확인했다.

사제다운 강력한 버프 스킬들. 그리고 그에 따라 늘어난 골드 소모량들.

‘…….’

“표정 보니까 스킬 쓸 때 골드 소모량이 늘었구나?”

“네….”

“괜찮아. 길드 동맹 놈들한테 뜯어내면 되지.”

* * *

[<쟈켄겔라드의 마법서>를 얻었습니다!]

쟈켄겔라드의 마법서:

내구력 15/15

스킬 ‘쟈켄겔라드의 비술’ 사용 가능, 스킬 ‘다크 엘프 비전 마법’ 사용 가능.

최고급 마법 스킬 필요.

다크 엘프 대마법사 쟈켄겔라드가 사용하던 마법서다. 쟈켄겔라드 본인은 위대한 경지에 도달해 더 이상 쓸 필요가 없었지만, 그보다 경지가 낮은 마법사들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리라.

[<쟈켄겔라드의 지팡이>를 얻었습니다!]

쟈켄겔라드의 지팡이:

내구력 150/150, 마법 공격력 700.

스킬 ‘정령의 고속 마법’ 상시 발동, 스킬 ‘포박된 정령의 가호’ 상시 발동, 스킬 ‘정령 폭주’ 사용 가능.

다크 엘프 종족일 경우 추가 보너스.

최고급 마법 스킬 필요.

다크 엘프 대마법사 쟈켄겔라드가 정령을 붙잡아서 가둔 지팡이다. 쟈켄겔라드가 오랫동안 부린 정령은 상당히 난폭해져 있을 것이다.

(사용할 때마다 정령이 폭주할 가능성 높아짐)

‘평범하게 좋은데?’

태현은 다시 한번 확인했지만, 쟈켄겔라드의 아이템들은 너무나도 평범하게 좋았다.

최근 레이드하고 나서 이렇게 정상적인 아이템을 얻은 적이 별로 없었기에 태현은 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원래 힘든 레이드를 끝내면 좋은 보상을 받는 게 당연한 일.

태현의 감각이 이상해진 거였다.

‘계속 이렇게만 나오면 좋겠는데….’

태현이 착용할 수도 있고, 스킬들도 좋고….

‘한 가지 주의점이 있긴 해.’

다크 엘프들은 엘프답게 정령들과 친했지만 다루는 방식이 좀 다른 편이었다.

엘프들은 정령들과 친해지려고 했지만 다크 엘프들은 정령을 제압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 만큼 부작용이 당연히 있었다.

빈틈이 생기거나 정령이 단단히 열받으면 바로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까지 봐왔던 단점들을 봤을 때 이 정도면 별로 단점처럼 느껴지지도 않았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힘든 일 없이 순탄하게 플레이해서 이런 단점을 꺼릴지도 몰랐지만, 아키서스를 많이 겪고 난 태현에게는 그냥 달달한 음료수 수준이었다.

[<굶주린 혼돈의 정수>를…]

[<굶주린 혼돈의 정수>를…]

“쓰려니 찜찜하고 안 쓰려니 아깝고….”

“씁시다! 태현 님. 위대한 발전은 언제나 희생을 담보로 합니다!”

“니들이 쓰는 게 아니라 내가 가서 써야 하니까 그런 거지….”

태현은 골짜기의 미치광이들, 아니 기계공학 대장장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굶주린 혼돈에게 오염된 아이템에서 추출할 수 있는 힘의 근원들.

<굶주린 혼돈의 정수>나 <굶주린 혼돈의 파편> 같은 건 사용하면 막대한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태현이 정신 나가지 않고서야 그런 위험한 짓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이템으로서 사용할 수는 있었다.

실제로 태현은 저번에 <굶주린 혼돈의 미로>를 공략할 때 저 정수를 사용해 강력한 폭탄을 만들지 않았던가.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은 그 위력에 홀딱 반해서 자기들도 굶주린 혼돈의 정수를 쓰고 싶어했다.

[카르바노그가 허락해 주지 말라고 엄격히 말합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다른 폭탄이야 실수해서 터져도 자기들만 로그아웃 당한다지만, 굶주린 혼돈의 힘은 잘못 다루면 골짜기에 굶주린 혼돈이 강림하는 꼴을 봐야 했다.

절대 허락할 수 없다!

“너희의 실력은 아직 부족해. 이걸 다루기 위해서는 더 수련이 필요하다.”

“과연… 알겠습니다. 반드시 인정을 받고야 말겠습니다.”

악마 대장장이, 사루온은 질린 표정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어쩌자고 이들을 재촉하냐는 눈빛이었다.

‘뭐든 간에 아직 준비가 덜 됐다고 하면 그만이지.’

“역시 이번에 폭탄을 사용하는 건 좀 자제해야겠어.”

“어째서!!”

“그야… 모인 플레이어들이 많은데 잘못 썼다가는 역효과가 나니까.”

굶주린 혼돈의 미로는 소수의 공격대로 던전을 공략하는 거였고, 다른 차원의 공간이었기에 뭔 난리를 펴도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대괴수 오르기돈 레이드는 산맥 근처에서 수많은 플레이어들과 같이 레이드를 펼치는 일.

폭탄 잘못 터뜨리면 플레이어들이 죽을 가능성이 높았다.

대괴수 오르기돈도 워낙 활발하게 돌아다니는 놈이니 맞추기 어려울 것이고….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희생을 두려워하시면 안 됩니다!”

“야. 거기 있는 놈들 희생시키면 난 진짜 판온 끝날 때까지 암살자들하고 싸워야 한다고.”

길드 동맹, 미다스, 화이트 나이트 이 3개 길드 정예들을 로그아웃시켜버리면 아무리 태현이라도 게임 끝날 때까지 싸워야 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기계공학 장비를 제작할 때 <굶주린 혼돈의 정수>을 넣을 생각이다.”

“우우….”

“폭탄이 아니라 기계공학 장비라니…! 그런 섭섭한…!”

“이제 폭탄은 버리시는 건가요?”

“기계공학 장비가 훨씬 더 난이도 높은 스킬이거든?”

태현은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의 반응에 어이가 없었다.

기계공학 장비 제작 스킬을 보면 ‘와! 저런 게 있다니!’ 하고 감동을 먹어야지, ‘폭탄을 안 쓰다니!’ 하고 슬퍼하는 게 말이 되는 일인가?

* * *

오스턴 왕국에 발을 디딜 때면 언제나 긴장이 되곤 했다.

[카르바노그가 이제까지 한 일들이 있으니까 그런 거 아니냐고 묻습니다.]

‘어허. 조용히 해.’

아키서스 포병대를 시작으로 부하들을 이끌고 위풍당당하게 움직이는 태현 일행.

그 모습에 길드 동맹 길드원들은 숨을 죽였다.

-크윽… 저놈들이 이렇게 까부는 모습을 봐야 한다니. 마음 같아서는 바로 공격하는 건데.

-진짜로?? 네가??

-무슨 뜻이냐??

-아니… 김태현한테 1:1로 덤비겠다는 게 안 믿겨서. 예전에 척살대 모집할 때는….

-그때는 1:1이 아니니까 안 나갔지!

-그러면 지금은….

-지금은 퀘스트 깨러 온 거고!

눈치를 보던 길드 동맹 길드원들 중 한 명이 태현 앞으로 뛰쳐나왔다.

그 모습에 다른 길드원들은 ‘헉’ 하고 숨을 멈췄다.

설마 진짜로 덤비는 놈이 나온 건가?

‘저런 미친 놈.’

‘명성 얻으려고 저러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무슨 배짱으로….’

“김태현!”

“뭐냐?”

“괜찮다면 사진 한 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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