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462화 (1,461/1,826)

§ 나는 될놈이다 1462화

“자! 다들 움직여!”

바스토스는 나인테일 길드원들에게 강하게 말했다.

나인테일 자체가 고렙 이상만 받는 길드인 만큼, 길드원들의 스탯은 무시할 수가 없었다.

스탯이 높으면 잡일할 때도 훨씬 유리한 게 사실.

순식간에 폐허 위에 쌓인 잔해들을 치우는 모습에 뒤늦게 도착한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경악했다.

“저놈들 뭐냐??”

“왜 잡일을 하고 있지?”

“도발인가? 우리를 견제하는 것인가??”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한테는 자부심이 있었다.

게다가 요즘 파워 워리어는 예전의 파워 워리어가 아니었다.

규모가 커지고 질적으로도 성장하면서 <요리단> <건설단> <잡일단> <구걸단> 같은 전문분야로 나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태현의 부름을 받고 온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건설단>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파워 워리어에서 건축 스킬 좀 하는 놈들만 모인 곳!

“구다르 님! 어떻게 하지요?”

“침착해라. 우리는 우리 할 일만 하면 된다.”

건설단을 이끄는 파워 워리어 간부, 구다르는 냉정하게 말했다.

그 모습에 다들 감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 들어온 신참, 무보가 감동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하. 다른 놈들이 무슨 시비를 걸든 우리 할 일을 묵묵히 하면 그걸로 이길 수 있다는 겁니까?”

“무슨 소리냐? 저놈들에 대한 헛소문을 퍼뜨려서 쫓아내야지.”

“…….”

해야 할 일이 그 소리였어???

* * *

“나인테일 길드가 퀘스트 도중에 배신하고 다크 엘프들한테 붙었다더라!”

“나인테일 길드가 줄타기했대!”

“…!!”

열심히 일하던 길드원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걸 느꼈다.

어… 어떻게 안 거지??

“바, 바스토스 님…?”

“조용히 해라! 티 내지 말고. 더 열심히 해! 지금 반응하면 자백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바스토스도 당황했지만 역시 그는 길드원들보다 한 수 위였다.

침착하고 조심스럽게 잡일에 몰두했다.

건물 확인을 끝내고 돌아온 태현은 바스토스에게 물었다.

“야.”

“아니다!”

“…?”

“아, 아니. 뭐. 왜 왔냐?”

“진행 과정 물어보려고 왔는데… 아. 소문 신경 쓰는 거냐? 다크 엘프들한테 배신했다는 소문?”

태현은 피식 웃으면서 손을 내저었다.

“그런 헛소문을 믿지는 않으니까 걱정할 거 없다.”

“맞아요. 설마 나인테일 정도 되는 길드가 그런 졸렬한 짓을 했겠어요? 게다가 다른 사이도 아니고 지금 영지를 하나같이 운영하고 있는 사이인데요.”

이다비가 옆에서 도와주듯이 말했다. 물론 바스토스 입장에서는 등 뒤에서 진땀이 줄줄 나는 소리였다.

미안하다…!

우리가… 졸렬했어…!!

“그… 그렇지. 그렇지. 우리가 누구인데 말이야.”

바스토스의 변명에 태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다크 엘프 쪽으로 편을 갈아탔으면 그렇게 조용했을 리가 있나. 뭐라도 했겠지.”

“…….”

바스토스는 기뻐해야 하나 굴욕을 느껴야 하나 헷갈리기 시작했다

“어쨌든, 지금 폐허 다 치웠나? 자재 분류도 다 했고?”

“어… 어.”

“그렇군. 자재가 대량으로 필요할 거 같은데, 아무래도 이 주변은 안심할 수가 없어서 말이야.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 채광하러 갈 때 지켜줄 수 있나?”

건물들 흔적 찾고 하나하나 복구하는 데에는 어마어마한 재료들이 들어갔다.

그 건물이 화려하고 난이도가 높을 수록 더더욱.

하늘을 보며 걷는 대신 땅바닥만 보며 잡템 찾아 걷는 파워 워리어 길드여도 이런 자재들을 바로 공급할 수는 없었다.

건축 퀘스트 때에는 주변 현장에서 최대한 끌어오는 게 상식인 것이다.

하지만 이 주변 산맥은 매우 위험한 편.

나인테일 길드원들 같은 고렙 호위가 있으면 유리했다.

물론 나인테일 길드원들이 할 만한 퀘스트가 아니긴 했다. 남는 게 거의 없었으니까.

그래서 태현도 물어본 거였는데….

“물론!”

-이다비. 쟤네 진짜 왜 저러지? 뭐 잘못 먹었나?

-혹시 게시판에서 태현 님 욕한 거 아닐까요? 뭔가 많이 찔리는 표정 같은데요?

-나 욕한 놈들은 너무 많을 텐데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욕을 엄청나게 심하게 했나 봐요.

둘은 의아했지만, 해준다는데 더 뭐라고 하진 않았다.

둘이 대답이 없자 초조해진 바스토스는 더 강하게 말했다.

“다른 길드원들도 불러서 확실하게 호위하겠다. 우리 나인테일 길드의 힘을 믿어라, 김태현.”

“어… 그래. 고맙다.”

* * *

나인테일 길드가 전폭적으로 협조하고 파워 워리어의 전문가들이 나섰지만 여전히 까마득한 건 사실.

그러나 의외의 지원군들이 도착했다.

“소문 듣고 왔습니다!”

“너희들은….”

태현은 낯익은 플레이어들의 얼굴들을 보고 깨달았다.

“흙 퍼먹던 사람들 아닌가?”

“…오랑카 길드입니다.”

남부 대륙에서 새로 개척하겠다고 나섰다가 물자 유통 안 되고 자원도 안 나와서 흙 퍼먹으면서 버티던 길드들!

그때는 피골이 상접하고 눈빛이 쇠약했는데, 지금 보니 잘 먹어서 그런지 윤기가 자르르 돌고 눈빛이 반짝였다.

전부 다 이번 사원 퀘스트로 인해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남부로 와준 덕분이었다.

“배부르게 먹고 나니까 정신이 들더군요.”

“왜 거기서 그러고 있었는지 의문이 든 건가?”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깨달았습니다. 개척을 하려면 그냥 마을만 붙잡고 노는 게 아니라 이번 퀘스트처럼 사람들을 불러와야 한다는 걸 말입니다. 저희도 여기 복구를 돕겠습니다!”

“진짜 속셈은 뭐지?”

“마을에 있기 싫습니다! 거기 먹을 게 너무 없습니다!”

“…그, 그래. 파워 워리어한테 잘 말해 놓을 테니까 든든하게 먹고 지내도록.”

남부 대륙이 다 거지꼴로 사는 건 아니었다.

몇몇 잘 사는 마을들과 교통편이 좋은 곳들은 물자가 잘 돌았다.

사원은 산맥 깊숙한 곳에 있다지만 이미 사람들이 많이 와서 길을 다지고,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 추가로 계속 길을 내고 있는 상황.

여러 길드들의 마을보다는 훨씬 나은 곳이었다.

-훌륭하다. 아키서스의 영웅.

전사장이 와서 말을 걸자 태현은 슬쩍 물었다.

“혹시 전사들 중에 뛰어난 건축가들은 없나? 그래도 오랫동안 산 곳인데 잘 아는 이들이….”

-미안하게 됐다. 그런 자들은 없다. 우리 때만 해도 건물 세 개가 새로 폐쇄됐지.

“…….”

태현은 구박을 하려다 말았다.

사원을 쓰고 있으면 그 사원을 유지, 보수할 인력을 키워야지 전원이 다 칼과 방패를 들면 어떡한단 말인가.

제작 직업 무시하냐?

-아키서스의 영웅. 나는 이 사원을 지키는 것이, 산맥의 사악한 것들로부터 산맥 밖의 선량한 사람들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

-하지만 이미 산맥 밖에도 수많은 적들이 우글거리는 지금, 그 생각은 너무 안일한 생각이라는 것도 깨달았지. 우리에게 가르침을 준 골드 드래곤 고이오노스 또한 그런 걸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전사들을 데리고 움직여야 한다. 시대가 변하고 있으니 우리 또한 거기에 맞춰야겠지.

“…….”

태현은 등골이 오싹해지기 시작했다. 순간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카르바노그가 골짜기는 안 된다고 비명을 지릅니다!]

‘골짜기는 안 돼!’

고대 제국의 전사들이 절대 나쁜 NPC는 아니었지만, 영지에 오면 득보다 실이 많을 놈들이었다.

제작 능력은 0에, 적들은 너무 많아서 안 좋은 사건만 늘어나지 않겠는가.

태현은 골짜기의 어떤 단점을 말해서 설득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전사들을 데리고 대륙을 방랑하며 굶주린 혼돈의 세력들을 박멸할 생각이다.

“오…!”

태현은 안도했다. 하지만 아직 방심하기는 일렀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지낼 곳이 아예 없을 수는 없다.

“오….”

-이렇게 부탁하는 것도 염치없는 일이지만, 아키서스의 영웅은 왕국을 다스리는 국왕이라고 들었다, 괜찮다면 왕국의 가장 하찮고 쓸모없는 조그만 땅을 빌려줄 수 있겠는가? 우리가 거기서 머무르겠다.

<고대 제국 전사들의 안식처-고대 제국 퀘스트>

고대 제국의 사원과 전통을 지켜 오던 전사들은 결국 근거지를 잃어버리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고대 제국의 전사들은 은혜를 잊지 않는 자들. 그들에게 은혜를 베푼다면 섭섭지 않게 돌아오리라.

보상: ?, ???

태현은 감동했다.

그냥 ‘야! 골짜기 좀 쓸게! 친구잖아!’ 하면서 들어오는 게 아니라, 왕국의 쓸모없는 땅을 조금 빌려달라는 저 예의 바르고 공손한 태도.

요즘 NPC들한테서 얼마나 찾기 힘든 태도란 말인가.

“걱정 마라! 내가 왕국 땅 하나 찾아서 빌려줄 테니까!”

-호쾌하기 그지없구나!

옆에서 듣고 있던, 화염의 정령왕타프리오트가 입을 열었다.

마침 잘 되었다 싶어서 태현은 타프리오트에게도 말을 걸었다.

“혹시 타프리오트 님께서도 같이….”

-나는 이제 정령계로 돌아가야 한다!

타프리오트는 우렁우렁 크게 울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원래 목소리가 그런 것도 있었지만, 태현의 말 때문에 좀 더 목소리가 커진 것 같기도 했다.

-사디크의 힘을 이어받은 후계자야. 지금 대륙은 굶주린 혼돈의 힘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많은 정령들도 놈을 두려워하고 있지. 한 번 잡히면 돌아오지 못하고 있으니까!

선한 신이나 악한 신들과 달리, 그냥 다짜고짜 붙잡아서 자기 안에 삼켜버리는 굶주린 혼돈은 정령한테도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러면 남아서 도움을 주….”

-나는 그럴 수는 없지만!! 만약 다른 정령들을 만나게 된다면!! 널 돕도록 이야기를 해놓겠다!!

타프리오트는 과연 정령왕이었다. 작위를 도박으로 딴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이 태현의 말을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갔다.

[화염의 정령왕, 타프리오트가 당신의 헌신에 감사를 표합니다!]

[화염의 정령들을 만났을 때 정령왕의 약속이 추가로 작동합니다!]

-그리고 이건 선물이다!

[화염의 정령왕, 타프리오트가 정령왕의 가호를 불불이에게 선사합니다!]

[레드 드래곤의 혈관에 흐르는 피가 더욱더 강해집니다!]

-캬오오오…!

불불이의 눈빛이 선명해지고 덩치가 커지자, 태현은 어이가 없었다.

‘아니….’

[카르바노그가 화염의 정령왕과 레드 드래곤은 원래 친한 편이라고 말합니다.]

‘아니. 그걸 말한 게 아니라, 저 가호를 나 아니라 불불이한테 준 게 어이가 없는 건데.’

[…그 정도는 좀 양보하자고…]

파아아앗!

거대한 불꽃과 함께 타프리오트가 사라졌다. 태현은 아쉬운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뒤에서 갇혀 있던 소환공, 에다게르가 불만스럽게 말했다.

-왜 저 정령왕 놈은 속여서 감옥 안에 가두지 않나???

“그런 짓은 좀 너무하잖아.”

-…이놈!!

* * *

“독일대표팀은 정말 균형이 잘 잡힌 팀이군.”

“예선에서 한 번 진 적이 있는데, 그것도 상대의 전략을 예상 못 했는지 흔들려서 진 경우입니다. 저희보다 팀워크는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류다영의 말에 이세연은 살짝 분한 마음이 들어서 입술을 깨물었다.

그들보다 강하다, 그들보다 잘한다 같은 말도 분한 건 사실이었지만 팀워크가 낫다는 말도 의외로 분했던 것이다.

태현은 이세연의 반응을 깨닫고 말했다.

“그쪽에 중점을 두고 연습을 했겠지. 너무 충격받을 이유가 없지 않아?”

“사실, 네가 갑자기 마법사로 임시 전직한 것에 걱정하고 있었지.”

“미안하다.”

태현은 깔끔하게 사과했다.

그 예상치 못한 사과에 이세연이 더 당황했다.

“아, 아니… 사과할 것까지는 없고.”

“내 잘못이지.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할게.”

“그만하라니까…! 왜 그래, 정말?”

보기 드물게 당황하는 이세연의 모습을 본 태현은 갑자기 내면에서 무언가 싹트는 것을 느꼈다.

사과가 이렇게 재밌는 거였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