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470화 (1,469/1,826)

§ 나는 될놈이다 1470화

“우리가 그런 사이였나?”

태현의 말에 교단 플레이어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러게. 게다가 지금 저놈들 길드 동맹하고 같은 편 아닌가?”

“함정이네. 함정이야.”

“에이, 그래도 스미스인데….”

“스미스도 요즘은 못 믿어. 너 못 봤냐? 예전의 스미스가 아니야. 게시판에 보니까 욕이 장난 아니던데.”

“그거 다 중국인들이 올린 거 아니었어?”

“물론 중국인들이 많이 올리긴 했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도 많더라고. 아주 사람이 독해졌다니까.”

“저런… 태현 님 보고 좀 배워야지 사람이 그렇게 독하게 살면 안 되는데.”

“?”

유지수는 뒤에서 오가는 대화를 듣고 순간 당황했다.

으응?

“물론 김태현 선수. 김태현 선수와 저희 길드, 혹은 길드 동맹 같은 곳이 친하지 않다는 건 인정하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라이벌 사이였죠.”

“라이벌…?”

“라이벌인가?”

“일방적으로 맞고 다니지 않았나? 주로 길드 동맹 쪽이?”

“톰과 X리 수준으로 맞고 다녔던 거 같은데….”

기사 플레이어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길드 동맹과 같이 합을 맞추고 있는 와중에 길드 동맹을 욕할 수는 없었다.

그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헛기침을 했다.

“하지만 이런 전설 퀘스트 앞에서 그런 과거에 집착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김태현 선수 같은 분이 참가해 주신다면….”

“레이드가 잘 안 풀리는 모양이군.”

“…….”

태현의 말은 정곡을 찔렀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 * *

대괴수 오르기돈 레이드.

이러니저러니 해도 대륙 퀘스트, 전설 난이도의 퀘스트인 만큼 사람들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거기에 참가하는 세 길드가 판온을 장식하는 초대형 길드들 아닌가!

길드 동맹을 취재하기 위해 몰려온 중국 기자들, 스미스와 화이트 나이트를 취재하기 위해 몰려온 미국 기자들, 그리고 미다스 길드를 취재하기 위해 몰려온 유럽 기자들까지.

-쑤닝 길드 마스터! 이번 레이드를 어떻게 준비하게 됐는지 소감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오스턴 왕국에서 플레이하는 선량한 플레이어들이 고통 받지 않기 위해서 우리 같은 랭커들이 책임감 있게….

-쑤닝 길드 마스터! 최근 김태현 선수가 월드컵에서 약진하고 있는데 소감 한 마디 부탁….

-그걸 왜 나한테 묻지?

-쑤닝 길드 마스터! 김태현 선수가 검술이 아닌 마법으로 활약을 했는데 어떻게 생각…?

-…그걸 왜 자꾸 나한테 묻냐고! 너 뭐하는 자식이야!

도중에 어그로를 끄는 기자들도 여럿 있었지만, 어쨌든 준비는 성공적이었다.

어마어마한 관심 속에 산맥 앞에 모인 각 길드의 정예들.

“스미스와 스미스의 미ㅊ… 친위대가 앞에. 길드 동맹의 랭커들이 가운데에, 미다스 길드의 랭커들이 뒤에.”

서로 손발을 맞춰서 끈끈하게 움직이지는 못하더라도 대규모 레이드를 벌이는 이상 최소한의 소통은 필요했다.

각 길드끼리 포지션을 정해야 하는 것이다.

당연히 가장 방어력이 높은 스미스의 친위대가 탱킹.

균형 잡힌 길드 동맹의 랭커들이 가까운 거리에서 딜링.

마법사들이 많은 미다스의 랭커들이 원거리에서 딜링.

이런 식으로 굴러가야겠지만, 당연히 머리 굵은 랭커들끼리 모인 만큼 진행은 만만치 않았다.

“이거 우리가 너무 손해 보는 것 아닌가? 미다스 놈들을 어떻게 믿고? 미다스 놈들이 뒤통수라도 갈기면?”

“우리를 뭘로 보고 그런 소리를 하는 겁니까, 쑤닝? 하긴 저러니까 배신을 당했겠지….”

“이 배신자 자식들이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한때는 내 밑에 있었던 놈들이!”

“얼마나 못났으면 그 밑에 있던 사람들이 이렇게 나왔냐 이 말입니다.”

“하하. 여러분. 다 같이 못난 주제에 싸울 필요 없습니다.”

“…??”

“야 이 새….”

스미스가 웃으면서 바로 말을 이어가자 둘은 화낼 기회도 잃어버렸다.

“그래서 미다스 길드 뒤에는 저희 길드의 정예들을 따로 배치해 놓을 생각입니다. 배신하면 공격하도록.”

“…….”

“길드 동맹이 배신할 수도 있잖아?”

“그럴 경우에는 레이드고 뭐고 뒤돌아서 길드 동맹하고 같이 죽을 생각입니다.”

‘…무서운 자식 같으니!’

스미스는 날이 갈수록 무서워지고 있었다.

최전선에서 상대하는 쑤닝은 최근 스미스를 상대하기 벅찰 때가 많아졌다.

랭커 네다섯은 기본으로 붙어야 하고, 그래도 밀릴 때가 있었으니….

“준비가 끝났으면 불러내겠습니다.”

[대괴수 오르기돈이 세차게 포효합니다!]

땅을 찢어버릴 것 같은 굉음과 함께, 대괴수 오르기돈이 나타났다.

기존의 야수들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의 크기.

더 놀라운 건….

“놈이 모습을 바꾼다!”

[대괴수 오르기돈이 형상을 변화시킵니다!]

마치 진흙처럼, 오르기돈은 순식간에 육체를 변화시켰다.

거대한 크라켄의 모습으로 변한 오르기돈은 땅 속으로 잠수하기 시작했다.

“놈이 못 도망치게 막아!”

눈부신 섬광과 함께 수십 개의 대마법들이 작렬하기 시작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판온에서 가장 위력이 좋은 건 마법이었다.

태현이 한 땀 한 땀 공들여서 재료 넣고 폭탄 만들 때 마법사는 지팡이 한 번 휘두르면 비슷한 위력을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법의 장점은 그 범용성에 있었다.

탱킹도 되고 딜링도 되고 버프도 되고 디버프도 되고….

[<백 개의 축복 받은 은 사슬>이 시전됩니다!]

[<에랑스 왕국의 비전 발목 저주>가 시전됩니다!]

[……]

[……]

최상위권 랭커들이 레벨 300이라는 마의 벽을 돌파한 이후, 레벨 300을 돌파한 상위권 랭커들도 제법 많이 생긴 상태였다.

미다스 길드도 마찬가지.

각종 몰이사냥과 퀘스트 몰아주기로 빠르게 힘을 키운 마법사들의 마법 폭격은 어마어마했다.

[대괴수 오르기돈의 움직임이…]

[대괴수 오르기돈의 방어력이…]

“놈의 어그로를 끈다. 뒤로 가지 못하게 막아!”

동시에 스미스와 화이트 나이트들은 방어력을 극한까지 올리며 놈을 잡아놓기 시작했다.

땅이 뒤집어지고 바위가 날아들고 그사이에 오르기돈의 촉수가 사납게 휘둘러졌지만….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방패의 내구도가 크게 감소합니다!]

[스턴 상태…]

“교체해!”

“데미지 옮겨!”

대괴수 오르기돈의 공격은 살벌했지만 스미스와 친위대도 물러서지 않고 스킬들로 버텼다.

그들이 모은 각종 사기적인 스킬들은 오르기돈의 공격도 버티게 만들어줬다.

‘이 자식들….’

뒤에서 보고 있던 쑤닝은 공격을 하고 싶어질 정도였다.

저 자식들하고 또 싸워야 한다고?

“이봐! 뭐하나!”

“공격하고 있다!”

오르기돈의 움직임이 멈추자 자리에 모인 랭커들 전원이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대마법이 내리꽂히고, 비전 검술 스킬들이 연속으로 작렬하고….

“HP 확인! 도적, HP 확인해!”

-최상급 상태 분석!

[현재 대괴수 오르기돈의 HP는 100%입니다.]

“…….”

“…….”

“왜 말이 없지?”

“어….”

* * *

그렇게 1차 레이드는 실패로 끝났다.

워낙 공격대가 수준이 높아서 후퇴할 때 죽은 랭커들은 없었지만, 오르기돈에게 데미지 자체를 주지 못했다는 건 충격적이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방어력+회복력.

고민하던 이들은 좀 더 강한 화력을 갖고 오자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나한테 왔다고??”

“예.”

“흠.”

태현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태현이 판온 랭커들 중에서 폭딜로 이름 높은 랭커긴 했다.

HP, MP와 레벨이 낮은 대신(아무도 몰랐지만), 그에 걸맞은 아키서스의 권능 스킬과 행운 스탯으로 폭딜을 손에 넣은 것이다.

그것도 그냥 공격이 아닌 아키서스의 권능들로 인해 현란하고 다양한 공격들이 가능했다.

‘이상하게 도와주기 싫군.’

“참가하면 무조건 좋은 거 아니에요?”

유지수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전설 퀘스트는 깰 수 있으면 무조건 참가하는 게 좋지. 저렇게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기회라면 더더욱.”

“그런데 왜…? 아. 안 될 것 같아서?”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얄미운 놈들만 모여 있으니까 도와주기가 싫어서.”

“…….”

유지수는 상상 외의 이유에 경악했다.

아니 뭐 그딴 이유가 있어요!

“그냥 하죠??”

“지수야. 이거 의외로 중요한 문제거든? 쟤네가 강해지면 바로 누구를 노리겠냐? 날 노린다고.”

“아….”

유지수는 그 말에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는 걸 깨달았다.

생각해 보니 지금 저 오스턴 왕국 길드 3개는 다 태현의 잠재적 적이라고 봐야 했던 것이다.

“그러면 죽여버리죠?”

“…지수야… 세상에는 ‘죽인다’랑 ‘함께한다’ 말고 그 사이에 다른 선택지도 있는데….”

[잘츠 왕국의 건국왕과 만난 적이 있습니다.]

[퀘스트가 추가됩니다!]

<건국왕의 부탁-잘츠 왕국 퀘스트>

당신은 악마의 신비한 힘으로 인해 과거로 돌아가 잘츠 왕국을 세운 건국왕과 우정을 쌓을 기회를 가졌다.

잘츠 왕국을 세운 왕은 혼란스러운 대륙의 위기에 맞서 스스로를 희생했으나, 결국 대괴수 오르기돈은 그 봉인을 뚫고 밖으로 탈출했다.

이제 그 왕은 우정의 이름으로 당신에게 부탁하려고 한다!

보상: ?, ???, ????

“…???”

태현은 당황했다.

지금 이게 왜 나오지?

“지수야. 혹시 퀘스트 깨면서 이상한 NPC 없었니? 자기가 왕인 줄 아는 놈이라거나….”

“아. 탑에서 막 조언을 던지는 형체 없는 유령 같은 게 있긴 했는데요. 왜요?”

“걔가 잘츠 왕국의 옛 왕인 모양인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유지수는 빵 터졌는지 웃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멈칫했다.

“…진짜요?”

“응.”

* * *

“오르기돈 잡을 거면… 준비가 필요하지 않나?”

“맞긴 해. 그냥 맨몸으로 부딪히기는 뭐하지.”

“폭탄인가요?”

“아니, 이다비. 폭탄만 있는 건 아니고….”

골짜기의 회의실.

이세연은 지금 이 자리에 없고 귓속말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녀의 땅에도 지금 야수들로 인해 난리가 나고 있었던 것이다.

“오르기돈 처치할 수 있으면 부탁할게. 야수들 때문에 나도 골치 아프거든.”

“그렇구나. 그러면 너도 와서 같이 참가해.”

“…….”

이세연은 자기가 실언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으읏….”

“아이템부터 재정비하고 하나씩 확인해 봐야겠어. 이다비?”

“네.”

퀘스트 후 들어오는 아이템과 보상을 정리해 주는 건 이다비의 몫이었다.

“일단 가장 최근에 쓰러뜨린 다크 엘프 대마법사의 장비가 있어요. 굶주린 혼돈에게 오염되어서 이걸 해독하고 있지만 거의 끝나가고 있구요. 마찬가지로 굶주린 혼돈의 요새를 공략하고 얻었던 아이템들도 해독이 끝나가는 상태에요.”

“그나마 다행이군.”

굶주린 혼돈이 사악한 적이긴 해도, 놈의 힘은 솔직히 쏠쏠하긴 했다.

당장 굶주린 혼돈이 남긴 힘의 조각들을 사용만 하면 레이드가 몇 배로 쉬워지는 것이다.

“다른 보상들도 따로 정리해놨고… 추가로 동원 가능한 건 새로 생긴 <아키서스의 전투악마 훈련소>에서 나온 악마들이 있네요.”

“포병대는 무조건 쓸 테니까 기쁜 소식이네.”

“네. 그거 말고는 이제 왕국에서 진행하고 있는 거대 건설 퀘스트 정도가 있어요. 완성되면 버프 효과가 강하니까요.”

“대방벽은 받을 수 있을까?”

“힘들 것 같아요. 이제 막 시작한 퀘스트라서. 그렇지만 아키서스의 탑은 거의 완성 직전이에요.”

“!”

이다비의 직업 퀘스트를 위해 세우기 시작한 탑.

그 탑이 드디어 완성 직전이라는 말에 태현은 기뻐했다.

“보러 가자!”

“…태현 님. 가시기 전에 일단 기대를 좀 낮추고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