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469화 (1,468/1,826)

§ 나는 될놈이다 1469화

“없나? 아쉽게 됐군.”

태현은 입맛을 다시며 2왕자를 쳐다보았다.

왕가 인물 하나 보호할 때마다 추가되는 버프들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당장 메카 바실리스크, 아니, 낭티오네를 데리고 있는 것만으로 들어오는 버프도 상당했던 것이다.

유지수가 의아하다는 듯이 뤼지유카와 태현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어린애를 정말 돌보시려고요?”

유지수가 생각하기에 태현은 어린애를 돌보기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었다.

어린애와 같이 던전의 가장 위험한 곳으로 들어가 구를 수는 없지 않겠는가.

“확실히 좋은 지적이긴 해.”

“그건 받기 전에 생각해야 하는 거 같은데요?”

“흠. 혹시 변신 기능은 없나? 저주 안 받았니?”

-안 받았어요.

“이런. 아쉬워라.”

-네?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다.”

태현은 아쉬워했다.

낭티오네처럼 뤼지유카도 뭔가 강력한 걸로 변신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드래곤?

악마 공작?

천사?

[카르바노그가 저주를 무슨 변신 마법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황당해합니다.]

“어쨌든 알아서 잘 해볼 테니, 2왕자도 열심히 잘 해보시든가 마시든가… 참. 잡혀도 내 이름은 부르지 말고. 내 이름 불러봤자 당신만 미친놈 되는 거 알지? 처신 잘하라고.”

-…알고 있소.

2왕자는 매우 떨떠름하고 기분 나쁜 표정으로 떠났다.

분명히 도움을 받으러 왔는데 왜 이렇게 재수가 없을까?

* * *

유지수가 별로 어려울 것도 없다는 듯이 말했다.

“안전한 곳에 두면 되죠?”

“흠.”

그 말도 틀리진 않았다.

지금 태현의 영지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아키서스 대신전 심층부나 하늘성 심층부 정도.

적들이 여기까지 들어오려면 골짜기의 삼중방벽을 깨고 득시글거리는 교단 NPC들까지 처치해야 할 테니, 어지간해서는 들어올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암살자들은 조용히 들어온다면 충분히 들어올 수 있단 말이지.’

악마들이 대거 침공하는 건 막아낼 수 있어도, 암살자가 몰래 골짜기에 들어오는 건 예전부터 종종 있던 일이었다.

주로 태현의 정체가 밝혀졌을 때 그런 암살자들이 많이 찾아왔었다.

-김태현 개자식아! 너 때문에 길드가 사라졌다!

-너 때문에 판온 1을 접었다, 김태현! 강제로 취직을 하고 애인과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게 됐단 말이다!!

그런 암살자들을 막는 건 골짜기 같은 곳에서는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아예 길드 동맹처럼 길드원만 들어올 수 있는 도시 구역을 따로 지정하거나 할 수 있겠지만, 그건 욕먹어도 되는 놈들이나 하는 짓이었고….

“아무래도 데리고 다니지 않으면 좀 불안하다고. 저런 귀한 NPC는 내버려 두면 꼭 누군가한테 납치당한 다음에 편지 날아오더라.”

“그럼 그냥 버리면 안 되나?”

-…….

옆에서 듣고 있던 태현의 소환수들은 유지수의 말에 경악했다.

저 인간은 사람의 마음이 없나?

“그것도 방법 중 하나겠지만 그랬다가는 2왕자 쪽 NPC들하고는 관계가 파탄 날 거 같고….”

-저, 드릴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폐하.

“?”

-뤼지유카 님께서는 활발하고 장난을 좋아하셔서 자주 사라지십니다.

“…….”

“…….”

태현과 유지수의 표정이 차가워졌다.

노련한 플레이어들은 NPC의 대사 한 줄에서 퀘스트를 알아채는 법.

지금 호위기사가 말하는 대사는 앞으로 일어날 상황을 암시하고 있었다.

…뤼지유카 내버려 두면 도망갈 테니까 잘 감시해라!

“그냥 지금 잡으면…?”

“저기 뤼지유카 언니 있는데?”

“언니도 같이 잡죠? 같이 많이 싸웠으니까 레벨도 많이 올랐을 텐데.”

“너 안 보는 사이에 아키서스 교단이 아니라 어디 이상한 교단 가입하고 왔니?”

“아니….”

유지수는 억울해했다.

그저 배운 대로 말했을 뿐인데!

다 당신한테 배웠다고!

“음… 좋은 생각이 하나 있긴 해.”

“그런데 왜 고민하시는 건데요?”

“이게 겉으로 보기에는 좀 그렇거든.”

태현의 말에 유지수는 피식 웃었다.

“그런 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나 하는 소리인데 신경 쓸 거 없죠. 왜 그런 걸 신경 쓰세요?”

“맞는 말이야.”

유지수의 단호한 말이 태현에게 응원이 되었다.

태현은 행동에 나섰다.

철컥, 철컥-

-…….

-…아, 아니. 폐하? 폐하???

뤼지유카의 호위기사들은 당황했다.

뤼지유카가 감옥으로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키서스 포병대들이 갖고 다니는 거대한 악마 감옥들 중 하나로!

-폐하??? 뤼지유카 님이 왜 저기로 들어가시는 겁니까?!

“저게 감옥 같아 보이겠지만, 사실 저건 이동형 요새라고 할 수 있지. 모든 적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주는 곳이지.”

-과연….

[최고급 화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

[……]

[……]

[설득에 실패합니다!]

‘음. 역시 무리였군.’

아무리 화술 스킬이 사기적으로 높아도 세상에는 불가능한 게 있는 법.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십니까!

호위기사들은 울컥했다.

아무 잘못 없는 공주가 천진난만하게 감옥 안에 들어가서 ‘와’ 하고 놀고 있으니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큭큭… 어린 공주여….

-여기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지 돌아가는 물정을 모르는 모양이군. 이 감옥에는 규칙이 있… 크아아악! 크악! 성수 그만 뿌려!!

포병대 드워프들이 달려와서 뤼지유카에게 말을 거는 악마들을 닥치게 만들었다.

-이놈들이 정신을 못 차렸네! 어디서 공주 전하에게 말을 걸어!

-나는 그냥 이 감옥의 현실을 알려주려고 했을 뿐인데!! 크아아악!

뤼지유카는 악마들에게 성수로 시원하게 목욕을 시켜주는 모습에 매우 즐거워했다.

눈빛을 반짝이며 박수를 쳤다.

-너무 재밌어요!

까르륵 웃어대며 손뼉을 치는 뤼지유카.

그 공주의 모습은 포병대 드워프들의 마음에 불을 붙였다.

-재… 재밌습니까?

-네!

-…좋습니다! 뭔가 더 보여드리겠습니다! 야. 갖고 와라!!

-아, 안 돼! 안 돼!!!

절망스러운 미래를 예지한 악마들이 비통하게 소리를 질렀지만, 신이 난 드워프들은 멈추지 않았다.

태현은 시선을 돌렸다. 호위기사들은 물러나지 않겠다는 듯이 굳은 표정으로 버티고 있었다.

“뤼지유카도 저렇게 좋아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래도 안 됩니다! 저런 열악한 곳에서….

“저게 의외로 공격에서 되게 안전한 곳이야. 게다가 포병대의 최정예 전사들이 지키고 있다고. 이제 고대 제국 전사들까지 추가되었다니까?”

-하지만… 어떻게 악마들만 있는 곳에….

“아니야. 악마들만 있지 않아. 저길 보라고.”

-?

태현은 고대 제국 출신 왕자, 페르소텔턴을 가리켰다.

페르소텔턴은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반갑군.

-누, 누구십니까? 저분은?

“바로 고대 제국의 적통을 잇는 위대한 왕자시다.”

-부끄러우니까 그런 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 나는 그저 이름 없는, 죽음에서 돌아온 시체일 뿐이니까.

굶주린 혼돈에게 오염당해서 부활한 페르소텔턴은 스스로의 부활을 매우 부끄러워했다.

이대로 풀려나면 놈의 꼭두각시가 되었기에 여기 머무르고 있었지만….

“알겠나? 이건 감옥이 아니라 이동형 학교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하지만….

-뤼지유카 님의 뜻도 물어봅시다! 싫어하실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호위기사들의 외침과 달리 뤼지유카는 단호하게 말했다.

-여기 너무 좋아!

-…….

-…….

-아버지 따라다니는 것보다 훨씬 좋은걸….

“좋다는데?”

-캬오.

불불이가 희한하다는 듯이 울었다. 뤼지유카가 그걸 보고 눈빛을 반짝였다.

-빨간색 도마뱀???

“아니. 도마뱀이 아니라 드래곤 계열 펫이지.”

-드레이크예요? 드레이크??

“드레이크는 아니고.”

-어스 웜?? 와이번??

“그거랑도 아닌데….”

-캬오?

불불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듣다 보니 자기가 누군지 의아해진 것이다.

-너 드래곤이야 이 멍청한 자식아….

흑흑이가 텔레파시 마법으로 불불이한테 말했다.

저 어린 드래곤 놈이 자기가 누군지도 헷갈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가 보살펴줘도 되나요? 제발??

“당연히 안 되지.”

태현은 단칼에 잘랐다.

불불이는 지금 1분 1초가 아까운 상황.

태현과 같이 다니면서 싸우고 경험치를 먹여서 성장시켜야 겨우 1인분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감옥, 아니, 우리 안에서 공주와 놀 이유가 없지 않은가.

-제가 갖고 있는 물약하고 스크롤들 다 써서 강하게 만들어줄게요!

“…다시 한번 말해보겠니?”

태현의 목소리가 친절하고 부드러워졌다.

* * *

수많은 퀘스트가 끝났다.

탑지기 앙콜라스는 기진맥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펠마스는 자애로운 눈빛으로 지켜봤다.

-이제 신앙이 느껴지는가?

-예! 예!!

고고하고 자존심 높던 앙콜라스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아키서스를 사랑했다.

‘아니 내가 무슨 미친….’

앙콜라스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 교단에 오고 나서 그가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

“흑흑….”

“진짜 힘들었다.”

“대박인 줄 알았는데 완전히 미친놈이었어.”

그리고 앙콜라스보다 더 힘든 건 플레이어들이었다.

괜히 잘못 걸렸다가 퀘스트 지옥을 같이 돈 것이다.

보상이야 어마어마하게 쌓였지만 플레이어들은 그런 걸 일일이 확인하기 힘들 정도로 지쳐 있었다.

그냥 가서 쉬고 싶다!

두두두두두-

멀리서 울리는 말발굽 소리와 피어오르는 먼지.

“??”

“아키서스 성기사들인가?”

“걔네 돈 없어서 걸어 다니지 않아?”

“아니. 요즘은 몬스터 길들여서 타고 다닐 텐데….”

놀랍게도 나타난 건 플레이어들이었다.

판금 장비로 중무장하고, 마갑까지 말에게 완벽하게 입힌 기사 플레이어들!

한 명 한 명의 레벨이 얼마나 높고 돈이 많은지 바로 느껴졌다.

아탈리 왕국은 물론이고 대륙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플레이어들은 아니었다.

“화이트 나이트!!”

“화이트 나이트다! 전투 준비해라!”

지쳐서 쓰러져 있던 플레이어들은 벌떡 일어섰다.

스미스와 여러 길드들이 새로 세운 연합 길드, 화이트 나이트.

길드의 특성은 길마를 닮아가기 마련.

마법사 랭커들이 모인 미다스 길드가 마법사 주력이고, 쑤닝이 연 길드 동맹이 졸렬하듯이, 화이트 나이트도 뛰어난 기사 플레이어들이 많았다.

가장 뛰어난 기사 랭커에게 배우기 위해 모인 플레이어 새로 기사를 시작하는 플레이어, 스미스를 존경해서 온 플레이어 등등.

플레이어들 중에서 저렇게 잘 갖춰 입고 손발이 잘 맞는 기사들은 흔치 않았다.

“아닙니다!! 여러분! 아닙니다!!”

“뭐가 아니라는 거지?”

“우리가 자기네들 상대가 안 된다는 거겠지. 건방진 자식들!”

“우우! 레벨 높다고 다냐!”

“한 방 먹이고 죽겠다!”

아키서스 교단 플레이어들은 방금까지 지쳐 있었다는 게 거짓말처럼 보일 정도로 격렬하게 반응했다.

탑지기 앙콜라스가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물었다.

-저 기사들의 말을 아직 듣지도 않았….

“당신! 아키서스 사랑하는 거야 안 사랑하는 거야??”

-사, 사랑하지만….

“그러면 뭘 해야 하지??”

-조, 조준을 해야 할 것 같군.

탑지기 앙콜라스는 바로 활을 들었다.

“말씀을 드릴 게 있어서 온 거란 말입니다!!”

기사들은 필사적으로 외쳤다.

여기서 싸움을 벌이면 길드로 돌아가서 사람들 볼 면목이 없었던 것이다.

“무슨 말? 선전포고 하러 왔나?”

태현이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유지수는 살짝 기대 섞인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선전포고 하러 온 거면 바로 공격해서 경험치를 먹어도 되지 않나?

“…으흠. 같이, 레이드를 하는 게 어떤지 여쭤보려고 찾아왔습니다.”

“…우리??”

“예….”

기사 플레이어도 좀 민망했는지 살짝 시선을 피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