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463화
“어쨌든 간에 김태현을 빼는 건 너무 리스크가 커.”
“확실히 그렇습니다.”
검술 스킬이 봉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은 태현을 빼고 싶지 않아 했다.
단순히 검술 스킬로 인한 폭딜을 제외하더라도 태현은 워낙 대체불가의 선수였던 것이다.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상대 팀을 긴장시키고 실수하게 만드는 선수는 흔치 않았다.
검술 스킬이 봉인되었다고 빼버린다면 이쪽의 손해.
“다음 경기까지는 검술 스킬이 돌아올 테지만, 지금은 그걸 제외하고 생각해야겠지. 이번 경기는 원거리 위주로 풀어나가야 해.”
이세연의 말에 선수들은 새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투기장에 나오는 팀들마다 여러 특색이 있었지만, 공격 스타일로 나눈다면 근거리/원거리로 나눌 수 있었다.
한국대표팀이 강했던 건 근거리에서는 태현과 류태수가 미친 듯이 물어뜯고, 그렇다고 원거리에서도 딱히 밀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적절한 밸런스를 갖춘 팀.
하지만 이번 경기는 필연적으로 원거리 공격으로 풀어나가야 했다.
“이다비 선수가 김태현 선수 위주로 MP 케어해 주셔야 할 것 같네요.”
이세연은 원래 받았던 축복들을 태현에게 돌리기로 했다.
그녀는 MP를 커버하는 스킬들이 여럿 있었지만 태현은 상대적으로 부족할 테니까.
“그렇게까지는….”
“조용히 받기나 해. 마법사로서는 내가 더 경험이 많잖아.”
태현은 반박할 수 없어서 조용하기로 했다.
시무룩하게 조용해진 그 모습에 이세연은 갑자기 살짝 재밌어졌다.
“…그래서 시작하면 이런 진형으로 딜 넣으면서 싸울 생각인데. 여기서 더 말할 거라도 있는 사람?”
“이번에는 제작 스킬을 최대한 활용해 보려고.”
“제작 스킬을?”
“응.”
태현의 말에 이세연은 의아해했지만, 그리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아니었다.
투기장에서 왜 제작 스킬들을 쓰지 않는가?
그건 제작 스킬들이 쓸 수 없어서가 아니라, 대회 나올 선수들 중에서 제작 스킬이 높은 선수들이 별로 없어서였다.
전투 스킬 하나라도 더 많아도 모자란 상황에 제작 스킬까지 챙기기는 힘든 것이다.
하지만 제작 스킬들은 의외로 쏠쏠했다.
다른 플레이에 묻혀서 주목을 크게 받지 못한 편이지만, 한국대표팀도 계속해서 제작 스킬을 써온 편!
경기 시작하면 이다비가 바로 포션 몇 개 만들고 태현은 빠르게 폭탄 만들고….
물론 시간을 오래 쓰지는 못했다. 경기가 워낙 빠르고 격렬하다 보니 제작에 시간을 오래 쓰면 불리해지는 수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불리해지더라도 제작 스킬에 시간을 써볼 생각이었다.
“독일대표팀도 신중한 건 마찬가지니까.”
“하긴 그렇긴 해….”
이세연은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원래 빠르게 움직여서 유리한 곳을 점령하는 게 투기장의 기본이었지만, 이번에는 다행히 상대도 좀 느린 편이었다.
위험을 감수하고 적극적으로 움직이기보다는 안정적인 플레이를 하는 이들!
“그래. 어떤 제작 스킬을 쓸 생각이지?”
“일단 기계공학.”
가장 당연한 스킬.
태현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오히려 검술 스킬이 아니라 기계공학 스킬이었다.
“다음은?”
“대장장이 기술 스킬. 어차피 좀 시간을 쓸 거라면 아예 작정하고 버프를 걸어주는 게 좋겠어.”
“…그, 그렇구나.”
“그 다음은 요리겠지. 시작하자마자 맵에서 빠르게 재료를 모은 다음 요리를 만들어서 버프를 걸 생각이야. 아무래도 원거리에서 마법 공격을 해야 할 테니, 요리 버프도 중요하겠지.”
“으응….”
“노래 스킬도 적극적으로 써봐야겠지?”
‘괜히 물어봤나…?’
이세연은 황당하긴 했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싶었다.
검술 스킬이 봉인되었어도 태현에게는 아직 많은 것들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솔직히 태현이 실수를 저질러서 다른 사람들한테 욕 먹을까 봐 내심 걱정했던 이세연이었다.
인기라는 건 원래 덧없어서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도 실수 한 번으로 훅 갈 수 있지 않은가.
만약에라도 태현이 그러는 걸 절대로 보고 싶지 않았다.
“차근차근 하나씩 버프를 최대한 걸어보자.”
선수들은 머리를 맞대고 경기의 시뮬레이션을 돌리기 시작했다.
원래 한국대표팀은 공격적인 팀에 속했다.
빠르게 움직이며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고 상대를 뒤흔들며 공략하는 강팀.
그러나 이번에는 경기 템포를 늦추고 천천히 하는 식으로 스타일을 바꿀 생각이었다.
시작하자마자 가능한 버프를 다 주워 먹고 천천히 들어가자!
일종의 고육지책이었지만, 선수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이제까지 같이 해오면서 쌓인 자신감이 있었던 것이다.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란 믿음!
* * *
-모든 팬들이 기다리시던 바로 그 순간, 경기 예측 순간이 돌아왔습니다! 이제 다음 경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군요?
-그렇습니다.
-이번에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8강 경기에서 가장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 팀은 한국대표팀이었습니다. 미국에서 미국대표팀이 밀리는 게 어이가 없긴 하지만,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닙니다! 그만큼 기대가 클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이 사람 왜 이래?’
진행자는 마누엘이 왜 해설을 맡아 놓고 이렇게 의기소침하게 조용한가 의아해했다.
그러다가 깨달았다.
‘아니, 이 사람…?! 실수하기 싫어서 이러는 건가??’
그랬다.
이제까지 미국 쪽에서 해설을 맡은 사람은, E-스포츠에서 명해설자로 이름 높은 마누엘이었다.
온갖 경기를 깊이 있게 분석하고 예측하는 능력으로 이름이 높은 사람.
팬들은 마누엘을 ‘예언자’라고 부를 정도였다.
그런데 그 마누엘이 이번 월드컵에서는 연달아 실수만 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대표팀 관련 예측으로는 계속 실수만 하고 있는 상황!
사실 그건 마누엘 잘못이 아니었다.
한국대표팀이 뭘 잘못 먹었는지 매 경기마다 새로운 전략전술을 들고 오는 걸 어떻게 예측한단 말인가.
남들은 승리패턴이 잡히고 어느 정도 질서가 생기면 그걸 유지하는데 한국대표팀은 매 경기마다 바꿔오니 해설자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었다.
-이번 경기에서는 김태현 선수도 상당히 조심하면서 움직일 겁니다. 왜냐하면 상대방이 노골적으로 카운터를 준비하고 있는데 거기에 직접 들어갈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아! 김태현 선수 그냥 뛰어듭니다!! 그냥 무시하나요?? 무시하나요? 무시하고 들어갑니다!!
-…….
이런 일들은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집기도 힘들었다.
그리고 김태현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이세연 선수는 네크로맨서인 만큼 지금 언데드 군단을 이용해 적의 옆을 치려고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본적인 양동입니다.
-아, 과연 그렇군요! 앗. 옆에서 기습입니다! 이다비 선수를 노리는 기습! 암살인가요? 암살인가요? 아닙니다!! 언데드들이 막아섭니다! 이세연 선수, 언데드들을 움직이지 않고 대비시켜놨습니다! 놀랍군요! 이걸 예측한 걸까요? 설마 이다비 선수가 걱정돼서 내버려 둔 건 아닐 거고, 역시 예측한 거겠죠?
-…….
팬들이나 동료들은 괜찮다고 했지만 마누엘 입장에서는 의기소침해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시청자들은 그런 부분에 냉정했다.
-아니 해설이 왜 해설을 하지 않는 거지?
-마누엘, 술 먹고 해설하러 온 거야? 방송국에서 자는 건가?
-차라리 한국 쪽 해설을 보자. 한국 쪽 해설이 괜찮다더군.
전 세계에서 월드컵을 보는 팬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번역이 활발해진 덕분에 딱히 한국 방송이라고 해서 못 볼 것도 없었던 것이다.
특히 판온 골수 팬들은 한국 방송을 챙겨보는 것에 매우 익숙했다.
한국 쪽 랭커들에 관한 정보들은 한국 방송을 봐야 나왔으니까!
-나는 개인적으로 MBS를 추천하겠어. 거기 해설자가 실력이 있거든. 그리고 김태현 선수하고 친분이 있는지 꽤 말을 잘 해.
-오. 그게 정말이야?
자기들끼리 팁을 공유할 정도의 팬들.
갑자기 올라가는 조회수에 MBS 쪽에서는 당황했다.
왜 갑자기 해외 팬들이…?
* * *
“한국대표팀은 강합니다. 그건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또 시작한다.
└또 또 시작할듯.
“…독일대표팀도 무려 8강까지 올라온 팀. 게다가 유럽의 뛰어난 선수들이 모여서 오랫동안 훈련을 통해 철저한 팀워크를 익힌 팀입니다. 오죽하면 별명이 정밀기계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 승부가 팽팽하다고 봅니다.”
어떤 경기든 간에 팽팽하게 만들어주는 마법의 MBS 캐스터, 육병완!
페가수스와 달팽이가 달리기 경주를 한다고 하더라도 ‘아직 모릅니다! 의외로 이런 신인이 깜짝 승리를 거둘 때가…’ 같은 해설을 하는 게 그였다.
한국 팬들은 이제 하도 많이 알아서 놀라지도 않았지만, 해외에서 놀러 온 팬들은 어이없는 반응에 격분했다.
-승부가 팽팽하다니 한국인들은 제정신이 아니군!
-어떻게 김태현이 독일 놈들한테 팽팽하다고 할 수 있지?? 너희들은 모두 매국노야!!
-자기 나라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고!
-…뭐라는 거야 미친놈들이??
-왜 이렇게 해외 시청자들이 많아?
별생각 없이 보고 있던 한국 팬들은 황당해했다.
대체 왜 갑자기 해외 팬들이 찾아와서 ‘두유 노 김태현?? 왓?? 유 크레이지 맨!’ 이런 소리를 해대고 있으니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야 니들보다 우리가 더 잘 알아…!
심지어 독일 마크를 단 시청자 놈이 정색하고 ‘한국대표팀이 이긴다’라고 화를 내는 것도 보였다.
-팽팽하다고 할 수도 있지 미친놈들아! 게다가 넌 독일 놈인데 왜 한국대표팀을 응원해?
-나는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뿐이다. 돈도 한국대표팀에게 걸었다!
-…….
경기 밖에서 그런 혼란이 일어나는 동안, 한국대표팀은 준비를 마쳤다.
-경기가 시작됩니다!
“뛰어!”
일행은 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빠르게 달려가는 선수들의 모습에 모두가 초반부터 화끈한 싸움을 기대했다.
그런데…?
[<아키서스의 권능 요리>에 성공했습니다!]
[……]
[……]
갑자기 미친 듯이 요리를 해대는 태현의 모습에 다들 황당해했다.
뭐지?
“나뭇잎으로 만든 쿠키 완성됐다. 먹어!”
“이거 다들 보고 있을 텐데 먹는 게 좀 많이 창피합니다….”
류다영은 갑자기 수치심을 깨달았는지 얼굴이 붉어졌다.
남들이 보면 나뭇잎 주워 먹는 줄 알 것 아닌가.
“재료 최대한 모아 와야 해. 움직여!”
“알고 있습니다!”
한국대표팀의 전략은 간단했다.
검술 스킬을 쓰지 못하는 대신 제작 스킬을 총동원해서 준비에 올인하자!
먼저 움직이지 못하는 게 불리하긴 하겠지만, 그만큼 수십 개의 버프를 쌓아서 만회할 생각이었다.
이세연이 소환한 언데드들이 근처에 흩어진 재료를 모아 오고, 상인의 감각을 킨 이다비가 희귀한 재료들을 찾아서 갖고 왔다.
태현은 빠르게 요리로 만들고 동시에 기계공학 스킬을 사용해 폭탄을 만든 다음 남는 시간에는 류다영, 류태수의 장비에 최대한 버프를 걸어줬다.
[태초의 담금질을 사용했습니다!]
[현재 화염이 없어서 페널티…]
[사디크의 화염을 갖고 있습니다! 보너스를…]
[태초의 불을…]
[……]
[……]
“가만히 있지 말고 먹어!”
“앗. 예!”
태현은 경기 시작 전에 이미 레시피들을 다 준비해 놓은 상태였다.
겹치지 않고 경기에 도움이 될 법한 것들로.
물론 음식 하나로는 안 됐으니 빠르게 이것저것 먹어야 했다.
“읍읍읍….”
“으읍….”
한국대표팀 선수들은 힘겹게 음식을 먹었다.
급하게, 빨리, 많이 먹어야 하는 만큼 이것도 의외로 어려운 일이었던 것이다.
[민첩이 일시적으로 증가합니다!]
[공격 속도가…]
[회피력이…]
[마법 방어력이…]
[……]
“큭, 배가, 부른….”
“뛰고 와서 먹어! 시간 낭비하면 안 된다!”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