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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461화 (1,460/1,826)

§ 나는 될놈이다 1461화

이겼지만 흉흉한 분위기에, <나인테일> 길드원들은 눈치를 봤다.

-어… 이겼다고 외치면 안 되나?

-지금 눈 달렸으면 분위기 좀 봐라. 그런 말 했다가 김태현한테 PK 당하면 네가 책임질 거냐?

나인테일 길드원 중 몇몇은 여전힌 판온 1 때의 태현을 기억하고 있었다.

방금 태현이 길드원들을 배려해 줬다지만(착각이었지만) 사람의 성질은 원래 쉽게 변하는 게 아니었다.

저놈이 언제 성질이 폭발할지 모르는 것이다.

바스토스는 헛기침을 하며 태현에게 다가갔다.

“김태현. 객관적으로 보면 나쁜 상황은 아니다.”

“…….”

“퀘스트는 성공했고, 지금 사원 공격하러 온 놈들은 다 후퇴하고 있지. 게다가 쟈켄겔라드 레이드도 성공적으로 해냈고. 이 정도면 퀘스트 성공적으로 해낸 셈….”

“그냥 조용히 해라.”

“그래 그냥 조용히 하겠다.”

태현의 말에 바스토스는 입을 다물었다.

한 마디 더 하면 지팡이로 맞을 것 같았던 것이다.

“후….”

분노조절을 끝낸 태현은 정신을 차렸다.

생각해 보니 태현이 굶주린 혼돈 엿 먹인 걸 떠올려 보면, 굶주린 혼돈이 태현을 엿 먹이려고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굶주린 혼돈의 요새를 한 서너 개는 날려버린 것 같으니 굶주린 혼돈도 어지간히 열이 받았을 터.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강한 놈이 너무 치졸한 것 아닌가??’

자기와 계약한 놈을 그냥 희생시켜서 마법의 제물로 써버리다니.

[카르바노그가 어떻게 보면 그런 치졸함이 강함의 비결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태현은 카르바노그를 타박했다.

야비함과 치사함이 강함의 이유라니. 그렇게 따지면 아키서스는 신들 중에서 가장 강한 신이 되지 않겠는가.

-쟈켄겔라드 님!!

-이 저주 받을 모험가 놈들! 쟈켄겔라드 님을 쓰러뜨리다니. 반드시 다시 돌아와서 복수할 것이다!

[다크 엘프 부족들이…]

[다크 엘프 암살자들이 찾아올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

후퇴하던 다크 엘프들은 눈물을 흘리며 복수를 맹세했다.

플레이어들은 그걸 보고 딱히 놀라거나 하지 않았다.

원래 이런 퀘스트 좀 깨다 보면 서로 원한이 쌓이는 건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잠깐!”

하지만 태현은 도망치는 그들을 불렀다.

“우리가 안 죽였다!”

“…김태현.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좀 아닌 것 같…?”

나인테일 길드원들은 태현의 말에 황당해했다.

방금까지 쟈켄겔라드를 물 샐 틈도 없이 빙 둘러싸고서 연신 두들겨 패던 게 누구였는데 저 말을 믿겠는가.

하지만 태현은 포기하지 않았다.

[최고급 화술 스킬을…]

“이세연. 저놈들 발 좀 묶어줘!”

“그래.”

이세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지팡이를 들어 언데드들을 앞으로 보냈다.

‘그런데 이게 의미가 있나?’

데스 나이트들이 빠르게 달려 나가 도망치는 다크 엘프들의 앞을 막았지만, 이세연은 이게 의미가 있는 짓인가 싶었다.

다크 엘프 암살자들이 찾아오면 귀찮기야 하겠지만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닌 것이다.

게다가 경험치와 보상을 생각해 보면 오히려 좋았다.

방금 쟈켄겔라드가 죽는 꼴을 본 다크 엘프들이 설득이 될 것 같지도 않았고….

길이 막히자 다크 엘프들은 공격부터 하려고 들었다.

“설득하기 전에 제압부터 해야 할 것 같은데. 제압할 방법 있어?”

“음… <아키서스의 이간질>!”

[아키서스의 힘을 빌려 적들 사이에 잠든 불화를 깨웁니다!]

[일정 확률로 적들의 사이가 틀어집니다. 스킬이 성공합니다!]

-네놈 때문이다! 네놈만 아니었어도 쟈켄겔라드 님이….

-지금 누구 탓을 하는 거냐 감히!

탈출해도 모자랄 시간에 서로 싸우기 시작하는 다크 엘프들.

그 모습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저게 뭐냐??

“됐군. 다크 엘프들! 쟈켄겔라드는 우리가 죽인 게 아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아키서스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다! 굶주린 혼돈이 쟈켄겔라드를 죽인 거다!”

[최고급 화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아키서스의 이름에 걸고 맹세했습니다. 상대의…]

[……]

그냥 무시하려던 다크 엘프들은 멈칫했다.

상대의 말에 이상할 정도로 강한 설득력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믿을 수 없다.

“여기 봐라! 쟈켄겔라드의 시체에서 굶주린 혼돈의 정수가 나왔다! 굶주린 혼돈과 계약한 거다! 저기 사원 날아간 거 봐라! 쟈켄겔라드가 아무리 대마법사라도 그렇지 저런 마법을 손쉽게 쓸 수는 없지 않나! 굶주린 혼돈이 쟈켄겔라드의 목숨을 뺏어다가 쓴 거다!”

태현은 한 번도 실수하지 않은 채, 빠르고 정확하게 고발했다.

남 욕할 때 유독 더 정확해지는 화술 스킬.

연달은 증거에 다크 엘프들은 흔들리는 표정을 지었다.

“알겠나? 이 모든 게 다 굶주린 혼돈 때문이다! 굶주린 혼돈 믿자고 하는 놈이 있으면 그놈이 배신자에 원흉이다! 그런 놈이 있으면 바로 베어버려야 한다!”

[다크 엘프들이 당신의 말을 믿기 시작합니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악명이 오릅니다!]

-…드워프 놈들이 우리를 돕지 않았는데 혹시 드워프 놈들도 굶주린 혼돈의 손을 잡은 것인가??

다크 엘프 중 하나가 의심된다는 듯이 물었다.

물론 그걸 태현이 알 리가 없었다.

“그건….”

“네!”

“?!”

이다비가 바로 대답했다.

“산맥의 드워프 놈들도 굶주린 혼돈과 손을 잡은 비열한 놈들이에요!”

-과연…!

이다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태현에게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 태현은 그 눈빛을 마주보며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설득된 다크 엘프들이 산맥 깊숙한 곳으로 도망치는 걸 보며 이세연이 물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딱히 별 의미는 없어. 그냥 굶주린 혼돈 엿먹으라고 한 짓이야.”

“…그, 그렇구나.”

* * *

곳곳에서 플레이어들이 신나서 환호성을 터뜨리고 있는 사이, 태현은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사원의 피해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아작이 났군….”

-다행히 대부분의 전사들이 사원 밖에서 싸우고 있어서 피해는 덜한 편이다.

전사장은 점잖은 목소리로 말했다.

거인다운 거대한 덩치를 갖고 있었지만 전사장은 이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도 교양 있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심지어 방금 같은 치열한 전투를 겪고 나서, 자기네들의 사원까지 날아갔음에도 불구하고!

-모험가들이 다치지 않아서 정말로 다행이군. 멀리서 온 모험가들까지 다쳤다면 볼 면목이 없었을 테니 말이야.

“…물어볼 기회를 놓치긴 했는데, 진짜 거인 맞는 거야?”

이세연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태현에게 속삭였다.

중앙 대륙 거인 산맥에서 지겨울 정도로 사냥을 많이 했던 이세연 입장에서 전사장 같은 거인은 신기할 정도였던 것이다.

“전사장이 좀 교양 있는 거인이긴 하지.”

“저건 교양 수준이 아닌데…?”

-모험가들이여. 다치지는 않았나?

“앗. 감사합니다.”

“저희는 괜찮습니다.”

전사장이 돌아다니면서 모험가들을 확인하는 동안, 태현은 바로 시설 쪽으로 향했다.

“얼마나 부서졌는지부터 확인하자고.”

“네.”

“…….”

이세연은 살짝 창피해져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보는 사람 없겠지?

전사장은 사람부터 확인하는데 그들은 지금 건물부터 확인하고 있으니 조금 창피한….

[<고대 제국 골렘의 연금술 상점>이 크게 파손되었습니다.]

[건축 스킬이 낮습니다. 수리에 페널티가…]

[……]

[……]

[……]

[……]

“수리가 가능하긴 하네요?”

“…늙어 죽을 때쯤 다 되긴 하겠는데.”

태현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개박살이 난 사원 건물들. 수리가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다만 난이도가 매우 매우 높을 뿐!

태현이야 건축 스킬이 낮긴 하다지만, 건축 스킬 높은 랭커가 온다고 하더라도 엄청나게 빨라지진 않을 것 같았다.

온갖 페널티 조건들이 붙은 상태니….

“그렇지만 안 할 수는 없잖아요.”

“그렇긴 하지… 그래. 사람들 모아서 진행은 해놔야겠다.”

기껏 얻은 곳인데 그냥 버려둘 수는 없었다.

태현은 신나서 떠들고 있는 근처 플레이어들에게 물었다.

“혹시 사원 복구 퀘스트에 참가할 생각이 있나?”

“사원 복구 퀘스트에? 아니. 뭐하러? 그런 걸 우리가 왜 해?”

“혹시 사원 복구….”

“에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농담을 하세요? 우리 레벨에 그런 거 하면 이상한 놈 취급 받아요.”

“혹시 사….”

“…안 하면 죽이는 거 아니지??”

돌아오는 반응은 제각각이었지만 대체로 다 비슷했다.

-그런 잡퀘는 안 해!

하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산맥의 다크 엘프들과 타락한 드워프들과 맞서 싸우고 쟈켄겔라드까지 해치운 상황.

대형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끝냈다는 기쁨과 뿌듯함으로 신난 상태일 것이다.

보상도 짭짤할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 잔해 치우고 건물 하나씩 올리는 퀘스트 하자고 했을 때 하는 사람이 나올 리 없었다.

이세연도 이해가 가지 않아서 물었다.

“그런 걸 굳이 물어볼 필요가 있었어?”

“아… 이거 건물 복구해서 쓰게 되면 누구 건지 따지게 될 텐데, 퀘스트 참가했으니 저쪽에도 권리가 있잖아. 그거 물어보려고 한 거야.”

태현에게 당한 랭커들은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떨었지만, 태현은 보상을 숨기거나 불공평하게 빼돌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같은 퀘스트를 깼고 받을 권리가 있다면 평등하게 나누는 사람.

그런 부분에서 공정했기에 그렇게 적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태현은 퀘스트 참가한 사람들에게 사원 복구 퀘스트에 참가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물어본 거였는데….

“그런 거였어?”

이세연은 웃었다.

태현이 무슨 뜻으로 제안한건지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랭커들 중에서 태현처럼 공정한 사람은 의외로 보기 드물었다.

보통 자기 혼자 먹으면 먹었지.

이세연이 태현을 길드에 초대하려고 한 건 단순히 실력 때문이 아니라 저런 성격 때문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무도 안 받으니 뭐 어쩔 수 없군. 나 혼자 진행해야지.”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 부를게요.”

“그래. 부탁하지.”

사원을 떠나기 전에 어느 정도 작업의 뼈대는 잡아 놓고 가야 할 것 같았다.

<사원의 복구-고대 제국 퀘스트>

굶주린 혼돈의 사악한 수작으로 인해 고대 제국의 사원은 파괴되었다.

하지만 영웅들은 그대로 살아남았으니, 이 사원은 다시 복구되리라.

다른 모험가들이 외면하고 있는 사이 당신은 유일하게 고대 제국의 사원을 복구하기 위해 나섰다.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을 우직하게 나선 당신. 이 과업을 해낸다면 마땅한 보상이 있으리라.

보상: ?, ????, ???

‘오….’

태현은 퀘스트창에 반색했다.

하면 추가로 뭐 주나?

‘근데 여전히 난이도 높은 퀘스트긴 하군.’

“김태현. 우리도 돕겠다.”

바스토스와 길드원들이 어슬렁거리며 다가왔다.

그 모습에 태현은 의아해했다.

“뭐지? 건물 하나 나눠달라고 하게?”

“아, 아니. 우린 저런 망가진 건물 따윈 필요 없다.”

“?”

“??”

태현과 이다비는 서로 쳐다보고 의아해했다.

-아, 저 사람들은 건물들 가치 모르나 봐요.

-저런….

“정말 괜찮겠나?”

“괜찮다. 그냥… 선의로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해라.”

바스토스는 쑥스럽다는 듯이 코밑을 쓱 훔치며 말했다.

‘뭘 잘못 먹었나?’

태현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뭐 도와준다는데….

바스토스와 길드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이 도와주려고 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태현이 아까 퀘스트를 깨면서 도와준 것도 있었고, 환심을 사고 싶은 것도 있었지만….

도중에 다크 엘프 편으로 넘어갔던 게 매우 찔렸던 것이다.

-평생의 비밀이다. 알겠지??

-예!

이게 공개되는 순간 태현뿐만 아니라 퀘스트 참가한 다른 플레이어들 모두에게 공적이 될 수 있었다.

그들이 뭘 한 건 아니지만 원래 복수는 이성적인 게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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